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ERALIST, 폭스바겐 파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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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은 평범한 것들을 뭉쳐 비범한 것을 완성했다. 신뢰를 잃은 브랜드가 만들어낸 믿음직한 자동차. 파사트는 특출한 것이 없으면서도 두루 만족스러운 완성도로 자신의 가치를 납득시킨다. 철저한 기본기로 폭스바겐이 어떤 브랜드였는지 호소한다. 단 한 대의 차를 소유할 수 있는 가장에게 파사트는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철옹성이 함락되었다. 대학동기 모임에서 여자 친구 하나가 청첩장을 건넸다. 예비신부는 대학시절부터 대시하는 남자마다 거절해 철벽녀로 악명 높았던 친구. 신중한 그녀가 어떻게 예비신랑을 남편감으로 낙점했는지 궁금했다.
“허세가 없어. 성실하고 진실하고 믿음직해. 대단한 매력 때문은 아니야. 오히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단점이 없어서 평생 함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녀의 말을 곱씹었던 건 운전 중인 자동차가 주는 인상이 그녀가 한 말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단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두루 준수해 신뢰감을 주는 차, 꾸밈없이 담백해 믿음직한 차. 기자는 2016년형 폭스바겐 파사트를 타고 있었다.
태평양을 건너온 독일차
2016년형 파사트는 미국 테네시 주에서 생산되는 북미형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폭스바겐 코리아가 북미형 파사트를 들여오는 건 같은 값이면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 시장 특성을 고려한 선택. 북미형 파사트는 유럽형에 비해 길이가 101mm, 휠베이스가 12mm 길다. 부분변경 이후 국내에는 1.8 TSI 단일 엔진으로 판매되며, 디젤 모델은 당분간 들어오지 않는다. 디젤게이트 여파로 폭스바겐 미국 공장이 디젤 엔진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변화의 폭은 크지 않으나 효과는 만점이다. 보닛에 캐릭터 라인을 더하고 주간주행등을 품은 LED 헤드램프를 달았을 뿐인데 인상이 한결 힘차고 또렷해졌다. 담백하고 정갈한 음식에 멸치육수 한 스푼으로 감칠맛을 더한 격이다. 트렁크에 추가한 크롬 스트립은 LED 테일램프와 조화로운 뒤태를 완성한다. 사이드뷰는 온 가족을 품겠다는 듯 듬직하며, 채터누가 알로이 휠은 가벼운 발걸음을 암시하는 듯 산뜻하다.
인테리어에서는 폭스바겐 특유의 단정함이 묻어난다. 스티어링 휠을 신형으로 바꾸고 우드트림에 금속 테를 더해 젊은 감각을 입힌 것을 제외하면 달라진 점이 별로 없다. 계기판과 공조계, 센터페시아가 주는 통일감이 안정적인 느낌을 주며, 직선을 테마로 한 간결함 덕분에 오래 봐도 질리지 않을 디자인이다. 새롭게 적용된 프레임리스 리어뷰 미러는 전방시야 속에 후방시야를 한 조각 떼어붙인 듯 산뜻한 감각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유로운 실내는 북미형 파사트의 큰 장점. 앞뒤 무릎공간과 머리공간은 물론 어깨공간도 넉넉하다. 적재공간은 529L, 4개의 골프백과 4개의 보스턴백을 실을 수 있는 크기다. 뒤 범퍼 아래 발을 뻗어 트렁크를 열 수 있는 트렁크 이지 오픈 기능과 6:4 분할 폴딩 및 스키스루를 지원하는 2열 시트 덕에 적재편의성이 우수하다.
깔끔한 대시보드 너머 슬쩍 보이는 펜더(Fender) 엠블럼은 단정한 신사의 가슴 속에 숨겨진 록 스피릿을 불러일으킬 것만 같다. 일렉트릭 기타 메이커로 널리 알려져 있는 펜더는 그 이름에 걸맞은 선명한 사운드로 기대에 부응한다. 10채널 디지털 앰프와 9개의 스피커를 통해 즐길 수 있는 펜더 오디오 시스템은 폭스바겐, 펜더, 파나소닉이 함께 개발했다. 이밖에 지니 내비게이션, DMB,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크루즈 컨트롤, 레인센서와 파크파일럿, 지능형 충돌반응 시스템(ICRS)과 다중충돌방지 브레이크(MCB) 등을 기본으로 적용했다.
기본형(시승차)보다 480만원 더 비싼 R라인을 선택하면 R라인 로고가 부착된 프론트 그릴, 블랙 색상의 액센트가 더해진 R라인 프론트 범퍼, R라인 사이드 스커트와 19인치 살바도르 알로이 휠, 새로운 디자인의 리어 디퓨저와 크롬 배기파이프가 추가된다. 또한 패들시프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레인어시스트, 프론트 어시스트 및 시티 이머전시 브레이크 등의 화려한 편의 및 안전장비도 손에 넣을 수 있다.
보편성을 뭉쳐 만든 특별함
2014년 이후 기존의 5기통 2.5L 가솔린 엔진을 대체하고 있는 최고출력 170마력의 4기통 1.8L 가솔린 직분사 터보 엔진(3세대 EA888)은 배기량은 줄이면서 성능과 효율은 높인 다운사이징의 좋은 예. 배기량만 낮을 뿐 7세대 골프 GTI(북미형)의 엔진과 같은 유닛이다. 1,500rpm에서 끌어낸 25.4kg·m의 최대토크를 4,750rpm까지 꾸준히 밀고 가도록 세팅되어 있다. 터보랙이 거의 없고 큰 힘을 오랫동안 고르게 낸다.
가속감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유연하다. 출력이 일정하게 오르는 점잖은 감각이지만 답답하진 않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가볍게 튀어오른 속도계 바늘이 100km/h 눈금을 돌아 150km/h을 지나도록 말끔한 원을 그린다. 변속속도가 빠르고 직결감이 뛰어난 6단 자동변속기(팁트로닉)의 실력도 한몫했다.
주행감은 지루할 만큼 심심하지도, 피곤할 만큼 자극적이지도 않다. 조향감각, 제동력, 승차감 모든 면에서 탄탄한 기본기가 빛난다. 스티어링에 따른 거동은 무척 정확하고 단호하며, 급격한 가감속이나 선회에도 쉽사리 안정감을 잃지 않는다. 하체는 탄탄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지만 무르지 않다. 안락한 승차감을 원하는 사람이나 스포티한 주행감을 중시하는 사람 모두 문제 삼지 않을 만한 교묘한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파사트는 스페셜리스트와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매사에 두루 능통한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 때문에 만족감은 파사트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닌 전체적인 균형에서 온다. 잠깐의 경험만으로는 파사트의 매력을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곁에 두고 오래 타다보면 일상 속에서 그 진가가 드러날 것이다.
‘스타일까지 생각하는 까다로운 아빠의 선택.’ 폭스바겐 코리아는 새로운 파사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 타보니 과연 단 한 대의 차를 소유할 수 있는 가장에게 파사트는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파사트는 폭스바겐으로서도 최선의 선택이다. 모험을 할 여력이 없는 지금의 폭스바겐에게 있어 글로벌 누적판매 1,500만 대에 빛나는 파사트와 워즈오토(Ward's Auto) 세계 10대 엔진(2015년)으로 선정된 가솔린 터보 엔진은 두드려보지 않고도 건널 만한 돌다리인 셈이다.
‘Das Auto’(자동차)라는 의미심장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 폭스바겐의 패기는 디젤게이트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파사트는 여전히 패밀리카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또한 준수한 기본기로 폭스바겐이 어떤 브랜드였는지 증명하고 있다. 누가 타도 만족할 만한 차로서 완성도 높은 보편성을 구현한 파사트는 되레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허세가 없어. 성실하고 진실하고 믿음직해. 대단한 매력 때문은 아니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단점이 없어서 평생 함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파사트를 타는 내내 여자 동기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단정한 몸가짐, 세련된 승차감, 믿음직한 주행안정성에 만족하면서도 핸들 위에 새겨진 엠블럼을 보면 왠지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부디 그녀의 남편감에게는 조작된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달려 있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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