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괄목상대하라, 현대 아반떼 디젤 DCT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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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현대차가 프리미엄 서브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런칭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향후 G80으로 이름이 바뀔 제네시스를 앞세워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의 문을 차근차근 두드려 왔던 현대가 10년이 넘는 준비 끝에 독립 브랜드를 선보이는 것은, 이제 글로벌 주자들과 붙어볼 만 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겠다.
그런데 프리미엄 모델만큼 완성차 업체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모델은, 역설적으로 판매의 주축을 담당하는 컴팩트 모델들이다. 한정된 원가와 규격 내에서 설계되고 생산되는 B, C 세그먼트 모델들은 사치스러운 소재와 첨단 사양을 걷어내고 차의 기본기를 확인하기 가장 좋은 체급이다.
현대에게 있어서는 유럽시장을 위한 i20과 i30, 그리고 엑센트와 아반떼가 바로 그 위치에 해당한다. 특히 세계 자동차 판매량에서 2~3위를 마크하고 있는 아반떼는 이제 명실상부한 월드 카의 반열에 올라섰다. 지난 해 아반떼는 93만 대가 판매되며 토요타 코롤라와 포드 포커스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연간 100만 대 가량 팔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다. 세계 어디서나 소비자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무난함과 누구나 만족시킬 수 있는 완성도를 골고루 갖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코드명 AD로 불리는 새로운 아반떼가 내건 캐치 프레이즈, "슈퍼 노멀(Super Normal)"은 그 만큼 대단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준중형 세단 중 하나일 만큼 평범하고 무난하지만, 그 완성도는 "슈퍼"에 가깝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발주자"에 불과했던 현대차가 이제는 전 세계를 상대로 자신감을 내비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출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08년 제네시스 등장 이후 출시된 YF 쏘나타, 아반떼 MD 등은 확실히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까운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전까지 트렌드를 좇기에 바빴던 디자인 역시 플루이딕 스컬프처라는 독자적 디자인 언어를 선보이면서 현대의 색을 뚜렷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소위 "곤충룩"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플루이딕 스컬프처와 헥사고날 그릴은 파격 그 자체였다. 당시의 평가가 어떠했든, 이제 와서는 현대의 패밀리 룩이 정립되고 경쟁사들의 디자인에 영향을 줄 정도로 진보된 것이었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겠다.
그리고 2013년 제네시스의 세대 교체와 함께 현대의 다른 모델들도 또 한번 진화했다. 플루이딕 스컬프처는 보다 정제된 2.0으로 버전 업 됐고, 아반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익스테리어는 이전 세대의 핵심적인 디자인 큐는 계승하면서 다소 호불호가 갈리던 스타일을 정제해 말 그대로 노멀하게 손봤다. 한 모델의 헤리티지를 쌓는다는 관점에서 이전 세대와의 디자인적 연결고리가 이어지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전 세대와 휠베이스는 동일하게 유지했지만 전장·전폭·전고는 각각 20mm, 25mm, 5mm 커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비례도 조정돼 다소 전진해 있던 A필러를 뒤로 밀고 부리부리한 눈매를 단정하게 고쳐 보다 정갈한 세단의 비례를 갖췄다. 뒷모습 역시 곡선을 걸러 보다 차분하게 마무리됐다. 이전 세대에 비해 도로 위에서의 존재감은 조금 약해졌지만, 젊은 층의 퍼스트 카로도, 중장년층의 세컨드 카로도 무난해진 것은 장점이 되겠다. 처음에는 조금 심심해 보이지만, 보면 볼 수록 세련된 비례감이 멋스럽다.
시승차는 최근 추가된 스마트 패키지를 제외한 풀 옵션 사양으로, 헤드라이트 내장형 LED 주간주행등(DRL)을 갖췄다. 헤드라이트 형상때문에 재규어와 비슷한 스타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보면 재규어보다는 2세대 제네시스의 스타일과 닮았다. 현대차 브랜드의 큰 틀의 패밀리 룩이 정립되는 느낌이다. 범퍼 양 옆에는 공기저항을 개선하는 에어 커튼을 위한 가니쉬가 부착되고, 하단에 원형 안개등이 들어간다. 북미형에 들어가는 세로형 LED 안개등도 제법 멋지지만 국내 사양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은 실내에도 스며들었다. 앞서 제네시스, 쏘나타, 아슬란 등에 적용된 육각형꼴의 비대칭 센터페시아는 아반떼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다만 차급이 차급이다보니 버튼이 더 큼직큼직한 정도가 다를 뿐이다. 1열 3단 조절식 열선 및 통풍 시트, 열선 스티어링 휠 등 현대차 특유의 풍요로운 편의사양은 기본이고, 디젤 모델은 ISG(아이들 스톱&고) 기능도 탑재된다.
실내는 멋지지만 섭섭함도 있다. 개인의 취향차일 수 있지만, 플루이딕 스컬프처 1.0 시기의 현대차 인테리어는 엠블렘을 가려도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현대의 색이 뚜렷했다. 2.0 디자인 언어가 전반적으로 정제된 무난함에 몰두하고 있지만, 되려 현대만의 색은 조금 흐려진 것 같다. 외관도 그렇지만 실내는 유독 그렇다. 예전처럼 좀 더 저돌적인 스타일을 도입했어도 나쁘지 않았으리라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어쨌거나 이것은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신형 아반떼의 실내 품질은 놀라운 수준이다. 상급 모델과 견줘도 손색없는 버튼 조작감과 매끈한 마감 품질, 두툼하고 손에 착 감기는 스티어링 휠, 충분히 낮으면서 몸을 잘 지지해 주는 시트 디자인 등은 오히려 동급 수입모델보다 우위라고 여겨지는 부분도 적지 않다. 지난 해 출시된 형, 쏘나타와 비교해도 또 한 걸음 진보한 것이 느껴진다. ISG 작동 버튼과 주차센서 버튼 등 시프트 노브 너머에 있는 버튼들은 잘 보이지 않아 조작이 불편한 정도가 옥에 티다.
반면 뒷좌석은 다소 실망스럽다. 유선형 루프 라인으로 인한 헤드 룸 손실을 막기 위해 2열 등받이가 상당히 누워 있는데, 오히려 장시간 뒷좌석에 탄다면 꼬리뼈가 아프지 않을까 걱정이다. 또 이런 독특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신장 180cm의 성인 남성 기준으로는 헤드룸도 많이 부족하다. 물론 준중형 세단인 만큼 뒷좌석에 성인이 탈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편해도 될 것은 아니다.
신형 아반떼에 탑재되고 있는 파워트레인은 현재 총 4종이다. 국내에는 1.6 GDi와 1.6 디젤+DCT가 주력이며, 북미의 주력 모델인 2.0 가솔린이 최근에 추가됐다. 그 밖에도 북미의 엔트리 모델인 1.4 터보가 있지만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았다. 향후 고성능 버전인 1.6 T-GDi의 출시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사항은 미정이다.
시승차의 1.6L U2 디젤 엔진은 유로6 규제에 맞추면서 출력과 토크가 대폭 상승했다. 최고출력은 136마력, 최대토크는 30.6kg.m에 달해 출력이 낮아진 1.6 가솔린을 성능 면에서 역전했다. 힘 좋고 연비 좋은 디젤을 차세대 아반떼의 주력으로 밀겠다는 의지가 다분하다. 디젤 게이트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 디젤은 맹위를 떨치고 있고, 실속 있는 준중형 세그먼트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이기도 하다. 여기에 앞서 엑센트와 i30 디젤 등에 탑재된 7속 DCT를 조합한다.
이전에 시승한 차들과 마찬가지로 아반떼 역시 DCT는 스포티함보다 매끄러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변속은 차분하지만 정확하고, 침착하지만 빠르다. 변속 충격은 전통적인 토크컨버터와 견줘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에 저회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디젤 엔진의 토크가 맞물려 상당히 경쾌한 가속을 이룬다. 기존의 현대 디젤 차량들이 소음이 큰 편인데 아반떼에서는 많이 절제됐다. 진동 뿐 아니라 소음까지도 대폭 줄어든 점이 인상적이다.
다운시프트 시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기민하게 작동한다. 이전에 시승한 쏘나타나 엑센트는 변속충격을 줄이기 위함인지 다운시프트 속도가 느린 편이었고, 때문에 흔히 DCT에 기대하는 스포티함은 다소 빈약했다. 반면 아반떼의 다운시프팅은 폭스바겐 DSG에 견줄 정도로 민첩하다. 차종에 따라 최적화된 세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아반떼의 스포츠 잠재력은 기대 이상이다. 특히 하체 세팅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너무 단단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탄탄한 세팅은 흡사 독일차와 같은 수준이다. 요철을 넘어설 때면 충격을 한 번에 깔끔하게 흡수하고, 잔진동은 능숙하게 걸러낸다. 다소 무르게 느껴졌던 쏘나타와 비교해봐도 훨씬 스포티하다. 당연히 고속 영역의 안정성 또한 월등히 좋아졌다.
코너에서는 어떨까? 시승차가 앞이 무거운 디젤 모델임을 감안하더라도 코너링 실력은 발군이다. 헤비 프론트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예리하게 코너를 파고들고, 한계 상황까지 파고드는 순간에도 서스펜션은 끝까지 자세를 잃지 않는다. 한 세대의 진화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지금까지 타 본 현대차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세팅이다. 밸런스가 좋은 가솔린 엔진과 수동 변속기, 썸머 타이어를 갖춘다면 순정 그대로 스포츠 드라이빙에 부족함이 없겠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변화는 브레이크 페달 답력이다. 그간 현대차의 브레이크 페달은 초반에 답력이 몰려있었다. 때문에 초기 제동력은 뛰어나지만 그 뒤로 소위 "밀린다"고 느껴질 정도로 답력이 고르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또 비선형적인 답력 전개는 일상 주행에서의 울컥임을 심화하고 스포츠 주행 시에도 고른 브레이킹이 어려워 급격한 하중이동을 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형 아반떼는 브레이크 답력이 지극히 리니어하게 전개된다. 이것은 제네시스나 아슬란, 쏘나타같은 상급 모델에도 없었던 세련된 세팅이다. 처음에는 조금 밀린다고 느낄 수 있지만 페달을 밟는 깊이에 따라 노면에 가라앉듯 정차한다. 이런 사소한 만듦새의 차이가 결국 명품을 만드는 것이다. 주행 감각에 관한 한 아반떼는 흠 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보여줬다.
공인연비는 디젤 모델, 17인치 휠 장착 모델의 경우 복합 17.7km/L을 기록한다. 현대차에 따르면 최근 국토부의 연비 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에 기존 연비 기준대로면 더 좋은 연비를 낸다고 한다. 실연비는 공인연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고속 연비는 25km/L까지 어렵지 않게 기록했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눈을 비비고 상대를 다시 본다는 뜻인데, 학식이나 재주가 부쩍 진보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예전보다 소박해진 외모, 큰 변화 없는 파워트레인 등 아반떼는 오히려 개성 넘치는 스타일에서 현대가 말하는 대로 보다 평범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때문에 처음에는 과연 아반떼에게 "괄목상대"를 써도 좋을 지, 다소 회의적이었다.
아반떼는 여전히 평범하다. 아니, 더 평범해졌다. 하지만 나쁜 의미의 평범함이 아니다. 이제는 글로벌 시장의 어떤 라이벌과 견줘도 부족함이 없는, 아니 표준에 가까운 경지에 올라섰다. 평범함의 진화라 해도 좋겠다. 비록 한 세대의 교체일 뿐이지만 깜짝 놀랄 만큼 진일보하고서는 스스로 "평범함"을 자처하니, 세그먼트의 표준을 상향평준화 시키겠다는 당돌함이 묻어난다.
현대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소비자들에게 소홀했던 그간의 행보가 자초한 일이다. 해외의 경쟁자들은 현대의 성장을 견제하고 있다. 안팎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은, 단지 꾸준히 실망시키지 않는 차를 만드는 것 뿐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진정성은 결국 좋은 차를 만들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꾸준히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머지 않아 소비자들도 현대차를 "괄목상대"하게 되지 않을까? 결국 해답은 현대차가 쥐고 있고, 아반떼의 놀라운 완성도는 그 실마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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