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GH LITTLE SUVS] 미니 컨트리맨&피아트 50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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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작복작한 식구들 사이에서 오히려 외로워진 컨트리맨에게 새 친구 500X가 생겼다.
‘아니, 이 차를 왜 빼먹었지?’
비교시승을 위해 비슷한 차들을 모아놓고 보면 나중에 아차 싶을 때가 있다. 컨트리맨이 그런 차다. 〈탑기어〉 창간 이후 다양한 SUV 기사가 나갔지만 컨트리맨은 한자리도 차지하지 못했다. 나온 지 오래돼서도, 시승차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여서 그런 것도 아니다. 워낙 튀는 차이다 보니 평범한 차들과 비교할 후보로 생각지 못하거나 생각이 났다 하더라도 이질감이 심할까봐 끼워넣길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미니를 현대적으로 되살린 뉴 미니의 SAV(스포츠 액티비티 비클) 버전이어서 Not nomal하지 않은 SUV들과는 생김새가 다르고, 시장에서의 위치도 다른 것만 같다. 그런데, 드디어 외로운 컨트리맨에게 좋은 친구이자 경쟁자가 생겼다. 피아트 500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뉴 500의 SUV 버전인 500X가 그 주인공이다.
3도어 해치백뿐이었던 미니가 컨버터블과 클럽맨, 쿠페, 로드스터, 컨트리맨, 5도어 등으로 가짓수를 늘리며 브랜드 확장에 나선 것처럼 피아트도 500을 서브브랜드화했다. 지붕이 열리는 500C에 이어 2012년 MPV 버전인 500L을 내놓았고 이것을 크로스오버 버전인 500L 트레킹과 7인승 500L 리빙으로 확장했다.
2014년 데뷔한 500X는 컨트리맨을 롤모델로 삼았다. 차체는 컨트리맨보다 살짝 크지만 부피감은 비슷하거나 컨트리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미니가 컨트리맨을 처음 소개할 때 썼던 4×4×4는 미니 최초로 4도어와 4바퀴굴림, 4m가 넘는 길이를 가졌음을 뜻했다. 당시에는 그만큼 파격적이었고, 동시에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효자모델로 자리를 잡았다.
데뷔 5년이 지난 현재, 더 넉넉한 클럽맨과 5도어 해치백의 등장으로 컨트리맨의 입지가 좁아졌다. 그동안 2개의 추가도어와 넓어진 공간으로 실용성을 끌어올린 점을 자랑으로 내세웠는데, 이런 장점이 흐려진 것이다. 게다가 3세대 미니 해치백과 새로워진 클럽맨은 컨트리맨을 더 나이들어 보이게 한다. 따라서 컨트리맨은 덩치 큰 해치백에서 벗어나 좀더 SUV다운 모습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컨트리맨과 비교했을 때 바짓가랑이를 바싹 끌어올린 500X의 자세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SUV 감각이 한층 진하다는 뜻이다. 먼저 나온 500L과 명확히 구분지을 필요가 있었고, 컨트리맨의 사례도 참고했을 것이다. 컨트리맨을 닮은 차는 오히려 500L이다. 창문 기둥부위를 검게 처리한 필러리스 디자인이나 지붕 뒤쪽이 아래로 처진 모습이 그렇다. 500X는 500L과 달리 오리지널 500의 디자인을 많이 살렸다. 컨트리맨과 미니 해치백의 거리보단 500X와 500의 사이가 훨씬 가까워 보인다.
500X는 500을 뻥튀기하면서 뒤로 늘인 것 같은 시티룩과 SUV 감각에 좀더 충실한 오프로드룩 두가지가 나온다. 후자는 사진에서 보듯이 전방 프로텍터와 스키드 플레이트가 강조되어 있다. 컨트리맨은 앞뒤 오버행이 짧아 오프로드 접근 시 거치적거리는 게 덜하지만 최저지상고가 높진 않다.
500X는 시티룩과 오프로드룩 모두 껑충한 인상이다. 상체는 전혀 다르지만 하체만큼은 플랫폼을 공유한 지프 레니게이드에 뒤지지 않으려 한 것 같다. 대신 레니게이드와 같은 지형 선택 기능이나 네바퀴굴림 고정장치 등 오프로드에 특화된 장비는 갖추지 않았다.
500X에는 변속레버와 컵홀더 사이 다이얼로 조작하는 ‘드라이브 무드 셀렉터’가 있다. 연인과 드라이브할 때 부드러운 조명과 향내, 음악을 깔아주는 것이 아니라 주행 모드를 바꾸는 장치다. 오토, 스포츠, 트랙션 무드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오토는 연비 위주로 달리고, 트랙션에선 네바퀴굴림이 부각된다.
오디오 리모컨과 변속패들이 스티어링 휠 뒤쪽 공간을 나눠 쓴다
무드 선택에 따라 계기판의 정보도 바뀐다. 스포츠에 맞추면 터보 게이지나 G센서 수치를 볼 수 있고, 트랙션에서는 구동력 배분을 확인할 수 있다. 컨트리맨은 아래쪽 토글 스위치 사이 먼곳을 더듬어야 스포츠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데, 그나마 별것 아니다. 굳이 스포츠 모드를 활성화하지 않아도 항상 지나칠 정도로 긴장되어 있다.
이런 특성이 경쟁차에 대비되는 매력이고, 시승차가 쿠퍼 SD 트림이어서 더 그렇겠지만, 오랜 시간 몰기에는 부담스럽다. 시종일관 시끄럽고 덜덜거리는 엔진과 맞물려 승차감도 좋지 못하다.
500X가 조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시동을 거는 순간이 경쾌할 뿐 곧바로 소음과 진동이 실내를 뒤흔든다. 막연히 레니게이드보다 조용하길 기대한 게 잘못이다.
이탈리아에서 만드는 미국차보단 이탈리아에서 만드는 이탈리아차가 나을 줄 알았나? 어쨌든 500X는 레니게이드처럼 정차 때 시동을 끄는 스타트 스톱 기능을 갖췄다. 시동이 꺼지면 이게 얼마나 요란스러운 차인지 더 부각되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연료소모는 물론이고 스트레스도 줄여준다. 오히려 속도가 붙으면 대시보드 너머에 있던 엔진이 발밑 어디론가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조용해지고, 심지어 가속이 매끄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컨트리맨은 시동 직후의 매너가 기억속의 그것보다 얌전하긴 했으나 달릴 때 게걸스러운 소리를 낸다. 노면소음도 크다. 가속 때는 “내가 간다! 다 비켜라”다. 굉장히 빠른 느낌을 주긴 하지만 실제 성능수치는 기대에 못미친다. 똑같은 2.0L 디젤 엔진을 얹은 500X보다 최고출력이 3마력 높고 최대토크는 오히려 떨어진다. 그렇다고 더 낮은 회전수에서 힘을 발휘하는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다. 변속기의 열세까지 이어진다. 500X는 9단, 컨트리맨은 6단이다.
사실 500X는 수동조작 때 반응이 느리고, 100km/h 정속주행 때의 회전수도 컨트리맨보다 400rpm 남짓 낮을 뿐이다. 제원상 500X의 0→100km/h 가속성능은 9.8초로, 9.3초인 컨트리맨이 체면을 지킨 듯 보인다. 하지만 미니 중 고성능 파워트레인을 뜻하는 ‘쿠퍼 S’+D 딱지가 붙은 차가 이러니 문제다. 쿠퍼 SD 클럽맨 올4의 190마력, 7.2초, 쿠퍼 D 클럽맨의 150마력, 8.5초와 비교하면 컨트리맨은 절대로 웃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주행안정감이나 승차감에서 우세를 보이는 쪽은 컨트리맨이다. 통통 튀기로 정평이 있는 차에 승차감이 좋다고 말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500X와 비교하면 고급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묵직하고 충격음도 잘 거른다.
500X는 예상 외로 운전재미가 좋다. 파워트레인과의 조화까지 고려하면 컨트리맨보다 낫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유쾌한 부분을 가졌으나 그 대가로 하체가 지나치게 단단해 승차감을 챙기지 못하는 모습이다. 거칠게 튀고 서걱거린다. 이탈리아 감성이라고 포장하기도 애매하다. 시승차처럼 18인치 휠타이어를 끼우지 않으면 조금 나을지 모르겠다. 조향감각은 반박자 늦지만 경쾌하다. 시내에서는 느긋하면서도 흥미롭게 주행할 수 있을 것이다.
500X는 미쉐린 파일럿 스포트 3를 끼웠다. 타이어 사이즈는 컨트리맨과 같다
둘 다 해치백 스타일로 차체가 짧아서 도시에서 몰기에 유리하다. 그만큼 정통 해치백보다 적재용량이 큰 것은 아니다. 기본용량은 350L로 같고, 뒷좌석을 접었을 때의 최대용량은 500X가 1,000L, 컨트리맨은 1,170L이다.
500의 기본적재량은 185L, 미니 5도어는 기본 278L, 최대 941L이니 500X와 컨트리맨의 짐공간은 브랜드 내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덩치를 골프 수준으로 키운 클럽맨이 더 넉넉한 적재용량(360~1,250L)으로 컨트리맨을 위협하고 있다.
차체가 붕 뜬 모습인 500X에 비해 컨트리맨은 일반 해치백처럼 트렁크 문턱이 낮아서 짐을 싣고 내리기 수월하다. 둘 다 탈착식 바닥판을 이용해 트렁크 공간을 위아래로 나누어놓았다.
225/45R 18 런플랫. 사이즈는 같지만 컨트리맨 휠이 더 큰 것처럼 느껴진다
이 자리에 나오진 않았지만 레니게이드도 마찬가지다. 두 차보다 지붕이 높고 박스형 차체인 레니게이드는 기본 적재용량이 350L로 같고, 최대용량은 1,297L로 확연히 크다.
500X의 실내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이유는 기울어진 뒷유리와 볼록한 엉덩이에서 찾을 수 있다. 500의 스타일을 살려 둥글린 디자인 때문에 뒷좌석 머리공간도 좁다. 지붕을 컨트리맨처럼 잡아뺀 500L은 이보다 여유로울 것이다.
컨트리맨은 뒷좌석 설계가 500X보다 안락하게 느껴진다(역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특유의 센터레일이 사라진 컨트리맨 뒷좌석은 3인용이고, 시트를 앞으로 당기거나 등받이를 직각으로 세워 짐공간을 넓힐 수 있다. 뒷좌석 송풍구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전반적인 편의장비는 500X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동반석까지 전동조절이 되고 에어컨도 좌우 독립식이다.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때 시승했던지라 스티어링 휠의 열선도 고마웠다. 냉면집 주차장에서 후진으로 차를 뺄 때는 후방카메라뿐만 아니라 직각방향에서 접근하는 차에 대해서도 경고를 보내는 후방교행 감지시스템의 덕을 봤다.
이에 반해 주차센서에 의존하는 컨트리맨을 뒤로 뺄 때는 눈을 가리고 운전하는 것 같았다. 500X의 모니터는 크기가 작지만 터치가 되고 한글과 내비게이션을 지원한다. 스마트폰으로 수신된 문자를 읽어주기까지 한다. 그밖에 스마트키, 사각지대 감시장치 등 컨트리맨과 비교하면 으리으리한 장비로 무장했다.
각종 편의장비를 걷어낸다고 해서 500X의 실내가 볼품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500과 일맥상통하는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최대한 살렸고(실내 곳곳의 이름표에도 X를 빼고 500만 적었다) 부위별로 달리 한 소재들은 질감이 뛰어나고 조화롭게 배치되었다. 시동 버튼 부위의 조잡함을 제외하면 프리미엄 소형차로 부르기에 손색없을 정도다.
컨트리맨의 실내는 기능이나 장비에서 나이든 티가 나지만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디자인과 프리미엄 소형차 브랜드의 품질감은 여전하다. 시승차는 파크레인 에디션으로, 천연가죽 스포츠 시트와 센터콘솔 스타킹 무늬 등으로 은근한 차이를 두었다.
파크레인은 메이페어, 하이드파크, 본드 스트리트 등 이전의 미니 스페셜 에디션들과 마찬가지로 런던의 동네 이름이다. 런던 시내까지는 못가더라도 도심에서 촬영해야 차가 예쁘게 나올텐데 굳이 산에 올라가 진흙을 튀겨가며 사진 찍은 점, 지면을 빌려 유감의 뜻을 표한다. 하지만 흙길을 달리고 싶어하는 500X의 눈빛이 너무도 애처로워 거절할 수가 없었다.
500X 시승차는 매트 마그네틱 브론즈라는 무광 컬러로 마감됐다. 스페셜 에디션은 아니지만 굉장히 스페셜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주변의 지저분한 것들이 차체에 반사되지 않아 사진 기자가 무척 좋아했다. 레니게이드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
흙길에서 자세를 잡은 500X의 모습은 봄을 맞아 땅위로 나온 개구리...아니 떡두꺼비 같았다. 색상에 따라, 보디 스타일에 따라 많이 다른 느낌을 줄 것이고, 별로 볼거리가 없는 우리나라 도로에 조금이나마 재미와 활기를 더해줄 것이다. 혹자는 “피아트 친퀘첸토(500)가 이렇게 커지면 곤란하지”라고 반감을 표하겠지만 누군가는 어김없이 취향저격을 당할 것이다. 미니에서 컨트리맨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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