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체급을 넘나드는 타이틀 매치 : 닛산 무라노 vs 렉서스 NX30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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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이 적은 분야는 경쟁 구도도 정석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닛산 무라노 하이브리드는 렉서스 NX300h와 RX450h를 동시에 상대한다. 크기와 가격을 공통분모로 앞세워 두 체급의 동시 석권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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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에 사는 생물은 알려진 종류가 많지 않다. 지금까지 발견된 해양생물보다 더 많은 수가 심해에 산다고 한다. 자동차도 심해만큼 미지의 세계다. 전세계 자동차 종류는 수천 가지에 이른다. 이 중 우리나라에 들어온 차는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모든 차들이 들어오려면 아직도 멀었고 그렇게 되기도 힘들다. 수입차 시장이 커지고 차종이 늘면서 체계가 잡힌 듯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은 혼돈의 세계다. 특히 하이브리드는 대표적인 미지의 세계다. 차종이 적기 때문에 경쟁 관계를 확정하기 어렵다. 크기와 성능, 가격, 특성 등을 고려해 경쟁 모델을 짜 맞추기가 쉽지 않다. 결국 임시방편의 경쟁구도가 만들어진다. 언뜻 보기에는 불합리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공정하다. 체급이 달라도 실력이 비슷하면 맞붙을 수 있고, 나이가 어려도 지능이 우수하면 중·고등학교를 건너뛰고 바로 대학에 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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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SUV 시장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하이브리드 모델은 닛산 무라노다. 길이 4.9m의 준대형급에 값은 5,490만원이다. 딱 맞는 경쟁 모델은 없다. 대중 브랜드 SUV 중 의외로 하이브리드 모델(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제외)이 없다. 국산차는 최근에 나온 소형급 기아자동차 니로가 유일하다. 수입차는 중형급 토요타 라브4뿐이다. 럭셔리로 눈을 높이면 몇 대가 눈에 들어온다. 렉서스 NX300h와 RX450h, 인피니티 QX60, 레인지로버와 레인지로버 스포츠 하이브리드 정도. 닛산이 대중 브랜드이기는 하지만 무라노는 ‘인피니티의 탈을 쓴 닛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럭셔리 브랜드의 모델과 한번 승부를 펼쳐볼 만하다. 인피니티 QX60은 집안싸움이니 제외하고, 레인지로버는 가격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논외로 치면 결국 남는 모델은 렉서스 NX300h와 RX450h다. NX300h는 크기 차이는 나지만 값이 비슷하고, RX450h는 가격 격차가 벌어지지만 크기가 비슷하다. 무라노가 두 체급을 동시에 상대하는 경쟁 구도가 이뤄진다. 비슷한 경쟁차가 많이 들어온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지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구도가 가장 합리적인 경쟁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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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가격에서 앞서는 무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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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X300h의 값은 5,550만원(수프림)과 6,250(이그제큐티브)만원 두 종류다. 수프림 모델이 무라노(5,490만원)와 가격에서 맞먹는다. 무라노와 NX300h의 가장 큰 차이는 크기다. 길이는 무라노가 4,900mm, NX300h가 4,630mm로 27cm나 차이가 난다. 중형급과 준대형급 정도의 차이다. 실내공간의 척도가 되는 휠베이스는 각각 2,825mm와 2,660mm로 무라노가 16.5cm 길다. 크기 차이로 인한 공간 여유는 확실히 무라노가 앞선다. 체급이 비슷한 RX450h는 길이와 휠베이스가 각각 4,890mm와 2790mm다. RX450h와 비교해도 무라노가 조금 더 여유롭다.

당연하지만 사람이 앉는 공간은 물론이고 짐공간도 NX300h보다 무라노가 크다. 2열을 접으면 격차는 더 커진다. 용도와 생활 패턴에 따라 짐공간에 가치를 매기는 척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짐 싣는 일이 적고 혼자 타는 일이 많다면 차체 크기가 작은 NX300h가 알맞다. 가족차로 주로 쓰고 짐 실을 일이 많다면 무라노가 제격이다. 2열 편의성은 무라노가 우세하다. 등받이 각도 조절 폭이 커서 다양한 자세를 연출할 수 있다. NX300h는 등받이 조절 폭이 작고 등받이만 움직인다. 무라노는 시트에 슬라이딩 기능이 따로 있지는 않지만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때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좀 더 세밀한 자세 잡기가 가능하다. NX300h에 파노라마 루프가 없는 것도 의외다. 뒤쪽 개방감은 파노라마 루프가 달린 무라노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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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분위기에서 품질 차이는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NX300h는 고급 브랜드의 모델답게 기본적으로 고급성을 깔고 있다. 무라노는 닛산 브랜드이지만 고급스럽게 단장했다. 실내만 보여준다면 인피니티라고 착각할 정도다. 특히 무라노는 화사함이 포인트다. 가죽과 플라스틱, 우드트림 등을 밝은 베이지 톤으로 처리했다. 개성을 강조한 외모와 달리 실내는 간결하고 단순한 분위기를 추구해 아늑하다. 반면 NX300h는 검정색을 주로 사용하고 시트 가죽을 붉은색으로 마감해 강렬한 대비를 표현했다. 파격적인 외모 컨셉트를 실내에도 도입해 굴곡이 많고 선들이 현란하다. 아늑한 무라노와 달리 역동성이 두드러진다.

스타일은 보는 이의 주관이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낫다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무라노는 초대 모델 때부터 각진 SUV에서 탈피해 날렵한 크로스오버 분위기를 유지해왔으며, 현행 모델인 3세대로 접어들면서 닛산의 다른 모델과 디자인을 통일했다. 맥시마나 알티마 세단과 분위기가 비슷해 정체성이 한층 뚜렷해졌다. 측면 플로팅 루프의 경우 지붕과 차체를 분리한 듯한 효과를 내고, 앞에서 뒤로 물결치듯 흐르는 라인들로 유연하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을 잘 표현했다. 무라노 디자인도 범상치 않지만 NX300h도 꽤 파격적이다. 이는 렉서스 최신 모델들의 한결같은 특징으로 매끄러운 면과 날카로운 선이 조합을 이뤄 독특한 개성과 미래 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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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이 맞붙는 가장 큰 공통분모는 하이브리드다. 무라노와 NX300h 모두 우연의 일치인지 직렬 4기통 2.5L 엔진을 얹는다. 차이라면 무라노 엔진은 수퍼차저를 결합해 출력이 더 높다. 233마력 수퍼차저 엔진에 20마력 전기모터를 결합해 종합 출력이 253마력에 이른다. 반면 NX300h는 자연흡기 방식으로 152마력 엔진에 143마력과 68마력의 전기모터 두 개를 집어넣어(AWD 모델은 뒷바퀴 구동을 위한 모터가 하나 더 달린다) 199마력의 종합 출력을 낸다. 차체 크기를 감안하면 더 큰 힘이 필요한 무라노에 과급기가 붙는 게 당연지사. 그런데 무게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무라노와 NX300h의 무게는 각각 1,915kg과 1,900kg으로 차이가 크지 않다. 무게와 출력을 따진다면 무라노가 역동성 면에서 앞선다고 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따른 주행 감성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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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노는 모터가 한 개만 결합하고 엔진의 기본 출력이 높아서 역동적인 가속에 충실하다. 무라노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모터 한 개와 클러치 두 개가 결합하는 구조다. 닛산은 이를 ‘인텔리전트 듀얼 클러치 컨트롤’이라고 부르는데 ‘엔진-클러치-모터-변속기-클러치’ 식의 구조다. 상황에 맞게 두 개의 클러치가 작동하면서 엔진의 작동을 차단하거나 모터의 구동과 배터리 충전 등이 이뤄짐으로써 동력을 효과적으로 맺고 끊기 때문에 하이브리드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NX300h는 충전과 발전용, 앞바퀴와 뒷바퀴 구동용 모터 등 세 개 모터가 작동하는 만큼 엔진의 힘보다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역할이 큰데, 이는 주행 감성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이브리드의 이질감이 덜한 차를 원하면 무라노가 낫고, 하이브리드에 익숙하면 NX300h도 거부감 없이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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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 모두 2.5L 하이브리드 구동계에 CTV를 얹고 네바퀴를 굴린다. 변속이 부드러워서 가속도 매끈하다. 안정성은 막상막하. 자세 유지 능력은 둘 다 평균 이상이다. 길이에 따른 특성 차이가 거동의 변화로 이어질 뿐이다. 길이가 긴 무라노는 묵직하고 진중하게 움직이고 상대적으로 짧은 NX300h는 가뿐하고 경쾌하다.

하이브리드에 있어서 연비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무라노의 복합연비는 11.1km/L. V6 3.5L급의 힘을 내면서 이 정도 연비면 좋은 편이다. 무라노 가솔린 모델(미국 기준)과 비교하면 17% 정도 높다. NX300h는 1L로 12.6km를 달린다. 수치 면에서는 NX300h가 앞서지만 크기를 고려하면 연비 차이는 줄어든다. 하이브리드 메커니즘으로 인한 특성은 도심과 고속도로 연비에서도 드러난다. 도심 연비는 무라노와 NX300h가 각각 10.2와 13.0km/L로 차이가 벌어지지만 고속도로 연비는 각각 12.4와 12.2km/L로 오히려 무라노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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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및 편의장비도 값 대비 가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무라노는 특히 안전장비가 풍성하다. 전방충돌예측경고, 전방비상브레이크, 인텔리전트 크루즈 컨트롤, 어라운드뷰 모니터, 이동물체감지, 운전자주의경보, 사각지대경고, 후측방경고 등의 다양한 장비를 갖췄다. NX300h는 이그제큐티브와 수프림 트림 사이의 장비 차이가 크다. 6,250만원인 이그제큐티브 트림도 무라노에는 없는 장비들이 있다. 가격대가 비슷한 수프림 트림과 값 대비 가치 차원에서 보자면 무라노가 좀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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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X450h는 가장 아래 모델이 7,740만원으로 무라노와 가격 차이는 2,000만원 이상 벌어진다. 힘과 연비는 RX450h가 소폭 앞서지만 공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안전 및 편의장비에서도 격차는 크지 않고 오히려 무라노가 가격 대비 더 충실하다. 브랜드를 따지지 않는다면 2,250만원의 가격 차이를 고려할 때 무라노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하이브리드 시장이 활발하게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온전한 경쟁을 펼치기가 어렵다. 시장이 커지면서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여러 가지 모델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하이브리드 방식이나 가격, 브랜드 등에서 어떤 것이 우수하다고 단정짓기가 쉽지 않다. 개개인의 입장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따져봐야 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판단이야말로 가장 큰 만족을 가져다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무라노와 NX300h의 비교에서도 정해진 규칙은 없다. 다만, 무라노가 프리미엄 브랜드의 모델과 비교하더라도 당당할 만큼 훌쩍 성장한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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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현
사진
최진호
제공
자동차생활(www.car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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