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 내세운 준대형 세단, 기아 K7 3.3 G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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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준대형 세단 시장의 중심에는 현대 그랜저가 있다. 이후 기아 K7과 쉐보레 임팔라, 르노삼성 SM7 등이 경쟁한다. 오래된 차이긴 하지만 그랜저의 인기는 말할 것이 없다. 그리고 임팔라는 차별화된 주행 완성도로, SM7은 LPe 모델을 통해 틈새시장을 공략 중이다.
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K7의 위치가 다소 모호해졌다. 그래서일까? 기아차는 2세대 K7 출시와 더불어 고급화를 강조했다. 경쟁 모델로 렉서스 ES를 꼽았을 정도다. 세대가 변한 만큼 어느 정도로 완성도를 높였을까?
디자인은 1세대를 기초로 보다 중후한 느낌을 전달하도록 했다. 날카로웠던 헤드램프가 다듬어졌고 호랑이 코 그릴도 보다 가늘고 넓게 디자인했다. 특히 음각 형태의 그릴 디자인이 인상 깊다. 헤드램프에는 ‘Z’자 형상의 주간주행등도 추가된다. 기아차가 강조했던 부분이다.
측면부는 수평형 캐릭터 라인이 특징이다. 차체를 길어 보이게 하고 중후한 느낌을 전달하는데 이점이 있다. 기존 모델은 뒤로 갈수록 위를 향해 상승하는 곡선을 그렸다. 동적인 감각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차량의 성격과 지향하는 방향이 달라진 것일까?
후면부는 달라진 리어램프를 중심으로 한다. 그밖에 크게 달라진 부분은 눈에 띄지 않는다. K7의 디자인은 음각 그릴과 ‘Z’자 주간주행등이 변화의 중심에 서지만 이를 제외하면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않을 만큼 무난한 모습이다.
차체 길이는 기존 모델과 동일하지만 20mm 넓어지고 5mm 낮아졌다. 반면 휠베이스가 10mm 확장됐다. 경쟁 모델과 비교해 가장 넓고 낮으며 긴 휠베이스를 갖게 된 것이다.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한다. 가로 형태의 디자인을 통해 공간이 한층 넓어 보인다. 각 버튼들의 정리도 잘 했다. 특히 조작감을 개선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아날로그시계도 고급화된 세단의 멋을 강조한다.
사실상 손이 닿는 모든 부위의 촉감이 뛰어나다. 대시보드 역시 소프트하게 마무리되어 만족감을 높인다. 시트는 나파 가죽을 사용한 것에 머물지 않고 다이아몬드 스티칭 장식까지 적용시켰다. 옵션가 93만원의 프리미엄 옵션이 적용된 덕분이다. 도어 패널은 물론 필러 트림과 천장까지 고급 소재로 마감된다. 옵션가가 저렴하다 볼 수 없지만 만족감은 높은 편이다. 실내 분위기가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뒷좌석 공간도 넓다. 국산 브랜드의 장기 중 하나인 뒷좌석 공간 경쟁력이 부각되는 부분이다. 뒷좌석 센터 암레스트를 통해 사운드 시스템 조작도 가능하다. 반면 트렁크 공간은 안쪽까지 깊지만 좌우 돌출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아쉽다.
분명 K7은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워졌다. 1세대 모델이 그랜저와 차별화된 젊은 느낌을 부각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높은 연령대를 겨냥한 느낌이다. 또한 이런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행에서도 느낄 수 있다.
시동을 건다. 무엇보다 조용하다. V6 3.3리터 엔진은 그저 조용하고 잔잔하게 회전할 뿐이다. 아이들 상태 소음을 측정한 결과는 약 37dBA. 제네시스 EQ900이 약 36dBA였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수준급의 정숙성이다. 시속 80km로 주행하는 상황에서도 약 57.5dBA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중형급 세단들이 60dBA를 전후하기에 상당한 수준의 정숙성이다. 이중 차음 유리를 비롯해 N.V.H 부분에 대한 많은 신경을 썼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천천히 도심 주행을 해보면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을 전한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느낌도 좋다. 스티어링 휠에서 느껴지는 답력이나 각 페달류의 감각도 무난하다. 서스펜션은 승차감을 중심에 둔 부드러운 셋업이다. 하지만 요철구간을 지날 때 댐퍼가 강하게 버티는 모습을 보인다. 의외로 저속 구간서의 댐퍼 움직임이 제한적인 느낌이다. 최근 현대기아차의 일부 모델서 이런 느낌을 받곤 하는데 의외로 고속서는 물렁한 느낌을 보여 아쉬울 때가 많다. 저속과 고속 부분의 서스펜션 튜닝을 다시 했으면 좋겠다.
새롭게 개발한 8단 자동변속기도 부드러운 모습을 보인다. 대부분의 상황서 변속 충격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내구성을 검증받아야 하긴 하지만 첫인상은 나쁘지 않다.
본격적인 성능 테스트를 시작하며 가속페달을 깊게 밟는다. 넉넉한 배기량의 엔진이 탑재된 만큼 시원스러운 가속이 기본이다. 개선된 람다 II 3.3리터 엔진은 290마력과 35.0kg.m의 토크를 발휘한다. 참고로 초창기 모델이 3.5리터의 배기량으로 290마력과 34.5kg.m의 토크를 발휘했던 바 있다. 개선되기 이전 3.3리터 엔진과 비교하자면 4마력과 0.3kg.m의 토크가 감소한 사양이다. 하지만 체감으로 이를 느끼긴 쉽지 않다.
실제 K7의 구동 성능을 측정한 결과 3.3리터 엔진은 219마력과 29.1kg.m의 토크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1세대 K7의 3.5리터 엔진이 241마력과 30.3kg.m의 토크를 기록했으니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그래프는 STD 기준이었고 지금은 SAE를 기준 삼으니 실제 차이는 다소 줄겠지만 제조사 발표 수치 대비 25% 가까운 출력 하락이 발생했다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그래프로 봤을 때 균일하게 토크가 분포돼 있어 엔진 제어 부분의 완성도는 높아졌다고 볼 수 있게 된다.
가속페달을 밟는 양에 따라 엔진이 빠르게 반응해준다. 분명 리스펀스는 좋은 편에 속한다. 기존 제네시스 DH나 EQ900처럼 부족한 엔진 반응이 나오지 않아 좋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소요된 시간을 측정했다. 결과는 7.67초. 1세대 K7 3.5가 6.4초를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1초 이상 느려졌다. 측정장비를 통해 직접 무게를 확인한 결과 1,705kg을 나타냈다. 기존 모델이 1,637kg이었으니 68kg 가량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무게 증가를 탓할 필요는 없다. 그만큼 차체 강성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또, 견고한 차체는 한결 고급스러워진 승차감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무게를 감소시키면서 강성까지 향상시키는 최근 트렌드에 비추자면 아직 개발의 여지가 더 남았다고 볼 수 있다.
가속 페달을 밟아 시속 200km 이상을 오르내리는 것도 쉽다. 엔진 동력성능만큼은 나무랄 부분이 없을 듯하다. 굳이 지적하자면 V6 답지 않은 다소 거친 느낌의 회전 질감 정도랄까? 그보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휘청거리는 서스펜션이 불만이다. 저속에서는 부드러운 듯 단단하게 버티는 모습도 보였지만 고속 영역에 들어서니 차체를 붙잡지 못하며 허우적거린다. 한마디로 고속 주행 안정감은 수준 이하다.
시속 100km에서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를 측정한 결과 약 40.5m를 기록했다. 준대형 세단으로 적정한 수준이다. 하지만 1세대 모델처럼 제동 테스트 반복에 따른 시스템 피로도 누적이 적었다. 페달을 밟을 때 제동력이 발휘되는 시점도 일정하다. 기존 모델은 살짝만 밟아도 강한 제동력을 보였지만 페달을 더 밟는다고 제동력이 향상되지는 않았다.
고속주행 부분서 서스펜션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타협할 수준은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와인딩 로드에 들어서자 K7의 실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코너에 진입하자 많은 양의 언더스티어를 발생시킨다. 전륜구동 차량이라는 점을 생각해도 노골적으로 심한 수준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서스펜션이 차체를 붙들지 못한다. 그저 특정 영역서 괜찮은 승차감을 전달하는데 그치는 수준이다. 서스펜션이 차체를 잡아주지 못하니 코너에서 허둥거리기 바빴고 고속에서도 기대 이하의 성능을 보이게 된 것이다. 동급 임팔라는 이런 부분에 강하다. GM의 차 만들기 스타일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K7의 서스펜션은 그랜저의 것에도 미치지 못한다. 굳이 비교 대상을 찾자면 르노삼성 SM7 정도랄까?
초기 K7 3.5의 경우 댐핑 컨트롤 기능을 지원했었다. 당시 놀라운 성능을 보여줬지만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했다. 당시의 K7 소비자들이 그와 같은 승차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과거보다 준대형차 소비자들의 연령대 역시 낮아졌다.
하지만 현재 K7의 서스펜션은 단순한 부드러움만 추구했고 그 때문에 과거 모델보다 퇴보했다는 느낌이 짙다. 소비자들의 수준이 과거와 달리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맞추지 못하면 외면받고 도태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스티어링 시스템도 문제다. 여전히 불명확한 피드백을 운전자에게 전달할 뿐이다. 차급에 어울리지 않는 C 타입 시스템을 사용하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준대형급에 C 타입 채용은 전 세계 유일로 기록될 듯싶다. 물론 완성도가 매우 높은 C 타입이라면 문제없다. 하지만 현대 기아차의 MDPS 시스템은 R 타입서도 한계를 보인다. 하물며 C 타입은 어떨까? 수입차를 이용하다가 K7을 운전한다면 특유의 이질감이 크게 느낄 것이다.
8단 자동변속기는 부드러움을 추구한다는 점은 좋다. 하지만 단수가 늘었다는 점 이외에 만족스러운 부분을 체감하기 쉽지 않다. 속도도 더디다. 승차감 부분으로 본다면 장점이 많지만 최근 동향에 맞추자면 아직 튜닝의 여지가 많이 남았다.
연비는 시속 100~110km로 주행하는 환경서 약 18km/L를 나타냈다. 고배기량 엔진이 탑재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준급의 연비다. 시속 80km 속도의 정속 주행 환경서도 약 17.5km/L의 연비를 보였다. 낮은 속도에서 연비가 떨어진 이유는 기어비 때문인데 너무 낮은 RPM 사용이 만든 현상이다.
K7은 멋진 외모를 가진 준대형 세단이다. 하지만 성능만큼은 크게 퇴보한 느낌이다. 물론 이에 따라 각 모델의 성격이 더 명확해진 것 같다. 그랜저는 어느 정도 중립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면 임팔라는 성능을 중심으로 감각적인 부분, 특히 안정감이 뛰어나다. 르노삼성 SM7은 물렁한 과거 국산 세단의 주행감각을 보여주며 K7도 이 그룹에 몸을 실었다. 물론 SM7보다는 잘 팔릴 것이다.
하지만 K7의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고 그랜저의 구입을 추천하기는 어렵다. 서스펜션이 아쉬워도 K7을 구입하는 것이 낫다. K7이 좋다기 보다 그랜저가 노후화되었기 때문이다. 출고 후 3~4년 지난 그랜저의 차체는 이미 한계를 보인다. 아무래도 10년 전 기술로 만들어진 차체의 한계일 것이다. 반면 K7의 차체는 그보다는 견고하다. 물론 K5, 쏘나타, EQ900 등 최신 현대기아차보다 견고한 느낌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랜저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또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잘 담아냈다. 즉, 성능이라는 요소를 등지고 고급화된 세단이라는 것으로 접근한다면 어느 정도 득할 것이 많다는 얘기다.
지금도 그랜저의 판매량은 엄청나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실 그랜저의 경쟁력 저하는 최근 TV 광고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광고는 대부분 감성에 호소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랜저를 구입하고 싶다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차기 모델을 구입해야 한다.
기아차는 K7의 경쟁 모델이 렉서스 ES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급화된 소재 몇 개 넣고 프리미엄급 상품으로 거듭나기는 힘들다. 장비와 소재 몇 개로 승부가 가능하다면 곧 현대기아차도 중국차들에 따라잡히게 될 것이다.
1세대 K7은 특별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번 모델의 특성은 주요 고객층인 30~40대가 아닌 중장년층을 타겟으로 한 것 같다. 뭐랄까 소비자보다 나이 많은 기아차 임원의 입맛에 맞춘 느낌이랄까?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주행 성능까지 개선한 K7을 만나길 기대해 본다. 성능이란 꼭 빨리 달리기 위한 것만이 아닌 안전과도 연관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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