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X의 변신은 현재진행형 : 렉서스 RX45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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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X는 전통적으로 편안하고 나긋나긋한 프리미엄 중형 SUV였다. 그러나 4세대에 와서는 덩치를 훌쩍 크게 키우고 다른 렉서스와 마찬가지로 스타일과 성격에 역동성을 담아내고 있다. 아직 정체성이 모두 바뀐 건 아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자기혁신 과정을 통해 신중하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RX의 변신이 화려하다. 지난 모델의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다. 확 바뀐 새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혁신’을 들먹이며 엄지를 치켜세울 게 분명하다. 그러나 나긋나긋한 렉서스만의 고유한 특성을 원한다면 변화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RX뿐만 아니라 렉서스 모든 라인업에 걸쳐 계속되고 있다.
외형 변화는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전면부의 대부분을 채운 스핀들 그릴은 이제 제법 익숙해졌지만 크기가 몰라보게 커졌다. 몸 전체에 날카로운 각이 살아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미 아랫급 NX에서 봤던 디자인이라 낯설지는 않다 해도 풍기는 인상은 강렬하다. 첫인상의 강렬함으로는 전체 SUV 중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 길고 낮게 깔리는 자세로 인해 SUV라기보다는 크로스오버처럼 보이기도 한다. C필러와 D필러를 연결하는 하단부는 유리로 연결했다. 지붕이 떠 있는 듯한 효과와 함께 실내에서도 그만큼 시야가 확장된다.
안으로 들어가면 현란한 바깥 분위기와 달리 차분함이 느껴진다. 원체 이전부터 고급스럽게 잘 마무리했던 실내를 더욱 보기 좋고 수준 높게 다듬었다. 12.3인치 커다란 모니터와 풀컬러 방식에 크기도 큰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이 눈에 띈다. 알루미늄과 나무를 조합해 만든 신소재도 분위기를 새롭게 한다. 요즘은 계기판을 디스플레이로 만들어서 색다른 사용자 경험을 제시하는 게 유행이다. 그러나 RX의 계기판은 새롭고 파격적인 모습을 추구하는 전체적인 컨셉트와 달리 고전적이고 점잖은 편이다. 터치가 되지 않고 마우스 같은 컨트롤러로 조절하는 모니터는 시원스런 화면을 제공하지만 사용이 다소 불편하다.
공간은 만족스럽다. 차체 길이가 12cm, 휠베이스가 5cm 길어져서 공간도 커졌다. 앞뒤 모두 넓고 가죽의 질감도 좋고 앉았을 때의 자세도 편안하다. 특히 2열이 슬라이딩되고 등받이를 전동으로 기울일 수 있어 안락하다. 트렁크공간도 넓다. 2열을 접으면 무지하게 넓은 공간이 생긴다. 무엇보다 2열을 전동 스위치로 조절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트렁크 도어는 키를 지닌 채 엠블럼 근처에 손을 가져가면 자동으로 열린다.
안정성 커지고 디젤보다 연비 좋아
요즘은 SUV 전성시대다. 특히 RX급 프리미엄 SUV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 선택받으려면 남다른 강점 하나는 반드시 갖춰야 한다. RX450h의 강점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다. 가솔린의 약점인 좋지 않은 연비를 하이브리드로 보완했다. 프리미엄 SUV의 주력 모델에서는 거의 유일한 하이브리드다.
엔진은 V6 3.5L 가솔린으로 최고출력은 262마력, 최대토크는 34.2kg·m다. 여기에 더한 2개의 전기모터 출력은 각각 167마력과 68마력이고, 전체 시스템출력은 313마력이다. 출력이 만만치 않아 이만 한 덩치에 모터와 배터리를 짊어져 무거워진 무게(2,175kg)를 감당하기에 충분하다. 변속기는 무단변속기(CVT)를 쓴다.
시동을 걸어도 조용하다. 액셀 페달을 밟아도 초반에는 모터만으로 달리기 때문에 조용하게 미끄러진다. 속도가 올라가고 가속 페달을 밟는 빈도가 늘면서 엔진이 본격적으로 작동한다. 가속은 시종일관 여유롭다. 스트레스 없이 부드럽게 속도가 올라간다. 엔진과 전기모터가 함께 움직일 때는 강한 추진력이 느껴진다. 전기모터와 엔진의 역할 분담과 협력은 수시로 빠르게 이뤄진다. 에너지흐름을 나타내는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정신없을 정도다. 그만큼 렉서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최적의 효율을 찾아내기 위해 복잡하게 움직인다. 물론 그 복잡함은 에너지흐름을 보지 않는 이상 운전자가 알아차리기는 힘들다. 엔진과 전기모터의 결합과 분리, 배터리 충전 등 동력 관련 모든 과정이 아주 매끈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드라이브 모드는 에코/노말/스포츠 세 가지다. 에코는 연비 향상에 최적화된 모드이고 스포츠는 보다 힘찬 가속을 지원한다. 각 모드 차이는 제법 크다. 에코 모드는 연비 향상을 위해 힘을 줄이는 경향이 있는데, RX는 기본적으로 힘이 넉넉하기 때문에 맥 빠지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스포츠 모드는 격한 역동성보다는 좀 더 여유로운 힘을 체감하는 수준이다. 전기만으로 달리는 EV 모드는 잘만 활용하면 능동적으로 연료 사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시속 55km 이하에서만 작동하고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되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저속의 정체구간에서나 잠깐 잠깐 사용할 수 있다.
RX450h는 네바퀴를 굴린다. 렉서스는 이를 E-Four라고 부르는데 뒤쪽에 전기모터를 달아 필요할 때 뒷바퀴를 굴린다. 앞뒤를 연결하는 프로펠러 샤프트가 없기 때문에 뒷좌석 바닥이 솟아오르지 않아 공간활용에 유리하다. 적극적으로 동력을 배분하기보다는 필요할 때만 네바퀴굴림의 장점만 취한다. 엔진의 힘이 앞바퀴로만 전달되는 데 따른 약점을 보완하는데 주력한다. 예컨대 급가속이나 코너에서 언더스티어가 발생할 때 뒤쪽 바퀴를 굴려 접지력을 키워 자세를 바로잡는다.
신형에서 체감하는 큰 변화는 안정성이다. RX는 예전부터 부드럽고 푹신한 특성이 지배했다. 승차감은 아늑하고 스티어링도 유연해서 운전하기 편했다. 지금도 그런 특성을 유지하지만 안정성을 크게 키웠다. 앞쪽 서스펜션은 스태빌라이저바를 솔리드바에서 구경이 더 큰 월튜브로 바꿨고, 코일 스프링 롤을 줄였다. 뒤쪽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역시 새롭게 세팅했다. 덕분에 흔들림이나 출렁임이 줄어서 심리적인 안정감이 커졌다. 특히 턱을 넘을 때 출렁이지 않고 자세를 잡는 능력이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승차감이나 운전 감성이 여성 지향적이라 호불호가 갈렸지만 이제는 남성들이 선호하는 역동성을 주입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성적인 주행 감성을 실현했다.
RX450h의 복합연비는 1L에 12.8km다. 배기량이 같은 RX350은 연비가 L당 8.9km다. 일반 가솔린 엔진보다는 당연히 좋고 동급 디젤 SUV보다도 살짝 높다. 더군다나 전기모터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시내주행 연비는 복합연비를 넘어서는 13.4km/L에 이른다. 2톤이 넘는 커다란 SUV로는 대단한 수준이다. 이를 증명하듯 실제 주행 연비는 만족스럽다. 일상적인 주행습관으로 운전하면 웬만해서는 공인연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시험 삼아 가속을 좀 많이 하면 연비가 공인연비에 못 미치지만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가솔린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라면 힘과 연비 모두 만족스럽게 타고 다닐 수 있는 수준으로 디젤 SUV의 대안 자격이 충분하다.
신형 RX450h의 값은 이그제큐티브 트림이 8,600만원으로 구형보다 조금 내렸다. 돈을 좀 더 보태 독일산 디젤 SUV를 사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RX는 프리미엄 SUV에서 기대할 만한 것들을 대부분 갖춰 그다지 아쉬운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숙하고 안락하면서도 동급 디젤 SUV보다 좋은 연비는 450h의 경쟁력일 것이다. 아래 트림인 수프림은 7,610만원으로 윗급보다 800만원 정도 싸지만 두 트림 사이에 장비 차이가 크다. 800만원을 더 보태서 이그제큐티브 트림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된다.
큰 폭으로 바뀐 RX, 변신은 진행 중
RX는 꽤 괜찮은 차다. 고급차다운 면모를 갖췄고 성능이나 품질 어느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 렉서스라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인지도 또한 높다. RX는 전통적으로 동급 유럽산 SUV보다 안락하고 편안하면서도 값은 상대적으로 쌌다. 그러나 이제 하이브리드 버전의 경우 값이 유럽산 SUV에 근접하고 있다. 값뿐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RX가 중형 SUV 느낌이 강했지만 4세대에 와서는 한 체급 위로 여겨질 만큼 커졌다.
이처럼 렉서스는 RX의 전통적인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디자인과 성격에 계속해서 변화를 주고 있고, 이러한 경향은 최근 렉서스 브랜드의 모든 차에서 공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프리미엄 브랜드에 확고한 정체성을 원하지만 렉서스는 그동안 쌓아놓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역동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기존에 닦아놓은 이미지마저도 흔들릴 수 있는 모험이지만 시장 확대와 이미지 변신을 위해 과감한 행보를 시작했다. 아직 이러한 노력이 렉서스의 정체성과 인식을 모두 바꾼 것은 아니지만 한두 세대 뒤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렉서스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뀔지도 모른다. 신형 RX는 그 변화의 과정에 있는 모델이며, RX의 변신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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