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반의 화룡점정, 쌍용 티볼리 에어 시승기
컨텐츠 정보
- 3,777 조회
- 목록
본문
지난 해 한국 시장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세그먼트는 단연 소형 SUV다. 재작년 연간 3만 대 정도에 불과했던 소형 SUV 시장은 지난 해 경쟁력 있는 신차의 출시와 기존 모델들의 선전에 힘입어 연간 8만 대 이상의 볼륨 마켓으로 급성장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작년 한국에서 무려 4만 5,201대를 판매해 돌풍을 몰고 온 쌍용 티볼리다. 국산과 수입 모델을 모두 포함해 티볼리는 소형 SUV 시장에서 과반의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소형 SUV계의 절대 강자로 떠올랐다. 한국 뿐 아니라 유럽 등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당연지사다. 뛰어난 상품성과 우수한 만듦새는 쌍용차의 건재한 개발 능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소형 SUV에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함을. 전장이 4.1~4.2m에 불과한 이 세그먼트에서는 SUV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공간 활용도에 큰 기대를 걸 수 없다. 애초에 20~30대 운전자의 생애 첫 차, 혹은 퍼스널 카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극도로 제한적인 공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선택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좀 더 편안한 뒷좌석과 좀 더 넓은 트렁크가 있다면야 더욱 좋지 않겠는가?
자, 그런 운전자들을 위해 쌍용이 티볼리 에어를 선보였다. 티볼리의 전장을 245mm 늘려 트렁크를 넓히고, 2열 시트에 리클라이닝을 더한 가지치기 모델이다. 혁신적인 대격변은 없다. 하지만 한 뼘 반 정도 전장을 늘리면서 티볼리 에어는 무궁무진한 활용성과 가능성을 지니게 됐다.
티볼리 에어는 출시 전부터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았다. 요컨대 휠베이스를 늘리지 않고 트렁크 공간만 늘리는 롱바디 모델이 의미가 있느냐, 밸런스는 무너지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가지치기는 심심찮게 있어왔다. 대표적으로는 1세대 기아 스포티지에도 휠베이스가 동일한 왜건 모델이 존재했다. 컴팩트한 차를 원하는 수요와 실용성을 더하고자 하는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는 가지치기가 문제될 것은 없다.
쌍용차 관계자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티볼리 개발 당시부터 롱바디 모델이 함께 구상됐고, 급조된 모델이 아닌 만큼 티볼리 에어의 차체 밸런스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실제 주행에서도 그러한 아쉬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결과물은 제법 멋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어딘가 미완성인 것 같았던 티볼리의 전면부에 메탈릭 투톤 범퍼를 적용하면서 훨씬 무게감 있으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마무리됐다고 평가하고 싶다. 기존 티볼리가 바디 컬러를 범퍼까지 연결하면서 세련되고 도시적인 느낌을 강조했다면, 티볼리 에어는 XLV 컨셉트카에서 유래한 투톤 디자인으로 보다 여행과 레저에 걸맞는 스포티한 이미지를 풍긴다.
뒷모습 역시 기존 티볼리와 비슷한 실루엣이지만, 테일램프에 신규 디자인을 적용하고 디테일 요소들을 재배치해 무게감을 더했다. 티볼리가 악동같다면, 티볼리 에어는 좀 더 성숙한 청년이랄까.
압권은 역시 옆모습이다. 상당히 절묘한 비례감이 인상적이다. A·B·D-필러는 블랙 톤으로 처리하고, 바디 컬러가 이어져 올라오는 두툼한 C-필러는 상단을 검게 처리해 플로팅 루프 스타일을 완성한다. 시승차는 블랙 루프가 적용됐지만, 화이트 루프가 적용된 경우에는 플로팅 루프 감각이 확실히 느껴질 터이다.
사이드 뷰에서 약간 뒷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린 비례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를 해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랜드로버의 디스커버리를 연상시킨다. 티볼리의 스타일리쉬한 외관을 십분 살리면서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한, 그야말로 SUV의 본질에 가까운 디자인이다.
그나마 미련이 남는 것은 네이밍 정도다. "에어(Air)"라는 서브 네임은 롱바디 모델과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더군다나 후변의 에어 엠블렘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다. 차라리 코란도 투리스모와 마찬가지로, 티볼리의 투어링 버전이라는 의미에서 "티볼리 투리스모"로 이름지었다면 어땠을까? 서브 브랜드 정책을 일관되게 이끌어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한편 호평을 받았던 실내는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된다. 네이처 본 3-모션 컨셉트에 따라 날개 형태로 배치된 센터페시아는 시인성과 조작성에 집중했다는 것이 쌍용차의 설명이다. 이전 티볼리 첫 시승 때 다소 불만이었던 버튼 조작감 역시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그립감이 좋은 D-컷 스티어링 휠과 컬러를 변경할 수 있는 클러스터 디자인 역시 그대로다.
다만 시트 포지션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만이 생긴다. 시트 형상 자체는 훌륭하고 비교적 낮은 위치까지 이동이 가능하지만, 스티어링 휠의 각도가 너무 누워있고 텔레스코픽을 지원하지 않아 편안한 운전 자세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등받이에 요추받침이 없는 점도 장거리 운전에서는 다소 불편했다. 티볼리는 단거리 도심 주행이 많았지만, 티볼리 에어는 장거리 여행에도 많이 활용될 수 있는 차다. 장시간 운전의 안락함을 확보한다면 더 좋겠다. 아날로그 다이얼 식으로 작동하지만 시동을 껐다 켜면 디지털 식으로 함께 꺼져버리는 열선 및 통풍 시트 역시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공간에 관한 한은 흠을 잡기 어렵다. 도어 트림과 글러브 박스, 센터 콘솔 박스 등 다양한 수납공간은 기본이고, 2열 공간은 동급 최고 수준으로 확보됐다. 특히 전장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2열 헤드룸도 확보되고, 2열 시트가 32.5도까지 리클라이닝 기능을 지원하면서 장시간 탑승해도 불편함이 없다. 이 역시 기존 티볼리(27.5도)보다 늘어난 것이다.
많은 경쟁 모델들이 꼿꼿이 서 있거나 어정쩡한 각도로 누워 있는 등받이 때문에 2열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면, 이제는 성인 여럿이 타도 부담이 없는 것이다. 1~2명을 위한 차로만 여겨졌던 소형 SUV의 영역을 패밀리 카까지 넓힐 수 있다는 의미다.
트렁크를 열어보면 그런 기대에 더욱 부응한다. 기본 트렁크 적재공간은 720L에 달하는데, 2열 시트를 폴딩하면 1,448L까지 늘어난다. 마찬가지로 기존 티볼리(423L)보다 공간이 크게 늘어나 윗급 모델들과 경쟁한다. 꼿꼿이 서 있는 테일게이트와 공간을 나눠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2단 조절식 러기지 보드는 실제 공간 활용도를 더욱 끌어올린다. 깊이가 더 깊기 때문에 부피가 큰 유모차나 여행용 캐리어같은 짐도 부담없이 들어간다.
파워트레인은 1.6L e-XDi 디젤 엔진이 전 모델 기본이고 가솔린은 제외됐다. 짐을 더 많이 싣는 만큼 견인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최고출력은 115마력, 최대토크는 30.6kg.m이고 최대토크는 실용영역인 1,500~2,500rpm에서 발휘된다. 변속기는 6속 수동과 아이신제 6속 토크컨버터 자동변속기가 제공된다.
티볼리와 마찬가지로 자동변속기 모델에는 4륜구동도 제공된다. 4륜구동 모델은 리어 서스펜션이 토션빔에서 멀티링크로 변경되는 것도 특징. 시승차는 자동변속기와 4륜구동이 모두 적용된 사양이다.
티볼리와 파워트레인은 동일하기 때문에 특별한 감흥은 없다. 소음과 진동이 다소 심한 편인 것도 비슷하다. 다만 전장이 더 늘어나고 무게가 더해진 덕일까? 진동으로 인해 차가 가볍게 떨리는 느낌이 덜하고 진동이 지긋이 눌러졌다고 표현하고 싶다.
공차중량이 약 50kg정도 늘어났는데, 가속력에서 크게 더뎌지는 느낌은 받기 어렵다. 여전히 넉넉한 토크감과 예리한 아이신 변속기의 반응이 인상적이다.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이 차체를 끌고 가기에는 충분하다. 코너링 역시 탄탄한 서스펜션 덕에 기존의 티볼리와 마찬가지로 경쾌하다.
다만 리어 오버행이 극단적으로 짧은 티볼리가 해치백처럼 날카로운 코너링 솜씨를 자랑하는 것에 비하자면 티볼리 에어의 거동은 왜건의 그것과 비슷하다. 뒤가 가벼운 느낌은 받기 어렵다. 거꾸로 뒷쪽이 무거워지면서 허둥대지도 않는다. 늘어난 무게만큼 하체 설계를 보강한 덕이다.
오프로드 명가 쌍용답게 전자제어식 4륜구동 시스템도 빛을 발한다. 평상 시에는 전륜에 100%의 구동력을 전달하지만 노면 상황에 따라 전·후륜 구동력을 적극적으로 배분해 휠스핀이 발생하는 경우를 막는다. 또 노면 컨디션이 안 좋은 경우 락 모드(Lock Mode)를 작동시키면 저속에서 구동력을 고정 배분해 험지 주파력을 높인다. 티볼리 에어는 트렁크가 넓은 만큼 무거운 짐을 싣는 경우도 많은데, 4륜구동 사양을 선택하면 항시 차량의 트랙션을 확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겠다.
공인연비는 자동변속기 4WD 기준 복합 13.3km/L, 도심 11.9km/L, 고속 15.5km/L이다. 시승 간에는 서울과 통영을 오가는 장거리 주행이 주를 이뤘는데, 시내와 고속주행 모두 공인연비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연비를 향상시키고 아이들링 소음을 줄일 수 있는 오토 스톱 앤 스타트 시스템이 추가된다면 더 좋은 연비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티볼리와 티볼리 에어의 관계는 이를테면 해치백과 왜건의 관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컴팩트한 해치백을 기본으로 하되 실용성을 극대화한 왜건은 분명 매력적이다. 한국 시장에서 왜건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티볼리 에어는 거기에 SUV의 캐릭터까지 뚜렷이 합쳐졌으니 흠을 잡기 어렵다.
티볼리를 시승할 때는 "매력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티볼리 에어는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티볼리의 적당한 사이즈와 풍요로운 편의사양, 충실한 기본기는 그대로 가져가되 바뀐 것은 오직 한 뼘 반-245mm-의 길이 뿐이다. 하지만 그 덕에 티볼리 에어는 첫 차로도, 패밀리 카로도 손색 없는 다재다능함을 갖추게 됐다. 그야말로 화룡점정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투싼이나 스포티지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의 다운사이징 라인업을, 하위 세그먼트인 티볼리를 업사이징하는 역발상으로 상대하는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짐을 많이 싣거나 레저를 즐긴다면 실질적 공간 활용도가 뛰어난 티볼리 에어가 확고한 경쟁력을 갖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격도 경쟁자들보다 저렴하다.
무엇보다 티볼리 에어는 티볼리 브랜드의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쩌면 다음에는 티볼리 컨버터블이나 티볼리 쿠페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동시에 SUV 명가 쌍용의 우수한 잠재력을 여실히 증명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제한된 여건 하에서 기획과 개발 역량을 효과적으로 집중하는 솜씨는 차후 출시될 렉스턴 후속이나 코란도C 후속 모델에 대한 기대도 키워준다.
그렇다면 쌍용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SUV 전문 브랜드로 우뚝 설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Yes"라고 답할 수 있다.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