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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서 이달 25일 개막하는 ‘하종현: 회고전’ 설치 전경.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1970년대 미국 원조 식량이 담긴 채 한국으로 건너왔던 마대 자루. 당시 30대였던 청년 하종현은 캔버스 대신 이 거친 마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뒷면에 유화 물감을 듬뿍 바르고 붓 대신 나무 주걱으로 밀어냈다. 성긴 천의 짜임을 뚫고 물감이 앞면으로 배어 나왔다. 그를 단색화 거장으로 만든 ‘접합’ 연작은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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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서 이달 25일 개막하는 ‘하종현: 회고전’ 설치 전경.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구호물자로 온 마대가 반세기 만에 거장의 작품이 돼 미국 땅을 밟는다. 오는 25일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AAM)에서 ‘하종현: 회고전(Ha Chong-Hyun: Retrospective)’이 열린다. 작가의 북미 첫 미술관 개인전이자, 백남준과 이우환 이후 미국 주요 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작가 대규모 회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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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현지시간)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그의 전시를 살펴봤다.
이번 회고전은 작가의 60여 년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하종현을 단색화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끊임없이 기존 회화의 경계를 부순 미술가로 재조명한다. 20대에 청년 시절에 그린 초기작부터 91세가 된 올해 선보이는 신작을 포함해 50여 .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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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서 이달 25일 개막하는 ‘하종현: 회고전’ 설치 전경.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전시의 입구를 장식하는 청년 하종현의 예술은 시대의 비극과 깊게 맞닿아 있다. 한국전쟁 후 황폐해진 현실 속에서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그는 두꺼운 물감 표면을 불로 그을리는 등 재료와 행위를 과감하게 실험했다. 1950년대 후반 유럽에서 등장한 앵포르멜은 전쟁이 남긴 현실을 반영하며 물질성과 즉흥성을 강조한 사조다. 하종현은 이를 한국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며 전쟁이 남긴 기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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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령과 유신헌법 선포로 얼룩진 1970년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해 이끌던 그의 작업은 소리 없는 저항으로 진화했다. 작가는 검열된 신문더미와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백지를 같은 크기로 나란히 쌓아 올린 ‘대위’를 통해 언론 통제 상황을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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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미술관이 소장한 하종현의 ‘Work 73-13’(1973)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철사를 소재로 한 작업도 눈에 띈다.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여해온 1973년작 ‘Work 73-13’은 마대 천 위에 철사를 격자무늬로 덧씌운 작품이다. 이는 철조망을 떠올리게 하며 권위주의 정권과 전쟁, 분단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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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서 이달 25일 개막하는 ‘하종현: 회고전’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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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작가의 시선은 가속화된 산업화와 도시 개발 현장으로도 확장된다. 그가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한 기하추상 작업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도시계획백서’ 연작은 강렬한 색채와 반복적 패턴으로 변화하는 도시 경관의 역동성을 담았다. 같은 시기 ‘탄생’ 연작에서는 단청 무늬와 오방색을 끌어와 현대미술에 전통 미감을 입혔다. 캔버스를 얇은 띠로 잘라 엮는 돗자리 짜기 방식의 콜라주도 시도했다.
재료를 끊임없이 탐구하던 그는 마침내 대표적인 ‘접합’ 연작을 완성하게 된다. 그는 마대 뒷면에서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을 고안했고, 이는 회화의 평면성에 도전한 획기적인 시도였다. 이번 전시는 1974년 시작된 그의 초기 ‘접합’부터 1980년대 물감을 밀고 누르는 힘이 화면 전체에 고루 배분돼 고요한 동양적 미감을 띠는 작품, 2010년대 ‘이후 접합’에 이르러서 선명하고 대담한 원색을 끌어들인 작품까지 다채롭게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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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한 하종현의 ‘Conjunction 74-26’(1974)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MoMA)가 소장한 1974년작 ‘Conjunction 74-26’도 주요 작품이다. 원형 구도가 돋보이는 초기 접합 연작으로, 전통 불화를 그릴 때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인 광배를 표현하기 위해 비단 뒷면에 채색하는 기법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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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현의 ‘Post-Conjunction 26-503’(2026)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신작)
작가가 선보이는 신작 3。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신작 중 일부는 나무 합판을 얇은 직선 형태로 잘라 먹을 칠한 한지로 감싼 뒤 배열하고, 합판 틈마다 물감을 짜 넣고 눌러 마감하는 방식을 취했다. 또 다른 신작에서는 강렬한 붉은색을 머금은 접합을 통해 여전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신작)"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9/23/mk/16041vwfl.jpg" data-org-width="700" dmcf-mid="GBcVLBwahh"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23/mk/16041vwfl.jpg" width="658">
하종현의 ‘Conjunction 26-14’(2026)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신작)
구순인 작가는 지금도 조수를 두지 않고 직접 물감을 밀어내고 화면을 다듬는다. 재료만큼이나 작업에 투입되는 자신의 육체적 노동을 중요하게 여긴다. 스스로를 우아한 예술가라기보다 노동자라고 여긴 셈이다.
이날 행사장에는 20여 명의 현지 기자들이 참석해 하종현의 작품 세계와 작업 방식에 대해 질문을 이어갔다. 프랭크 스텔라·재스퍼 존스 등 서구 작가와의 관계부터 단색화로 분류하는 것이 작가의 작업을 충분히 설명하는지 등 질문이 쏟아졌다. 벤 하마모토 니치베이 타임스 기자는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작품들”이라며 “2차원 사진으로만 봐도 매력이 느껴졌는데, 실제로 보니 질감이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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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작품이 실제로 이곳까지 와서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에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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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서 이달 25일 개막하는 ‘하종현: 회고전’ 설치 전경.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이번 회고전이 열리는 AAM을 중심으로 올 가을 샌프란시스코 일대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인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도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의 소장품전이 함께 예정돼 있어 한국미술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RM이 수집한 145.에 SFMOMA의 세계적인 소장품 40。을 더해 총 185. 규모로 꾸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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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서 이달 25일 개막하는 ‘하종현: 회고전’ 설치 전경.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50년 전 마대 천 위에서 시작된 하종현의 실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평생에 걸쳐 부단한 변화를 추구해온 작가는 “내가 추구하는 변화는 나이를 먹었다고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예술에는 완성이 없다”고 강조한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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