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슈퍼카 킬러, 궁극의 스포츠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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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후 12시 26분: 서쪽으로 달려가는 고속도로 M4
라디오에선 일기예보를 전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웨일스 지방에 폭우와 함께 시속 130km의 강풍이 몰아치고 있던 것. 나무가 쓰러지고 도로는 잠겼으며, 전선이 떨어져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중에서도 남부 웨일스가 제일 위험한 지역이었다. 제기랄, 하필이면.
사진작가인 레이시가 이 예보를 듣고 있다면 울상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지금 시작하려는 블록버스터 대결에는 평화롭고 한가한 배경이 어울리지 않을테니까.
웨일스를 향해 대서양에서 끓어오른 태풍 바니가 무섭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4대의 슈퍼 스포츠카들이 그곳을 향해 힘차게 질주를 시작했다.
그중 한 대를 먼저 소개한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 이 정도의 비바람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뚝심을 갖고 있는 차다. 바로 포르쉐 911 터보 S. 일상에서도 충분히 탈 수 있는 슈퍼카 킬러다.
하지만 이번에 맞붙을 라이벌들은 더욱 덩치를 키웠다. 이들은 웨일스의 수렁을 과연 어떻게 요리할 수 있을까? 애스턴마틴 V12 밴티지 S와 아우디 R8 V10 플러스, 그리고 맥라렌 570S의 제조사들이 911 터보 S의 쓰임새와 세련미에 보낸 찬사는 그저 입발림에 불과할까? 비교시승이 시작될 즈음, 머리 위에 불길한 먹구름이 서서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화요일 오후 2시 27분: 트레오키 부근의 비위치 클로드 로드
내가 처음 고른 차는 애스턴마틴이다. V12 밴티지 S에는 고유의 매력이 있다. 비록 중간회전대에서 토크가 부족하고, 여기서 가장 무거우며, 묵직한 6.0L 엔진은 최고의 트랙션을 만들어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에 자리 잡았지만, V12 자연흡기 엔진의 더할 수 없이 매끄러운 느낌과 사무친 포효는 모든 우려를 날려버린다. 실제로 경험해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물건이다. 일상용 스포츠카에서 이처럼 풍요로운 매력을 즉각적인 토크나 무조건적인 트랙션과 바꾸고 싶은가?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도로는 미끄덩거렸고, 먼저 시승에 들어간 차들은 악천후 속에서 그 정체를 드러냈다. 맥라렌 570S와 911 터보 S는 밤 늦게나 합류할 예정이었다. 나는 V12 밴티지 S를 익힌 뒤, 동료에게 운전대를 넘겨주고 신형 R8로 자리를 옮겼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나는 당연히 신형 R8에서 구형 못지않은 안락성과 친밀감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쪽도 흡족하지 않았다. 시트는 충분히 안락하고 대시보드는 예상한 그대로였지만, 다리 공간이 약간 모자르고 포지션은 너무 높다.
운전의 느낌도 다르다. 구형에 비해 자신감 넘치는 처리와 즉각적인 만족감이 떨어졌다. 스티어링은 실망스럽도록 가볍고 핸들링은 공감력이 부족하다. 승차감이 나긋했던 구형과는 달리, 신형은 무뚝뚝하면서 어정쩡하다. 역동적 성격을 지나치게 일그러뜨려 왜곡시킨 느낌이다.
R8 V10 플러스에는 트랙을 겨냥한 퍼포먼스(Performance) 모드가 마련되어 있다. 나름대로 매력적인 개성을 지닌 퍼포먼스 모드는 신형 R8에 구원의 은총을 베푸는 요소다. 파워트레인은 보다 스포티한 자세를 갖추고 핸들링은 한층 원만해진다. 더불어 스티어링은 보다 일관되고 감촉이 좋아졌다. 비록 승차감은 여전히 단단하지만 받아들일 만하다.
한편, 눈부신 R8의 파워트레인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간회전대의 드라이빙 밸런스와 고회전대의드라마틱한 가속은 환상적이며, 빠르고 정확한 변속기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R8의 핸들링은 실망스럽다. 액셀을 슬쩍 끌며 코너에 들어가자 재빠르게 주행라인을 잡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스프링의 강성 탓에 구형보다 핸들링이 거칠다. 예측할 수 없는 스티어링은 정확성이 떨어진다. 구형은 고속에서의 조향안정성이 뛰어났지만, 신형은 그보다 힘이 든다.
해가 기울고 촬영이 끝났다. 우리는 북쪽으로 65km쯤 떨어진 랜도버리에서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았다. 아담한 호텔 앞에 차를 세웠을 때, 나는 신형 R8의 다이내믹한 성능이 구형보다 발전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신형은 분명 더 빠르지만, 적어도 V10 플러스 모델은 도로에서 기대한 만큼 확실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이 잘 되거나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지도 않았다. 여러모로 과거와는 달랐다.
수요일 오전 10시 43분: 킬트레프 레저브아 부근
모든 준비가 끝났다. 오전 6시부터 분주하게 셀프 세차장을 다녀왔고, 동이 틀 무렵에는 4대의 라이벌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도로가 폭우에 잠겨 오지 못하는 차가 있을까봐 가슴을 졸였기 때문이다.
브레컨 비컨스 국립공원의 건조한 코스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다. 랜도버리에 가는 길에 가벼운 비바람을 만난 것. 하지만 911 터보 S는 완벽한 상태의 노면을 정적 속에 달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터보 S의 그립, 안정성과 침착성은 다른 세상에 있는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터보 S가 거침 없이 나가자 R8과 V12 밴티지 S, 570S는 리어뷰 미러에서 사라졌다. 전날 비슷한 조건에서 달린 R8, 밴티지 S와 비교하면 911 터보 S는 미끄러운 도로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적응형 댐퍼를 소프트에 놓으면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범프를 타고 넘는다. 스티어링을 통한 감각과 피드백은 그립의 수준을 정확히 잡아낼 수 있도록 하고, 원할 때는 엄청난 토크와 트랙션을 즉각적으로 제공한다.
갑자기 험악한 빗줄기가 골짜기를 타고 쏟아져 내렸다. 약간 질척했던 도로가 불과 몇 분 만에 쓸어갈듯 물길에 덮였다. 사진작가인 레이시는 장비를 내려놓았고, 우리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동안 태풍 바니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1시간 반이 지나 먹구름이 조금 사라진 뒤, 드디어 내게 맥라렌이 돌아왔다. 570S의 운전석 위치는 아주 빼어나고 지나치다고 할 만큼 스티어링 컬럼의 조절폭이 크다. 더불어 가느다란 필러 덕분에 시야는 탁 트였다. 물론 허점도 있다. 시트 조절 장치는 내가 체험한 것 중 제일 감각이 떨어지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몇 번 써본 뒤에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V8 엔진의 시동을 걸자 멜로디가 약간 멋쩍은 공회전에 들어갔다. 570S는 저속에서는 얌전하고 초반 가속에서는 약간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중간회전대에서는 가볍고, 날렵하며, 정력적이다. 다른 라이벌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들 중 실제로 가장 가볍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가벼운 차와 무려 200kg의 차이가 있다.
스프링은 제법 단단했지만 조향감각이 예리하고 예상보다 승차감이 아주 뛰어나다. 현재 맥라렌의 로드카 중에서 재래식 댐퍼와 안티롤바를 쓰는 첫 모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더불어 기본형 코르사 타이어를 신고 빗길을 달려도 570S의 그립은 믿음직하다. 핸들링은 드라이버를 끌어들여 듬직하고 정교하게 소통한다.
파워에서는 더욱 압도적이다. 톤당 418마력의 570S는 911 터보 S보다 출력이 20% 이상 강력하다. 다만 포르쉐와는 달리 최고출력에 도달하려면 rpm을 더 높여야 한다. 따라서 기어를 2단 낮추고 액셀을 사정없이 밟으면 570S는 황홀한 가속력으로 보답한다. 진정한 슈퍼카 수준이다.
수요일 오후 3시 34분 : 펜이팬 부근의 A470 도로변
우리는 결산에 들어갔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추위 속의 길가 주차장에서, 명차들 옆에 4명의 멍청이들이 서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욕을 하는 운전자들도 더러 있었다. 이제 동료들이 내게 최종순위를 결정하라고 말했다. 1등에 대해서는 이미 결심이 섰다. 하지만 그 뒤의 순위가 고민이었다.
꼴찌를 추려내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우리 시승팀 모두는 신형 R8에서 한층 감각적인 드라이브와 더욱 빼어난 역동성, 그리고 더 나은 실용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고, 파워트레인은 경이로웠지만 이번 대결에서는 R8이 순위를 끌어올릴 실력을 입증하지 못했다.
그 다음은 밴티지로 결정했다. 밴티지는 이제 오래되어 무언가를 더 증명할 구석이 남아 있지 않지만, V12 S는 다이아몬드 원석과도 같다. 단순하지만 럭셔리하고, 일부러 복잡하게 만든 라이벌들에 맞설 순수한 기계적 카리스마를 과시한다. 가장 역동적인 라이벌과 같은 수준의 스포티한 기질을 타고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드라이버를 빨아들이는 너그럽고 즐거운 차다.
이제 가장 큰 고민이 남았다. 911 터보 S와 570S는 모두 정상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 포르쉐는 여전히 자신의 영역에서 절대적인 존재다. 물에 젖어 미끄러운 B급 도로에서 그토록 유연하고 안정되며 정확하게 달릴 수 있는 차는 없다. 실용성도 가장 좋다.
하지만 자동차를 사랑하는 이들이 그 경계를 넘어설 가능성은 없을까? 911 터보를 제외하고, 일상에서도 즐길 수 있으면서도 더욱 특별한 궁극의 스포츠카를 찾는 이들을 가정해보자. 그렇다, 570S는 다르다. 더 가볍고 빠르며, 한층 특별하다. 실용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맥라렌 570S는 40년 전 오리지널 911로 이루고자 한 것 이상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것으로 충분히 정상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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