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벤틀리 컨티넨탈 GT "가장 우아한 스포츠카를 원한다면!"

"Posh!"

'호화로운, 멋진, 우아한'이란 뜻으로, 흔히 영국 상류 사회를 의미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상류 사회에 사는 이들은 '포쉬 피플'이라 칭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특유의 억양을 두고 '포쉬 액센트'라 말한다. 이를 자동차에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영국 출신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가장 포쉬한 브랜드라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범위를 좁혀 '가장 포쉬한 스포츠카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고민없이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지목하겠다.

2003년 첫 등장한 1세대 컨티넨탈 GT는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조금씩 다듬어왔을 뿐이다. 비교적 짧은 역사지만, 한눈에 봐도 컨티넨탈 GT임을 떠올릴 수 있는 헤리티지를 지켜내고 있다.

동그란 눈과 차량 전반에 흐르는 유려한 곡선이 그랜드 투어러(GT)의 이미지를 물씬 만들어낸다. 여기에 떡 벌어진 어깨와 22인치에 달하는 커다란 알로이 휠, 가변식 리어 스포일러 등 빠르게 달리기 위한 요소까지 고루 갖췄다.

인테리어는 럭셔리의 '어나더 레벨'을 보여준다. 손길이 닿는 곳 대부분을 최상급 가죽으로 둘렀다. 드넓은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은 물론, 필러를 포함한 루프라인 전체가 해당된다. 더불어 리얼 크롬 장식이 실내 곳곳에 쓰였다. 두툼한 송풍구와 골프 티꽂이를 닮은 풍량 조절막대, 돌리는 느낌조차 고급스러운 드라이브 모드 다이얼 등 크롬으로 둘러싼 부품들이 화려하게 반짝이며 존재감을 뽑낸다. 손으로 두드려보면 밀도 높은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플라스틱에 겉표면만 크롬으로 얇게 덮는 행위는 찾아볼 수 없다.

컨티넨탈 GT는 여전히 꽤 많은 버튼을 남겨두고 있다. 차량의 기능을 디스플레이로 조작하는게 더 자연스러운 요즘, 이렇게나 많은 버튼은 흡사 세월을 거스르는 듯 보인다. 그러나 벤틀리는 몇 년이 지나도 세련됨을 유지할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도 촌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공차 중량은 다소 무거운 2295kg이다. 경량화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기 보다 엄청난 양의 가죽과 각종 첨단 장비로 인해 무게가 늘어났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더군다나 육중한 무게는 엄청난 힘으로 가볍게 극복해낸다.

커다란 후드 아래에는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78.5kgf·m의 4.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이 자리한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단 4초 만에 주파하며, 최고속도는 318km/h에 달한다.

클래식한 외관과 상반되는 반전 매력의 거친 배기음이 운전자를 반긴다. 크롬과 가죽으로 장식된 호사스런 기어노브를 당겨본다. 일반적인 전자식 변속기에서 느껴볼 수 없는 묵직한 무게감이다. 마치 "당신이 다루려고 하는 것은 아주 귀하고 중요한 것이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드라이브 모드를 'B'에 두고 차분히 달리면 한 없이 부드러운 승차감을 보여준다. 노면을 사뿐히 읽어내는 모습에 마치 고급 세단을 마주하는 것 같다. 3챔버 에어 서스펜션은 불규칙한 요철도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문득 계기판을 보니 90km/h 속도에서 순간연비는 리터당 15km를 상회한다. 부하가 적을 때 엔진의 절반을 끄는 실린더 휴지 기능이 부지런히 작동하는 덕분이다.

더불어 고요한 실내도 돋보인다. 두꺼운 이중접합유리에서 눈치챘지만, 컨티넨탈 GT의 NVH 능력은 수준급이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탄 차가 550마력 2도어 쿠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자동차마다 운전자의 성향이 달라지곤 한다.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를 타면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는 주행을 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스포츠카, 특히 V8 엔진을 탑재한 고성능 차량을 탄다면 가속 페달에서 힘을 빼기 어려워진다. 컨티넨탈 GT는 이 둘의 중간에 가깝다. 강력한 성능을 갖췄지만, 오히려 정속 크루징 할 때가 더 세련됐다. 이 차로 굉음을 내며 달리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순한 맛은 아니다. 엔진회전수를 과감히 높이면 우렁찬 배기음과 함께 뒷목이 젖혀지는 모습을 발견한다. 과감한 스포츠 주행에는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과 48V 액티브 롤 컨트롤 시스템이 개입한다. 앞뒤 구동력을 분배해 트랙션을 확보하고 좌우 롤링를 제어하면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자세를 확보한다.

의외의 장점은 뒷좌석이다. 대개 2도어 쿠페의 뒷좌석은 너무나도 비좁아 마치 감옥과도 같다. 짧은 거리조차 성인이 탑승하기엔 부담스러운 자리다. 그러나 컨티넨탈 GT는 커다란 덩치에서 오는 장점을 뒷좌석 공간에 일부 할애했다. 4도어 세단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왠만한 거리는 안락하게 이동할 수 있다. 열고 닫을 수 있는 쪽창의 존재는 신의 한수다. B필러가 없어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2열 승객의 답답함도 크게 줄여준다. 벤틀리답게 뒷공간에도 최고급 가죽을 아낌없이 둘렀다.

이 차가 가진 매력을 100% 느끼기엔 단 하루의 시승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다. 모처럼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3억2900만원짜리 호화 GT카를 눈앞에 두고 미련없이 돌아설 자동차 마니아가 있을까.

럭셔리와 스포츠의 경계를 조율하고 있는 벤틀리 컨티넨탈 GT는 직접적인 경쟁 모델이 없어 더욱 가치있는 선택지로 남는다. 최대 라이벌인 롤스로이스 레이스는 지난 해 단종과 함께 순수전기차 스펙터로 부활을 예고했다. 벤틀리의 다음 행보 역시 전동화다. 바로 지금, 마지막 내연기관 컨티넨탈의 화려한 은퇴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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