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88한 푸조의 GT 형제, 308 GT & 508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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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GTD 뺨치는 경쾌한 핫해치와 젠틀하면서도 짜릿한 중형 세단이 나타났다. 세련미에 강인함을 더한 GT 스타일링과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0.8kg·m의 호쾌한 성능으로 무장한 308 GT와 508 GT가 상륙한 것. 독일차 일색의 국내 수입차 시장을 향한 프랑스산 펀투드라이빙 카의 반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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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자동차 브랜드는 고성능 라인업을 포진해 놓는다. 이를테면 BMW의 M, 메르세데스 벤츠의 AMG와 같은……. 노말 모델에 강력한 파워트레인과 스포티함을 강조하는 파츠를 장착해 자동차 마니아들이 환영할 부분을 군데군데 집어넣은 라인업이다. 이들만큼 무시한 성능과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대표 푸조 역시 고성능 라인업이 존재한다. 퍼포먼스를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스포티하게 드레스업을 한 GT 라인(소위 GT 룩), 고성능 디젤의 GT, 그리고 고성능 가솔린의 GTi가 있다. 물론 500마력을 상회하는 308 R도 있지만 양산차는 아니다. 지난 2월 22일 푸조의 공식 수입원인 한불모터스는 고성능 라인 GT를 국내에 소개했다. 2.0L로 같은 배기량이지만 기존의 150마력보다 30마력 높은 디젤 엔진을 해치백 308과 세단 508에 얹었다. 어찌 보면 소박한 출력 상승이긴 하나 모터스포츠에 일가견이 있는 푸조가 내놓은, GT 배지를 단 녀석들의 실력은 과연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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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UGEOT 308 GT : Good Boy! Good T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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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해치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델은 폭스바겐 골프다. 40년이 넘는 역사와 탄탄한 기본기, 운전재미와 실용성까지 갖춰 국내에서 유럽산 해치백의 대명사로 통한다. 분명 좋은 모델이지만 해치백의 핵심 소비층이 개성이 강한 젊은 세대임을 감안하면 다른 대안에도 눈길을 줄 만하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골프의 경쟁 모델인 308이 골프만큼 대중적이지는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푸조가 내놓은 308 GT는 과연 폭스바겐 골프의 고성능 디젤 모델 GTD를 충분히 대적할 만할까? 르망과 WRC의 강자였으며 날카로운 핸들링으로도 유명한 푸조가 빚어낸 고성능 디젤 해치백의 실력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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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308 GT는 겉모습에서 일반 308에 비해 잔뜩 기교를 부려 놓았다. 헤드램프의 모양은 일반 모델의 그것과 같지만 풀 LED를 적용해 더욱 세련됐다. 보닛에 붙어 있던 배지는 라디에이터 그릴로 위치를 옮기며 사이즈가 커졌고 프론트 범퍼와 사이드 스커트, 그리고 리어 범퍼는 보다 공격적으로 디자인됐다. 깔끔하게 자리잡은 트윈 머플러는 스포티한 느낌을 선사하며 사이드미러를 유광 블랙으로 처리해 멋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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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일반 모델과 비슷하지만 곳곳에 포인트를 줌으로써 차별화했다. 스티어링 휠과 시트에 레드 스티치를 넣어 스포티함을 연출하고 엉덩이와 등이 닿는 부분은 알칸타라로 마감해 고급스러운 분위기 연출과 코너링에서 운전자를 잡아주는 기능적인 역할까지 동시에 해낸다. 인상적인 것은 소형 해치백과는 어울리지 않는 마사지 기능. 고급차들의 그것처럼 본격적으로 시원한 마사지를 선사하지는 않지만 정체구간에서 온몸을 비틀고 싶을 때 적당히 몸을 달래준다. 뒷좌석은 성인 남성이 타더라도 크게 불편하지 않으며 트렁크공간은 여느 해치백과 비슷한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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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시 GT 배지가 붙으면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겉모습이 아니라 퍼포먼스다. 현재 국내에 출시되고 있는 308에는 세 종류의 디젤 엔진이 올라간다. 1.6L 120마력과 2.0L 150마력, 그리고 이번에 GT에 올라간 2.0L 180마력 엔진이다. 수치만으로는 골프 GTD(184마력)와 실력이 엇비슷하다. 유로6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이 엔진은 일단 진동과 소음 면에서는 만족스럽다. 주 전공이 디젤인 푸조답다. 최대토크가 40.8kg·m인 만큼 가속 페달을 깊게 밟지 않아도 힘은 넉넉하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8.4초. 수치상으로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체감하는 성능은 제원을 앞서고 엔진의 회전질감이 좋아 시종일관 빠릿빠릿하다. 특히 스포츠 모드 버튼을 누르면 달리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계기판이 붉은빛으로 변하고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사운드 제너레이터를 통해 8기통 사운드를 내뿜는다. 유치한 듯하면서도 은근히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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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 자동변속기는 변속이 부드러우면서도 빠르다. 경쟁 모델인 골프 GTD가 DSG(듀얼 클러치)로 무장했지만 308 GT의 토크컨버터 타입 6단 AT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오히려 아쉬운 점은 스티어링 휠이 아니라 칼럼에 위치한 시프트패들. 패들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고 길이가 짧아 연속된 코너에서 핸들링을 할 때 손가락으로 조작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변속기 자체의 변속속도는 빠르지만 패들 조작에 따른 속도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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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버전보다 앞 7mm, 뒤 10mm 낮춘 서스펜션 세팅은 발군이다. 해치백의 구조상 뒤가 불안한 경우가 많은데 308 GT는 잘 계산된 하체 세팅으로 쉽사리 안정감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기분 좋게 단단한 승차감은 스포티한 주행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속도를 꽤 높여도 스티어링 휠이 가벼워지지 않고 풍절음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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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는 전륜구동으로 수준급의 핸들링을 자랑한다. 미쉐린의 파일럿 스포트3의 좋은 런닝화를 신고 있는 308 GT는 와인딩 코스에서 날다람쥐 같이 날렵하게 움직인다. 급격한 핸들링에도 차체의 움직임이 무너지지 않으며 뒤가 잘 따라온다. 뒤 서스펜션은 토션 빔이지만 ‘토션 빔=원가절감’이라는 편견을 깨는 운동성능을 보인다. 운전자가 딱 생각한 만큼 차선을 따라 돌아나가는 맛이 일품이다. 크기가 작은 스티어링 휠은 마치 로지텍 레이싱 휠로 게임하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강력한 토크로 이리저리 잽을 날리는 아웃복서 스타일로 타면 운전재미는 더욱 배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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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차에서 내려 문을 닫을 때 묵직하게 들리는 소리가 좋다. 예쁜 차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다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308 GT는 고개를 돌리게 했고 다시 시동 버튼을 누르게까지 만들었다. 한 번 더 타고 나가고 싶을 만큼 재미있고 목적지가 딱히 없더라도 무작정 차를 타고 달리고 싶은 데에는 기름을 낭비하지 않는 알뜰함(복합연비 14.3km/L)도 한몫한다. 골프 GTD와 비교해 희소성이 있는 것도 308 GT의 장점. 정말 재밌는데 아직 남들에게 덜 알려진 장난감 같은 차다. 잘 만들어준 푸조에게 Good Boy,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준 308 GT에게 Good Toy라는 인사를 건넨다.

PEUGEOT 508 GT : THE EVIL T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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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출생의 비밀이 있다. 총알택시로 악명을 떨친 아버지와 대통령을 의전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 소탈하고 가정적인 아버지와 우아하고 기품 있는 어머니를 고루 닮은 그에겐 다른 이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한 매력이 배어 있다. 이제는 혼자 남아 부모의 몫까지 짊어진 채 살아가는 유서 깊은 가문의 후손. 그의 이름은 푸조 50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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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508은 중형 세단 407과 플래그십 세단 607의 통합 후속 모델. 처음부터 두 모델을 대신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태어났다. 508의 아버지 격인 푸조 407은 뤽 베송이 제작하고 제라르 삐레가 연출한 프랑스 대표 추격 액션영화 ‘택시’에서 주인공(?) ‘택시’로 활약한 바 있다(택시 1~3편엔 406이, 4편엔 407이 출연). 508의 어머니 푸조 607의 리무진 버전인 607 팔라딘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의전차였다. 중형 세단의 크기에 플래그십의 품격을 담은 508에겐 아버지의 기질을 더 많이 물려받은 사나운 쌍둥이가 있다. 바로 푸조 508 G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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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 뭐 달라진 것 없어?” 어디에선가 뭇 남성을 식은땀 나게 하는 질문이 들려왔다. 508 GT를 마주한 기자는 “어디 보자~.” 말끝을 늘이며 당혹감을 감췄다. 프론트 그릴과 차체 옆면에 자리한 GT 엠블럼, 크롬 소재의 트윈 머플러, 19인치 알로이 휠을 제외한다면 풍만하면서도 에지 있는 외관 분위기는 물론 직선으로 넓게 뻗은 라이에이터 그릴과 프론트엔드, 정교하게 다듬어진 풀 LED 헤드램프와 세로무늬 리어램프까지 기존 508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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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쌍둥이 아니랄까봐 실내까지 쏙 빼닮았다. 시트와 도어 패널, 기어노브 부츠에 들어간 붉은색 스티치만이 이 차가 평범한 세단이 아님을 넌지시 귀띔해줄 뿐. 7인치 터치스크린, 4존 독립 공조 시스템, 스티어링 휠 좌우에 마련된 시프트패들 등 거의 모든 게 508 세단과 똑같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차이점은 시트다. 508 세단 가운데 508 GT에만 들어가는 촉촉하고 탄탄한 질감의 나파 가죽시트는 두툼한 사이드 볼스터 덕에 선회시 지지력이 우수하며, 운전석에 들어간 언더서포트와 럼버서포트, 메모리 및 마사지 기능 덕에 만족감이 매우 높다. 아쉬운 점은 내비게이션 작동 버튼을 이스터에그처럼 숨겨놓았다는 점. 내비와 일반 AV 화면을 전환하려면 스티어링 휠에 있는 메뉴 버튼을 길게 눌러야 하는데, 그것을 짐작할 만한 힌트가 전혀 없다. 실내공간은 플래그십으로선 아쉽지만 중형 세단으로선 무난한 수준. 개구부가 넓은 트렁크는 먹성도 좋아 적재공간이 545L나 되고 2열 시트 폴딩도 가능해 기대 이상으로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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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AMG, BMW M, 아우디 RS, 캐딜락 V 등 속이 아릴 만큼 알싸한 프리미엄 고성능 세단들과 달리, 508 GT가 지닌 180마력, 40.8kg·m의 힘은 맛있게 매콤한 수준이다. 사실 최고출력은 고성능 배지가 없는 BMW 520d보다도 10마력이 낮다. SCR(선택적환원촉매시스템)과 DPF(디젤입자필터)를 조합해 유로6에 대응한 디젤 엔진은 대기오염뿐만 아니라 소음공해까지 신경 쓴 듯 정숙하고 잔 진동이 적으며 회전질감이 매끄럽다. 또한 아이신과의 협업을 통해 개발한 6단 자동변속기(EAT6)는 스트레스 없는 변속으로 매끈하고 경쾌한 가속을 돕는다. 기어레버 옆에 있는 스포츠 버튼을 누르면 좀 더 경쾌한 가속과 나름 앙칼진 엔진회전음을 즐길 수 있다. 308 GT는 물론 일반 308에도 들어가는 가상 배기음 기능이 빠진 것은 패밀리 세단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염두에 둔 선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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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엔 그들만의 셈법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407+607=1,014’가 아니라 508일 것이다. 그렇다면 ‘508+디젤+고성능=?’의 답은 무엇이 될까? 정답은 물론 508 GT다. 하지만 복수정답 논란이 일 여지가 있다. 적어도 동력성능에 있어서만큼은 ‘508 펠린 트림=508 GT’라는 등식이 성립하기 때문. 508 GT와 동일한 2.0L 디젤 엔진을 얹은 508 펠린은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508 GT와 같으며, 앞뒤 더블 위시본/멀티 링크를 적용한 서스펜션 구조까지 동일하다. 복합연비는 0.2km/L 차이로 508 GT가 조금 더 좋다. 결국 508 펠린과 508 GT는 245만원의 가격, 휠 사이즈 1인치와 내외관의 소소한 디테일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신(神)은 디테일에 있다. 이 말을 남긴 근대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 로에도 때로는 온몸에서 페로몬을 뿜어내는 헐벗은 머슬퀸보다 우디향 베이스 노트로 코끝을 간질이는 요조숙녀가 더 매혹적임을 알았을지 모른다. 508 GT의 가치는 바로 기존 508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약간의 요염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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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잘 통하는 자동차가 있다.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 스티어링 휠에서 느껴지는 답력과 반응은 운전자와 차만 아는 은밀한 교감이다. 508 GT는 ‘밟아만 주세요. 돌려만 주세요. 다 받아낼 수 있어요’라고 속삭이듯 거의 모든 조작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조작량에 대한 거동변화도 무척 리니어했다. 프랑스차 특유의 탁 트인 시야에 수족을 다루듯 리니어한 주행감까지 갖춘 508 GT를 타고 있으면 마치 선구안 좋은 준족이 타석에 오른 듯 자신만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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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 세단과 플래그십 세단 사이에 있는 508을 베이스로, 일상성과 스포츠성 사이 어딘가를 겨냥해 만든 스포티 세단. 508 GT는 지독한 욕심의 산물일 수도, 지루한 우유부단의 결정체일 수도 있다. 우아한 세단에 달린 GT 배지는 타기 전에는 막연한 설렘을 불러왔다. 그 바탕엔 WRC, WTCC, 파이크스피크 인터내셔널 힐 클라임(PPIHC) 등에서 다져온 푸조의 화려한 모터스포츠 경력이 있다. 508 GT엔 톡 쏘는 첫맛 대신 타면 탈수록 배어나는 오묘한 풍미가 있다. 어쩌면 508은 본래부터 기자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잠재력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출력이 올라 그 잠재력이 드러나니 비로소 쌍둥이 형제 508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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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래, 안진욱 기자
사진
임근재
제공
자동차생활(www.car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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