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코로나 끝나면 꼭 가야 할 자동차 여행지-미국편②[황욱익의 로드 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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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다채로움이 가득한 곳이다. 기후도 온화하고(더울 때도 많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인 만큼 음식부터, 생활 등 모든 분야가 다채롭다. 그렇다고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역이 넓기 때문에 치안이 미치지 않는 곳도 있고 빈부격차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기 때문에 곳곳에 슬럼이 형성된 지역도 꽤 많다. 미국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이라 불리는 캘리포니아 역시 마찬가지다. 어바인이나 뉴포트비치, 말리부 같은 바닷가 지역에 형성된 부촌은 별 문제가 없지만 조금만 반대쪽으로 들어가도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곳, 갱들의 영역이 표시된 그래피티가 가득한 곳도 볼 수 있다.

옥스나드를 떠나 도착한 샌 라몬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도로망, 미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중산층이 모여 사는 주택가를 보니 전형적인 미국 동네라는 느낌이 강했다. 밤에 도착해 동네를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지만 아침의 샌 라몬은 여유 있고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샌 라몬의 숙소는 가장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가장 시설이 좋고 넓었다. 함께 동행 했던 류장헌 작가는 아침 일찍 부지런히 산책을 마치고 정글 쥬스(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와 불량스러운 햄버거를 들고 필자의 방문을 두들겼다.

일정은 샌 라몬에서 댄빌의 블랙호크를 거쳐 새크라멘토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전 날 서두른 덕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고 샌 라몬에서 블랙호크까지는 차로 10분 남짓이었다. 블랙호크는 디아블로 산 근처에 있는 지역이다. 중산층들이 모여 사는 교외 지역으로 쇼핑센터가 있고 블랙호크 박물관(자연사 박물관, 자동차 박물관)과 이글스네스트(블랙호크 자동차 박물관의 수장고 및 리스토어 센터)가 있는 곳이다. 원래는 디아블로 산의 골프 코스가 유명하지만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종합 위락 시설로 탈바꿈했다.

한국을 제외한 유럽, 미국, 일본에서 자동차 여행은 몸은 피곤하지만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우연치 않게 동네 맛집을 찾을 수도 있고 다양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반면 캘리포니아같이 건조하고 기온이 높은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틴팅이 없어 차 내의 온도가 상상이상으로 올라갈 때가 많다. 대부분 야외 주차장이라 주차 후에 돌아오면 한증막보다 훨씬 뜨거운 공기를 만나는 게 일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캘리포니아의 자동차 마니아들은 습기나 낮은 온도로부터는 자유롭지만 천정이 없는 곳에 차를 보관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기온은 높았지만 습도가 낮아 그늘에 들어가면 더위를 잊을 수 있다.

2017년 블랙호크 박물관은 개관 25주년을 맞았다. 1982년 사업가인 켄 베링과 클래식카 딜러인 돈 윌리암스가 설립한 비영리재단에서 운영하는 블랙호크 박물관은 블랙호크 쇼핑몰 안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시작했지만, 1988년 8월 자동차 박물관이 별도로 설립되면서 매년 다양한 주제를 선보이고 있다. 댄빌과 샌 라몬 지역의 자동차 이벤트와 자선 파티, 카즈앤커피(Cars&Coffe : 주말 오전 특정 구역에서 이뤄지는 미국 자동차 동호인들의 모임)도 자주 열린다. 바로 옆의 자연사 박물관은 미국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과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블랙호크 자동차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차는 약 90여대다. 소장 숫자로 보면 다른 자동차 박물관에 비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시차 교체가 비교적 빠른 편이다. 세계적인 클래식카 딜러 돈 윌리암스가 거래를 위해 구입한 차들도 이곳을 거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래는 위쪽의 이글스네스트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 박물관만 둘러 봤다.

블랙호크 자동차 박물관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큰 홀 하나를 사용하는 정도인데 동선이나 큐레이팅은 다른 박물관에 비해 좋다고는 얘기할 수 없지만 다양한 차들을 볼 수 있다. 돈 윌리암스가 클래식카 딜러로 유명하다 보니 미국차 중심의 다른 박물관에 비해 유럽차들이 많은 편이다.

# 예상치 못한 대어를 낚은 곳

B.A.T.5B.A.T.5

특이한 차들도 많았지만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끈 차는 1950년대 알파 로메오가 제작한 컨셉트카인 B.A.T 시리즈이다. 자동차 전문 서적에서 컨셉트카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 시리즈는 공기역학과 항력이 자동차의 주행 성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제작한 스터디 모델에서 시작했다. 이 시리즈의 이름인 B.A.T.는 Berlinetta Aerodinamica Tecnica의 머리글자에서 온 것으로 전위적이고 미끈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또한 알파 로메오와 디자인 하우스 베르토네의 첫 협업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B.A.T. 시리즈의 목표는 과연 자동차가 얼마나 낮은 공기저항계수를 확보할 수 있느냐를 목표로 개발되었는데, 공력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 덕에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을 갖췄다. 1953년 토리노 모터쇼를 통해 처음 공개된 B.A.T 시리즈는 1955년까지 매년 새로운 모델을 공개했다. B.A.T. 시리즈는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카가이들에게 매우 신비로운 존재였다. 전문 서적에서 여러 번 소개되었지만 실제 그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 첫 작품이자 시작을 알린 B.A.T.5는 1953년 토리노 모터쇼를 통해 공개되었다. 누치오 베르토네와 프랑코 스카글리온이 디자인을 담당한 B.A.T.5는 알파 로메오 1900의 구동계와 섀시를 사용했다. 4기통 엔진의 출력은 고작(?) 100마력에 불과했지만 낮아진 공기저항계수 덕에 200km/h까지 속력을 낼 수 있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주행시 발생하는 와류 생성을 최소화했고 고속 주행시 발생하는 공기 흐름을 흐트러지지 않게 다듬은 것이 특징이다.

B.A.T.7B.A.T.7
B.A.T.9B.A.T.9

프런트부터 시작해 뒷부분으로 갈수록 말려들어간 꼬리 날개가 특징인 B.A.T.7은 본격적으로 항공역학이 추가된 모델이다. B.A.T.7을 디자인하기 위해 베르토네는 항공기의 날개 디자인 프로파일을 활용했다. 효율을 극대화한 B.A.T.7은 배트카와 매우 흡사한 모습인데 헤드라이트 마저도 범퍼 안쪽으로 넣어 공기저항을 줄였다. 항공기 제작 기술이 대거 투입된 B.A.T.7은 공기저항 계수가 0.19에 불과하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B.A.T9은 1955년 공개되었다. 이전 시리즈에 비해 양산형의 모습에 가까운 최종버전은 공기역학의 역량을 줄이고 미국 스타일의 테일 핀 디자인을 활용했다. 전면부에는 알파 로메오 엠블럼이 크게 자리 잡으면서 1950년대 후반부터 알파 로메오가 사용한 디자인의 모티프를 제공했다. 공식으로 B.A.T. 시리즈의 최종 버전은 이후 알파 로메오가 이 시리즈를 통해 얻은 실험결과를 양산으로 연결하기 위한 기틀을 다졌으며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보다 차분하게 다듬었다. 참고로 2008년 알파 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를 기반으로 제작한 B.A.T.11이 50년 만에 제네바 모터쇼에 컨셉트카로 등장했지만 B.A.T. 시리즈의 최종버전은 B.A.T.9이다.

블랙호크 박물관은 비정기적으로 특별한 차들이 전시되는 경우가 많다. B.A.T. 시리즈는 그중 하나였는데 우리가 방문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2년간의 상설전시를 마치고 이글스네스트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블랙호크에서 약간의 여유를 즐기고 우리는 다음 기착지인 새크라멘토를 향해 출발했다. 링롱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제조사의 타이어가 장착된 소닉은 다행히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댄빌 부터는 크루즈컨트롤 사용과 장거리 주행, 불편하고 피곤한 현실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글 황욱익·사진 류장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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