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현대차 더 뉴 그랜저, ‘성공’을 재정의하다

[시승기] 현대차 더 뉴 그랜저, ‘성공’을 재정의하다

1986년 첫 등장한 현대자동차의 그랜저는 한 때 ‘성공’의 아이콘이었다. 서울 강남 집 한 채와 맞먹는 가격 때문에 이 차를 소유하면 부와 명예를 가진 것으로 인정받았다. 1992년 나온 뉴 그랜저까지 이런 평가는 꽤 오래 이어졌다.

1998년에 등장한 그랜저 XG는 스포티한 디자인 덕에 구매자의 평균연령이 낮아졌다. 1999년에 나올 초대 에쿠스를 의식해 급을 의도적으로 낮춘 것이다. 그랜저가 20~30대의 튜닝카로 각광 받던 것도 이 차부터였다.

2005년에 나온 그랜저 TG는 지금도 상당수 차가 굴러다닐 정도로 오랜 사랑을 받는 모델이다. 그랜저 XG보다 중후한 감각을 강조해 기업체의 임원용 차로도 인기를 끌었다. 이 무렵 현대차는 ‘강남 쏘나타’로 불리던 렉서스 ES와 비교시승을 실시하면서 수입차와 본격적인 경쟁을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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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데뷔한 그랜저 HG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국산차 중 최초로 장착하면서 기술면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랜저 최초로 하이브리드 버전과 디젤 버전이 추가돼 고객 선택 폭을 넓히기도 했다.

2016년 나온 그랜저 IG는 하이브리드 버전의 인기가 뜨거웠다. 이 때문에 디젤 버전은 조기에 단종되는 수모를 당했다.

5~7년 주기로 풀 체인지를 하며 새 모델로 진화한 그랜저가 이번에는 ‘더 뉴 그랜저’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6세대 모델이 나온 지 불과 3년 만이다. 현대차 측은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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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겉모양만 살짝 다듬던 기존의 관행과 달리, 휠베이스가 40㎜ 길어지고 프런트 오버행은 5㎜, 리어 오버행은 15㎜ 늘어나는 등 큰 폭의 변화가 이뤄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시보드는 완전히 새로워졌고, 앞뒤 램프도 6세대의 흔적을 지웠다.

자동차의 진화를 설명할 때 페이스리프트는 말 그대로 겉모습을 바꿀 때를 주로 가리킨다. 대시보드나 실내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경우는 마이너 체인지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엔진이나 변속기, 플랫폼의 변화가 있으면 풀 체인지로 분류한다.

현대차가 ‘더 뉴 그랜저’를 가리켜 페이스리프트에 해당한다고 하는 건 기존 엔진(3.3ℓ 가솔린, 2.4ℓ 하이브리드)과 변속기를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마트 스트림 2.5ℓ 가솔린 엔진이 추가됐고 디자인에 큰 변화가 이뤄진 걸 감안하면 지나치게 겸손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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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디자인 담당 이상엽 전무는 3년 만에 모델을 바꾼 이유에 대해 “고객들의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대응하면서 첨단 신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전무는 “성공의 의미가 과거와는 달라졌다”면서 “주 고객층인 ‘영 포티(젊게 사는 40대)’의 취향도 상당부분 반영됐다”고 말한다. 현대차의 이러한 의도에 부응하듯, 46% 수준이던 그랜저의 30~40대 고객 비중은 이번 사전 계약에서 53%로 올라갔다. 또한 30% 이상이 SUV를 비롯해 세단 이외의 차종에서 유입됐다.

디자인 프리뷰 때 다양한 의견이 나왔던 앞모습은 다시 봐도 새롭다.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범퍼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매끄럽게 이어진 모습은 아마도 신형 그랜저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정측면에서 보면 범퍼의 돌출 부위는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 이 때문에 작은 접촉사고에도 차체가 망가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든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개발 과정에서도 그런 의견이 있었는데,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려면 이런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다”고 털어놓는다.

두툼한 뒤 범퍼는 안정적인 인상을 만들고, 끝부분이 치켜 올라간 트렁크 리드로 스포티함을 더했다. 큰 좌우램프가 이어지는 디자인은 전통적인 그랜저를 연상시키는데, 듀얼 라인이던 6세대 초기형과 달리 싱글 라인으로 바뀌었다. 이 라인이 꽤 가늘어서 악천후 때 시인성이 어떨지 살짝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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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기존 그랜저보다 한 급 위의 차처럼 고급스럽다. 베이지와 네이비, 카키색이 더해진 컬러는 제네시스 G90과 견줘도 밀리지 않을 정도. 앞쪽에는 두 개의 USB 포트에다 무선 충전 기능까지 갖춰 총 세 대의 휴대폰을 동시에 충전할 수 있고, 뒤쪽에도 한 개의 USB 포트가 마련돼 있다. 숫자로는 충분한데, C타입도 동시에 갖췄더라면 완벽했을 듯하다.

4가지 엔진 라인업 가운데 시승회에 마련된 건 3.3 가솔린 모델이다. 새로 추가된 2.5 스마트 스트림 2.5 엔진은 추가 시승을 통해 확인해볼 계획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3.3 가솔린 모델의 파워트레인은 크게 흠잡을 부분이 없다. 성인 남자 네 명이 탄 상태에서 급가속을 하면 약간 굼뜬 모습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가속에 큰 무리가 없다. 8단 자동변속기와의 궁합도 매끄러운 모습. 실내에는 엔진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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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풍절음과 하체 소음이다. 이중 접합 차음 유리를 썼음에도 바람소리가 적지 않고, 특히 하체에서 올라오는 소음이 귀에 계속 거슬린다. 소음측정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측정한 소음은 시속 90㎞에서 평균 65㏈. 수치 자체도 낮지 않지만 체감 소음도 적지 않다. 방음 부분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겠다.

리어 댐퍼를 교체한 덕에 주행안전성은 고속에서도 꽤 안정적이다. 다만 드라이브 모드가 엔진과 변속기에만 개입하기 때문에, 스포츠 모드에서나 컴포트 모드에서 동일한 승차감을 보이는 게 아쉽다.

고속도로 주행보조(HDA) 기능은 국내 도로 중 4767㎞를 커버했는데 신형은 6623㎞까지 커버가 가능해졌다. 고속도로뿐 아니라 자동차 전용도로까지 확대 적용된 덕이다. ‘현대 스마트 센스’ 옵션을 장착하면 고속도로 제한속도에 맞춰 작동하기 때문에 딱지를 끊을 염려는 내려놔도 된다.

복합 연비의 경우 18인치 타이어를 단 3.3 모델은 리터당 9.7㎞, 17인치 타이어를 단 2.5 모델은 11.9㎞이고, 17인치만 장착되는 2.4 하이브리드는 16.2㎞에 이른다. 뛰어난 정숙성과 연비로 인기를 모았던 6세대 초기형처럼 하이브리드 모델의 인기도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상품성보다 아쉬운 건 TV와 유튜브를 통해 전해지는 영상 광고다. 그랜저 소유를 통해 성공을 과시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스토리텔링이 다소 억지스럽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집 여인에게 ‘총각’ 소리를 들어서 흐뭇해하는 모습이나, 아들 대신 차에 눈길을 주며 “성공했구나”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 시골은 예전 같지 않고 인터넷 보급이 잘 돼 있는데, 유튜버인 아들이 뭘 하고 먹고 사는지도 모르는 모습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게다가 그런 걸 모르는 부모라기에는 너무 젊어 보인다. 국내 유튜브 시청층의 상당수를 50~60대가 차지하고 있다는 걸 놓친 게 아닐까.

시리즈로 이어지는 광고는 계속 ‘성공’을 외치지만, 든든하거나 멋진 주인공의 모습만으로도 더 효과적인 의사전달을 이룰 수 있다. 별다른 대사 없이도 멋져 보이고 의미 전달이 되는 애플 광고처럼 말이다.

현대차는 ‘더 뉴 그랜저’를 연간 11만대 판매할 계획이다. 이미 사전계약이 3만대가 넘은 만큼 목표는 순조롭게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 목표를 초과할 수 있는 관건은 앞으로 현대차가 만들어 갈 그랜저의 이미지다. SUV로 갔던 고객마저 돌아서게 만든 지금의 분위기를 이어서 스토리텔링을 잘 써 가길 기대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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