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의 완벽한 조화 :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 쿠페 & S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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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에서 S클래스 카브리올레와 SLC를 시승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번에도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을 어김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성을 만족시키는 대형 컨버터블과 감성을 자극하는 경량 로드스터. 그들이 제시하는 새 기준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엔 아직 이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흠집을 낼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S클래스 카브리올레와 SLC. 이 두 차를 타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메르세데스 벤츠만큼 자신에 찬 브랜드가 또 있을까. 또 누가 신형 오픈 톱 두 대를 묶어서 시승회를 열 수 있을까. 어떤 브랜드에게는 하나도 소중할 오픈 톱 모델을 메르세데스 벤츠는 무려 5종이나 만들고 있다. 메르세데스-AMG GT 로드스터의 데뷔가 아직 인데도 말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다양한 모델로 판매량을 늘린다. 높은 가격과 품질, 그리고 희소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벤츠 역시 새 모델을 쉬지 않고 쏟아내며 경쟁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벤츠가 누구보다 많은 오픈 톱 모델을 소유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세를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쟁자들의 도발에 끌려가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 태도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마치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시장을 격렬하게 뒤흔들고 있다.
두 모델의 시승회는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에서 열렸다. 코트다쥐르는 니스, 몬테카를로(모나코), 칸, 생 트로페즈 등으로 이루어진 유럽의 전통적인 휴양지다. 눈부신 해안길과 매력적인 산길, 그리고 세계적인 유적지가 도처에 널려 있다. 우아한 S클래스 카브리올레와 활기찬 SLC를 하나로 엮기에 적합한 장소인 셈. 특히 유럽 귀족들이 사랑했었다는 생장캅페라(Saint-Jean Cap-Ferrat)의 한 유서 깊은 호텔에서 S클래스 카브리올레의 배경을 장식했던 지중해의 석양과 그 순간 주위를 둘러쌌던 공기는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
S-CLASS CABRIOLET
일정은 S클래스 카브리올레의 시승으로 시작됐다. 아침 일찍 찾은 니스 공항 주차장에는 수십 대의 S클래스 카브리올레가 부드러운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빈틈없는 비율. 언뜻 봐선 차급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균형이 뛰어났다. 무엇보다 벤틀리 컨티넨탈 GT 컨버터블, 롤스로이스 던과 같은 경쟁자들처럼 차체를 크게 보이기 위한 억지가 없어서 좋았다. 커다란 크롬 패널이나 무의미하게 부풀린 펜더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정신줄을 놓고선 S클래스 카브리올레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또 만져봤다. 마치 아주 예쁜 핸드백이나 귀한 보석을 발견한 여자들처럼. 프리젠테이션이 곧 시작된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었다. S클래스, 그것도 오픈 버전을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니 오죽 신이 났을까. 비단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시승회는 대개 전세계 기자들을 순차적으로 불러 수일간 같은 일정을 반복한다. 다른 차수 기자들의 행동도 우리와 비슷했으리라. 벤츠 직원들이 가벼운 미소와 함께 우리를 바라보기만 할 뿐, 재촉하지 않았던 이유가 아마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메르세데스 벤츠에게 S클래스 카브리올레는 아주 특별하다. 벤츠를 상징하는 S클래스의 여섯 번째 식구이자, 45년 만에 선보이는 대형 오픈 톱 모델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복귀이지만, 이 장르에 대한 기술과 이해도는 충분하다. 그간 벤츠는 S클래스의 쿠페 버전을 만들며 초호화 컨버터블 시장의 상황을 유심히 살펴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쿠페와 컨버터블의 관계는 아주 긴밀하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이 시장으로 돌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벤틀리와 롤스로이스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그 동안 무시해도 될 법했던 이들이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으니 자존심 강한 벤츠가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다. 벤츠가 CL의 이름을 S클래스 쿠페로 되돌린 것도, 마이바흐를 서브 브랜드로 정리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S클래스 카브리올레의 임무는 제원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자체 크기가 벤틀리 컨티넨탈 GT 컨버터블과 롤스로이스 던 사이를 정확하게 파고들고 있다. 길이와 휠베이스는 각각 5,044mm, 2,945mm(63 4매틱 기준). 벤틀리보다는 각각 238mm, 199mm 길고 롤스로이스보다는 241mm, 167mm 짧다.
이런 경쟁 구도와는 별개로 이들 셋 모두가 시장에서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은 틀림없다. 길이 5m, 휠베이스 3m 안팎의 2도어 쿠페/컨버터블은 이미 멸종했어야 하는 공룡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런 초호화 컨버터블을 양산할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을 지닌 브랜드는 많지 않다. 물론 그 중 가장 독보적인 건 메르세데스 벤츠다. 벤틀리와 롤스로이스는 대형 모델에 특화되어 있지만, 벤츠는 A클래스도 만든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숙한 소프트톱
S클래스 카브리올레는 S클래스 쿠페를 밑바탕 삼는다. 하지만 부품 공유 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전체의 약 40%가 전용 부품이라는 것이 벤츠 측의 설명이다. 다소 의외인 부분은 옆면과 뒷면 디자인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어 펜더와 트렁크 리드 등을 다시 만들었음에도 말이다. 이에 대해 익스테리어 디자인 총괄 로버트 레스닉(Robert Lesnik)은 이렇게 말한다. “형태를 유지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카브리올레는 기능적인 부분도 만족시켜야 하거든요. S클래스 쿠페의 디자인은 원래 카브리올레까지 고려된 겁니다.” 즉, 처음부터 이 둘을 다르게 만들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둘의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이 거대한 컨버터블에 어울리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카브리올레가 훨씬 여성적이다. 톱의 재질과 형태가 다르니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톱을 열면 그 차이는 한층 더 커진다. 차체 옆면에 너울진 아름다운 선들을 뽐내며 아주 우아한 공간을 그대로 드러낸다. 호화 요트 같다는 진부한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톱은 시속 60km 이하라면 언제든 20초 만에 열거나 닫을 수 있다. 리모트 키의 버튼으로도 작동된다. 움직임은 물론 부드럽다. 스스로 톱 적재공간을 확보하는 오토매틱 부트 세퍼레이터도 눈여겨 볼 특징. 트렁크에 짐이 없으면 알아서 파티션을 움직인 후, 톱을 접어 넣는다. 트렁크는 이 상태에서도 골프백 두 개를 실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다.
톱의 표면은 아주 매끈하다. 골격으로 인한 주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완벽주의로 점철된 벤츠가 다른 차도 아닌 S클래스의 톱이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까. 굴곡 잡기가 최우선 목표였다는 롤스로이스 던도 S클래스 카브리올레에는 못 미쳐 보인다. 미안하지만, 이 부분에서 벤틀리 컨티넨탈 GT 컨버터블은 비교대상이 아니다. 벤틀리가 컨티넨탈 GT 컨버터블의 톱 씌운 사진을 극소수만 배포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톱을 씌웠을 때의 실내는 거룩할 정도로 고요하다. 소프트톱이 이 정도로 정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비결은 합성고무, 에어 타이트 등으로 구성된 3레이어 톱과 이중 접합 유리. 현장에서 만난 소프트톱 개발자도 쿠페와 같은 수준의 밀폐감을 실현했다고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레이어가 많아 두껍지만, 톱 무게(50kg)는 E클래스 카브리올레의 그것보다 오히려 10kg 가볍다. 뼈대를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등의 경량 소재로 빚어 무게를 덜어냈기 때문이다.
오픈 상태에서도 벤츠답게 차분하다. 소음과 바람의 유입이 굉장히 적다. 속도를 높여도 머리카락만 기분 좋게 찰랑거릴 정도. 윈드실드의 각도나 크기가 적당하기도 하지만, 바람의 궤적을 비트는 에어캡과 전동식 윈드 디플렉터의 역할이 크다. 목 주위에 따뜻한 바람을 뿜는 에어스카프, 시트와 팔걸이가 뜨거워지는 웜 컴포트 패키지, 12개의 센서와 18개의 액추에이터로 실내 온도를 최적화하는 벤츠 최초의 지능형 공조장치 등 차가운 공기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해줄 장비도 빠짐없이 갖췄다.
실내 구성은 S클래스 쿠페와 거의 같다. 눈에 띄는 차이는 에어스카프와 센터콘솔 안의 톱 작동 버튼 정도. 햇빛과 각종 먼지는 물론 빗물에도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 일부분을 수정할 법도 하건만,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디스플레이 패널과 야들야들한 가죽, 그리고 부메스터 사운드 시스템 등 특유의 고급 장비와 소재를 모두 그대로 사용했다. 물론 S클래스/S클래스 쿠페의 실내를 고스란히 옮겨왔다는 건 S클래스 카브리올레의 큰 장점이다. 디자인, 레이아웃, 소재, 조립품질 등 모든 부분이 경쟁자들을 압도할 만큼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S클래스 카브리올레에서 소프트톱 못지않게 중요한 부품은 또 있다. 좌우 리어 휠 하우스, 롤 오버 바 등과 엮여 있는 트렁크 격벽이다. 특징은 마그네슘과 알루미늄의 이중 패널 구조로 높은 강성을 확보했다는 것. 짐공간 확장을 위해 가운데가 트인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전복시 차체 무게를 모두 버텨낼 만큼 견고하다. 카브리올레가 무게와 비틀림 강성을 쿠페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격벽 덕분이다.
물론 고강성 경량 차체에는 알루미늄 리어 플로어와 SL(R231)을 위해 개발된 알루미늄 중공 주조 맴버도 한몫 하고 있다. 참고로 롤 오버 바는 기존보다 반응이 더 빠른 화약 폭발 방식(파이로테크닉)이다. 그러나 리어 마운트 부근이 협소해진 까닭에 오일압 가변 서스펜션은 옵션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벤츠가 제시하는 새 기준은 ‘균형’
S클래스 카브리올레는 현재 500, 63 4매틱(AMG), 65(AMG) 등 세 종으로 나뉜다. 기자가 이번 시승에서 집중한 건 국내에서 주력 자리를 꿰찰 메르세데스-AMG S63 4매틱 카브리올레. 벤츠 V8 중 가장 강력한 5.5L 바이터보 M157 엔진을 얹은 모델이다. 최고출력(585마력)과 최대토크(91.9kg·m)는 65만 못하지만, 0→시속 100km 가속은 사륜구동 시스템 덕분에 S클래스 카브리올레 중 가장 빠른 3.9초 만에 끊는다. 이는 S63 4매틱 쿠페와 같고 가장 직접적인 경쟁자인 벤틀리 컨티넨탈 GT 컨버터블 V12 모델보다 0.2초 빠른 기록이다.
웬만한 스포츠카보다 뛰어난 가속 성능에도 불구하고 성격은 꽤 온순한 편이다. 변속기도 스포티한 DCT 대신 부드러운 7단 MCT다. 스티어링과 서스펜션의 세팅 역시 마찬가지. 쿠페보다 반응이 한결 나긋하다. 온몸을 자극하는 정통 스포츠카가 아닌, 여유로운 주행도 즐겨야 하는 고성능 컨버터블인 것을 감안하면 아주 합당한 결정이다.
물론 벤츠의 최신 모델 대부분이 그렇듯, 피드백은 빠르고 정확하다. 게다가 S63 4매틱 카브리올레는 엄연히 AMG의 일원이다. 물 위를 떠다니는 느낌의 대형 컨버터블들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타이어가 한계를 넘어설 때마저 아주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사운드도 AMG답다. 컴포트 모드에서는 한없이 상냥하지만, 스포츠 모드에서는 아주 자극적이다. 벤츠 역시 S63 4매틱 카브리올레를 트랙 주행까지 즐길 수 있는 모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는 시승의 대부분을 S63 4매틱 카브리올레가 가진 여유를 즐기는 데 사용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달리기에는 머리 위를 스치는 바람과 반짝이는 해안길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성능에 대한 욕구는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해소됐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벤츠는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대형 컨버터블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아주 독특한 시장이다. 과시욕을 충족시키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벤츠의 접근법은 조금 다르다. 허황된 디자인이나 소재 대신 균형 잡힌 완성도로 승부하고 있다. 물론 벤츠가 제시한 새 기준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그 누구도 흠집을 낼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는 사실이다.
SLC
SLC 시승은 이튿날 오전에 시작됐다. 예상했던 대로 이번 시승회는 S클래스 카브리올레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물론 벤츠의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시승회에 참석한 기자들이 S클래스 카브리올레에 더 집착했을 뿐이다. 사실상 벤츠가 처음 선보이는 것과 다름없는 모델이니 그럴 수밖에. 게다가 ‘S클래스’라는 이름의 무게도 있지 않은가.
SLC로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메르세데스 벤츠가 설마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랬을까?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 벤츠는 SLC를 믿고 있었을 것이다. SLC는 1996년 데뷔 이후 67만 대 이상이 팔려나간 인기 모델이다. 이미 하드톱 컨버터블라는 새 시장을 개척하며 벤츠의 경량 로드스터로서 입지를 단단하게 굳힌 상태다. 즉, 굳이 힘을 실어줄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그만큼 SLC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SLC라는 이름이 다소 생소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SLC는 지난 2012년 데뷔한 3세대 SLK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새 이름은 벤츠의 새 모델명 체계를 따른 결과다. GLK가 GLC로 거듭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름과 생김새는 변했지만 성격은 그대로다. 벤츠 오픈톱 모델 기준에서는 여전히 작고, 가볍고, 스포티하다.
인상은 크게 달라졌다. 앞뒤 램프와 범퍼, 그리고 그릴 정도를 손본 변화인데 이전보다 한결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이제야 제 모습을 찾은 느낌이랄까. 사실 이전에는 2세대 SLK로부터 물려받은 유선형 루프와 남성미를 지나치게 강조한 보디가 조화롭지 못했다. 또한 이번 부분변경으로 최근 데뷔한 나머지 형제들과도 이질감이 없어졌다. 벤츠의 신형 쿠페/컨버터블의 상징인 다이아몬드 그릴도 썩 잘 어울린다.
실내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한층 더 입체적인 보텀 플랫 스티어링 휠과 짧은 전자식 변속레버, 그리고 신형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커맨드) 등이 눈에 띄는 변화의 전부다. 견고한 디자인의 대시보드와 제트 엔진 모양의 송풍구 등 벤츠의 최신 인테리어 스타일링이 미리 도입된 상태였으니 아마 크게 손볼 곳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세한 변화들은 적지 않다. 루프가 열리지 않아 트렁크를 들여다볼 일을 줄여주는 세미 오토매틱 부트 세퍼레이터(트렁크에 짐이 없으면 파티션을 스스로 내린다. S클래스 카브리올레나 신형 SL과는 달리 올릴 때는 수동)의 도입이 대표적이다. 또한 루프를 열거나 닫는 도중 시속 40km까지 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반가운 변화다. 글라스 루프의 명암을 조절하는 매직 스카이 컨트롤이나 동급 최대 크기의 트렁크(225~335L) 등 기존 SLK의 매력들은 그대로다.
스포츠카가 아니라 바람을 가르는 로드스터
현재 SLC에는 다섯 가지 엔진이 준비된다. 국내에는 2.0L 가솔린 터보의 저출력 버전인 200과 고출력 버전인 300, 그리고 V6 3.0L 바이터보의 43(AMG)이 수입될 가능성이 크다. 기자가 이번 시승회에서 경험한 모델은 SLK55 AMG를 대체하는 메르세데스-AMG SLC43. 실린더 두 개와 배기량 2,465cc를 줄여 연비를 약 10% 개선했음에도 이전과 비슷한 성능을 내는, 제대로 된 다운사이징 모델이다.
최고 367마력, 53.1kg·m의 힘을 내는 V6 3.0L 바이터보 엔진은 E400, CLS400 등에 실리던 M276의 스포츠 버전이다. 500의 V8 자연흡기가 400의 V6 바이터보로 대체되고, 다시 고출력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실 중형 이하 모델에서 400 엔진은 조금 더 스포티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대로 두기엔 워낙 포텐셜이 높은데다, 모델 성격에 맞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C클래스나 SLC 같은 콤팩트 모델에서 더욱 그랬다. 사실 SLK55 AMG도 이와 같은 이유로 63용 V8 5.5L 바이터보 엔진(M157)의 변종 자연흡기 디튠 버전인 M152 엔진을 얹었었다.
한편, ‘AMG 43’은 BMW M퍼포먼스나 아우디 S와 같은 스포츠 모델이다. SLC43과 같은 엔진의 C450 AMG도 곧 C43으로 바뀔 예정이다. 엔진 조립은 벤츠가 하지만 검수는 AMG가 담당한다. 이는 메르세데스-AMG의 라인업이 더 화려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AMG는 4기통부터 12기통까지 모든 엔진 라인업을 커버한다.
SLC43의 가속 감각은 굉장히 경쾌하다. SLK55 AMG에 대한 기억이 단숨에 사라질 정도다.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4.7초로 0.1초 줄긴 했지만, 최대토크를 더 빨리 쏟아내기 때문에 운전이 훨씬 더 즐겁다. SLC처럼 빠른 리스폰스가 생명인 모델에게는 아주 중요한 변화다. 물론 이런 느낌에는 항상 적정 회전수를 유지하는 9단 변속기도 한몫하고 있다. 덕분에 터보랙을 느낄 겨를이 없다.
만약 사운드가 C450 AMG 수준이었다면 기자는 SLK55 AMG를 잊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SLK55 AMG의 웅장한 배기음은 그것만으로도 나름의 세계를 구축할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V8 자연흡기 엔진에 비교할 수 있겠냐만, SLC43의 사운드도 결코 실망할 수준은 아니다. 특히 고막을 때리는 고음은 더욱 강해졌다. 분명한 건 M2, M3/M4 등에 얹히는 동급 BMW 엔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스포티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SLC43의 백미는 엔진 반응이나 사운드가 아니다. 바로 핸들링이다. 이전보다 한층 더 빠릿빠릿해진 것은 물론, 코너에서의 한계도 더 높아졌다. 아는 사람들은 안다. 프론트에서 약 110kg을 덜어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SLK55 AMG가 고속도로와 오르막 코너에서만 재미있는 차였다면, SLC43은 어디서든 재미있는 차다.
그러나 주행안정장치(ESP)의 세팅은 여전히 보수적이다. 서스펜션과 변속기의 일부 반응도 마찬가지다. 이토록 생생한 엔진과 섀시를 두고 대체 왜 그랬을까? 아마 이것이 벤츠가 정의하는 SLC의 성격일 것이다. 즉, SLC는 이를 악물고 달리기보단 바람을 즐기는 차라는 이야기다. 벤츠가 생각하는 경량 로드스터는 스포츠카 자리를 무리하게 넘보는 경쟁자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
벤츠 고객과 다른 브랜드 고객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시승을 마친 후 홍보 담당자에게 물었다. “벤츠 고객의 특성이요? 아주 뚜렷합니다. 그들은 완벽주의자에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벤츠의 슬로건은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The best or nothing)’다. 벤츠가 고객을 길들였는지, 고객이 벤츠를 길들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벤츠와 벤츠 고객 모두 완벽을 추구한다는 건 확실하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S클래스 카브리올레와 SLC를 통해서도 이런 철학을 확고하게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그 완벽의 의미가 우리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이성을 만족시키는 대형 컨버터블과 감성을 자극하는 경량 로드스터. 그들은 시장의 기존 기준과는 상반된 접근을 통해 이성과 감성의 완벽한 균형을 꿈꾸고 있다. 허황된 디자인이나 소재가 진정한 럭셔리라고 생각하는 이와 한계를 넘어서는 성능이 제대로 된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벤츠는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그들은 이번에도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킬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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