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기 | 재규어 XE 20t 시승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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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XE는 탁월한 승차감 및 안정성이 가장 큰 장점이다. 주행 환경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안정성을 잃지 않는다. 서스펜션은 부드러운 쪽에 가깝지만 핸들링 성능도 좋다. 좋은 하드웨어를 보조하는 전자장비의 제어가 아주 훌륭하다. 2리터 터보 엔진은 저속 반응이 날카롭고 특히 소리가 좋다. 실내 공간은 동급 중에서 가장 좁은 편에 속한다. XE는 개성은 약간 죽이는 대신 보편적인 매력을 강화한 재규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재규어랜드로버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 랜드로버와의 차이가 크긴 하지만 재규어에도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부는 중이다. 많은 고급 브랜드들처럼 재규어도 볼륨을 높이는 게 목표이다. 일반적으로 전체 볼륨 확대는 엔트리 급의 출시를 통해 이뤄지는데, 그 첨병이 XE라고 할 수 있다. XE는 잠깐 대가 끊겼던 재규어의 엔트리 모델이다. X-타입의 후속이긴 하지만 출시될 때의 환경이나 패키징이 전혀 다르다.
재규어는 90년대 후반에 새 엔트리 모델을 기획한다. 몇 년의 개발을 거쳐 출시된 모델이 X-타입이고, 2001년에 런칭됐다. 재규어는 X-타입을 연 10만대씩 파는 게 게 목표였다. X-타입의 초기 반응은 좋았지만 판매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2002년에는 X-타입만 7만 3,000대 이상이 팔렸는데, 이는 재규어 전체 판매의 50%가 넘었다. 그렇다고 해도 경쟁 차종으로 잡았던 3시리즈, C 클래스의 판매에는 크게 못 미쳤다.
당시의 X-타입은 기존의 재규어와는 사뭇 다른 차만들기였다. 우선 플랫폼은 몬데오와 공유해 기본적으로 앞바퀴굴림이었다. 그래서 AWD 버전은 리어 액슬에 토크를 더 많이 배분하는 쪽으로 세팅하기도 했다. 뒷바퀴굴림 전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살리는 의도였다. 당시 X-타입은 가장 작은 재규어였고, 재규어의 첫 왜건 버전이 있기도 했다. X-타입은 판매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2009년에 단종됐다. 그리고 한동안 맥이 끊겼다가 작년에 새 엔트리 모델 XE가 선보였다.
경영권이 바뀌면서 신차의 개발도 크게 달라졌다. 예전과 달리 투자가 잘 이뤄지고 있다. 우선 XE는 새로 개발된 알루미늄 플랫폼에서 나오는 첫 모델이다. 동급에서 알루미늄 모노코크 섀시를 쓰는 건 XE가 처음이다. 새 모듈러 플랫폼이기 때문에 XE 이외의 다른 차도 계속 개발된다. 이미 양산이 확정된 F-페이스 이외의 새 소형 SUV도 이 플랫폼을 공유할 것으로 알려졌다.
XE는 재규어랜드로버의 전환점이 되는 의미도 있다. XE에 새 알루미늄 플랫폼과 인제니움 4기통 모듈러 엔진을 적용했고, 솔리풀 공장도 업그레이드 했다. 업그레이드 된 솔리풀 공장의 연간 생산은 18만대로 늘어나며, 이중 절반은 XE가 차지할 전망이다. 재규어는 2018년까지 연간 판매를 23만대 이상 늘릴 예정인데, 이는 현재의 3배에 가깝다. 작년 재규어 판매는 8만대 정도로 랜드로버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XE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외관 디자인은 재규어의 새 패밀리룩이다. 작은 XJ를 보는 듯하다. 부드러운 선과 직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전면에는 재규어의 아이덴티티가 잘 표현돼 있다. XE의 디자인은 스포티하기보다는 우아한 쪽에 가깝다. 그리고 에어로다이내믹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XE의 공기저항계수는 0.26으로 역대 재규어의 양산차 중 가장 낮다.
XE의 차체 사이즈는 4,670×1,850×1,415mm, 휠베이스는 2,835mm이다. 경쟁 모델로 삼고 있는 3시리즈(4,624×1,811×1,429mm, 2,810mm), C 클래스(4,700×1,810×1,445mm, 2,840mm)와 비교 시 폭은 가장 넓고 전고는 가장 낮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XE는 동급에서는 처음으로 알루미늄을 대폭 채용했다. 모노코크 섀시의 75%는 알루미늄으로 제작했고, 대시보드 내 크로스빔은 마그네슘을 적용했다. 참고로 C 클래스는 섀시의 48%가 알루미늄이다. 용접을 사용하는 아우디와 달리 재규어를 비롯한 영국 회사는 리벳과 접착으로 알루미늄을 결합한다. XE에 쓰이는 알루미늄은 노벨리스가 제공했고, 제작 공정도 크게 줄었다. 접착 공정의 경우 XJ는 210초가 걸렸지만 XE는 78초에 불과하다.
측면에서 본 XE는 앞뒤 균형이 잘 잡혔다. 재규어는 개발 과정에서 앞뒤 무게 배분을 맞추는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4기통 가솔린의 경우 앞뒤 무게 배분이 정확히 50:50이다. V6 수퍼차저는 53:47로 앞이 약간 더 무겁다. 앞 모습에 비해 리어의 디자인은 다소 심심한 감이 있고, 2.0t 프리스티지 기준으로 알로이 휠도 밋밋하다. 반면 R 스포트는 알로이 휠 디자인이 꽤 괜찮다.
실내는 XJ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다. 감싸는 것 같은 대시보드 디자인은 안락한 느낌을 주고, 다른 브랜드와도 확연히 차별화가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실내 디자인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XE의 실내 자체가 큰 편이 아니기 때문에 더 두드러질 수도 있다. XE는 유별나게 센터 터널이 높고 넓다. 이 때문에 공간에서는 손해를 본다.
공간이라는 면에서 보면 제대로 활용을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예를 센터 터널이 넓고, 기어 레버를 다이얼식으로 처리했으면 주변에 수납 공간이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기어 레버 앞에 있는 공간은 물건을 수납하기에는 부족하다. 너무 얕다. 기어 레버 뒤의 버튼도 작은 감이 있다. 센터 콘솔 박스의 공간이나 글로브 박스는 평균적이다.
센터페시아에는 8인치 모니터가 마련돼 있고, 좌우에는 자주 쓰는 버튼이 배치된다. XE는 대시보드의 높이가 낮아서 전방 시야가 좋다. 이 때문에 모니터의 위치도 낮아지는 문제가 생긴다. 모니터와 송풍구의 위치를 바꾸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내장재는 재규어에 기대하는 만큼의 질을 만족시킨다. 반면 시야가 잘 닿지 않는 부분의 내장재는 아무래도 조금 떨어진다. 센터페시아 및 기어 레버 주변의 피아노 블랙은 질감이 아주 좋다. 흔히 쓰이는 트림이지만 일반 브랜드와는 이런 면에서도 차별화가 된다.
시트의 포지션도 약간은 높은 편이다. 시트의 가죽이나 몸을 잡아주는 기능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머리 위 공간은 약간 부족하게 느껴진다. XE의 전고는 동급 모델 중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날렵한 디자인을 위해서일 것이다. 따라서 머리 위 공간에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시트의 상하 조절 폭을 더 늘리는 게 좋아 보인다.
모니터에는 대부분의 기능들이 통합돼 있다. 그러다보니 센터페시아의 디자인을 최대한 심플하게 만들 수 있었다. 열선 시트 버튼도 모니터 안에 있고, 따라서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 사용할 때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모니터에는 의외로 많은 메뉴 및 기능들이 내장돼 있다.
실내의 가장 약점이라면 계기판을 들 수 있다. 재규어 또는 XE 실내의 다른 부분과 동 떨어졌다고 생각될 정도로 계기판이 예쁘지가 않다. 레드라인의 경우 눈금이 빨간 색이 아니라 숫자가 빨간 색이다. 특이한 부분이다. 가운데 액정을 통해서는 다양한 정보 확인 및 설정을 할 수 있다. 한글이 지원되지 않는 게 흠이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계기판도 빨간색으로 바뀐다.
스티어링 휠은 손에 잘 잡힌다. 림을 감싼 가죽은 보기에는 미끄럽지만 실제로는 손과의 밀착력이 좋다. 양쪽 스포크에는 오디오와 크루즈 컨트롤 같은 다양한 버튼들이 마련된다. 그리고 변속 패들도 손에 잘 잡히는 디자인이다. XE는 선루프에 ‘재규어’라고 크게 써있는 이채롭다. 보통은 유리 납품 회사의 이름만 작게 붙는데, XE의 선루프에는 재규어가 크게 붙는다. XE의 선루프 및 유리는 필킹턴이라는 영국 회사가 공급했다.
2열 공간은 동급에서 가장 작아 보인다. 무릎 공간은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라서 보기보다는 약간 여유가 있다. 반면 머리 공간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성인이 탑승한다고 가정할 경우 머리 위 공간에서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머리 위 공간은 날렵한 루프 라인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해야겠다. 트렁크 용량은 455리터로, C 클래스보다 조금 작다.
파워트레인은 2리터 가솔린 터보와 8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다. 최고 출력은 200마력, 최대 토크는 28.6kg.m이고, 토크 밴드는 1,750~4,000 rpm 사이로 넓다. 2리터 가솔린 터보로 200마력이면 요즘 기준으로는 기본 출력이다. 240마력 버전은 차후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디젤도 두 가지가 있지만 180마력 버전이 우선적으로 출시됐다.
비가 워낙 많이 오는 날이어서 정숙성에 대한 평가를 정확히 내리기는 어렵다. 1시간 정도 주행해 본 결과 적어도 시끄러운 차는 아니다. 이곳저곳에 방음을 잘 했다. 예를 들어 방음이 덜 된 차는 물웅덩이를 지날 때 차체를 때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XE는 한 단계 걸러서 들어온다. 차체는 물론 유리까지도 좋은 정숙성에 일조한다. 공회전에서는 운전대로 전달되는 진동이 약간 있다.
XE의 2리터 터보 가솔린 엔진은 반응이 아주 좋다. 가속 페달을 약하게 밟아도 민감하게 움직인다. 시내 운전 시 좋고 보편적인 운전자에게도 환영받을 만한 세팅이다. 더 좋은 건 소리다. 최근에 경험한 2리터 가솔린 엔진 중 가장 소리가 좋다. XE의 2리터 엔진은 나직하면서도 듣기 좋은 소리를 낸다. 어느 정도의 음량은 허용하지만 음색 자체가 듣기 좋다. 고회전으로 돌릴 때의 반응이나 회전 질감은 저속 때의 느낌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종합적으로는 엔진의 성능이나 정숙성, 질감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변속기와의 궁합도 좋다. 저중속 구간에는 엔진과 변속기가 잘 붙고, 이를 통해 주행 질감을 높이고 있다. 일반 주행 모드에서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지만 드라이브 모드에서는 반응이 좀 더 날카롭게 변한다. 기어 레버 뒤에 있는 주행 모드 변환 버튼은 작은 게 흠이다. 그리고 다른 모드로 변환할 때 반대편으로 다시 넘어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XE의 ZF 8단 자동변속기는 상위 재규어 또는 BMW에 쓰이는 ZF 8단과는 성능 차이가 좀 있다. 패들 시프트로 기어를 내릴 때 반응이 약간 늦고, 회전수 보상 기능도 없다. 스포츠 세단을 표방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인 변속기의 세팅을 기대했다. XE가 엔트리 모델이긴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주행 성능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안정감과 승차감이다. XE는 승차감이 정말 좋다. 비가 엄청나게 오는 상황이나 와인딩 로드 모두 최고 수준의 승차감을 보여줬다. XE의 승차감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리고 저속과 고속 모두 일정한 승차감을 보인다.
주행 안정성도 마찬가지다. 높은 속도에서도 굳건하게 노면에 붙어 있고 와인딩 로드에서는 지능적으로 차체를 지지한다. XE의 전자장비는 그야말로 운전의 재미를 보조하는 세팅이다. 코너를 돌아갈 때 슬립이 감지되면 순간적으로 개입하고 빠져버린다. 의식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안전을 위해 짧게 개입하고 이후에는 다시 운전자에게 맡긴다. 이 과정이나 작동감이 매우 세련됐다. 안정성이나 승차감은 동급에서 가장 좋다고 평가받는 C 클래스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거기다 스티어링도 대단히 정확하다. XE는 재규어의 첫 EPS인데 작동감이나 성능 모두 최고 수준으로 세팅됐다. 스티어링은 작동이 정확하고 누구라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세팅이다. 깊은 물웅덩이를 지나갈 때 스티어링이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스티어링이 영향을 받아서 주행이 불안정해지기 십상이다. EPS는 ZF가 공급했는데, 재규어가 최적의 스티어링을 위해 소프트웨어의 세팅에 많은 공을 들였다.
XE의 안정감은 잘 만든 섀시와 서스펜션에서 찾을 수 있다. 서스펜션의 경우 앞뒤를 더블 위시본, 인테그랄 링크로 구성했다. XE는 알루미늄 섀시임에도 불구하고 경쟁 차종 대비 크게 가볍지는 않다. 그 이유로 복잡한 서스펜션을 꼽고 있다. 일반적으로 프런트 서스펜션은 구조가 간단한 맥퍼슨 스트럿을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XE는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더블 위시본을 프런트에 채용했다. 이론적으로 서스펜션이 복잡할수록 핸들링과 승차감이 좋다고 한다. 이론은 이론일 뿐인 경우가 많지만 XE에는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동급에서 더블 위시본과 인테그랄 링크는 유니크한 조합이다.
XE는 재규어의 엔트리 모델이지만 승차감이나 주행 안정성은 위급에 못지않다. 동급에서 가장 좋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재규어 특유의 개성은 약간 양보하는 대신 보편적인 차만들기를 가미했다. 이제는 소수의 사람만이 택하는 차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재규어도 XE를 통해 볼륨 프리미엄 브랜드로 가는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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