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슈퍼 콤팩트 세단, 메르세데스-AMG C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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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친구가 일본에서 수입한 W203 C 55 AMG를 가지고 있었는데, 가끔 그 차를 몰곤 했다. 처음 운전대를 잡은 날은 요즘처럼 공기가 차갑고 길가에는 까맣게 더러워진 눈이 쌓여 있던 때였다.
C 55는 부잣집 딸 같은 외모였지만, 기질은 머슬카 그 자체였다. 당시는 모두가 BMW E46 M3에 열광하던 시기. 곱상한 외모에 괴물 같은 성질을 가진 콤팩트 세단은 난생처음이었기에 금세 C 55에 매료되고 말았다. 신형 C 63의 운전대를 잡았더니 그때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바로 이전 세대인 W204 C 63 AMG는 또 어땠나. 작은 몸집에 배기량 6,000cc가 넘는 거대한 V8 엔진을 욱여넣은 몬스터였다. 21인승 중소형 버스 배기량이 5.9L다. 아마 콤팩트 세단에 6.2L 엔진을 넣는 시대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효율의 시대. 최신형 W205 C 63은 다운사이징 추세에 따라 배기량을 줄이고 터보차저 2개를 달았다. 이전 V8 자연흡기 엔진의 명성이 높았던 만큼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린더 수는 여전히 여덟 개! M3은 직렬 6기통으로 회귀했지만, C 63은 V8을 고수했다.
신형 C 63의 V8 엔진은 A 45 등에 들어가는 직렬 4기통 1,991cc 엔진 2개를 V자로 연결한 것이다. 그래서 배기량도 1,991에 2를 곱한 3,982cc. AMG GT도 기본적으로 같은 엔진이다. 다만, AMG GT는 건식 윤활방식(드라이 섬프)인 데 반해, C 63은 일반적인 습식 윤활방식(웨트 섬프)인 점이 다르다. 엔진 코드네임도 AMG GT는 M178, C 63은 M177로 한 끗 차이가 있다.
M177은 메르세데스-AMG의 아팔터바흐 공장에서 전량 수공 생산된다. 기술자 1명이 엔진 1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만든다는 AMG의 방침을 따른다. 피스톤은 단조 알루미늄, 실린더 헤드는 지르코늄 합금. 2개의 터보차저는 실린더 뱅크 안쪽 높이 똬리를 틀고 있다.
M177은 최고출력 476마력, 최대토크 66.3kg.m의 힘을 발휘한다. 배기량을 2,226cc나 덜어내고도 오히려 이전 엔진보다 출력은 19마력, 토크는 5.1kg.m이 올랐다. 최대토크는 겨우 1,750rpm에서 나온다.
최신예 터보 유닛답게 터보래그는 거의 느낄 수 없고, 반응이 빠릿빠릿하다. 낮은 회전영역에서 풍부한 토크를 내는 다루기 쉬운 엔진이지만, 가속페달에 힘을 실으면 날카로운 곳니를 드러내며 7,000rpm까지 단숨에 관통하는 강렬함도 있다.
터보 엔진이라면 터보래그가 좀 있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한다면, M177은 기대에 어긋날지도 모른다. 파워 고조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럽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터보 엔진 특유의 강력한 펀치력도 보여준다. M3에 비하면 힘을 쏟아내는 연출이 훨씬 터프하고 극적이다.
여기엔 사운드도 큰 몫을 한다. 터보차저를 달았어도 4개의 배기파이프에서 터져 나오는 천둥 같은 소리는 이전 못지않다. 아침에 시동을 걸 때나 늦은 밤 귀가할 때는 동네 민폐로 생각될 만큼 소리가 우렁차다.
배기 사운드에는 둥둥거리는 생생한 맥동이 실려 있다. 소리뿐 아니라 기분 좋은 진동이 등허리를 타고 리드미컬하게 전해진다. 스피커 따위로는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박력이다. 엄동설한에도 창문을 열어둔 채로 흥겨운 비트에 흠뻑 취해 운전하는 시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시승을 통해 가장 기뻤던 것은, 배기량을 크게 줄이고 터보차저도 달았지만 이전의 자연흡기 V8 C클래스들이 가졌던 카리스마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변속기도 엔진만큼 훌륭하다. M177과 짝을 이룬 것은 'AMG 스피드시프트 MCT'라는 이름의 자동 7단 멀티클러치 변속기. 많은 사람들이 멀티클러치와 듀얼클러치를 혼동하는데, 둘은 완전히 다르다. 간단히 말해, 멀티클러치는 클러치가 1개, 듀얼클러치는 클러치가 2개다.
AMG 스피드시프트 MCT는 7G-트로닉의 토크 컨버터를 습식 다판 클러치(multiplate clutch)로 대체해 개량한 것. 싱글클러치 변속기지만, 엔진회전계 바늘은 흡사 듀얼클러치처럼 매우 빠르고 절도 있게 오르내린다.
주행모드는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로 세 가지. 자세제어장치(ESP)는 온, 오프, 스포츠 중에서 고를 수 있다. 각각 원하는 세팅을 지정해 인디비주얼 모드에 따로 저장해둘 수도 있다. 드라이빙 프로그램의 세세함이나 접근성 및 편의성은 M3이 크게 앞선다.
승차감은 컴포트 모드에서도 상당히 단단하다. AMG에서 컴포트란, 편안하다는 뜻이 아니라 덜 불편하다는 의미인가보다. 일반도로에서 스포츠 모드에 놓고 오래 타면 괴롭고, 스포츠 플러스 모드는 거의 고문이다. 스포츠 모드부터는 서킷에서나 필요할 것 같다.
C 63은 가끔 주말에만 타는 용도보다는 매일 출퇴근에 이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적어도 컴포트 모드만큼은 지금보다 유연하면 좋겠다. 예상과 달리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M3이 훨씬 편안하다.
의도한 대로 정확하게 움직여주는 것도 M3이다. 하지만 빠르지 않은 속도에서 다음대로 차를 휘두르는 재미가 있는 것은 C 63이다. M3의 리어를 흐르게 만들려면 큰 맘 먹고 시도해야 하지만(그만큼 한계가 높다는 뜻이다), C 63은 너무나 간단하다. 횡G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스로틀을 더 열어주기만 하면 된다.
이때 ESP가 재빨리 자세를 잡아주지만, ESP를 스포츠 모드에 두면 뒷바퀴굴림 차다운 아주 솔직한 움직임을 보인다. 꽁무니가 바깥쪽으로 흐른다는 얘기다. 이때는 스티어링과 함께 섬세한 페달 조작으로 뒷바퀴에 적당히 힘을 보내야 한다. 좋은 의미에서 구식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통제 불능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ESP 통제 하에서 차와 신경망이 연결된 듯한 기분으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뒤쪽이 과민한 것이 재미에 불꽃을 더해주고, 코너가 나올 때마다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은 모험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ESP를 완전히 끄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인생에는 이것 말고도 도전해볼 만한 일들이 많이 있다.
C 63은 C클래스의 정점에 서 있는 모델이니만큼 일반 C클래스가 가진 장점도 모두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동급 라이벌들을 완전히 따돌리는 고급스런 실내는 C 63도 마찬가지다. 시승차는 선택품목인 디지뇨(Designo) 인테리어가 적용되어 더욱 호사스런 분위기. 새들 브라운 나파 가죽으로 시트와 도어트림을 감쌌고, 다이아몬드 퀼팅, 스티칭, 파이핑으로 멋을 더했다. 외부엔 카본 패키지를 적용해 프런트 에이프런, 사이드미러, 사이드 스커트, 리어 스포일러, 리어 디퓨저가 카본파이버다.
C 63은 M3만큼 핸들링이 정교하진 않다. 하지만 조종의 묘미가 주는 즐거움을 무시할 수 없다. 몰면 몰수록 차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싶고, 더 잘 다루고 싶어진다. C 63에게는 운전에 몰입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고, 솔직히 랩 타임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열정, 광기, 도취 같은 단어가 딱 맞는 멋진 자동차다. C 63과 M3 중에서 고르라면 당연히 C 6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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