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진짜 시티카란 이런 것: 스마트 포투 vs 피아트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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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날아온 두 대의 시티카를 만났다. 둘 모두 국내 경차보다 작지만, ‘경차 혜택’은 받을 수 없다. 국내 법규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의 성격이 갑자기 바뀌거나 몸집이 커질 일은 없다. 경차라는 물건은 원래 윤택한 도심 생활을 위한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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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저 주머니 사정 때문에 경차를 찾던 시대가 점점 저물고 있다. 소형차보다 더 많은 ‘옵션’을 달고, 몸값도 더 비싼 경차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는 국내에도 작은 차의 매력을 이해하는 성숙한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특별한 두 대의 시티카를 만났다. 작은 차 문화가 일찍이 자리잡은 유럽에서 높은 완성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모델들이다. 독일 태생인 스마트 포투와 이탈리아 출신인 피아트 500이 바로 그 주인공. 두 대 모두 차체가 국내 경차 규격보다 넓기 때문에 ‘경차 혜택’은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길이와 높이는 국내 경차들보다 작은 까닭에 작은 차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만큼은 훨씬 더 농후하다.

재미있는 건 시승을 하는 며칠간 두 대 모두 고속도로에서 경차 할인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 경량 스포츠카인 로터스 엑시지 S를 탈 때도 같은 혜택을 받았다. 톨게이트 직원이 경차의 경이 어이없게도 가벼울 경(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어쨌든, 오늘만큼은 경차 혜택에 대한 이야기 따위는 집어치우자. 사실 경차라는 물건은 윤택한 도심 생활을 위한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두 대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국내 법규가 이들을 경차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갑자기 이들의 성격이 바뀌거나 몸집이 커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작아도 잘 만든 물건을 원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이 유러피언 시티카들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결 당당해진 포투와 여전히 매력적인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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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신형 포투가 한국 땅을 밟았다. 포투는 1998년 시티 쿠페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2007년 2세대로, 2014년 3세대로 진화해왔다. 이번 세대교체와 함께 2007년 단종된 포포도 부활했다. 르노와의 공동개발로 인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 신형 포투와 포포는 이제 르노 트윙고와 DNA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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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동차 회사들의 협업 대부분이 그렇듯, 포투/포포와 트윙고 사이에서 닮은 구석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신 포투와 포포의 관계가 달라졌다. 이전 포투와 포포는 서로 연관성이 없는 별개 모델이었다. 디자인, 차체 레이아웃, 엔진 모두 딴판이었다. 그러나 이제 둘은 디자인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형제로 거듭났다. 포투는 2도어/2인승의 숏 버전, 포포는 5도어/4인승의 롱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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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500은 2세대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만큼은 포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하다. 500은 지난 1957년 데뷔해 23년간 약 390만 대가 팔려나가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차로 자리잡았다. 영국의 미니, 독일의 폭스바겐 비틀과 비슷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500이 2세대로 거듭난 건 단종 32년 만인 2007년. 1세대가 데뷔한 지 정확히 50년 만에 부활한 셈이다.

1세대 500은 길이 3m를 밑도는 초소형차였다. 그러나 2세대로 진화하며 길이와 너비를 각각 60cm, 30cm 가량씩 늘였다. 현대 아반떼가 에쿠스만큼 커졌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은 여전히 아담하다. 길이와 휠베이스 모두 기아 모닝과 쉐보레 스파크보다 짧다. 너비만 45mm 넓을 뿐이다.

외모는 포투와 500 모두 귀엽다. 작은 차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실 포투는 신형으로 거듭나며 신분 변화를 꾀했다. 차체 형상을 1박스에서 1.5박스로 변형시킨 후, 앞뒤 휠 트레드를 100mm씩 늘여 이전의 장난감 같은 이미지를 상당부분 지워냈다. 또한 LED로 치장한 헤드램프, 육각 무늬를 새겨 넣은 그릴 등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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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크기에서 비롯된 고유 분위기가 어디 가겠는가? 길이 2,720mm에 불과한 차체는 여전히 깜찍하다. 주차 칸 하나에 두 대를 세울 수 있을 정도. 실제로 포투가 등장한 이후, 유럽 대도시에서 포투 두 대가 주차 칸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건 흔한 장면이 되었다. 엔진을 꽁무니에 단 까닭에 운전석 뒤 펜더에는 미드십 스포츠카 마냥 공기흡입구가 있다. 또한 뒤범퍼 방열구 사이로 엔진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일반 경차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500은 이제 조금 식상하다. 데뷔한 지 시간이 꽤 흐른 까닭이다. 포투만큼 개성이 넘치지도 않는다. 얼핏 국산 경차 정도로 오해할 법도 하다. 하지만 네 개의 원으로 나눈 램프와 콧구멍을 틀어막은 범퍼, 군데군데 붙인 크롬 패널들로 낸 이탈리안 감성은 아직도 유효하다. 굳이 모닝, 스파크 등과 비교하자면 국산 토종 스쿠터와 이탈리아산 베스파처럼 미묘한 차이랄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소 껑충한 뒷모습이다. 국내에 수입되는 500은 도로교통법 최저지상고 규정(120mm 이상) 때문에 뒤쪽에 남미용 서스펜션을 끼웠다. 유럽과 북미용 500의 최저 지상고는 104mm, 국내 500은 이보다 24mm 높다. 옆모습은 포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늘씬(?)하다. 나란히 세워두면 500이 왜건으로 보일 정도. 포투는 2인승이지만, 500은 뒷좌석을 갖춘 4인승이다.

좁지만 고급스러운 포투, 넉넉하고 발랄한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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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투의 실내는 생각보다 여유롭다. 오직 두 명만 타는 컨셉트를 확실하게 지켰기 때문이다. 커다란 도어, 바짝 선 A필러, 납작한 대시보드 등으로 넉넉한 분위기를 냈다. 스티어링 칼럼이 작아 운전석 무릎공간도 널찍하다. 열리지는 않지만, 하늘을 훤히 볼 수 있는 글라스 루프도 이런 느낌에 한 몫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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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분위기도 화려하다. 다소 거칠었던 이전 모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전 모델이 기차 우등석 수준이었다면, 신형은 항공기 일등석 수준이다. 특히 입체적으로 빚은 후 천으로 감싼 대시보드가 꼭 비싼 소재로만 고급스러운 느낌을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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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에는 포투의 뿌리를 암시하는 단서들이 적지 않다. 가령 계기판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이전 C클래스를 닮았다. 안쪽의 디스플레이의 메뉴의 디자인과 구성 역시 벤츠 스타일이다. 또한 르노(와 르노 삼성차)와 공유하는 버튼들도 발견할 수 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메뉴도 르노 모델의 그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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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완성도는 전혀 다르다. 버튼을 둘러싼 하우징 등을 벤츠가 다듬었기 때문이다. 특히 작동법이 독특하고 마무리가 뛰어난 공조장치가 눈에 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블루투스 연결 및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지원한다. 연결이 빠르고 쓰기도 편하다. JBL 오디오 시스템의 사운드도 짐작을 뛰어넘는 수준. 이 작은 차에 무려 서브우퍼를 구겨 넣었다.

짐공간은 딱 장바구니 3~4개 정도에 최적화 되어 있다. 조수석 시트의 등받이를 앞으로 완전히 접어 스노보드나 골프 투어백을 실을 수도 있지만, 삶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비상용이기 때문. 혼자서 스노보드를 타러가거나 골프를 치러가는 건 꽤 쓸쓸한 일이다. 해치도어는 좁은 공간에서도 편히 열 수 있게 위아래로 나누었다. 여러모로 포투는 2인 가족의 삶을 빠듯하게 소화하는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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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바닥에는 엔진이 숨어 있다. 서브우퍼와 바닥 패널을 뜯어내면 얼굴을 드러낸다. 참고로 앞 후드 안쪽에는 냉각수 보조 탱크, 워셔 탱크, 브레이크 오일 주입구, 배터리 등이 있다. 그런데 도어를 잠가도 후드는 열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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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500의 실내는 아주 발랄한 분위기다. 포투만큼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게 최고라고 믿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만든 차답게 매력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앙증맞은 대시보드와 이를 뒤덮은 보디컬러 플라스틱 패널, 스포츠 버튼을 눌렀을 때 폰트가 이탤릭체로 바뀌는 전자식 계기판 등이 좋은 예다. 특히 센터페시아 중앙의 정성스럽게 만든 세 개의 버튼은 슬쩍 떼어가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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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루프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통풍과 채광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반투명 햇빛가리개도 이런 느낌을 부추긴다. 볕이 좋은 날 선루프를 열고 햇빛가리개를 닫은 후, 은은하게 스미는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달릴 때의 상쾌한 기분은 500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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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은 포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짐공간은 장바구니 6~7개 정도는 꿀꺽 삼킨다. 리어 시트를 접으면 웬만한 중형 세단 트렁크보다도 큰 공간이 생긴다. 테트리스를 잘한다면 2명이 타고 2개의 스노보드나 골프백을 싣고 먼 길을 떠날 수도 있다. 물론 유사시엔 뒷좌석에 사람 두 명을 태울 수도 있다. 또한 직물 시트가 기본인 포투와는 달리, 500은 가죽 시트가 기본이다.

예상을 벗어난 운전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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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성격 차이는 운전 감각에서 두드러진다. 포투는 차분하고, 500은 경쾌하다. 차체 크기로 보면 반대일 것 같은데 굉장히 의외다. 엔진도 포투가 더 정숙하다. 시동을 걸 때만 진동이 조금 두드러지는 편이다. 물론 회전수를 올리면 3기통 특유의 사운드가 마치 포르쉐 911을 탄 것 마냥 차체 뒤편에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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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투는 실내도 조용하다. 시속 110km 이하까진 웬만한 고급 소형차보다도 더 안락한 수준이다. 그 이상이 되면 바람 소리가 커지는데, 어차피 이 정도가 조종안정성이 확보되는 마지노선이다. 시속 110km를 넘기면 차선 변경마저도 부담스러워진다. 이런 사실과는 별개로, 속도는 표시된 숫자의 80%선까지 붙일 수 있긴 하다. 쭉 뻗은 도로를 오로지 직진으로만 달린다면 그 속도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그다지 권할 만한 일은 아니다.

가속 성능은 딱 필요충분조건을 만족한다. 최고출력 71마력, 최대토크 9.3kg·m라는 수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6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도 성능보단 효율에 초점을 맞췄다. 포투의 가장 큰 장점은 연비. 복합 연비 24.4km/L로 500의 11.8km/L보다 두 배 이상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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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속 성능은 500이 훨씬 더 시원하다. 최고출력(102마력)과 최대토크(12.8kg·m)가 압도적(?)으로 높으니 당연한 결과다. 포투를 타고 500을 따라가고 있으면, ‘500이 저렇게 빠른 차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참고로 포투의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14.9초, 500은 10.5초다.

6,500rpm까지 시원하게 돌아가는 4기통 엔진도 500의 매력 포인트다. 사운드와 회전 질감이 꽤 자극적인 데다, 어차피 실내도 포투에 비해 시끄러운 편이라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면 고회전을 즐기게 된다. 6단 자동변속기의 완성도도 꽤 뛰어난 편. 전통적인 유압식이긴 하지만, 변속 속도나 직결감 등 딱히 흠잡을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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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500은 몸놀림이 짜릿하다. 롤이 큰 반면 하중 이동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운전이 즐겁다. FF 방식이라 RR 방식인 포투보다 움직임을 예측하기도 더 쉽다. 탄력 넘치는 서스펜션은 코너에서 운전자의 등을 떠민다. 와인딩 로드는 엄두도 못 내는 포투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또한 고속 안정성도 포투에 비해 뛰어나다. 시속 120km 이상에서도 든든하다. 500을 타보면 아바스라는 고성능 버전의 존재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신 포투는 도심에서 즐겁다. 짧은 휠베이스와 오버행을 무기 삼아 복잡한 골목길도 사정없이 헤집는다. 특히 극단적으로 짧은 회전반경이 주는 희열은 중독성이 짙다. 주차장만 빠져나와 봐도 마치 네 바퀴 모두가 돌아가는 듯한 독특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을 일정 수준 이상 돌리면, 바퀴를 안쪽으로 더 비틀기 때문에 2차선 안쪽에서 유턴을 할 수도 있다. 조향을 담당하는 앞바퀴가 구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스마트는 신형 포투를 공개하며 연석 기준 6.95m, 벽 기준 7.3m의 짧은 회전반경을 자랑스레 내세운 바 있다.

각자의 개성에 집중한 결과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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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투는 3세대로 거듭나며 컨셉트를 바꿨다. 작은 차체와 RR 구조의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저 화려한 실내와 고급스러운 승차감, 그리고 도심 기동성 등에만 주력했다. 그 결과 고급 시티카라는 장르에서만큼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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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500은 정공법을 택했다. 작은 차만이 가질 수 있는 발랄한 매력을 강조했다. 데뷔 8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500만큼 경쾌한 시티카는 등장하지 않았다. 포투가 패션 감각이 뛰어난 세련된 아가씨라면, 500은 뽀송뽀송한 솜털을 드러낸 건강한 아가씨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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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가지는 의미는 단순하다. 바로 장르의 다양화다. 시티카라는 장르에 대한 이들의 접근 방식은 작지만 넓어 보이고, 작지만 비싸 보이는 데만 집중한 국내 경차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각자가 가진 개성에 집중했다. 물론 기자도 알고 있다. 시장이 아무리 변하고 있다지만, 이 차들이 갑자기 국내에서 대박을 칠 일은 없다는 걸. 하지만 적어도 미동이라도 일으켰으면 좋겠다. 국내 자동차 시장이 좀 더 다양해지길 바라기 때문에.

류민 기자
사진
최진호
제공
자동차생활(www.car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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