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을 뒤흔드는 빼어난 완성도, 르노삼성 S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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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6가 데뷔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중형과 준대형 세단 시장의 경계에 서 있는 모델이다. 르노삼성의 주장이 억지는 아니다. SM6는 꽤 설득력이 높다. 중형 세단 시장을 뒤흔들 만큼 합리적이고, 준대형 세단 시장을 위협할 만큼 매력적이다. 이만큼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중형 세단은 정말 오랜만이다.
솔직히 조금 불안했다. 다들 못 달려서 죽은 귀신이 쓰인 사람 같았다. 30여 대의 차가 함께 달리기에는 페이스가 너무 빨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거칠었다. 어찌나 스티어링 휠을 휙휙 잡아 돌리던지, 사방에서 타이어 비명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굽이진 산길이라 마음은 더 불편했다. 미끄러지기 딱 좋은 ‘리버스 뱅크’ 코너도 적지 않았다. 한두 대 사고가 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였다.
여긴 르노삼성 SM6 미디어 시승회. 기자들이 테스트 드라이버로 ‘빙의’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SM6 리어 서스펜션 구조에 대한 설왕설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승회의 공기는 시작부터 뜨거웠다. 트집을 잡으려는 기자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차분해졌다. 한껏 달아올라 있는 논란에 불을 당길 만한 꺼리를 찾을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SM6는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서스펜션에 대한 논란은 그렇게 자취를 감췄다. 그 빈자리는 SM6에 대한 찬사가 대신했다. SM6의 몸놀림은 아주 차분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든든하게 버텼다. 시승회가 사고 없이 끝난 것도 바로 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자를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르노삼성의 태도였다. 시승 코스에 이렇게 거친 와인딩 로드를 넣다니. 마치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직접 확인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시승회를 직선 위주로만 짜는 현대·기아차의 자세와는 딴판이었다. 만약 현대·기아차가 르노삼성과 같은 상황에서 시승회를 열었다면 한반도 끝까지 똑바로만 달렸을지도 모르겠다.
르노삼성의 손길이 닿은 글로벌 프로젝트
SM6는 르노의 기함 탈리스만(Talisman)의 르노삼성 버전이다. 하지만 르노 차에 엠블럼만 바꿔 단 케이스는 아니다. 르노삼성의 손길도 적잖이 닿았다. 르노삼성은 탈리스만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디자인 파트가 좋은 예다. 르노의 핵심 디자이너들로 구성된 탈리스만 디자인팀에 르노삼성 성주완 팀장이 함께했다.
사실 르노삼성은 몇 년 전부터 르노의 기함을 책임지고 있다. 르노삼성이 르노 라구나로 만든 3세대 SM5는 지난 2010년부터 래티튜드(Latitude)로 르노의 기함 역할을 해왔다. 일부 국가에서는 샤프란(Safrane)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기도 했다. 중국에서 탈리스만의 엠블럼을 달고 있는 SM7 역시 현재 둥펑-르노(Dongfeng-Renault) 라인업의 꼭짓점에 올라 있다.
참고로 르노 기함의 역사는 고급 해치백이나 크로스오버 일색이었다. 1983년의 르노 25, 1992년의 샤프란, 2001년의 벨사티스 등이 대표작이다. 하지만 르노삼성과 손을 잡은 이후부터 세단을 내세우고 있다. 르노 스스로 종지부를 찍은 건 이번 탈리스만이 처음이다. 하지만 고급 크로스오버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눈부시게 화려했던 이니셜 파리 컨셉트카와 그 양산형인 에스파스가 이를 대변한다.
피부 안쪽에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첨단 기술들이 집약되어 있다. 가령 SM6는 그들의 최신 모듈형 플랫폼인 CMF-CD를 베이스로 한다. 1,300MPa급 초고장력 강판을 18%나 사용해 무게를 줄이고 강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르노와 닛산의 핵심 모델들이 사용하는 만큼 소음과 진동에 대한 대책도 확실하다. 흡음재 사용량도 기존보다 대폭 늘었다.
앞뒤 서브프레임, 승객실, 엔진룸, 전장 등을 모듈화시켜 개발 및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는 것 또한 눈여겨볼 부분이다. SM6가 화려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가격표를 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런 설계 때문이다. 신형 탈리스만/SM6는 르노의 두웨이 공장, 르노삼성 부산 공장 등 두 곳에서 생산된다.
눈부신 안팎 완성도
SM6는 르노삼성의 변화를 알리는 모델이다. 일단 외모부터가 그렇다. 기존 모델들처럼 느슨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그간의 어떤 국산 중형 세단보다도 존재감이 강하다. ‘삼엽충’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어떤 모델처럼 괴상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독일차처럼 간결하되 힘이 넘치는 스타일링이라고 하면 너무 추상적일까?
하지만 탄탄한 프로포션 만큼은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오버행이 길어 다소 둔해 보이던 기존 프랑스 태생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현대 쏘나타에 비해 길이는 5mm 짧지만, 휠베이스와 너비는 각각 5mm씩 넓고 높이는 15mm 낮다. SM5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실제로도 넓고 낮지만, 보닛과 헤드램프 위치가 낮아 실제 느낌은 한층 더 스포티하다. 점점 올라가던 코끝과 엉덩이를 다시 끌어내리는 건 세계적인 최신 트렌드. BMW 3/4시리즈, 재규어 XE/XF 등이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다. 완만하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과 뒤쪽까지 쭉 뻗은 C필러 쿼터글라스 덕분에 차체도 늘씬하게 보인다.
완성도도 굉장히 뛰어나다. 작정하고 만든 티가 팍팍 난다. 특히 ‘ㄷ’자로 불빛을 밝히는 주간주행등과 납작하게 누른 앞뒤 램프, 그리고 섬세하게 다듬은 라디에이터 그릴이 인상적이다. 보닛과 도어 등에 반듯한 선들을 그어 견고한 느낌도 냈다. 지붕에 보기 싫은 몰딩도 없다. 아우디처럼 사이드와 루프 패널을 레이저 용접으로 붙였기 때문이다. 견인고리도 국산차에서는 흔치 않은 분리형이며, 휠도 동급에서 가장 큰 19인치까지 준비된다.
르노삼성은 SM6를 소개하며 경쟁자로 폭스바겐 파사트를 언급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북미형이 아닌, 유럽형 파사트 말이다. 이는 르노삼성만의 주장이 아니다. 해외 매체들도 이 두 모델을 종종 비교한다. 그런데 SM6은 파사트보다 조금 더 날렵한 인상이다. 신형 폭스바겐 CC가 나온다면 이와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신선한 충격은 실내로도 이어진다. 외모도 그랬지만, SM6는 복잡한 구성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타입은 아니다. 간결한 레이아웃에 뛰어난 디테일로 높은 완성도를 추구한다. 특히 재질과 장비들이 근사하다. 가령 프리미엄 시트 패키지Ⅱ 이상을 선택하면 대시보드 앞면을 포함한 실내 구석구석이 X자 패턴으로 스티치를 넣은 나파 가죽으로 도배된다. 기존 르노삼성 모델은 물론, 국산 중형차에서는 볼 수 없던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센터페시아와 콘솔을 덮은 블랙 하이글로시 패널은 SM6 전용 부품이다. 까다로운 국내 소비자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라고. 당연히 하이패스 내장 룸미러도 한국 시장용이다. 르노와 르노삼성의 긴밀한 협력은 이런 세심한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웰컴 라이트, 스티어링 히팅, 헤드업 디스플레이, 올어라운드 파킹센서 등 사소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들 만한 편의장비들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S-링크’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SM6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든다. 드라이브 모드, 멀티미디어 등은 물론, 시트와 같이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고 있어 차와의 일체감이 높다. 내비게이션의 안내 정보를 헤드업 디스플레이로 전달하기도 한다. 이것저것 만지다보면 차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아직까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역할을 내비게이션과 멀티미디어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S-링크는 그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다. 세로배치 8.7인치 대형 디스플레이 덕분에 조작성이 뛰어나고 화면을 위아래로 2분할해 서로 다른 메뉴를 띄울 수도 있다. 다만 인터페이스는 개선이 조금 필요해 보인다. 특히 내비게이션 화면으로의 강제 복귀가 안 되는 게 문제다. 이에 대해 르노삼성은 안드로이드 기반이기 때문에 업데이트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내비게이션은 선호도가 높은 티맵이며 무손실 음원(FLAC)을 지원하니 S-링크를 선택한다면 13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보스 사운드 시스템 옵션을 함께 고려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S-링크의 막강한 존재감에는 드라이브 모드인 멀티센스의 공도 크다. 멀티센스는 차의 성격과 분위기를 쥐락펴락한다. 스포츠, 컴포트, 에코, 뉴트럴 등 4개의 모드를 지원하는데 스티어링 반발력, 댐핑 컨트롤, 파워트레인 반응 등 운전감각에 관련된 부분은 물론 엔진 사운드, 간접조명 색상, 계기판 디자인, 시트 마사지 작동여부, 공조장치 등 운전환경에 관련된 부분까지 제어한다. 가령 스포츠 모드에선 붉은색 조명, 엔진회전계 중심의 계기판, 증폭된 엔진 사운드 등으로 흉흉한 분위기를 내지만 컴포트 모드로 바꾸면 파란색 조명, 디지털 속도계 등 차분한 분위기로 바뀌면서 시트의 마사지 기능이 켜진다. 모드의 세부 설정을 입맛에 맞게 바꿀 수도 있고, 취향에 맞게 처음부터 구성한 후 저장하는 퍼스널 모드도 있다. 참고로 계기판 디자인은 네 가지, 엠비언트 라이트 색상은 다섯 가지이며 시트 마사지는 반복 속도와 강도 등을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다.
활기찬 가속과 안정적인 거동
현재 SM6는 파워트레인 구성에 따라 세 가지 모델로 나뉜다. 디젤 모델의 출시는 하반기로 예정되어 있다. 1.6 TCe는 최고 190마력, 26.5kg·m의 힘을 내는 1.6L 가솔린 직분사 터보 엔진을 얹는다. SM5 TCE에 올라갔던 엔진과 내용은 같지만, 최대토크가 2.0kg·m 높아졌고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를 내는 시점이 앞으로 당겨졌다. 무엇보다 변속기가 6단 듀얼 클러치에서 7단 듀얼 클러치로 변경됐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2.0 GDe는 2.0L 가솔린 직분사 자연흡기 엔진 사양이다. SM5의 동급 엔진에 비해 최고출력(141→150마력)과 최대토크(19.8→20.6kg·m)가 개선됐고 변속기가 무단(CVT)에서 7단 듀얼 클러치로 바뀌었다. 제원표에 적힌 2.0 GDe의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9.8초. 르노삼성은 경쟁사의 동급 모델보다 가속이 더 빠르다고 자신하고 있다.
반면 2.0 LPLi는 기존과 같은 구성이다. 산소센서와 인젝터만 신형으로 바뀌었을 뿐 SM5 LPLi와 스펙이 고스란히 겹친다. 최고 140마력, 19.7kg·m의 힘을 내며 일반 변속기와 비슷한 D스텝 모드를 지원하는 자트코사의 무단변속기를 달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SM5와 SM7을 통해 선보였던 도넛 봄베. LPLi 모델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시장을 생각하면 여전히 매력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겠다.
시승차는 1.6 TCe와 2.0 GDe. 1.6 TCe는 비교적 활기찬 가속 성능을 자랑한다. 저속부터 풍성한 토크를 쏟아내며 0→시속 100km 가속을 7.7초 만에 마친다. 기어비가 짧고 변속이 빠른 까닭에 터보랙도 거의 느낄 수 없다. 경쾌한 반응도 반응이지만,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떼마다 귓가를 맴도는 바이패스 밸브 작동소리도 적잖이 흥을 돋운다.
반면 2.0 GDe는 편안한 감각을 내세운다. 판매를 견인할 모델이니 지극히 당연한 세팅이다. 2.0L 자연흡기 엔진과 듀얼 클러치 변속기라는 흔치않은 조합이라 저속 토크 보완을 위해 가속 페달을 굉장히 예민하게 설정했지만, 덕분에 초기 발진감이 경쾌해 빠른 반응을 선호하는 국내 실정에 잘 어울린다. 반면 브레이크는 페달을 밟는 깊이에 비례에 제동력이 점진적으로 늘어나므로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변속기의 성격은 두 모델이 비슷하다. 게트락사의 7단 듀얼 클러치는 부드러운 작동감각을 중시한 습식이다. 따라서 직결감과 변속 속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변속 충격이나 소음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드라이브 모드에 따른 변화 역시 마찬가지. 두 모델 모두 스포츠 모드에서는 반응이 빠릿빠릿해지지만, 2단계로 증폭되는 엔진 사운드의 차이는 크지 않다. 사실 현대 쏘나타, 기아 K5 등 직접적인 경쟁자에게서는 기대할 수도 없는 기능이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SM6는 보편타당성을 가장 중시하는 중형 세단 아닌가?
스티어링(R-EPS)은 반응이 빠르고 피드백도 솔직하다. 경쟁자의 스티어링(C-EPS)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앞머리의 움직임도 상당히 활기찬 편이다. 뒤 서스펜션은 접지력 확보와 승차감에 집중한 세팅이다. 잔 진동은 조금 있지만 캐스터 값 변화에 따른 불안한 감각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국내 일부 소비자가 이 구조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건, 순전히 현대·기아차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한때 토션 빔의 특성을 이해한 세팅이 아닌, 독립식과 같이 승차감에 집착한 세팅을 고집하면서 조종 안정성이 떨어지는 차들을 시판한 적이 있다.
탈리스만과 SM6의 뒤 서스펜션 구조가 다른 건 시장 특성에 따른 차이로 보면 된다. 탈리스만은 토 조절용 액추에이터를 달아(4컨트롤) 조종 성능을 강화하고 있지만, SM6는 접지력은 높이되 지오메트리 변화는 최소화하는 ‘Z’자 링크를 추가해(AM링크) 승차감과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참고로 AM링크는 르노삼성이 50억을 투자해 완성한 구조로, 30만km의 내구성을 자랑한다.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뒤흔드는 상품성
절치부심, 권토중래. 르노삼성은 SM6 발표회를 이 두 개의 사자성어로 시작했다. 재도약을 위해 힘든 시간을 참고 자신을 갈고 닦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말한다. SM6는 르노삼성의 미래와 성공 의지를 담은 모델이라고, 국내 시장 판매 3위 탈환의 열쇠가 되어 줄 모델이라고.
‘SM6’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SM6는 중형 세단과 준대형 세단 시장의 경계에 서있다. 즉 쏘나타, 그랜저, K5, K7 모두와 경쟁하겠다는 이야기다. 다소 억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기자도 다소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SM6는 꽤 설득력이 높다. 중형 세단 시장을 뒤흔들 만큼 합리적이고, 준대형 세단 시장을 위협할 만큼 매력적이다. 이만큼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중형 세단은 정말 오랜만이다.
르노삼성도 바보는 아니다. 자신들의 제품이 가진 경쟁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없었다면 아마 SM5로 선보였을 것이다. 물론 성공 여부는 시장의 반응에 달렸다. 하지만 시작은 좋다. 가격을 공개한지 10일 만에 계약 5,000대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시승회 이후에 이렇게 많은 전화를 받아본 건 처음이다. SM6가 어땠냐는 전화 말이다. 이쯤 되니 그간의 논란이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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