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편안한 패밀리 SUV, 혼다 CR-V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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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CR-V는 지난해 미국에서만 36만여대가 팔렸다. 픽업트럭을 제외하면 승용차 부문 2위 성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미국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은 CR-V의 상품성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CR-V가 6년만에 풀 체인지를 거치고 6세대로 돌아왔다. 북미에서 이렇게까지 많이 팔라는 무엇인지 신형 CR-V의 매력을 살폈다. 시승차는 가솔린 터보 엔진을 탑재한 모델로, 하반기에는 하이드리드가 추가될 예정이다. 

이전 CR-V는 큼직하고 둥글둥글한 디자인으로 마치 대형견같은 귀여움이 있었다. 반면 이번에 나온 신형 모델은 남성미를 더했다. 그릴과 범퍼 등에 직선 요소가 더해지면서 강인한 모습이다. 차량 곳곳을 치장했던 크롬 장식도 거의 사라졌다. 덕분에 더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이다. 

단순히 외모만 바뀐건 아니다. 한눈에 봐도 차체가 커졌음이 알 수 있다. 길이x너비x높이는 4705x1865x1680mm로, 경쟁 모델인 토요타 라브4(4600x1855x1690mm)와 현대차 투싼(4630x1865x1665mm)보다 더 크다. 기존보다 전장이 75mm 길어졌는데, 이 중 40mm를 휠베이스에 사용했다. 

인테리어는 최신 자동차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다. 디지털 요소로 무장한 경쟁자와 비교하면 다소 심심해 보일 수 있겠지만, 화려함보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좋을 수도 있겠다. 새로운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부터 한층 정돈된 센터페시아, 간결해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까지 사용성과 디자인을 적절히 잡았다.

디자인 포인트로 허니콤 스타일 에어컨 송풍구를 적용했다. 벌집모양 패턴이 가로로 길게 뻗어 실내가 넓어 보이는 효과를 준다. 독특한 디자인 덕에 안쪽으로 물건이 빠지는 일은 없겠다. 다만 휴대폰 거치대나 방향제 설치는 까다롭겠다.

커진 차체에 맞춰 실내 공간도 넓어졌다. 특히 2열 공간은 왠만한 중형 SUV 이상이다. 머리뿐 아니라 무릎과 다리 어디 하나 답답한 곳 없이 여유롭다. 널찍한 창문은 넉넉한 개방감을 주고, 평평한 바닥은 좌석 간 이동을 편리하게 해준다. 2열에서 아이를 케어하는 부모라면 좋아할 부분이다.

적당히 푹신한 시트는 장시간 앉아도 불편하지 않다. 리클라이닝을 지원하는데, 뒤로 눕혀 편안한 자세를 취하거나 바짝 세워 격벽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 트렁크는 기본 1113리터로, 2열 폴딩 시 2166리터까지 늘어난다. 가족 단위는 물론, 캠핑과 차박 등 짐이 많은 여행에도 무리없이 다닐 수 있겠다.

국내 시장에는 1.5리터 가솔린 터보 모델이 우선 출시됐다. 무단변속기(CVT)와 조합해 앞바퀴를 굴린다. 덩치에 비해 배기량이 작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주행하니 전혀 부족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최고출력 190마력, 최대토크 24.5kgf·m의 힘은 커다란 덩치를 움직이기 충분했다. 터보 엔진의 이점을 잘 활용한듯, 엔진회전수를 높이지 않아도 꾸준히 나아간다. 적어도 국내 교통법규 내에서는 충분히 경쾌하게 달릴 수 있는 수준이다.

스티어링이나 서스펜션의 응답성은 차분하다. 칼같은 반응을 추구하는 유럽과는 다른 감성이다. 요철이나 불규칙한 도로에도 편안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여유로움에 치중한 나머지, 한계 상황이 금방 찾아오는 편이다. 

아쉬운 운동성능은 우수한 연비로 보상받는다. 약 2시간을 시속 100km로 주행했는데, 17.8km/L란 숫자를 계기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도로 환경이 더 좋을 때는 리터당 19km를 넘기기도 했다. 막히는 시내에서도 두자릿수 아래로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운전자 주행보조 기능도 수준급이다.  일단 레인워치 기능이 무척이나 유용하다.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면 내비게이션 모니터에서 오른쪽 후방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사각지대를 확실하게 보여줘 차선 변경이 익숙치 않은 운전자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더라도 레버 끝단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간단하게 실행할 수도 있다.

또, 카메라와 레이더 성능을 개선해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차선 유지 기능을 강화했다. 앞차와 간격을 부드럽게 조절하면서 차로 중앙을 잘 잡는다. 막히는 길과 장거리 주행의 든든한 동반자다.

순정 내비게이션이 빠졌다. 대신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가 기본이다. 요즘 사람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만큼, 순정 내비게이션의 부재가 큰 단점은 아닐 듯하다. 무선 미러링 및 무선 충전까지 지원해 케이블 없이 깔끔한 실내를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안드로이드 사용자라면 원격 차량 관리 기능인 '혼다 커넥트'도 쓸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블루링크와 유사한 기능이다. 스마트폰으로 차량 원격제어·상태 관리·긴급 상황 알림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차량 구입 후 5년간 무료 서비스로 제공된다.

혼다 CR-V는 무난한 차다. 화려하진 않지만 특별히 모난곳도 없다. 간만에 마음이 편해지는 시승이었다. 자동차를 생활필수품으로 생각하는 북미 소비자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듯하다. 평범하면서도 부족함 없는 차를 원하는 소비자들이라면 고민할만한 가치가 있다. 신형 CR-V 가격은 419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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