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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 엔진으로 돌아선 스포츠카들 : 포르쉐 911 카레라, 페라리 캘리포니아 T, 메르세데스-AMG GT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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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흡기 엔진이 최고라고 외쳐봤자 소용없다. 터보 엔진 바람은 이제 정통 스포츠카 클래스에도 불어닥쳤다. 포르쉐 911 카레라, 페라리 캘리포니아 T, 메르세데스 AMG GT S. 여기 자연흡기 시대의 끝을 알리는 세 대의 터보 스포츠카가 있다. 이들은 과연 스포츠카 팬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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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가 제시하는 완성형 터보 스포츠카. PORSCHE 911 CARR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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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라는 대명제를 달성하기 위해 스포츠카들이 눈물을 머금고 소배기량 과급 엔진으로 갈아타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반강제적인 상황이라는 것. 대배기량 멀티 실린더 엔진으로는 나날이 높아지는 배출가스 기준을 도저히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고객들에게는 보다 좋은 연비와 환경친화적인 성능이 제공되지만 그리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나 자연흡기 엔진의 매끄러운 회전과 리니어한 액셀 반응, 카랑카랑한 배기음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고대하던 식당에 갔는데 가장 좋아하던 요리가 메뉴에서 사라진 꼴이다. 다른 멋진 요리를 추천받았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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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속 편한 메이커가 바로 포르쉐가 아닐까? 포르쉐는 전통적으로 작은 차체에 소형 엔진으로 대배기량 라이벌들과 싸워왔던 만큼 누구보다도 터보차저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911 터보(930)를 시장에 처음 선보인 것이 1975년. 당시는 전세계를 통틀어 터보 시판차는 한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 후로 40년 넘게 터보 엔진에 매진해왔으니 기술적으로 성숙했을 뿐 아니라 시장의 반감 역시 상대적으로 덜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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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터보는 등장 이래 지금까지 최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911이 자연흡기 스포츠카로서 명성을 누려왔지만 최고 성능 모델은 언제나 911 터보였다. 따라서 911과 터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924와 944, 968 등 엔트리급 포르쉐 역시 고성능 터보 버전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터보를 얹지 않았던 양산형 포르쉐를 찾기가 더 힘들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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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연흡기에 대한 시장의 높은 선호도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신형 911 발표 당시 포르쉐의 조심스러운 행보나 4기통 터보 복스터에 굳이 4기통 레이싱카 718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도 그 때문. 아울러 터보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세심한 해결책에도 고심했다. 물론 여기에 역대 911 터보로 쌓아온 방대한 노하우가 유용하게 활용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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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911(991)은 지난해 말 마이너체인지를 통해 신형 엔진을 도입했다. 자연흡기에서 터보가 되었지만 이름은 여전히 911 카레라와 카레라 S. 911 터보가 버젓이 버티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다. 기존 3.4L와 3.8L였던 배기량을 3.0L까지 축소했지만, 터보차저 두 개를 달아 출력을 이전보다 20마력씩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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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시승한 911 카레라의 최고출력은 370마력, 최대토크는 45.9kg·m다. 그런데 최대토크 수치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토크밴드다. 강력해진 토크를 1,750~5,000rpm에 이르는 넓은 영역에서 발휘하기 때문에 회전수에 신경 써야 하는 자연흡기와 달리 두툼한 토크가 저회전부터 꾸준히 뿜어져 나온다. 911 터보의 가변 지오메트리 기술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작은 터빈으로 반응성을 높였고, PDK의 힘을 빌어 반응지연 문제를 철저하게 커버했다. 가뜩이나 빠른 PDK는 이제 드라이버가 액셀 페달에 살짝 발을 대는 것만으로도 자동으로 단수를 낮추어 엔진회전수를 3,000rpm 이상으로 유지한다. 가속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나 최대토크를 발휘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스포츠 주행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즉시 단수를 높여 rpm을 끌어내린다. 이것은 수동 모드는 물론 스포츠+ 모드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포르쉐가 얼마나 환경문제에 고심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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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차에는 새로 추가된 리어 스티어링은 달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래 좋던 코너링 성능이 나빠질 리는 없다. 치열한 랩타임 배틀에서는 약간 뒤지겠지만 오히려 엉덩이가 바깥쪽으로 살짝 빠져나가는 어색한 감각이 없어 ‘펀 투 드라이빙’이라는 스포츠카의 목적에 더 잘 어울린다. 오랜만에 찾은 산길을 너무도 수월하게 달려버리는 통에 김이 빠질 지경. 게다가 낮은 rpm부터 뿜어져 나오는 넉넉한 토크는 힐클라임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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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911은 단순히 엔진만 바꾼 것이 아니라 터보 엔진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적지 않은 부분을 새롭게 다듬었다. 엔진 커버의 흡기구 디자인은 클래식한 세로핀 디자인으로 바꾸었고 앞 범퍼 양쪽의 가변식 흡기구와 팝업식 리어 윙을 연동해 공력특성을 새로 다듬었다. 또한 리어 범퍼 양쪽에 인터쿨러 냉각용의 에어 아웃렛을 추가하는 등 터보용 맞춤옷으로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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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는 이미 1960년대 말부터 터보 엔진에 대한 연구에 착수하고 1972년에는 양산형 911 터보 개발을 시작한 선구자다. 1974년에는 911 경주형인 터보 카레라 RS 2.1을 서킷에 투입했는데, 이후 934, 935 등 911 파생형뿐 아니라 캔암 머신인 917/30 등 터보 레이싱카를 선보이며 퍼포먼스 세계에서 터보 엔진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 포르쉐 명성의 기반이 된 모터스포츠 활동은 터보차저를 떼어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 모든 기술이나 메커니즘은 종류에 따라 장단점이 상존하기 마련이며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부각해 하나의 작품으로 다듬어내는 것이 바로 메이커의 능력이다. 너도나도 터보를 달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포르쉐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터보 스포츠카의 완성형에 가까운 존재, 그것이 바로 91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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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 완벽한 그랜드 투어러를 위한 마지막 퍼즐. FERRARI CALIFORNIA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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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는 페라리가 아니라고들 했다. 페라리 명성에 먹칠을 하는 조종 성능이라는 혹평도 쏟아졌다. 새 고객들을 끌어들일 중요한 임무를 짊어진 모델인데, 출시 이후 1만 대나 판매된 페라리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데 이런 평가를 받는다면 큰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캘리포니아의 시작은 이렇게 고달팠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는 적당한 성능과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을 유인하는 그저 그런 모델이 아니었다. 오히려 페라리의 새로운 도전을 책임질 모델이었다. 페라리 최초의 직분사 엔진, 페라리 최초의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 페라리 최초의 멀티 링크 리어 서스펜션, 페라리 최초의 폴딩 하드톱, 페라리 최초의 8기통 FR 등 페라리 역사상 ‘페라리 최초’ 타이틀을 이렇게나 많이 단 모델은 이제껏 없었다. 따라서 캘리포니아의 부분변경 모델, 캘리포니아 T가 페라리 터보 엔진 시대의 선봉장 역할을 맡게 된 것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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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T가 페라리 터보화에 앞장서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캘리포니아는 퓨어 스포츠보다 조금 더 다루기 쉬운 그랜드 투어러(GT)다. 페라리를 처음 경험하는 ‘신입생’들을 위한 의도적인 설정이다. 때문에 빠른 반응 속도보다는 터보 엔진의 폭넓은 토크 밴드가 더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캘리포니아 T의 F154 BB 엔진은 488 GTB의 F154 CB 엔진으로 진화하는 척후병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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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F154 BB 엔진도 이미 한 차례 업그레이드를 거친 엔진이다.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GTS의 엔진이 같은 계열인 F154 A였던 것. 캘리포니아 T는 F154 트윈 터보 엔진을 가져오며 고성능, 고효율 이외에 낮은 무게중심이라는 장점을 얻었다. F154 계열은 드라이섬프로 엔진 장착 높이를 낮추고 엔진오일 공급을 안정시킨 엔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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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 엔진 파장에 가려져 있었지만, 캘리포니아 T는 엔진 이외의 부분도 거의 새차라고 할 만큼 큰 변화를 거쳤다. 우선 디자인부터가 크게 달라졌다. 이전에는 다소 어색한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F12의 동생, 즉 제대로 된 페라리 그랜드 투어러 계열에 걸맞은 외모로 탈바꿈했다. 매끈하고 볼륨감이 넘치는 앞모습과 가로로 놓인 트윈 듀얼 머플러 팁으로 안정감을 강조한 뒷모습 등 외모만큼은 전혀 다른 차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실제로 폴딩 루프를 제외한 모든 외부 패널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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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역시 새 스티어링 휠과 F12 스타일의 센터 콘솔, 그리고 스위치 스택 등으로 그랜드 투어러 계열임을 한층 더 강조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센터 송풍구 사이의 터보 퍼포먼스 엔지니어(TPE). 터보 엔진의 응답성과 효율을 한눈에 알려주는 일종의 다기능 디지털 미터로, 운전자가 새로운 심장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가를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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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시승은 조금 아쉬웠다. 안 그래도 주어진 시간이 짧았는데, 봄나들이를 떠나는 차들과 뒤엉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더 수준 높은 그랜드 투어러가 되었다는 점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전보다 더 유연하고, 더 정교해졌다. 기어비가 10% 줄어든 스티어링은 자연스럽고 매끈하게 반응했다. 마치 차 앞머리가 가벼워진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감쇠력을 12% 키운 서스펜션의 반응 역시 놀라웠다. 늘어난 엔진 토크를 감당하려면 댐퍼 감쇠력이나 스프링 계수를 키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감각상으로는 과격한 토크의 입력을 부드럽게 포용하기 위해 오히려 풍성하게 만든 것 같다. 충격 흡수력과 차체 안정성이 함께 향상되었다는 것은 서스펜션의 품질과 세팅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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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세팅은 대단히 사려 깊다. 캘리포니아 T의 엔진은 77kg·m의 엄청난 토크를 내지만, 그것을 몽땅 차체와 드라이버에게 퍼부으며 알아서 하라는 무책임한 스타일은 아니다. 가령 드라이버가 자연흡기 엔진처럼 고회전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1~5단에서는 저회전 영역에서의 토크를 일부러 줄이고 회전수에 비례해 토크가 증가하도록 세팅했다. 6단에서는 현대적 터보 엔진 특유의 평평한 토크 커브가 나타나지만 그 양은 여전히 제한되고 비로소 7단에 이르러서야 토크를 100% 발휘한다. 이는 그랜드 투어러 특유의 고속 크루징 상황에서 새 엔진의 토크가 주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라는 배려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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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캘리포니아 T는 터보랙만 고민하지 않았다. 주행 상황에 최적화된 엔진 특성을 제공하겠다는 고차원적인 고민까지 담았다. 고회전을 사용하는 스포츠 드라이빙에서는 자연흡기 엔진과 같은 민첩한 응답성을 살리고, 고속 크루징시에는 엄청난 저회전 토크를 이용하여 여유로운 주행과 연료 경제성을 꾀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T는 어느 한 구석도 잃어버리지 않은 완벽한 진화의 산물이다. 터보 엔진은 캘리포니아 T의 전체 밑그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지만 혼자 두드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이제 막 페라리의 고객이 된 이들에게 페라리의 매력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것이 캘리포니아 T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T는 비로소 완벽한 페라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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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더 명확해진 벤츠의 스포츠카 철학. MERCEDES-AMG GT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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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AMG GT에 터보 엔진 도입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C63, E63, S63 등의 ‘일반’ AMG 모델들이 전부 터보차저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벤츠 스포츠카에게 일반 AMG의 파워트레인을 이식하는 건 이미 정해진 운명. SLR 맥라렌, SLS AMG 등의 이전 벤츠 스포츠카들도 이와 같은 방식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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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GT가 터보 엔진을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원래 벤츠 스포츠카는 아득한 고회전보단 저회전부터 쏟아내는 무지막지한 토크로 스포츠카 클래스에 자리를 잡았으니까. 또한 과급 엔진의 사용이 처음도 아니다. V8 5.4L 수퍼차저 엔진의 SLR 맥라렌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터보 엔진 기술도 이미 쌓을 만큼 쌓았다. 벤츠는 가솔린 터보 엔진 상용화에 가장 앞장서온 브랜드 중 하나. 직분사 기술로 연료량, 즉 배기가스 온도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자 바로 다운사이징 직분사 터보 엔진(2003년 C200 CGI, M271)을 선보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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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는 C63과 같은 신형 V8 4.0L 바이터보 엔진을 사용한다. 물론 GT에 맞게 세밀한 조정 과정을 거쳤다. 두 엔진은 코드네임도 다르다. C63은 M177, GT는 M178이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윤활 방식. M178은 웨트섬프가 아닌 드라이섬프다. 때문에 무게중심이 55mm 더 낮고 내구성도 더 뛰어나다. 흡입공기 냉각 방식 역시 다르다. 수랭식 쿨러만 갖춘 M177과는 달리, M178은 수랭식과 공랭식 모두 사용한다. 엔진에 붙은 수랭식 쿨러를 식히기 위한 공랭식 쿨러를 범퍼 아래쪽에 하나 더 붙인 설계다. AMG는 이를 다이렉트 에어/워터 인터쿨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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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고출력에는 차이가 없다. 시승차인 GT S의 경우 C63 S와 같은 510마력을 낸다. 최대토크는 66.3kg·m로 오히려 더 낮다. 대신 힘을 내는 범위가 1,750~4,750rpm으로 더 넓다. 수치보다는 반응에 중점을 둔 세팅인 셈. 사실 벤츠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런 ‘플랫토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GT가 스포츠카임에도 롱 스트로크 엔진을 사용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고집 때문이다.

이런 설정에는 터보 엔진의 특성도 한몫하고 있다. 터보차저를 붙이면 엔진회전을 높여봤자 별 이득이 없다. 따라서 롱 스트로크 설정으로 초중반에서의 토크를 살리는 게 더 유리하다. 그래도 M178은 V8 터보치고 상당히 고회전 엔진에 속한다. 최고출력을 내는 시점이 6,250rpm이며 회전한계도 7,200rpm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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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4.0L 바이터보 엔진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개의 터보차저를 블록 사이에 끼워 넣은 핫 인사이드 V형 설계다. 구조가 복잡하지만 엔진 전체 부피가 작고 리스폰스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C63과 달리 GT에서는 냉각이 문제가 된다. 엔진을 차체 안쪽으로 깊숙이 밀어넣은 까닭에 블록 사이에 응축된 열이 빠져나갈 공간이 없다. 열전도율이 높은 알루미늄 섀시이기에 뜨거운 열기가 실내로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는 상황. AMG는 이를 보닛 안쪽에 공기 유도관을 붙여 해결했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통과한 공기를 거의 차체 중앙에 있는 터보차저까지 전달해 열기를 아래쪽으로 빼내는 구조다. 참고로 터보 엔진에서 막 빠져나온 배기가스의 온도는 최고 1,000℃를 넘나든다.

섀시와 파워트레인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물렸다.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의 앞 차축과 캐빈룸 사이에 엔진을, 뒤 차축 가운데에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얹어 앞뒤 무게배분을 정확히 47:53에 맞췄다. 엔진과 변속기는 원피스 토크 튜브 안에 넣은 탄소섬유 드라이브 샤프트로 연결했다. 견고하되 가볍고, 빠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 AMG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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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에서의 풍경은 다소 황당하다.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긴 보닛 때문에 숨이 턱 막힌다. 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이런 부담은 즐거움으로 바뀐다. 뒤 차축에 걸터앉아 차체를 휘두르는 재미가 GT만큼 짜릿한 차도 없기 때문이다. 적응도 예상보다는 훨씬 쉬운 편. 스티어링 반응이 빠르고 회전반경이 짧아 손에 쉽게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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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G의 V8 사운드야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GT는 한층 더 특별하다. 세계 최고의 V8 사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플러 설정을 스포츠+로 바꾸면 각 뱅크에서 빠져나온 배기가스의 일부가 마지막 소음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방출되는데, 이때의 사운드는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 엔진 사운드를 무기로 삼아왔던 페라리나 포르쉐가 배기 사운드에도 신경 쓰기 시작한 것도 바로 메르세데스 AMG와 같은 도전자들 때문이다.

회전수를 올리면 사운드는 더욱 거칠어진다. 하지만 회전 상승에 따른 톤 변화는 적다. 볼륨이 커지고 파열음이 더해질 뿐이다. 가속 감각 역시 시종일관 폭력적이다. 터보랙과 고회전에서의 출력 하락이 최대한 억제돼 가속의 시작부터 연료가 끊기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튀어 나간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3.8초. 배기량과 출력이 한참 큰 SLS AMG 기본형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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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1,750rpm부터 쏟아져 나오는 최대토크를 빈틈없이 뒷바퀴로 전달한다. 변속 속도는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3단계로 변한다. 그 어떤 벤츠보다 빠르게 반응하지만 포르쉐 911의 PDK에 비해서는 조금 더딘 편이다. 속도보단 변속 충격을 최소화한 세팅이기 때문. GT처럼 500마력이 넘는 출력을 온전히 뒷바퀴에만 몰아주는 고출력 후륜구동 스포츠카에겐 변속 속도보단 매끈한 동력 전달이 더 중요하다. 가령 코너에서의 예상치 못한 변속 충격은 차체의 자세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참고로 911 카레라/카레라 S는 비교적 저출력(?)이고, 911 터보는 사륜구동 방식을 사용한다.

섀시와 파워트레인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섀시가 파워트레인을 찍어 누르지도, 파워트레인이 섀시를 압도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한계에 다가서기가 굉장히 쉽다. 앞머리와 꽁무니의 움직임도 흠잡을 곳이 없다. 스티어링 휠을 비틀면 차체 앞뒤가 거의 동시에 움직인다. 일반도로와 트랙을 모두 소화하기에 충분한 수준. 컴포트 모드에서의 반응은 여느 쿠페와 비슷하고, 레이스 모드에서의 반응은 동급 어떤 스포츠카보다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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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벤츠가 양산형 본격 스포츠카 시장에 돌아온 지는 이제 10년 남짓이다. 하지만 벤츠는 수퍼차저 또는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으로 그랜드 투어러와 퓨어 스포츠 사이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빠르게 구축했다. 그리고 롱노즈 숏테일의 전통적인 FR 섀시와 무지막지한 토크의 파워트레인이라는 카드를 가지고 한 차로 두 장르를 넘나들 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스포츠카 클래스에 터보 엔진 시대가 열렸다. 자의든 타의든 최신 터보 엔진의 도입은 벤츠 스포츠카에게 ‘축복’이나 다름없다. 벤츠가 그동안 스포츠카 클래스에서 추구해온 방향을 더욱 명확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GT로 거듭나며 섀시 완성도도 한층 더 높아졌다. 메르세데스 AMG GT는 그동안 메르세데스 벤츠가 스포츠카 팬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지 않았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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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편집위원, 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류민 기자
사진
최진호
제공
자동차생활(www.car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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