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이름 빼고 뼛속까지 바꾼 혼다 신형 파일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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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못 파는 차, 혼다코리아가 최근 출시한 어코드와 파일럿으로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다. 혼다코리아 관계자는 "3세대 파일럿은 200대, 신형 어코드는 그 이상 계약이 밀려있다"고 말했다. "생산량이 빠듯하고 북미 판매가 급증한 이유도 있지만, 특히 파일럿에 대한 국내 반응이 예상보다 좋아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말이다.

각지고 투박한 이전 세대는 북미와 다르게 국내 반응이 신통치 않았지만 '올 뉴 파일럿'이 외관은 물론 뼛속까지 모두 바꿔버리면서 존재감을 높이는 데 성공한 셈이다. 2003년 1세대, 2009년 2세대에 이어 올해 출시된 3세대 파일럿은 변화에 인색한 혼다가 작정하고 내·외관과 파워트레인 디자인을 일신하고 첨단 기능들을 대거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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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은 최근 선보이고 있는 대개의 SUV 스타일 트렌드를 적절하게 적용했다. 리듬을 강조한 라인과 볼륨으로 스타일은 무던해졌고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여기에 턴 시그널 램프까지 모두 LED로 교체해 고급스러워졌다. 8인승 좌석을 갖춘 대형 SUV답게 풍채도 당당하다. 전 세대보다 80mm 확장된 4955mm의 긴 차체 길이와 20인치 알로이 휠, 그리고 전고를 65mm나 낮춰 큰 체구에도 날렵한 인상이 더 강하다.

혼다는 전고를 낮추고 유연한 보디 라인과 전면 그릴 부를 개선해 공기역학 성능을 20% 이상 높였다고 설명했다. 거대해 보이기까지 했던 이전 세대보다 차체를 늘렸는데도 오히려 작아 보이고 날렵해 보이는 것도 이런 노력의 결실이다. 실내도 통째로 바꿔버렸다. 우드 가니쉬가 넓은 공간을 단단하게 조여 매듯 실내 전체를 감싸 돌게 했고 센터페시아와 콘솔 부, 그리고 계기반과 스티어링 휠 모두 요즘 것들로 채워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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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직한 트립컴퓨터 창을 가운데에 두고 냉각수 온도계와 연료 게이지, 그리고 타코미터를 땅콩 모양으로 배치한 계기반은 디지털 속도계를 중앙 상단에 배치해 간결하게 구성했다. 트립 컴퓨터는 주행, 연비, 오디오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스티어링 휠 리모트 버튼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솎아내는 일이 쉽지가 않다. 취급설명서를 꼼꼼하게 숙지해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콘솔 부 주변도 말끔하게 정리돼 있다. 커다란 콘속박스를 가리고 있는 커버는 이전 모델과 비슷하지만 가볍고 미끄러지기 쉬운 휴대전화 등 잡다한 소품들을 올려놓기에 딱 좋다. 팔걸이가 안전띠를 착용할 때마다 거슬리는 것을 제외하면 시트의 구성도 만족스럽다. 엉덩이와 등 쪽에 밀착되는 느낌, 슬라이딩으로 폴딩으로 자유롭게 공간을 구성할 수 있는 베리에이션은 대형 SUV답게 기능적이고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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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3열을 파일럿은 승객 또는 화물 모두에게 유용한 공간으로 제공한다. 일반적인 배치에도 3열에 충분한 무릎 공간이 확보되고 2열을 젖히면 개구부가 충분하게 확보돼 타고 내리기도 쉽다. 3열에 사람이 타도 확보되는 트렁크 공간이 467ℓ나 되고 바닥을 평평하게 젖혀 놓으면 무려 2376ℓ의 엄청난 공간이 나온다.

파워트레인은 284마력의 최고 출력과 36.2kg·m의 최대 토크 성능을 발휘하는 V6 3.5ℓ 직접 분사식 i-VTEC이 탑재됐다. 복합연비는 8.9km/ℓ (도심 7.8km/ℓ, 고속도로 10.7km/ℓ), 동급 최고 연비라고는 하지만 고배기량의 휘발유 엔진답게 조금 거칠게 운전을 하면 쉽게 볼 수 없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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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타입의 휘발유 엔진은 세단과 다름없는 쾌적한 승차감과 직관적인 주행 성능을 보여준다. 6단 자동변속기가 아쉽기는 하지만 속도의 상승이 꽤 빠르게 이뤄지고 일관성도 있다. 최대토크의 시작점이 4750rpm부터 시작하지만, 출발을 하는 순간부터 차체를 밀어내는 힘은 부족하지 않다. rpm이 상승하는 만큼 속도가 따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험로를 달리 지는 않았지만, 신형 파일럿에는 눈길, 진흙 길, 모랫길 등을 스스로 인지해 최적의 주행 안전성을 제공하는 지능형 지형 관리 시스템도 탑재됐다. 여기에다 응답성과 토크 용량이 향상된 i-VTB 4(지능형 전자식 구동력 배분 시스템)까지 적용돼 바닥에서 전달되는 매끄럽고 안정적인 차체 거동 느낌이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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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장력 강판 및 고장력 강판 비율을 55.9%로 늘리고 에이스 보디로 불리는 프레임은 견고한 하체 능력을 보여준다. 선회 시 디퍼런셜의 완벽한 토크 배분까지 느껴지면서 아무리 거칠게 운전을 해도 차체 자세가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리 SUV 수요가 늘어나도 일본산 모델은 수혜를 입지 못했다. 휘발유가 약점이 됐고 얄밉도록 겉모습을 잘 꾸민 유럽산 경쟁 모델의 세련미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 컸다. 그런데도 혼다코리아가 물량 걱정을 할 정도로 파일럿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디젤차에 대한 피로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전 세대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버린 덕분이다. 5390만 원이면 동급 외산 차와 가격 경쟁력도 충분하다.

총평
차체 자체의 진동이나 소음은 만족스럽지만, 고속에서는 풍절음이 꽤 들린다. 차급에 어울리지 않는 팔걸이는 안전띠를 맬 때마다 접거나 들춰야 하고 스티어링 휠 리모트 컨트롤러로 이런저런 기능들을 사용하거나 정보를 끄집어내는 일도 간단치가 않다. 중복되는 기능들을 정리해 간결하게 배치하고 접근성도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흥식 기자 reporter@autoherald.co.kr
제공
오토헤럴드 (www.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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