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벤틀리, 럭셔리만으로 만족 못하지" 서킷에서 확인한 '레이싱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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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 코리아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주력 라인업을 대상으로 슈퍼 스포츠카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서킷 행사를 개최했다. 사진 왼쪽부터 벤테이가, 컨티넨탈 GT 아주르, 컨티넨탈 GTC 아주르, 컨티넨탈 GT다.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벤틀리(Bentley). 철도 기관차 엔지니어 출신인 월터 오언 벤틀리가 1919년 "빠른 차, 좋은 차, 그리고 동급 최고의 차"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설립한 영국 럭셔리 브랜드다.
하지만 벤틀리를 단순히 고급차 브랜드로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늘날의 벤틀리는 화려한 수공예와 최고급 소재로 대표되지만 브랜드의 뿌리는 고성능 스포츠카와 모터스포츠에 있다.
벤틀리는 1924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내구 레이스 르망 24시에서 다섯 차례 포디엄의 최정상을 장악했다. 특히 1927년부터 1930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기록하며 르망을 사실상 지배했다. 이 시기 벤틀리의 황금기를 이끈 드라이버 집단이 바로 전설적인 '벤틀리 보이즈'다.
이 때문에 벤틀리는 종종 또 다른 영국 럭셔리 브랜드 롤스로이스와 비교된다. 롤스로이스가 궁극의 안락함과 정숙성을 추구한다면 벤틀리는 여기에 르망에서 쌓아 올린 퍼포먼스와 레이싱 DNA를 더한다. '가장 빠른 럭셔리카', '슈퍼 스포츠카 브랜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객층 역시 다르다. 벤틀리코리아 관계자는 "벤틀리 고객들은 단순히 비싼 차를 소유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라며 "럭셔리와 함께 슈퍼카 수준의 성능, 그리고 직접 운전하는 즐거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벤틀리코리아는 최근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국내 최초로 전 차종을 한자리에 모아 서킷 주행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브랜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그랜드 투어러 '더 뉴 컨티넨탈 GT'와 벤틀리 SUV의 정점 '벤테이가 스피드'를 직접 경험했다.
서킷에서 깨어난 야수의 본능 '컨티넨탈 GT'
벤틀리 컨티넨탈 GT. 2.4톤이 넘는 차체를 갖고 있음에도 용인 스피드웨이의 까다로운 코너를 안정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다.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컨티넨탈 GT에 먼저 올랐다. 시동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진다. 슈퍼 럭셔리카답지 않게 고분고분하다. 최고출력 782마력, 최대토크 102.0kg.m를 발휘하는 울트라 퍼포먼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전원이 켜진 상태였다.
하지만 서킷에 진입하는 순간, 야수의 본능이 살아난다. 직선 구간에서 가속 페달을 깊게 밟자 거대한 GT가 아니라 슈퍼카가 튀어나가는 듯한 느낌이 전달된다. 차체는 전혀 머뭇거림 없이 속도를 끌어올리고 전기모터가 더해진 즉각적인 토크는 운전자의 등을 시트 깊숙이 밀어 넣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코너 구간이다. 2.4톤이 넘는 차체를 가진 럭셔리 GT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민첩하다. 올 휠 스티어링과 전자식 디퍼렌셜, 액티브 섀시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차체를 노면에 밀착시킨다.
컨티넨탈 GT 실내. 고급 가죽과 정교한 우드 트림, 네임 오디오 시스템, 벤틀리 특유의 로테이팅 디스플레이로 럭셔리의 가치를 완성했다.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연속 코너에서는 마치 차체 크기가 한 단계 작은 스포츠카를 모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스티어링 반응은 정확하고 차체 거동은 안정적이다. 고속 영역에서도 흔들림이나 불안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성능이 최고급 럭셔리 공간 안에서 구현된다는 점이다. 최고급 가죽과 정교한 우드 트림, 네임 오디오 시스템, 벤틀리 특유의 로테이팅 디스플레이가 만들어내는 실내는 퍼포먼스보다 품격을 먼저 이야기한다.
컨티넨탈 GT 스피드는 벤틀리가 왜 자신들을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퍼포먼스 럭셔리 브랜드'라고 부르는지 가장 명확하게 보여줬다. 르망에서 시작된 레이싱 DNA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빠르기보다 편안한 SUV '벤테이가 스피드'
벤틀리 벤테이가. 묵직한 SUV가 아니라 고성능 GT를 모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여유있는 힘을 보여줬다.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벤테이가 스피드는 다른 방식으로 벤틀리의 철학을 보여준다. 650마력 V8 엔진을 품은 고성능 SUV지만 첫인상은 강렬함보다 여유에 가깝다. 높은 시야와 넉넉한 공간, 최고급 소재로 꾸며진 실내는 가족과 함께하는 장거리 여행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벤틀리답게 성능에서도 부족함은 없다. 최고출력 650마력, 최대토크 86.7kg.m를 발휘하는 V8 엔진은 2.4톤이 넘는 차체를 가볍게 밀어낸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묵직한 SUV가 아니라 고성능 GT를 모는 듯한 착각이 든다.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3.6초. 수치 이상으로 더 인상적이었던 건 여유로움이다. 벤테이가는 언제든 강력한 성능을 꺼내 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운전자를 압도한다.
하지만 서킷에서는 컨티넨탈 GT와의 성격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급격한 방향 전환 구간에서는 높은 차체와 SUV 특유의 무게 중심을 완전히 숨길 수 없다. 코너를 빠르게 공략할수록 차체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고 반복적인 고속 코너에서는 물리적 한계를 완벽하게 감추지 못했다.
벤테이가는 럭셔리한 실내와 SUV 특유의 공간으로 가족 중심 라이프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모델이다.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제동 구간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브레이크 시스템이 장착됐지만 트랙 주행에서는 거대한 SUV를 제어해야 하는 부담이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특성이 단점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벤테이가는 서킷보다 일상에서 훨씬 더 빛난다. 도심에서는 세단처럼 부드럽고 고속도로에서는 플래그십 SUV다운 정숙성과 안락함을 보여준다. 넉넉한 공간과 높은 활용성은 가족 중심 라이프스타일에도 잘 어울린다.
벤테이가 스피드는 가장 빠른 SUV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차가 아니다.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편안한 럭셔리 SUV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모델의 성격을 서킷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총평, 아! 이래서 벤틀리는 특별한 차
벤틀리 코리아가 최근 출시한 컨티넨탈 GT S. 680마력의 강력한 퍼포먼스와 럭셔리한 가치를 오너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모델로 주목 받고 있다.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컨티넨탈 GT와 벤테이가는 같은 브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지향점은 다르다. 컨티넨탈 GT 스피드가 르망의 유산과 레이싱 DNA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모델이라면 벤테이가 스피드는 벤틀리의 럭셔리와 퍼포먼스를 일상으로 확장한 모델이다.
하지만 두 차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 모두 단순히 빠른 차도, 단순히 편안한 차도 아니라는 점이다. 벤틀리는 속도와 안락함, 성능과 장인정신, 레이싱 헤리티지와 럭셔리를 동시에 추구한다.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확인한 벤틀리의 정체성은 명확했다. 벤틀리는 여전히 르망의 피가 흐르는 브랜드였고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게 달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브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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