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변하지 않는 감성, 마세라티 그레칼레 폴고레 시승기 | 원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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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고레(Folgore).' 이탈리아어로 번개라는 뜻이다. 마세라티가 전기차 라인업에 이 이름을 붙인 것은 전동화의 물결 앞에서 성능도, 사운드도, 이탈리안 감성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번개는 조용히 치지 않는다. 빛과 소리가 함께 와야 번개다. 마세라티는 그 믿음을 이름 하나에 새겨 넣었다.

 

그레칼레(Grecale)는 원래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강력한 북동풍에서 따온 이름이다. 2022년 등장 이래 마세라티 SUV 라인업의 한 축을 담당해온 이 모델에 순수 전기 파워트레인을 얹은 것이 그레칼레 폴고레다. 마세라티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순수 전기 SUV라는 타이틀을 달고, 2024년 국내에 상륙했다. 내연기관과 마일드 하이브리드 모델에 이어 폴고레가 더해지면서 그레칼레 라인업은 비로소 완성형이 됐다.

 

 

그란투리스모, 콰트로포르테, 기블리. 마세라티라는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은 언제나 청각과 함께였다. 그런데 그 집안의 가장 일상적인 모델이 이제 침묵 속에서 달린다. 마세라티의 역사를 사랑하는 소비자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그레칼레 폴고레가 풀어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그레칼레 폴고레를 처음 마주하면, 내연기관 모델과 무엇이 다른지 금세 파악하기 어렵다. 마세라티는 그것을 약점이 아니라 자신감으로 내세운다.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완성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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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면 그릴이다. 내연기관 모델의 그릴 자리에는 냉각을 위해 재설계된 인버티드 그릴이 들어섰다. 테일파이프가 사라진 후면은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다. 측면에서는 삼지창 형상에서 영감을 받아 공기역학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19인치 휠과, 구리색으로 포인트를 준 브레이크 캘리퍼, 그리고 같은 색상의 폴고레 배지가 이 차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전장 4,865mm, 전폭 1,980mm, 전고 1,655mm. 휠베이스는 2,900mm다. 포르쉐 마칸 일렉트릭보다 한 체급 위의 존재감이다. 그런데 이 크기가 위압감보다는 우아함으로 읽힌다. 공기역학적 설계와 새롭게 디자인된 리어 디퓨저가 덩치를 날렵하게 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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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 앉으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과는 결이 다른 분위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탈리아 특유의 감성과 온기가 인테리어 곳곳에 배어 있다.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동일 사이즈의 중앙 터치스크린, 그리고 하단의 8.8인치 컴포트 디스플레이까지 세 개의 스크린이 레이어를 이루는 구성은 기능적이면서도 조형적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기본이다. 다만 대시보드 중앙의 전통적인 아날로그 시계가 이제 디지털로 대체됐다. 작은 변화지만, 마세라티 마니아라면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트렁크는 535L. 내연기관 2L 모델과 동일한 수치다. 105kWh라는 거대한 배터리를 품고도 실용 공간을 타협하지 않은 것은, 그레칼레의 플랫폼이 처음부터 전동화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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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휠의 드라이브 모드 컨트롤러를 GT에 맞추고 출발한다. GT는 시동을 걸면 기본으로 설정되는 모드로, 폴고레 특유의 역동성과 효율성을 균형 있게 발휘하도록 설계됐다. 스포츠 모드는 서스펜션 세팅까지 바꾸며 주행 성격을 한층 날카롭게 다듬는다. 총 네 가지 모드 중 일상 주행에서는 GT가, 와인딩에서는 스포츠가 최선의 선택이다.

 

205kW 전기모터 두 개가 만들어내는 시스템 최고 출력 558ps, 최대 토크 82.4kg·m. 0-100km/h 가속은 4.1초. 가속 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2,540kg의 공차중량이 무색하게 차체가 앞으로 밀려나간다. 전기차 특유의 즉각적인 토크 응답은 이 크기의 SUV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종류의 감각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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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휠 패들은 기어 변속 대신 회생 제동 단계를 조절한다. 원 페달 브레이킹 옵션은 없다. 이 선택에는 마세라티의 철학이 반영돼 있다.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통해 감속을 직접 컨트롤하는 경험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적응형 에어 서스펜션은 기본이지만, 시승 팁이 있다면 21인치 대형 휠 옵션은 피하는 것이 좋다. 노면 질감이 그대로 전달되는 정도가 기대치를 넘어설 수 있다.

 

정숙성은 탁월하다. 전기 파워트레인이 가져다주는 고요함 위에, 마세라티가 공들여 완성한 NVH 처리가 더해진다. 고속 순항 시 풍절음도 잘 억제되어 있다. 이 차 안에서 소너스 파베르(Sonus faber)의 사운드 시스템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21개 스피커, 1,285W 출력의 하이 프리미엄 사운드 옵션을 선택한다면, 기대이상의 청음 환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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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kWh CATL 배터리를 탑재한 그레칼레 폴고레의 공인 복합 주행거리는 333km다. 도심 344km, 고속 320km. 경쟁 모델인 포르쉐 마칸 일렉트릭 터보의 수치와 비교하면 넉넉하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전비를 봐도 특별히 인상적인 수치는 아니다.

 

충전 인프라 면에서도 한계가 있다. 포르쉐 마칸 일렉트릭, 아우디 SQ6,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이 채택한 800V 아키텍처와 달리, 그레칼레 폴고레는 400V 시스템을 사용한다. DC 급속 충전 최대 출력은 150kW로, 배터리 잔량 20%에서 80%까지 약 30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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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칼레 폴고레의 가장 큰 약점은 가격이다. 국내 출시가는 경쟁 모델인 포르쉐 마칸 일렉트릭 터보보다 높다. 이 간극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결국 마세라티라는 이름에 얼마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가로 귀결된다.

 

그런데 가격표에서 눈을 거두고 나면, 이 차는 꽤 설득력 있다. 주행거리가 화려하지 않아도, 충전 속도가 최신 경쟁 모델을 따라가지 못해도, 핸들을 잡고 달리는 순간의 감각은 독보적이다. 독일 경쟁 모델들이 건네지 못하는 감성적 질감, 실내의 촉각적 만족감, 그리고 GT 핸들링이 만들어내는 고속 안정감. 이것들에 공감하는 사람에게 그레칼레 폴고레는 타당한 선택이다.

 

번개는 조용히 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차는 침묵 속에서도 충분히 강렬하다. 소리 없이 치는 번개를 마세라티는 어느새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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