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중형 세단 시장의 판도를 바꿀 기대주, 쉐보레 말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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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한국GM이 신형 말리부를 소개하며 강조한 단어다. 국내 중형 세단 시장의 변화를 가져올 차라는 의미에서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신형 말리부는 시장을 뒤흔들 만큼 뛰어난 상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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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부가 세대교체를 거쳤다. 지난해 뉴욕오토쇼에서 선보인 신형의 국내 판매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말리부는 1964년 데뷔한 쉐보레의 대표 중형 세단. 국내에서는 두 번째 모델이지만, 미국에서는 무려 9세대에 해당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름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유명 휴양지에서 따왔다.

GM 본사와 한국GM이 이번 말리부에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이전 모델이 평균 이하의 성적을 내는 바람에 변경 시기를 크게 앞당겼기 때문이다. 한국GM이 신형 말리부를 소개하며 ‘변화, 말리부로부터’라는 의미심장한 슬로건을 내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참고로 이전 세대교체는 2012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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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건의 의미는 문장 그대로다. 말리부가 변화의 시작이라는 뜻. 신형 말리부에는 쉐보레의 새 디자인과 플랫폼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앞으로 등장할 쉐보레의 신차에도 이러한 변화가 스밀 예정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크루즈, 아베오 등이 이런 흐름을 받아들였다.

또한 이는 국내 중형차 시장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의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국GM은 말리부를 새 유행의 선도자(New trend setter)라고 표현한다. 현대와 기아가 장악하고 있는 중형 세단 시장을 흔들겠다는 의미다. 이런 자신감의 중심에는 말리부의 신형 파워트레인이 있다. 쉐보레는 아베오, 트랙스, 크루즈 등으로 터보 엔진 보급에 앞장서온 브랜드. 1.5L 터보와 2.0L 터보를 주력으로 하는 신형 말리부로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의 대중화에 앞장서겠다는 계획이다. 즉, 현대 쏘나타 터보, 기아 K5 터보 등 터보를 고성능 이미지로 활용해 고가 정책을 펼쳐왔던 경쟁자들과는 다른 전략을 펼치겠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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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은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배기량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이 트렌드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중형 세단 시장이 특히 심하다. 적어도 2.0L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한국GM은 이런 고정관념을 성능과 효율을 모두 만족하는 신형 파워트레인으로 깰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빈틈없는 디자인과 스마트한 플랫폼

하지만 중형 세단 시장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괜찮은 파워트레인’ 하나만으로 쉽사리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타당성이 중요하다. 디자인, 공간 크기, 장비 구성, 운전 감각 등 전체적인 균형을 잘 잡아야한다. 특히 국내 중형 세단 시장의 소비자는 입맛이 까다롭다. 아무리 힘 좋고 연비가 좋아도 작고 못생기면 외면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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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이 이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건 말리부의 상품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일단 차체 크기부터가 압도적이다. 길이(4,925mm)는 동급에서 가장 길다. 쏘나타는 물론 준대형 세단인 그랜저보다도 5mm 길다. 실내 공간 크기를 좌우하는 휠베이스는 쏘나타보다 30mm 길고 그랜저보다 10mm 짧은 2,835mm다. 너비(1855mm)도 그랜저와 엇비슷한 수준. 이 정도라면 쏘나타가 아닌 그랜저와 경쟁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몸집은 커졌지만, 차체는 이전보다 더 가볍고 단단해졌다. 무턱대고 비싼 소재를 쏟아부어 얻은 결과가 아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조가 취약한 부분을 찾아내고, 여기에 적절한 소재를 투입해 강성을 높이는 동시에 금속 낭비와 무게 증가를 막았다. B필러 하단에 압축 경화 강판을, C필러 아래에 고장력 강판을 사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이전보다 섀시 무게를 45kg, 공차중량도 최대 130kg 줄였다. 1.5 터보 모델의 무게는 1,400kg으로 경쟁자 중 가장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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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야 그렇다 치자. 풍족함은 원래 ‘미국차’의 특징이니까. 그런데 무게까지 가장 가볍다니, 태생을 생각하면 조금 의아하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로, 몸집만 큰 북미형 세단과는 거리가 멀다. 크기를 생각하면 구석구석 빈틈이 있을 법한데, 짜임새가 굉장히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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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도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납작하게 누른 헤드램프와 듀얼포트 그릴 덕분에 한결 날렵하다. 뾰족한 눈매와 굴곡진 보닛 등 얼핏 카마로와 비슷한 분위기도 난다. 이런 느낌은 뒷모습으로도 이어진다. 트렁크 리드 중간을 바짝 접어올리고 범퍼 아래쪽을 검게 처리해 긴장감을 살렸다. 운전자의 취향에 따라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다르겠지만 사진보다 실물이 낫다는 건 확실하다. 특히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실제로는 꽤 균형잡힌 모습이다. 오밀조밀하게 면을 비튼 범퍼의 완성도도 짐작보다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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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옆모습이다. 근사한 캐릭터 라인과 루프 라인 덕분에 세련미가 넘친다. 특히 앞 펜더에서 뒤쪽 휠 아치로 이어지는 선이 우아하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루프와 트렁크 리드를 향해 힘차게 떨어지는 C필러는 아우디 A7과 같은 스포트백 느낌을 낸다. 독일제 프리미엄 5도어 쿠페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분위기. 루프와 리어 글라스의 틈새를 파고든 보조 브레이크 램프, 크롬 띠를 얇게 두른 도어 핸들 등 북미형답지 않은 세심한 터치도 구석구석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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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가 커진 만큼 실내도 한층 더 넉넉해졌다. 특히 뒷좌석공간은 준대형 세단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리공간을 33mm 늘리고 센터터널을 낮춰서 얻은 결과다. 쿠페와 같은 루프 라인에도 불구하고 머리위공간도 여유롭다. 트렁크도 골프 투어백과 보스턴백을 4개씩이나 삼킬 정도로 광활하다. 여차하면 뒷좌석 등받이를 접어 긴 짐도 넣을 수 있다. 불만이 있다면 등받이 각도가 조금 곧추서 있다는 것과 리어시트 열선의 부재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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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 풍경은 좌우대칭 대시보드가 주도한다. 센터페시아 위쪽으로 머리를 삐쭉 내민 디스플레이 모니터와 양쪽 끝으로 뻗어나간 알루미늄 패널, 그리고 가운데를 마감한 가죽 덕분에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하다. 대시보드 앞 패널과 도어 핸들 아래에는 간접 조명도 심었다. 편의장비도 충실한 편이다. 특히 스마트키와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를 전 트림에 기본으로 제공한다는 점은 대기 고객들에게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가 될 듯. 2.1A USB 포트를 4개나 마련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세부적인 마무리가 조금 투박한 편이긴 하지만, 나머지 구성이 워낙 좋아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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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링크 역시 대대적인 개선을 거쳤다. 터치감, 반응속도, 화면 해상도 등 흠잡을 곳이 없다. 기능도 마찬가지다. 내비게이션은 실시간 길 정보까지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졌고, 애플 카플레이도 지원한다. 다만 오디오 등 다른 기능을 조작하면 지도가 사라진다는 점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면서 애플 아이폰은 사용할 수 없는 qi 방식 무선 충전 슬롯을 준비해 두었다는 것도 조금 생뚱맞긴 하다.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의 대중화

신형 말리부에는 현재 1.5L 터보와 2.0L 터보 엔진만 준비된다. 국내 중형 세단 시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2.0L 자연흡기 엔진을 완전 배제했다는 점에서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 보급에 대한 쉐보레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언뜻 배수의 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신형 말리부의 엔진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복합연비 17.1km/L로 인증을 마친 1.8L 하이브리드 유닛도 곧 선보일 예정이며 이전 말리부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였던 2.0L 디젤 유닛의 도입도 점쳐진다. 참고로 사전계약 비율은 1.5L 터보가 약 70%, 2.0L 터보가 약 3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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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L 터보 엔진에는 GM의 최신기술이 녹아 있다. 최고 950도의 온도를 견디는 알루미늄 주조 배기하우징과 콤팩트한 신형 직분사 유닛 등이 좋은 예다. 특징은 뛰어난 정숙성과 높은 효율. 상황에 따라 역위상 음파를 쏘는 ANC(액티브 노이즈 컨트롤)와 공조장치 작동상황에 관계없이 공회전 방지장치를 적극 활용하는 에코 모드 등으로 소음과 엔진 저항을 줄인다. GM에 따르면 아우디/폭스바겐의 동급 엔진인 EA211보다 6dB 더 조용하고 연비는 국내 동급 경쟁자 중 가장 좋다.

참고로 말리부 1.5 터보의 복합연비는 12.5~13.0km/L이며 K5 1.6 터보의 복합연비는 12.2~12.8km/L다(신연비 기준). 현대 쏘나타 1.6 터보는 아직 구연비 기준이라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으나 신연비로 전환될 때의 평균 낙폭을 따져보면 말리부는 물론 K5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낮은 세금도 말리부 1.5 터보의 장점이다. 소형차(1,490cc)로 분류되기 때문에 동급 라이벌 중 가장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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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L 터보는 한식구인 캐딜락에서 가져온 엔진이다. 최고출력 253마력을 5,300rpm에서, 최대토크 36.0kg·m를 2,000~5,000rpm에서 낸다. 캐딜락(272마력)보다 출력이 조금 낮은 건 휘발유 품질에 따른 출력 편차를 줄이기 위한 세팅 때문으로 추측된다. 국내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ATS와 CTS의 2.0L 터보 엔진은 고급 휘발유에 최적화되어 있다.

변속기는 북미와 국내 사양이 다르다. 북미에서는 아이신제 8단 자동을 사용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전처럼 보령 공장의 6단 자동을 얹는다. 국내 도로 환경에는 이 조합이 효율 면에서 더 유리하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개선을 거쳤다는 게 한국GM 측의 설명이다. 한국GM은 이전 변속기를 1세대, 신형 변속기를 3세대로 구분하고 있다. 3세대 변속기는 뷰익 리갈에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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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차는 말리부 2.0 터보 모델. 엔진은 굉장히 정숙하다. 회전수를 올렸을 때도 소음과 진동이 최대한 억제되어 있다. 배기 사운드는 물론 터보차저 특유의 사운드도 거의 들을 수 없다. ‘고성능’이 아닌 ‘다운사이징’ 엔진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가속 감각은 굉장히 사납다. 253마력이라는 수치가 고스란히 피부에 와 닿는다. 출력 특성은 영락없는 터보 엔진. 회전수가 무르익으면 힘을 와장창 쏟아낸다. 그러나 출력 상승 곡선에 모난 부분이 없어 운전이 까다롭지 않다. 오히려 아주 통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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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 변속기에 대한 미련은 남는다. 회전수를 띄워야 비로소 제 힘을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속 페달 조작에 따른 반응이 빠릿빠릿하기에 크게 아쉽진 않다. 수동 모드에서는 회전이 제한되는 7,000rpm에서도 운전자의 명령을 기다리고, 다운 시프트 때는 회전수를 보상하기도 한다. 한국GM의 주장대로 이전 6단 변속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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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모드는 따로 없다. 변속기에만 스포츠 모드(L)가 있다. 이 급의 차들이 지닌 드라이브 모드가 대개 기분만 부추기는 용도이기에 별 불만은 없다. 변속기 노브 위에 붙인 수동 변속 버튼 역시 마찬가지. 사용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지만, 이 차의 원래 성격과 용도를 생각하면 트집 잡을 거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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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은 보쉬 R-EPS다. 하드웨어도 좋지만 세팅도 이에 못지않게 훌륭하다. 자잘한 피드백은 거르고 큰 움직임은 명확하게 전달한다. 서스펜션의 성격 역시 마찬가지다. 수축 과정은 부드럽고 이완 과정은 단호하다. 승차감은 부드럽지만 운전 감각이 탄탄하기에 조금 부담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안정적인 감각은 초보 운전자에게 더 중요하다.

가벼운 차체는 온몸으로 느껴진다. 움직임이 아주 경쾌하다. 불필요한 거동이 없기에 고속 안정성도 상당히 뛰어나다. 가장 인상적인 건 꽁무니의 움직임이다. 휠베이스가 긴 편인데도 앞머리를 놓치지 않고 충실하게 따라붙는다. 자세제어 장치는 코너에서 안쪽 바퀴 회전수를 제한해 언더스티어를 확실하게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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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안전장비 또한 말리부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카메라, 장/단거리 레이더, 초음파 센서 등을 이용하는 9개의 능동적 안전장비를 옵션 또는 기본으로 준비된다. 지능형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유지보조 시스템, 긴급제동 시스템, 보행자감지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그것보단 조금 거칠긴 하지만, 지능형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유지보조 시스템을 갖춘 덕분에 앞차와의 거리 및 차선 유지를 차에게 맡길 수도 있다.

중형차 시장 4파전의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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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내 중형 세단 시장은 예전의 활기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을 주도하던 쏘나타와 K5가 안이한 변화를 거듭하는 사이 준대형 세단과 SUV, 그리고 여러 수입차들이 소비자를 조금씩 빼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르노삼성 SM6가 ‘상품성 개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며 이 시장에 불을 지핀 것이다.

신형 말리부는 이 불길을 키울 ‘휘발유’이자 국내 중형차 시장의 판도를 바꿀 기대주다. 가장 크고 가벼운 차체, 짜임새 높은 디자인, 성능과 효율을 모두 만족하는 파워트레인, 다양한 편의 및 안전장비 등의 눈부신 진화를 거쳤기 때문이다. 신형 말리부의 높은 상품성은 실수요자가 더 빠삭하게 꿰뚫고 있다. 사전계약 개시 8일 만에 무려 1만 대나 계약됐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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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민 기자
사진
최진호
제공
자동차생활(www.car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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