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포기할 수 없는 픽업트럭의 로망, 지프 글래디에이터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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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픽업트럭 시장이 점차 다채로워지고 있다. 국산 대표주자인 쌍용차 렉스턴 스포츠(칸)를 필두로 쉐보레 콜로라도, 포드 레인저 등이 포진하고 있으며 풀사이즈 픽업 GMC 시에라까지 참전해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넓혔다.

이들의 공통점은 SUV를 기반으로 제작됐다는 것이다. 승차감이나 편의성 측면에서 우수할지언정 남다른 개성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글래디에이터는 다르다. 태생부터 오프로드 황제 랭글러를 기반으로 한다. 거친 미국의 대자연이 느껴지는 오프로드 지향형 픽업트럭을 시승했다.

시승차를 보자마자 화사한 색상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이 벨로시티 에디션에만 적용된 컬러로, 국내에는 단 30대만 판매하는 한정판이다. 지프 측은 "한여름 해변의 강렬함과 청량함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자연에 어울리는 오프로더지만, 칙칙한 도심을 밝혀주는 산뜻한 컬러가 무척 매력적이다.

디자인은 독창적이고 개성 강한 랭글러와 판박이다. 7슬롯 그릴과 원형 헤드램프, 그리고 툭 튀어나온 범퍼 및 휀더 등 얼핏 봐선 랭글러와 구분이 어렵다. 하지만 측면부터는 완전히 다른 차다. 트렁크 부분을 과감히 잘라내고 커다란 적재함을 달았다. 전체 크기는 랭글러(4880mm)보다 훨씬 길어져 5600mm에 달한다.

길이만 본다면 풀사이즈 픽업트럭에 근접한다. 무게 밸런스를 위해서인지 뒷바퀴는 한참 뒤로 밀려났다. 랭글러도 꽤나 긴 휠베이스(3010mm)를 갖췄는데 글래디에이터는 이보다 훨씬 긴 3490mm에 달한다. 덕분에 일반 자동차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비율을 갖췄다.

껑충한 높이에 타는 것도 쉽지 않다. 사이드스텝이 없기 때문인데, 극한의 오프로드 상황에는 하부에 위치한 발판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래도 일상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사이드스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는 랭글러와 동일하다. 눈 감고 탄다면 랭글러와 구분이 어렵겠다. 인테리어는 '지프라서' 용서되는 부분이 많다. 거칠고 투박한 플라스틱 소재가 많이 쓰였지만, 야외에 노출이 잦은 오프로더 특성상 청소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부각된다. 그러면서도 스티어링 휠과 변속기, 주차 브레이크 레버 등 손이 자주 닿는 부위는 질 좋은 가죽으로 감쌌다.

이밖에도 실내 곳곳에 카모플라주 형태의 미끄럼 방지 패드를 더한 점이나 지프를 형상화한 아이콘을 배치한 점이 인상적이다. 브랜드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점을 느낄 수 있다.

글래디에이터는 루프와 도어, 앞 유리 등을 탈착할 수 있다. 경쟁 모델들과 차별되는 부분이다. 부품들을 덜어낸 채 뼈대만 남은 형태로 달리면 자연을 더욱 가까이서 즐길 수 있다. 다만 도어를 떼낸 채로 일반 도로를 달리면 법에 저촉될 뿐만 아니라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다. 별도 노출형 도어를 달거나 통제된 곳에서만 사용해야만 한다. 

탈착이 된다는 특성 때문인지 도어에는 그물망 외에 별도 수납공간이 없다. 산만한 덩치에도 1열 컵홀더는 고작 2개뿐이다. 전반적으로도 수납공간이 좋지는 못하다. 센터 콘솔과 글로브 박스 외에 사물을 둘 만한 곳이 없다. 전면의 8.4인치 모니터는 유행이 한참 지난 4:3 비율이어서 아쉽지만, 글래디에이터 분위기와는 찰떡이다.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것 역시 다행인 부분이다. 

2열 뒤에는 트렁크 대신 화물용 베드가 자리한다. 적재함 용량은 1005리터, 최대 적재 중량은 300kg이다. 적재함은 특수 소재로 코팅해 부식이나 손상 등의 염려를 줄였다. 화물트럭의 생 철판과 비교해 한층 고급스러워 보이는 효과도 있다. 적재함 우측에는 LED 적재함 조명과 230V 파워 아웃렛을 갖췄다.

기본 구성인 3단 접이식 베드 커버는 쓸모가 많다. 접고 펼치기가 쉬워 활용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궂은 날씨로부터 화물을 보호하는 데도 용이하다. 무엇보다 간이 텐트처럼 쓸 수도 있겠다. 적재함에서 피크닉을 즐기다가, 취침할 때는 덮개를 덮는 식의 전략을 구사한다면 간단한 짐만으로도 차박이 가능하겠다. 시승 당시 날씨가 무덥고 습해 도전하진 못했지만, 언젠가 픽업트럭 차박 시도를 꿈꾼다.

차량을 둘러본 뒤 본격적인 주행을 시작했다. 파워트레인은 3.6리터 6기통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조합이다. 최고출력 284마력, 최대토크 36kgf·m를 발휘한다. 공차중량은 동급 경쟁 모델과 비교해 꽤나 무거운 편이지만(2305kg) 커다란 덩치를 느긋하게 밀어내기에 부족함 없는 출력이다.

일반 도로에서는 좋은 승차감을 기대해선 안 된다. 껑충한 키와 바디 온 프레임 차량의 특성 때문에 차량 상·하부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하다. 머드 터레인 타이어로 인한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속도를 높일수록 '웅웅웅' 하는 소음이 실내로 크게 들어온다. 그나마 긴 휠베이스와 오프로드 지향적 서스펜션으로 인해 요철이나 방지턱은 아주 부드럽게 넘는 점이 위안거리다.

온로드에서 느껴지는 불편은 노면 상태가 나빠질수록 놀라움으로 바뀐다. 조금의 틈만 확보된다면, 그곳에 물이 흐르건 돌이 쌓여 있건 거침없이 지나갈 수 있다. 끔찍한 노면이 펼쳐져 있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락-트랙 풀타임 4WD, 트루-락 프론트 리어 전자식 디퍼렌셜 잠금장치, 전자식 프론트 스웨이바 분리장치, 오프로드 플러스 모드 등 이름도 어려운 오프로드용 장비들을 잔뜩 탑재해 운전자를 안심시킨다.

이런 괴물 같은 스펙을 가진 자동차로 도심만 달리는 건 실례다. 경기도 근교 오프로드 코스를 찾았다. 잔잔한 자갈밭은 제집 드나들듯 편하게 달린다. 이 정도는 지프에겐 포장도로나 다름없다.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더 깊은 골짜기로 향했다. 꽤나 경사진 도로와 함께 큰 돌부리들이 중간중간 매복해있다. 승용차를 탔다면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 할 길이다.

그러나 글래디에이터는 다르다. 트랜스퍼 케이스 레버를 조작해 사륜구동을 체결했다. 평소에는 뒷바퀴만 굴리다가 험로를 만나면 네 바퀴를 동시에 사용한다. 온로드에서 불만이었던 오프로드 타이어가 구세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거침없이 돌부리를 넘는다. 두터운 트레드에 타이어가 찢어질 염려도 없다.

걷기조차 힘든 길을 우직하게 나아간다. 자연과 가까워지는 게 쉽지만은 않다. 임도를 덮은 나뭇가지들에 자잘한 대미지가 우려되지만, 글래디에이터에게는 영광의 상처다. 진정한 오프로더라면 반짝거리는 차체보단 흙먼지와 너뭇가지로 뒤덮인 모습이 더 어울린다.

한적한 자연 속에서 천정을 걷어내봤다. 별다른 도구 없이도 30초면 앞 천정을 떼어낼 수 있다. 모든 과정은 손으로 직접 해야 하지만, 따로 설명서를 참고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주 쉽게 탈착이 가능하다. 운전석과 동승석 천정이 각각 분리되는데, 전용 가방에 넣어 적재함에 보관하면 된다. 2열 천정도 분리는 가능하지만 도구가 필요해 시도하지 않았다.

단순히 유리만 열리는 선루프와 달리, 뼈대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열리는 만큼 개방감이 상당하다. 창문을 닫아놓은 상태라면 바람이 들이치는 양도 생각보다 적다. 날씨만 좋다면 상시로 열고 다녀도 무방하겠다. 다만 급격한 날씨 변화에 대응하기는 어렵다. 랭글러 오버랜드에 적용된 자동 루프 시스템인 '파워탑'이 적용되길 기대해 본다.

오프로드 체험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갈 차례다. 이때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반갑다. 앞차와 거리를 자동으로 조절하며 장거리 주행의 피로감을 줄여준다. 차로유지 보조 기능(LFA)이 빠진 건 아쉽다. 고속주행 연비는 리터당 11km를 기록했다. 시내로 들어서니 리터당 평균 8km대까지 떨어졌다.

역시나 '깍두기 타이어'의 소음은 적응하기 어렵다. 일반 도로 주행이 잦다면 온로드 타이어로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 소음과 승차감, 연비 측면에서 한결 나은 성능이 기대된다.

지프 글래디에이터는 개성 넘치는 디자인과 강력한 험로 주파 능력을 갖춘 정통 오프로더다. 거친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긴다면 이보다 만족스러운 자동차가 있을까. 물론, 단순히 예뻐서 구매하는 패션카로도 전혀 손색없겠다.

다만, 별 다른 개선 없이 가격만 오른 것은 불만이다. 첫 출시 당시 699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무려 1000만원이나 오른 7990만원에 판매중이다. 이마저도 8510만원에서 한 차례 낮춘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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