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레니게이드, 엘도라도를 찾은 리얼 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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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차(1990년대 초반까지도 국내에서는 SUV형 자동차를 이렇게 불렀다)가 대세인 세상이다. 세단과 해치백이 주도하던 자동차시장이 SUV로 포커스가 옮겨가면서 그렇게 됐다. 우리식 짚차의 기원이자 75년 동안 한우물을 판 지프가 오늘날 상종가를 날리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겠다.
군용 다목적차, CJ(1944년)로 시작해 스테이션 왜건붐에 편승한 왜고니어(1963년)를 통해 본격적인 SUV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지프는 오늘날 영국 랜드로버와 함께 네바퀴굴림에 관련해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한다.
지프는 오랫동안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시장이 주무대였으나 이제는 유럽과 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는 등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본고장 북미의 SUV시장이 정체된 반면 유럽과 아시아는 해마다 6~9%씩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한번도 진출하지 않았던 B세그먼트 SUV시장에 주목해야 했다. 시장조사업체인 IHS 글로벌 인사이트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중형급 SUV시장은 D세그먼트와 E세그먼트가 각각 3%씩 줄고 소형급은 B세그먼트가 5% 확대되며, C세그먼트는 비슷한 점유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연간 100만대 판매를 돌파한 지프 입장에서 B세그먼트 SUV시장은 새로운 엘도라도가 분명하다.
그런데 투박하고 큼지막하면서 튼튼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산 냉장고 같은 차로는 성공을 자신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B세그먼트 SUV에 개성 넘치고 아기자기한 소형차의 본고장 유럽, 그것도 열정이 넘치는 이탈리아의 뜨거운 피를 그득 담길 원했던 것 같다.
실제로 2014년 선보인 레니게이드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기 위해 피아트 500X와 플랫폼을 공유했다. 생산지도 지프 최초로 미국이 아닌 이탈리아와 브라질을 택했다(국내 수입 모델은 이탈리아산이다). 그 결과 레니게이드는 2015년 16만대가 팔릴 정도로 대히트를 기록 중인데, 북미보다는 해외 시장에서 2배 이상 많이 팔린다. 자사의 막내를 과감하게 이민 보낸 정책이 적중한 셈이다. 레니게이드는 국내에서도 지난해 9월 론칭 이후 연말까지 647대가 팔려 당초 목표치인 500대를 30% 가까이 초과했다. 올해 초에는 디젤 모델의 물량이 달려 판매를 하지 못했을 정도다.
그 비결을 알아보자. 콜로라도 레드의 시승차를 보는 순간 바로 느낌이 왔다. 지프 고유의 디자인 DNA를 고스란히 살리면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다. 그동안 랭글러, 체로키, 그랜드 체로키 외에는 진정한 지프가 아니라고 여겼던 기자의 생각을 이제 버려야 할 것 같다.
실내는 어떨까? 레니게이드는 입이 떡 벌어지는 최고급 소재는 아니지만 질감과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 이탈리아의 손길이 더해져 현행 지프 라인업에서 최고 수준의 감성품질을 보인다. 특히 랭글러를 연상시키는 운전자세가 맘에 든다. 차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지프 고유의 피가 내 몸으로 쏟아지는 느낌이다.
시승차는 레니게이드의 최고급 버전인 2.0 리미티드 AWD(4,190만원)다. 2.0L 터보 디젤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 네바퀴굴림 구동계가 달렸다. 미국 그랜드캐니언(아직 가보지 못했다)의 오지를 떠올리며 차를 움직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스티어링의 답력이 억세고 몸놀림이 타이트했기 때문이다. 달리던 탄력을 이용해 굽이진 도로를 세차게 감아나가며 탄력 넘치는 서스펜션 세팅을 거듭 확인했다. 출렁거리는 승차감을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레니게이드는 로마 시내의 울퉁불퉁한 벨지안로드를 이리저리 누벼도 안정감을 잃지 않을 것 같다.
최고출력 170마력/3,750rpm, 최대토크 35.7kg·m/1,750rpm을 내는 엔진은 아이들링 상태에서 소음과 진동이 큰 편이다. 그래도 요소수를 쓰지 않고 유로6 배기규정를 통과한 청정 엔진이라는 점에 위안이 된다. 또 추진력도 훌륭하다. 해외 제원을 살펴보니 0→100km/h 가속 8.9초다. 다만 과격한 움직임에 9단 자동변속기가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는 증상을 몇차례 겪었다. 센터 디퍼렌셜이 구동력을 앞바퀴에서 뒷바퀴로 보내면서 발생하는 순간적인 버벅거림이 겹쳐 일어난 현상이 아닐까 싶다.
80km/h부터 9단 기어를 물릴 수 있다. 이때 엔진 회전수는 1,250rpm. 디젤의 두터운 토크밴드를 이용해 아이들링보다 살짝 높은 상태에서 밀고 나가는 맛이 이색적이다. 가감속을 반복할 때 기어 레버를 움직여 적극적으로 변속하면 경쾌한 달리기를 만끽할 수 있지만 스티어링 휠에 시프트 패들이 없어 아쉽다.
시승차는 탈착이 가능한 선루프,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 차로이탈 방지장치, 프리미엄 오디오 등 풍부한 편의 및 안전장비를 갖췄다. 경쟁모델과 꼼꼼히 비교했을 때 값 대비 가치가 크다. 비슷한 장비와 성능을 지닌 다른 SUV는 1,000만원 정도 비싸다.
오프로드를 찾았다. 시승차는 다이얼로 4가지(AUTO, SNOW, SAND, MUD)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셀렉-터레인 시스템은 물론이고 힐-디센트 기능과 4WD 로기어, 센터 디퍼렌셜 잠금장치까지 갖췄기에 험한 환경에서 주저하지 않고 헤쳐나올 수 있다. 다만 극강의 오프로더처럼 휠 트래블이 크진 않아 가끔 짝다리를 짚은 듯이 달려야 하지만 동급 SUV 가운데 최고의 주파력을 가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유의 명성을 좀먹지 않는 리얼 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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