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전기 세단 'ES350e'..."렉서스가 가장 잘하는 것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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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 ES 350e. 지난 5월 일본 아이치현 토요타 테크니컬 센터 시모야마에서 만난 ES 350e는 파격적인 변화로 강렬한 인상을 줬다. (김흥식 기자)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렉서스 ES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프리미엄 세단이다. 일본식 표현으로 '나조(謎)', 말 그대로 수수께끼 같은 차로 보는 이유는 1989년 첫 출시돼 2001년 한국 시장에 상륙한 이후 지금까지 수입차 월간 베스트셀링카 목록에 매번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 모델들이 성능과 첨단 기술, 파격적인 디자인 변신을 내세울 때도 렉서스는 ES의 정숙성과 안락함, 그리고 신뢰성을 고집해 왔다. 이런 고집이 견고한 충성 고객층을 만들었고 이 때문에 법인보다 개인 고객 비중이 높은 몇 안 되는 모델이기도 하다.
그런 ES가 8세대로 들어서면서 가장 큰 변신을 선택했다. 지난해 상하이모터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신형 ES는 이전 세대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렉서스 LF-ZC 콘셉트카를 그대로 현실로 옮겨 놓은 듯한 외관, 완전히 새로워진 실내는 낯설기까지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차를 함께 품은 모델로 진화했다. 지난 5월 일본 아이치현 토요타 테크니컬 센터 시모야마(Toyota Technical Center Shimoyama)에서 만난 'ES350e'가 훨씬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 이유다.
선(Line)이 아니라 '면(Surface)'으로 조각한 ES
ES 350e의 외관은 단면의 곡선 하나까지 공기역학 성능에 초점을 맞춰 개발했다. 마치 금속 공예품을 보는 듯했다. (김흥식 기자)
ES350e를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은 건 차체를 이루는 복잡하고 난해한 '면(Surface)'이다. 요즘 자동차 디자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캐릭터 라인을 여러 개 겹쳐 놓은 방식이 아니다. 보닛 중앙에서 시작된 하나의 볼륨이 앞 펜더를 감싸고 다시 헤드램프와 범퍼로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개의 곡면이 서로 교차하며 빛을 받아낸다.
시모야마 전시장 조명 아래에서 바라본 ES350e는 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차처럼 보였다. 빛은 볼록한 면에서는 부드럽게 흘러내렸고 오목하게 파인 부분에서는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금속판을 프레스로 찍어낸 자동차라기보다 장인이 수차례 망치질해 완성한 금속 공예품을 보는 듯했다.
실제로 보닛은 중앙이 높게 솟아 있다가 양쪽 펜더로 갈수록 깊게 파이며 헤드램프까지 이어진다. 이 면이 다시 범퍼 아래쪽과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스핀들 형태를 만들어 낸다. 기존 ES가 안정감 있는 볼륨을 강조했다면 신형은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입체감 자체를 디자인 언어로 사용했다.
마치 종이를 구겨 놓은 것처럼 디자인한 보닛과 루프에서 트렁크로 이어지는 패스트백 디자인, 일체형 리어 스포일러로 공기 흐름을 제어한다. (김흥식 기자)
전기차가 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곳은 전면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이 필요 없는 ES350e는 거대한 스핀들 그릴 대신 매끈한 차체를 선택했다. 하지만 렉서스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포기하지 않았다. 보닛에서 범퍼 하단까지 이어지는 입체으로 조형한 차체 면과 블랙 하이그로시 패널을 이용해 범퍼 아래에 스핀들 그릴의 형상을 남겨뒀다.
멀리서 보면 그릴이 없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렉서스 특유의 얼굴이 그대로 살아 있다. 여기에 얇은 L자 형태의 주간주행등을 차체 끝까지 밀어 배치했고, 주광원은 범퍼 아래쪽으로 분리했다. 헤드램프를 위아래로 나눈 독특한 구성이 미래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차폭을 실제보다 넓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가장 아름다운 곳, C필러에서 트렁크로 이어지는 라인
C필러에서 크게 부풀어 올라 리어 펜더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볼륨감 넘치는 디자인. (김흥식 기자)
현장에서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문 곳은 후측면이었다. 대부분의 세단은 루프에서 C필러로 이어지는 선이 하나의 직선처럼 떨어진다. 하지만 ES350e는 달랐다. 루프에서 내려온 면이 C필러에서 한 번 크게 부풀어 오른 뒤 리어 펜더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덕분에 C필러와 리어 펜더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리어 펜더는 근육질처럼 볼륨을 키우다가 테일램프 부근에서 다시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다. 이런 조형 덕분에 차체는 실제보다 훨씬 넓고 낮아 보인다.
프런트 펜더에서 시작된 선이 리어 펜더를 지나면서 점차 두꺼워지고 C필러에서 하나의 볼륨으로 흡수하는 이런 서피스 디자인은 최근 렉서스가 강조하는 '클린 테크 x 엘레강스(Clean Tech x Elegance)'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렉서스의 '클린 테크x엘레강스' 철학이 돋보이는 미래지향적인 후면부 디자인과 일자형 테일램프. (김흥식 기자)
신형 ES의 조형은 단순히 아름답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공기의 흐름까지 디자인의 일부로 만들었다. 앞 펜더에서 발생하는 와류를 측면으로 흘려보내고 뒤 펜더에서 다시 공기를 정리해 리어 엔드까지 연결하는 리듬감이 그걸 말해 준다.
전기차에서 효율은 곧 주행거리다. 루프에서 트렁크로 이어지는 패스트백 형태도 공기 분리를 최대한 늦춰 항력을 줄이기 위한 설계다. 디자인과 공력 성능을 동시에 완성해야만 긴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ES350e의 조형은 미학보다 공학에 더 가깝다.
'디지털'보다 '공간'이 먼저 느껴지는 실내
대시보드를 얇고 수평으로 설계해 탁 트인 개방감과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ES 350e의 운전석. (김흥식 기자)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디스플레이가 아니다. '시야가 확 트였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든다.
신형 ES는 대시보드를 최대한 얇게 하고 수평으로 설계했다.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를 따로 배치했지만 서로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다. 운전자 앞을 가로막던 구조물을 걷어낸 덕분에 앞유리가 실제보다 훨씬 넓게 느껴지고 실내 전체가 개방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렉서스가 오래전부터 강조해 온 '타즈나(Tazuna)' 개념도 한층 진화했다. 말고삐 하나만으로 말을 자유롭게 다루듯 시선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도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차량을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한 운전자 중심 인터페이스다.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14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는 하나의 수평축 위에 자연스럽게 놓였고 운전 중에도 계기판과 내비게이션 화면을 오가는 시선 이동을 매우 짧게 설계했다. 하지만 신형 ES의 실내를 단순히 '디지털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족하다.
디지털 장비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공간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대시보드는 여러 개의 층을 겹쳐 놓은 듯한 수평 레이어 구조를 적용했고 디스플레이는 위에 가볍게 떠 있는 형태로 배치했다. 공조 송풍구는 긴 수평 라인 속으로 감췄다. 물리 버튼도 대부분 없애 시각적인 복잡함을 크게 줄였다.
물리 버튼을 최소화하고 콤팩트한 전자식 변속 셀렉터를 적용해 공간 활용성과 깔끔함을 극대화한 센터콘솔. (김흥식 기자)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도어 트림이다. 밝은 우드 패널 위로 은은하게 퍼지는 앰비언트 조명이 겹쳐지면서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조명을 강조하기보다 소재의 결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금속 장식과 가죽, 우드의 경계도 최대한 얇게 처리해 하나의 오브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센터콘솔 역시 인상적이다. 기계식 변속 레버 대신 콤팩트한 전자식 셀렉터를 적용하면서 공간 활용성을 높였다. 운전자의 손이 자연스럽게 닿는 위치에 주요 스위치를 배치했고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낸 덕분에 콘솔은 마치 가구의 상판처럼 깔끔했다.
스티어링 휠도 달라졌다. 원형 형태는 유지했지만 중앙에는 기존 엠블럼 대신 'LEXUS' 레터링을 새겼고 좌우 스포크는 육각형에 가까운 조형으로 다듬었다. 기능 버튼은 최소화했지만 촉감과 조작감은 이전보다 한층 정교해졌다.
이동 공간이 아니라 '라운지'에 가까운 2열 감성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프리미엄 라운지'에 머무는 듯, 안락함을 제공하는 ES 350e의 2열 공간. (김흥식 기자)
ES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는 뒷좌석에 있다. 신형 역시 그 전통을 이어간다. 새 플랫폼은 휠베이스를 이전보다 크게 늘리고 배터리를 차체 바닥에 배치하면서 실내 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확보했다. 덕분에 무릎 공간은 물론 발을 넣는 공간까지 한층 여유로워졌다. 힙 포인트도 높아져 앉고 일어설 때 몸을 깊이 숙일 필요가 없다.
실제로 2열에 앉아보면 가장 먼저 시트의 감성에 놀라게 된다. 푹신하기만 한 소파 같은 감촉이 아니라 허리와 골반을 단단하게 받쳐주는 구조다. 좌우 볼스터를 과도하게 세우지 않아 장시간 앉아 있어도 몸이 쉽게 피로해지지 않을 듯 했다.
등받이 각도와 쿠션 길이도 절묘하다. 무릎을 과하게 세우지도 몸을 눕히지도 않는다. 오랜 기간 축적해 온 렉서스의 인체공학 노하우가 이런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여기에 낮게 설계된 사이드 윈도와 길어진 쿼터 글라스 덕분에 개방감도 이전 세대보다 훨씬 좋아졌다.
요즘 프리미엄 전기차들은 거대한 디스플레이와 화려한 그래픽으로 운전자를 압도하려 하지만 ES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디지털 기술은 충분하지만 공간의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았다.
차 안에 오래 머물수록 느껴지는 것은 화면보다 소재의 질감이고 조명보다 공간의 여유 그리고 첨단 기능보다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 시트다. 신형 ES의 실내는 최신 기술을 과시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운전자가 몇 시간이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설계한 하나의 프리미엄 라운지에 더 가깝다.
전기차가 아니라 '전동화된 ES'로 봐야
ES 350e는 전기차 특유의 폭발적인 가속력 그 이상으로 부드러운 토크 전달과 안정적인 승차감에 초점을 맞췄다. (김흥식 기자)
기술적으로 ES350e는 렉서스가 새롭게 개발한 멀티 패스웨이(Multi Pathway)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하나의 플랫폼에서 하이브리드와 순수 전기차를 모두 구현하도록 설계한 구조다. 차체 바닥에는 74.7kWh 리튬이온 배터리를 배치했고 객실 공간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무게 중심을 크게 낮췄다.
최고출력은 221마력. 미국 EPA 기준 1회 충전 주행거리는 307마일(약 494km)이다. 수치만 놓고 보면 경쟁 브랜드의 전기 세단보다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렉서스는 애초부터 다른 방향으로 ES350e를 기획했다. 순간적인 폭발력보다 부드러운 토크 전달, 그리고 장시간 운전해도 피로하지 않은 승차감이다.
시모야마의 트랙에서 동승 체험한 ES350e은 드라이버가 과격하게 가속 페달을 밟아도 출력이 급격하게 솟구치기보다는 일정하게 속도를 끌어올리는 차분함을 보여줬다. '흔들리지 않는 침대' 이런 성격은 전형적인 ES의 특징이기도 하다.
서스펜션의 반응 역시 렉서스 특유의 부드러움을 놓치지 않는다. 슬라럼을 하고 요철 구간을 지날때도 직선 구간과 다르지 않은 차체 거동을 보여준다. 노면 충격은 단단하게 받아내지만 실내에는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새로운 멀티 패스웨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74.7kWh 배터리를 차체 바닥에 배치해 무게 중심을 낮춘 ES 350e.(김흥식 기자)
큰 요철을 넘을 때도 충격이 한 번 걸러지고 다시 한 번 부드럽게 정리된다. 배터리를 차체 바닥 전체에 배치한 낮은 무게 중심과 향상된 차체 강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고속 코너에서도 차체가 좌우로 크게 쏠리지 않았다. 차체 하부에 배치한 배터리가 오히려 차체를 노면에 눌러 붙게 만드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2열 탑승 체험은 롤보다는 안정감을 먼저 느낄 수 있었다.
NVH 성능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전기차는 풍절음과 노면 소음이 더 크게 들리기 마련이지만 ES350e는 이 부분에서 렉서스다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차체 접합 강성을 높이고 서브프레임과 서스펜션 부싱을 새롭게 조율하고 배터리 자체도 차체 강성 확보에 활용했다는 설명이 돌아 왔다.
그래서인지 실내에서는 노면 소음보다 공조장치의 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릴 정도였다. 고속에서도 동승자와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ES350e의 가장 큰 장점으로 정숙성과 넓은 실내, 편안한 승차감을 꼽을 수 있다.
[총평] 전기차지만 전기차가 아닌 것 같은 ES350e
렉서스 ES 350e. 전기차지만 전기차가 아닌 것 같은 차.' 전동화 시대에도 ES 본연의 철학인 안락함과 여유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김흥식 기자)
렉서스 역시 이제는 성능과 첨단 기술을 외면하지 않는다. ES350e도 시대에 맞는 기계적 성능과 디지털 사양을 갖추고 있다. 다른 점은 출력이나 가속 시간을 앞세우지 않는 대신 조용한 실내, 편안한 시트, 넉넉한 공간, 그리고 하루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도 피곤하지 않은 승차감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기차라는 이유만으로 더 빠르고 더 강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 렉서스의 철학이다. 따라서 신형 ES350e는 렉서스가 전기차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이다.
국내 시장에서도 ES는 오랫동안 렉서스 판매를 책임져 온 핵심 모델이다. 한국토요타가 ES350e를 어떤 가격과 전략으로 시장에 투입하느냐에 따라 프리미엄 전기 세단 시장의 경쟁 구도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기사에서 다룬 렉서스 ES350e는 일본 버전으로 국내 출시 모델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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