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해치 대결, 포드 포커스 RS VS 폭스바겐 골프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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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유럽의 스페인 발렌시아. 햇살은 눈부시고 멋진 커브가 널려있는 꼬부랑 산길은 조용했다. 비교시승은 으레 이렇게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아무튼 이번 시승은 그 자리에서 끝장이 날 뻔했다. 거기 나타난 영국 번호판의 폭스바겐 골프 R을 보고 포드 관계자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신형 포드 포커스 RS의 키를 내놓으라고 으르렁댔다. 난감했다.
아무튼 지금까지 수많은 비교시승이 그랬듯 어느 금요일 근무를 끝낸 저녁, 히스로 부근의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골프 R을 넘겨받아 두 나라를 횡단할 준비를 마쳤을 때 이미 비교시승은 시작됐다. 이번 테스트는 신형 포커스 RS에 호된 시련을 안길 가능성이 있었다. 골프는 전반적으로 뛰어나다지만, RS는 특별히 친숙하여 절대로 경멸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 <오토카> 최근호를 거슬러 올라가며 뒤적여보라. 포드가 얼마나 눈부신 존재인가를 알 수 있다. 한데 골프 R은 결코 2류일 수 없다. 이번 비교시승의 결과는 뻔하다는 데 판돈을 걸 사람도 적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시승을 시작하기 전 나는 그 축에 끼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스페인 발렌시아에 도착했을 때는 더더욱 그럴 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2일에 걸쳐 2,100km를 달렸고, 그중 98%는 직진구간을 130km로 정속주행했다. 그럼에도 몰고 달린 차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따금 나타나는 로터리와 진출입로는 골프 R의 코너링 성능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다른 구간에서는 언제나 골프가 무엇을 잘하느냐를 알려줬다. 골프 뒤에 어떤 글자가 따르든 마찬가지였다.
스포티 모델을 둘러싸고 폭스바겐은 포드만한 기질을 발휘하지 않았다. 포드의 ST 모델과 제일 가까운 폭스바겐이 GTI다. ST는 상당한 수준의 역동적 성능을 갖춰 일상용으로 쓸모가 있었다. 한데 포드의 RS는 그와는 달랐다. 일상적인 쓰임새를 예리한 드라이빙 성능으로 대체했다. 포드는 승차감보다는 핸들링에 역점을 뒀다.
주행거리가 늘어나면서 두 라이벌의 성격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다, 골프 R은 승차감을 약간 희생하고 보디컨트롤과 예리한 핸들링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달리기에 대단히 좋은 차였다. 폭스바겐의 드라이브 모드를 빠짐없이 활용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포드와 마찬가지로 골프는 댐퍼 강도, 엔진 노트와 스티어링 반응 등을 조절하는 세팅을 갖췄다. 포드는 RS에 '컴포트'(Comfort) 모드를 빼버려 간단히 문제를 처리했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컴포트를 받아들였다. 골프 SE 기준에 따르면 약간 과장됐다고 할 수 있으나 R은 235/35 R19 브리지스톤을 신고 편안히 달렸다.
영국의 거친 도로에서 약간 거칠었으나 영불해협을 건너 프랑스 도로에 들어서자 그런 기미는 말끔히 사라졌다. 아무튼 언제나 침착하고 평탄하게 달렸다. 조향감각도 상쾌했다. 록투록의 1.9회전이 빨랐다. 어쨌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독일차처럼 결코 신경질적이 아니었다. 독일에서 고속 직선코스 개발작업을 한 덕분이었다.
인체공학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좋았다. 운전위치는 빈틈이 없었고, 스티어링은 바싹 당길 수 있었다. 페달은 위치가 이상적이었으며, 비중이 완벽했다. 듀얼클러치 자동박스가 아니라 6단 수동박스갸 달려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반가웠다. 포커스 RS는 6단 수동뿐이었다. 따라서 두 라이벌의 스펙은 훨씬 가까웠다. 표면적으로 기계적 성능의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4기통 터보 엔진, 수동박스와 네바퀴굴림 정도가 전부였다. 골프가 옵션인 19인치를 받아들이면 심지어 타이어 사이즈도 같다.
두 라이벌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것은 눈에 띄지 않는 기계 부분이었다. 포커스 엔진은 배기량이 3분의 1L 더 크다. 배기량이 2.0L이 아니라 더 큰 2.3L이고, 출력은 296마력 아닌 345마력으로 올랐다. 0→시속 100km 가속에서 골프를 눌렀다(4.7초 vs 5.3초). 하지만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골프 R을 몰아본 적이 없었고, 출력이 더 늘어나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느낌을 주느냐가 중요했다.
여기서 두 라이벌의 네바퀴굴림 격차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술문제를 좀더 전문적으로 접근해보자. 폭스바겐의 4모션 시스템은 클러치를 통해 출력을 뒷바퀴로 돌릴 수 있다. 이론적으로 구동력의 100%를 뒤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진창에서는 골프가 모든 토크를 뒤로 보내야 한다고 결정할 때까지는 앞바퀴에 힘을 실어야 했다. 대체로 골프는 앞바퀴에 힘을 실었고, 필요할 때만 뒤로 보냈다. 그럴 때 일련의 전자 시스템이 작동했고, 안정성 제어 시스템을 통해 파워를 돌렸다. 안쪽 바퀴에 제동을 걸고 뒤쪽 바깥바퀴에 힘을 실었다. 좋은 시스템이었다. 코너에 들어가면서 뒷바퀴에 토크를 보내 코너탈출에 미리 대비했다. 나는 포드를 몰고 똑같은 코너를 잇따라 공략하면서 골프의 기억을 되살렸다.
포드는 무기고에 들어있는 더 많은 기계 시스템을 기약했다. 폭스바겐과는 달리 포드는 언제나 뒷액슬에 70%를 돌렸고, 거기서 동작이 시작됐다. 뒷디퍼렌셜 양쪽에 전자조절 클러치팩이 있었고, 뒷액슬에 보낼 파워를 전자장비가 결정했다. 총출력의 70%를 뒷바퀴에 보냈고, 그 100%를 어느 한쪽에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힘을 양쪽에 고루 나눠줬다. 하지만 앞액슬보다는 뒷바퀴가 중요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골프는 그 반대였다. 그게 문제가 될까? 그럴 수 있다.
아울러 두 대 모두 조절형 댐퍼를 달았다. 나는 폭스바겐을 몰고 발렌시아로 가면서 가장 부드러운 드라이빙 모드를 골랐다. 한데 포커스 RS가 굉음을 울리며 시야에 들어올 때 폭스바겐의 모드를 강화하기로 했다. 나는 외모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포커스 RS가 더 공격적 인상을 줬고, 윙과 스커트 등 장비가 더 많았다. 보디컬러도 힘을 실었다.
포드의 실내는 외부와는 달리 흥분할 게 많지 않았다. 레카로 스포츠시트가 있었으나 우리 시승자들에게는 너무 높았다. 폭스바겐보다 스티어링과의 거리가 더 짧아 몸을 더 세울 수밖에 없었다. 한데 페달간격과 기어변속은 여전히 좋았다. 폭스바겐과 포드는 다같이 이런 일을 잘해내는 메이커였다. 인체공학과 품질감각에서 포커스 실내가 골프를 앞섰다. 크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그보다 중요한 것은 주행성능이었다.
나는 포커스로 갈아탔다. 댐퍼를 부드럽게 조절했는데도 침착하면서도 민첩한 거동이 당장 드러났다. 바닥이 껄끄러운 폭스바겐과는 달리 승차감은 놀랍도록 잘 조절됐다. 스티어링 록투록은 2.0회전이었으나 골프보다 직진반응이 더 빨랐다. 게다가 신경질 기미가 전혀 없었다. 두 라이벌의 랙은 모두 자연스럽게 유연했다. 한데 포드가 좀더 감칠맛이 있었고, 반응이 정확했다.
그리고 포커스가 빨랐다. 솔직히 둘다 충분히 빨랐다. 하지만 파워가 앞선 포드가 저회전대부터 한층 긴박했다. 엔진에 아날로그적 반응이 있었다. 가속때의 배기관은 타닥쾅쾅거렸다(드라이브 모드를 올리자 이른바 반사회적으로 요란했다).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폭스바겐의 사운드는 대시보드 밑바닥 가까이 있는 사운드 심포저에서 주로 나왔다. 약간 합성음으로 들렸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었다. 반면 포드는 한층 본능적이고 정직했다. 한데 그들의 어느 것도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사운드도, 스티어링도, 파워도, 운전위치도 실내도 아니었다. 포커스 RS와 골프 R의 큰 차이는 다른 데 있었다. 동급에 그치지 않고 위아래 몇 개 차급에 걸쳐 볼 때 포드의 코너링은 압권이었다.
골프는 능란하게 조향하고 코너를 파고 들었다. 약간 기울고 그립이 힘찼다. 파워를 적절히 배분해 언더스티어를 막고 민첩하게 몰아붙였다. 시스템은 말을 잘 들었다. 토크는 뒤로 흘렀고, 골프는 섀시 중립의 걸작이었다. 언더스티어와 오버스티어를 약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비 오는 서킷에서는 그 폭이 훨씬 컸다). 하지만 언제나 정확하게 조절됐고 감칠맛이 있었다. 스티어링 감각은 상당한 수준이었고, 섀시는 손과 발에 잘 반응했다. 그래서 골프는 유럽신차평가에서 별 4.5개를 받았다. 창피를 당하려고 이곳 스페인까지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한데 포커스 RS의 코너링은 한 차원 높았다. 코너에서 주저없이 돌아갔고, 발끝이 더 가볍고 조절력이 앞섰다. 게다가 코너링 스피드가 파격적이었다. 그보다 빨리 코너를 돌려면 닛산 GT-R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RS 드라이브트레인은 코너를 돌아갈 때 엉덩이가 도와주기를 바랐다. 코너에 들어갈 때 포커스는 미드십을 중심으로 포드식 고속부양에 들어갔다. 한데 일단 액셀을 다시 밟을 때가 더 재미있었다. 심지어 노멀(Normal) 모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섀시감각은 분명히 후방편향적이었다. 모드를 타고 오를 때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네바퀴굴림의 안정감이 컸다. 가령 BMW M235i와는 전혀 달랐다.
심지어 부드러운 댐퍼 세팅에서도 보디컨트롤이 탁월했다. 그러나 댐퍼를 강화했을 때 더욱 그랬다. 깜빡이 손잡이끝을 누르면 어떤 드라이브 모드에서도 그 반응은 실로 눈부셨다. RS의 코너링은 내가 기억하는 어떤 차와도 달랐다. 르노 메간 트로피의 경쾌한 견인력도, BMW의 순수한 뒷바퀴굴림 감각도 아니었다. 골프 R보다 조절력과 능력이 앞섰다. 아마도 닛산 GT-R이 가변 후방편향에서 가장 비슷했다. 대체로 닛산 GT-R이 코너정점의 통과속도가 더 빠를 듯했다. 한데 승차감은 약간 거칠고 불편했다. 게다가 포커스가 3만파운드(약 5천30만원)나 싸다.
포커스의 나머지 패키지는 보다 쉽게 간추릴 수 있었다. 엔진: 발랄, 경쾌. 변속: 매끈. 브레이크: 강력. 그러나 시승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인상은 '실제로 그랬을까?'하는 의문이었다. 메간 트로피의 경우처림 핸들링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했다. 거기서 나온 강렬한 인상이 골프 R을 누른 포커스 RS에게 1승을 안겼다. 이번 시승을 판정하는 바탕이 있다면 그것은 코너링에서 나왔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집으로 돌아오려고 다시 골프 R에 올랐을 때 찜찜했나? 아니 더 기뻤다. 실은 골프 R을 가졌을 때의 이점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 비교시승 결과에 비춰 몰고 달리고 싶은 차는 포커스 RS였다. 실로 경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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