그랜저는 잘 팔릴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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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도약. 그러나…
48년 전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고요의 바다’로 불리는 달 표면 착륙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가 달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으며 내뱉은 말은,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명언이었다. 이 위대한 달 착륙 장면을 지켜본 사람만 전세계 5억 명이라고 한다. 당대 최고의 흥행작이었다.
우주개발시대의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지금 여기서 하는 이유는 바로 얼마 전, 실로 ‘위대한 도약’이라고 불릴 만한 차를 만났기 때문이다. 바로 현대자동차 신형 그랜저다. 혹시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싶어 노파심에 말하자면, 신형 그랜저가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라는 뜻은 아니다. 최근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간절한 반전이 필요한 현대차에게 꼭 그렇게 될 수 있을 차가 그랜저라는 이야기다. 현대차 역시 신형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야심대로 그랜저는 한국인이 정말로 ‘혹하기’에 딱 좋은 구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 소비자는 자동차를 고를 때 몇 가지 특징적인 소비패턴이 있는데, 우선 세단일 것(요즘은 SUV로 옮겨가는 추세긴 하지만), 또 넓어야 하며, 호화로움 역시 필수다. 그랜저는 이런 특성을 모두 담았다. 오랜 시간 한국 소비자를 연구하고, 길들여 온 현대차가 내놓은 모범답안 같은 차라는 느낌이 딱 들었다.
올라타고, 몰아본 차는 3.0리터 가솔린 익스클루시브 스페셜. 여기에 선택품목으로 마련한 파노라마 선루프. 헤드업디스플레이, 긴급제동장치, 스마트 크루즈컨트롤 등이 포함된 스마트 패키지, JBL 사운드, 나파 가죽시트, 스웨이드 내장 등은 대단히 호사스럽다. 후자의 것들이 자동차 기본성능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대목에서 한국인을 연구한 티가 확 나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가격은 4천505만 원이다.
예전에 아반떼 상품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2천만 원을 손에 쥐어줄 테니 아반떼 같은 차를 사와 보라는 말을 즐겨했다. 가격 대비 가치가 높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젠 대상을 그랜저로 업그레이드 해야 할 상황이다. 한 가지 약점은 국산차라는 선입견. “국산차가 왜 이리 비싸?”라고 말할 소비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랜저는 꽤 오랫동안 국산 고급차의 대명사로 불려 왔다는 점. 외견과 성질은 젊어졌을지 몰라도, 그래, 그랜저는 여전히 국산 고급차다.
휘황찬란한 각종 장비는 잠시 잊고, 편도 75킬로미터의 고속도, 지방도, 시가지를 고루 달렸다. 한 시간 남짓의 짧은 시승이었다. 차를 충분히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그래도 그랜저의 성능이 만만치 않다는 건 분명했다. 알버트 비어만 효과다. 지겹다고? 그래도 한 번 더 써야겠다. 대단한 효과다.
하체 감성은 무르지 않다. 또 무작정 단단하지도 않다. 균형을 잘 잡은 느낌이다. 직선과 곡선을 잘 타고 넘는다. V6 3.0리터 가솔린 직분사 엔진은 저속에서 V6의 특성이 잘 살지 않아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그간 국산차에 대한 저평가를 뒤집기 좋다. 작은차가 아닌데도, 민첩하고, 영민하다.
V6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된 동력계는 최고출력 266마력, 최대토크 31.4kgm를 낸다. 지난 그랜저보다 4마력, 0.2kgm가 줄은 수치. 실제 주행영역에서의 응답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는데, 신연비 측정법이 부담되어 내린 결정이라는 게 중론이다. 물론 파워에서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이렇게 확보한 연비는 복합기준 리터당 9.9킬로미터(19인치 타이어 기준).
에코, 컴포트, 스마트, 스포츠 등 네 가지 주행모드를 지원한다. 이 중 컴포트는 전통적인 그랜저 감각 그대로다. 스마트의 경우 운전자 패턴을 모니터링 해 성능에 반영하는 것인데, 짧은 시승에서는 큰 감흥을 느낄 수 없다. 스포츠는 달리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낸다. 풍부한 움직임과 묵직해지는 스티어링 휠 재미가 쏠쏠하다.
너무 내수시장에 몰두한 탓일까? 현대차는 그랜저를 한국 외에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원칙(언제 바뀔지는 모른다)을 세웠다. 이미 북미에서 아제라로 쌓아온 역사가 적지 않음에도 최대시장 중 하나인 북미를 놔버리겠다는 의미다. 이제 막 힘찬 걸음을 떼고 있는 제네시스 때문이다. 판매간섭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시장마다 제각기 다른 전략을 사용해야 함은 옳다. 안전이나 환경기준이 다르고, 소비자 성향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품질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내수와 수출이 다르지 않다는 그들의 강변이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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