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스포츠카, 로터스 에보라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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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다. 보통의 경우 와인딩 코스를 정해놓고, 차를 섭외하는 순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보다 빨리 차가 섭외되었기에 순서가 바뀌었다. 차는 로터스 ‘에보라 400’이다. 습관처럼 차의 색상을 물었는데 레드 컬러라고 했다. 레드 컬러의 스포츠카. 덕분에 와인딩 코스를 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철없던 시절 정열적인 붉은색 티뷰론을 몰고 처음 여행을 떠났던 장소. 소양호다.
에보라 개발 당시 프로젝트명은 ‘이글’(Eagle, 독수리)이었다. 로터스 모델들은 하나같이 알파벳 ‘E’로 시작한다. 에끌라, 엘란, 유로파, 엑셀, 엘리트, 엘리스, 엑시지, 에보라 등. 이는 창업주 콜린 채프먼이 개인적으로 알파벳 E의 어감이 좋았기에 지금의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엘리스의 경우 로터스가 부가티 산하에 있을 때 첫 선을 보였는데, 부가티 회장이었던 로마노 아르티올리의 손녀 이름인 엘리사에서 따왔다.
2008년 7월 영국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2009년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초기모델은 토요타 2GR-FE 엔진을 얹어 280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지금이야 엑시지에 자동변속기가 달려나오는 세상이지만, 2010년 에보라 IPS(Intelligent Precision Shift)모델이 나오면서 로터스 자동변속기 시대를 열었다.
수퍼차저의 도움으로 350마력까지 끌어올렸던 에보라가 400마력의 ‘에보라 400’을 선보였다. 단순히 출력만 끌어올린 건 아니다. 더욱 과격해진 전면 공기흡입구와 또렷해진 눈매, 테일램프는 네 개의 원형 디자인에서 반을 덜어낸 두 개의 디자인이다. 과감한 디자인의 디퓨저가 배기파이프를 에워싸고 있다.
실내 변화가 반갑다.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드라이브 모드와 배기사운드를 한층 키울 수 있는 버튼이 자리한다. 자동변속기는 버튼식으로 이전 에보라 IPS와 같지만, 위치가 변경됐다. 공조기 스위치의 디자인도 세련미 넘친다.
운전석에 앉는 것도 쉽지 않지만 로터스 모델 중에서는 가장 타기 편하다. 목적지인 ‘추곡 약수터’ 입구로 출발. 배기사운드를 키우지 않는 이상 로터스 모델치고는 조용한 편이다. 승차감이 단단하긴 하지만, 토크컨버터 방식의 변속기는 나긋나긋하며 ‘고성능’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저속에서 생각보다 경쾌함을 보이지는 않지만 본격적으로 rpm이 높아지면 금세 잊혀질 만큼 엄청난 가속력을 보여준다.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150킬로미터 정도. 서울-춘천 고속도로에 올라 ‘스포츠’ 버튼을 눌렀다. 배기사운드가 확실히 커진다. 배기사운드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스포츠 모드에서는 배기사운드 버튼을 누른 효과를 낸다.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4천rpm부터 배기사운드가 심상치 않더니 5천rpm에 이르자 포효하기 시작한다. 음료수 캔 안에 작은 쇠구슬을 넣고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흔들면 이런 소리가 날까? 독특한 배기사운드는 운전자를 흥분시키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연비에 불리한 저단운행을 부추긴다. 이런 자동차를 타면서 연비 운운하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스포츠 모드에서 속도가 줄면 레브매칭을 하며 항상 높은 분당회전수를 유지하려 애쓴다. 때문에 계속되는 가감속 상황에서도 항상 재빨리 튀어나갈 수 있다.
수동변속기와 자동변속기의 차이는 크지 않다. 0→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4.2초. 이전 350마력은 4.6초. 몸무게는 1천415킬로그램으로 수동변속기 기준 21킬로그램 줄어든 수치. 로터스는 예전부터 다이어트가 최고성능이라고 믿는 브랜드다. ‘성능을 올리고 싶다고? 그렇다면 살을 빼!’ 에보라 S와의 차이점은 수퍼차저. 공기를 압축하면 온도가 올라간다. 온도가 오를수록 밀도는 낮아진다. 에보라 400은 수퍼차저에 수랭식 쿨러를 달아 압축된 공기를 식혀 엔진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체적효율이 개선돼 400마력을 달성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를 내달리며 사운드에 중독돼 일행을 놓쳤다. 속도를 줄이며 룸미러로 뒤를 보려 했더니 뭔가 재미난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드로틀 밸브를 여닫는 장면. 수랭식 쿨러를 달면서 약간의 위치변경이 있었나 보다. 이전 에보라에서는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추곡 약수터 입구부터가 본격적인 와인딩 코스. 고속도로를 제법 빨리 내달렸기에 관광 모드로 코스부터 익히기로 했다. 출발 전 PC를 통해 대략의 코스를 살펴봤지만, 생각 이상으로 괜찮다. 도로가 넓지는 않았지만, 중간중간 소양호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의 연속이다. 푸르름이 더해진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심신이 정화되는, 너무나 멋진 코스다. 통행하는 차가 거의 없다. 그렇기에 도로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나 보다. 중간중간 낙타등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다. 관광 모드가 아니었으면 담배 한 갑은 폈을 큰 사고가 났을 것이다.
총 15킬로미터의 코스다. 로터스처럼 코너에 특화된 모델이라면 짧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니 짧았다. 앞에서 잠깐 말했지만 소양호는 철 없던 시절 누군가(?)와 티뷰론을 타고 첫 여행을 왔던 장소. 물론 그때는 와인딩 관심은 전혀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왔다는 게 중요했을 뿐. 그때도 참 짧게 느껴졌는데…. 소양호를 지도로 보면 한 마리 용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다. 추곡 약수터 코스는 용의 등 부분. 소양호 전체를 둘러싼 길을 모두 돌아보면 좋은 코스도 더 많겠지만, 지금 이 코스가 차들의 통행이 거의 없기에 달리기를 맛보기에 제일 낫다고 일행 모두 입을 모은다.
이제 소양호를 제대로 달려보자. 한번 타면 내리기 싫은(힘든) 시트에 또 다시 곡예 부리듯 올라탄다. 20대 때에는 이런 차에 올라타도 짧은 신음조차 내지 않았는데, 로터스 브랜드 차를 타고 내릴 때면 나도 모르게 숨을 ‘흡’하고 멈추게 된다. 군대에서 사격할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드라이브 모드는 스포츠. 트랙이 아닌 이상 굳이 레이스 모드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스포츠 모드로도 충분히 에보라를 느낄 수 있다. 변속은 패들시프트. 1단에서 2단으로 재빨리 올리고 가속페달에 힘을 쏟는다. 1차선 도로이기에 주변에 절벽과 나무들이 많은 곳을 지나칠 때면 배기사운드가 증폭되어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오버 스피드를 내게 된다. 요즘 해가 떨어지는 시간도 늦으니 급할 거 없다. 100세 인생인데 조금만 템포를 늦추자.
직선코스는 거의 없다. 관광 모드가 아닌 이상 한 손으로 운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묵직한 스티어링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다 보면 운동이 따로 없겠다. 이 정도 팔운동을 하기엔 기름값이 비싼 게 흠이다. 2단과 3단, 가끔 4단까지 올릴 수 있지만, 주로 2단과 3단 비율은 5:5다. rpm을 최대한 쥐어 짜며 헤어핀을 일반코너로 만들어 버리는 경이로운 핸들링. 솔직히 말하면, 운전재미는 엑시지를 못 따라간다. 무슨 수를 써도 에보라가 엑시지를 이길 순 없어 보인다. 에보라 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엑시지와 엘리스가 최고의 핸들링 머신이기 때문이다. 에보라는 엄연히 GT카다. GT카가 이런 코너실력을 보여준다는 자체가 로터스가 어떤 브랜드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수동변속기라면 오히려 재미가 떨어지는 코스다. 물론, 전문 드라이버라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무거운 스티어링 휠을 한 손으로 돌리고, 오른손은 기어레버에서 떨어질 겨를 없이 짧은 코너의 연속이다 보니 자주 변속을 해줘야 한다. MR은 무게배분이 아주 좋다. 앞뒤 비슷한 비율의 무게는 코너에서 제대로 빛을 발한다. 다소 무리라고 생각되는 구간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마법을 부린다. 우리 아들이 장난감차를 바닥에 대고 ‘휙~’ 돌리 듯 말이다. 조금 더 채찍을 가해보자. 더운 날씨지만,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살짝 내린다. 배기사운드는 더욱 또렷하고 크게 들린다. 나만의 레코드라인을 만들면 에보라 400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그려 나간다.
로터스는 끊임없이 경량화를 외친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게다. 모델이 변경될 때마다 몇 그램이라도 줄이기 위해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그런데 에보라는 GT카다. 꼭 필요한 것만 넣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사치스러우면 안될까? 가격은 그대로 두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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