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내지 않아서 더 매력적인 전기차 BMW i4 M50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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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는 2030년까지 전체 판매량의 절반을 전기차로 대체하겠는 목표로 다양한 전기차를 쏟아내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소비자들은 걱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BMW 오랫동안 내연기관으로 쌓은 유산이 허물어지는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i4를 시승하니 이런 염려들은 다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내연기관 BMW의 디자인과 주행 감각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전기차 시대에도 자동차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BMW의 고집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시승차는 8490만원짜리 i4 M50 모델이다. 외모부터 확 바꾸면서 새로움을 강조하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i4는 4시리즈 그란쿠페와 쏙 빼닮았다. 멀리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대형 키드니 그릴을 비롯해 BMW의 상징과도 같은 레이저 라이트가 자리 잡았다. 범퍼 양 끝에는 세로로 뚫린 구멍이 공기 흐름을 최적화해준다.
그란쿠페 특유의 유려한 지붕 라인은 강렬한 디자인의 휠과 만나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분명 멈춰있는데 달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바닥 부분은 차체와 다른 색으로 마감했는데, 잘록하게 들어간 듯한 착시 효과를 준다. 프레임리스 윈도우와 안으로 들어가 있는 도어 손잡이는 매끈함과 동시에 차분한 인상을 준다.
뒷모습 역시 4시리즈 그란쿠페와 쌍둥이다. 북두칠성을 닮아있는 테일램프를 비롯해 범퍼 좌우를 유광 검정으로 마감한 점도 같다. 번호판이 파란색이라는 점만 빼면 4시리즈와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실내는 기존 BMW 디자인에 iX의 인테리어를 잘 버무렸다. 12.3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좌우로 길쭉한 14.9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를 하나로 이어놓은 것은 iX와 같지만, 센터 콘솔에 큼지막한 기어 노브와 각종 버튼이 배치된 것은 기존 내연기관차와 같다. iX는 물리 버튼을 너무 많이 생략해 다소 심심했는데, i4 정도면 딱 적당한 듯하다.
두툼한 스티어링 휠을 잡으면 영락없는 BMW다. 전기차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아래쪽에 배터리가 깔려있지만, 눈높이는 세단과 비슷하다. 자세는 약간 다르다. 배터리 때문에 바닥은 높은데 엉덩이를 낮추다 보니 눈썰매 위에 앉은듯 무릎이 세워지고 허벅지가 들린다. 발 놓는 곳을 살짝 파놨지만 역부족이다. 허벅지 받침을 위로 끝까지 올려야 앉을 만한 자세가 나왔다.
2열 시트도 다소 높다. 운전석보다 계단 반 칸 정도 올라간 듯하다. 가뜩이나 루프라인이 낮은데, 배터리 때문에 엉덩이가 올라가니 키 183cm의 남성 입장에서는 머리공간이 조금 답답했다. 다행히 무릎 공간이 충분해 엉덩이를 살짝 앞으로 빼서 앉으면 된다.
센터 콘솔에 마련된 전원 버튼을 눌렀다. 동그란 모양은 여느 BMW와 같지만, 전기차임을 티내고 싶은듯 하늘색으로 물들였다. 웅장한 웰컴 사운드와 함께 i4가 잠에서 깨어났다.
i4 M50은 84kWh 배터리와 두 개의 전기모터가 결합됐다. 최고출력은 544마력, 최대토크는 81.1kgf·m다. 비슷한 크기의 M3 컴페티션보다도 약 30마력이 더 높다. 숫자에서 오는 압박감에 긴장하며 살며시 가속 페달을 밟아봤다.
i4는 예상보다 더 친절했다. 가속하는 느낌은 부드러웠고, 승차감 역시 500마력대 스포츠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했다. 막히는 도심에서 여러 차례 가다 서다를 반복해봐도 마찬가지다. 괜한 긴장을 했다는 생각에 머쓱했다. 기어 노브를 왼쪽으로 당기면 원 페달 모드가 활성화된다. 브레이크를 한 번도 밟지 않고 편안하게 일상 주행이 가능하다.
페달을 조금만 더 깊게 밟으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맹렬하게 달려 나가며 작곡가 한스 짐머가 만들었다는 가상 사운드가 휘몰아친다. 그리고 단 3.9초 만에 100km/h에 도달한다. iX가 코뿔소처럼 묵직하게 달려 나간다면, i4는 치타처럼 재빠르게 튀어 나가는 느낌이다.
바닥에 붙어서 달리는 느낌은 최고다. 배터리 덕분에 무게중심이 3시리즈 세단보다도 5cm가량 낮은 덕분이다. 여기에 BMW 특유의 5:5 무게 배분까지 더해지니 2.3톤에 달하는 묵직한 차체를 이리저리 몰아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차선 변경을 하든 진·출입로 램프를 달리든 한결같이 든든하다.
주행 모드는 에코 프로, 컴포트, 스포츠 등 세 가지다. 에코 프로 및 스포츠 모드에서는 모터 반응을 비롯해 스티어링 휠의 무게, 댐핑 강도를 각자 설정 가능하다. 각 모드별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기본 성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가속 페달을 조금만 거칠게 밟아도 온몸이 시트에 파묻힐 정도로 빠르게 나가는 것은 컴포트나 스포츠나 매한가지다. 그나마 에코 프로 모드는 주행거리 확보를 위해 공조 장치가 일부 제한돼 겨우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장거리 주행에 돌입해 약 300km를 쉼 없이 달렸다. GT카를 타는 것처럼 모든게 편했다. 안락한 승차감과 시원시원한 가속력, 여기에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로 유지 보조 기능까지 더해지니 어떤 상황에서도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었다. 특히, 차로 유지 보조 시스템은 정전식 터치 방식으로 작동한다.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는지 똑똑하게 감지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휠을 흔들어줄 필요도 없다. 500마력대 스포츠카 중 이만큼 편안한 차가 또 있을까.
시내와 고속도로를 3:7 비율로 약 500km를 주행한 결과 1kWh당 4.6km의 연비가 나왔다. 날이 추웠고, 고속 주행 비율이 더 높았고, 여러 차례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등 전기차에 취약한 조건을 모두 갖췄음에도 표시연비(4.1km/kWh)보다 약 10% 높았다. 1회 충전으로 약 390km를 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봄이 오고 주행 조건이 좋아진다면 실제 주행가능 거리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i4는 주행부터 주차까지 운전자를 도와준다. 비좁은 지하 주차장에서 후진 기어를 넣자 스스로 빈 칸을 파악하고 알려준다. 왼쪽에는 대형 SUV가, 오른쪽에는 기둥이 있는, 운전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임에도 용케 확인했다. 이후 과정은 차가 알아서 한다.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적절히 밟았다 떼며 속도만 조절해주면 된다.
주차가 끝나고 나서 찬찬히 이 차의 단점을 고민해봤다. 우선, 물리 버튼을 줄이면서 너무 많은 메뉴가 센터 디스플레이에 몰려있다. 당장 회생제동 단계를 바꾸려고 해도 디스플레이를 여러 차례 터치해 메뉴를 찾아야 한다. 메르세데스-벤츠나 현대기아차처럼 패들시프터를 이용해 조절했다면 훨씬 편했을 것 같다.
한스 짐머가 만든 가상 사운드를 스포츠 모드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아쉬움이다. 다른 모드에서는 소리가 너무 작게 들린다. 웅장한 사운드가 스포츠 모드에 어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유롭게 달리면서도 생동감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모드에서건 버튼만 누르면 가상 사운드가 켜지고 꺼지는 포르쉐 타이칸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5인승 전기차임에도 불룩 튀어나온 2열 센터 터널은 불만이다. 가운데에 앉으면 다리를 쩍 벌린 상태로 웅크려야 하는데, 시트마저 딱딱해 불편했다. 물론, 기존 내연기관을 개조해 만든 전기차고, 뒷좌석 가운데에 얼마나 자주 앉겠냐 싶기도 하지만 개선은 필요해 보인다.
BMW i4 M50은 전기차임에도 '특별함'만을 내세우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메르세데스-벤츠처럼 유별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현대기아차처럼 차별화되는 인테리어를 내세우지도 않은 BMW 그 자체다. 544마력이라는 힘을 마구잡이로 휘두르지 않고, 운전자의 보폭에 맞춰 적절히 사용하는 점도 좋다. 전기차 전환의 시대에 소외감을 느낀 소비자에게는 i4가 거부감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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