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 Natural Luxury, 볼보 XC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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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볼보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스칸디나비아는 무엇일까? 북유럽 국가들을 일컫는 ‘스칸디나비아’는 상당히 익숙한 단어지만, 이 국가들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51년 영국에서 북유럽 가구 전시회를 열 때만 해도 존재감을 발산하지 못했고, 잠시 유행을 타기도 했지만 곧 잠잠해지고 말았다.
이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리먼 사태 이후로, 북유럽 국가들이 리먼 사태의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이유가 제일 크다. 사실은 디자인보다는 이를 통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공동영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볼보에서 제작하는 자동차는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담고 있을까?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볼보의 고급 SUV인 XC90에 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과 안전을 생각하는 볼보의 철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내리기가 싫어질 정도로 말이다.
처음부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너무 강조하는 것 같지만 이 외에는 다르게 표현할 단어가 없다. 만약 1세대 XC90의 디자인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토마스 잉엔라트’가 다듬은 2세대 XC90의 차체 라인이 우아하면서도 기교가 거의 없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보닛부터 윈드실드, 루프를 가로질러 테일게이트 하단까지 떨어지는 라인이 자연스러워 마치 한 덩어리의 수석으로 이루어진 차를 보는 듯하다.
펜더와 휠하우스를 강조하는 라인 외에는 눈에 띄는 라인이 없다 보니 사각형의 프론트 그릴과 존재감을 강조하는 볼보 특유의 엠블럼(센서와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이 강조된다. ‘토르의 망치’라 불리는 독특한 주간주행등을 품은 LED 헤드램프, 프론트 범퍼를 장식하는 에어 인테이크가 자연스러운 중후함을 만들어낸다. 후면 양 끝을 장식하는 C자 형태의 테일램프는 차체 라인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도어를 열고 탑승하는 순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대시보드 상단의 라인은 운전석 계기반을 따라 자연스럽게 상승했다가 서서히 하강하는데, 기교를 부리지 않았음에도 아름답다. 가죽과 나무, 알루미늄을 이용해 실내를 장식했는데 특히 가죽 사이사이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무는 질감을 살리면서도 부드럽게 다듬어 고급 가구를 만지는 느낌을 준다. 대시보드 상단과 도어 일부에 적용된 알루미늄으로 오디오 스피커를 감쌌다.
XC90의 실내에서 가장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세로로 긴 형태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마치 태블릿 PC를 보는 듯한 이 시스템은 터치와 스와이프를 통해 다양한 기능을 조작할 수 있어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 버튼을 7개로 줄였을 뿐 아니라 세로로 긴 형태로 인해 주요 기능을 빠르게 조작할 수 있다. 처음에는 많은 기능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 번 익히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능들을 조작할 수 있다. 애플 카플레이도 사용할 수 있는데 큰 화면으로 인해 실행 도중 다른 기능을 조작하기 위해 홈 화면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풀 LCD를 적용한 계기반은 다양한 기능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주행 모드에 따라 각각 다른 계기를 표시해 시인성을 향상시켰다. 새로 디자인한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고급 가죽을 적용해 그립감이 우수한 것은 물론 좌우 버튼이 커서 주행 중에도 버튼을 보지 않고 주요 기능을 조작하기가 쉽다. 고급 가죽을 적용한 시트의 착좌감은 의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2열 시트의 등받이 각도도 조절할 수 있다. 단 3열 시트는 성인이 장시간 앉기에는 무리인데 4인 가족이 주로 탑승하게 되고 3열은 트렁크로 사용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국내에 수입되는 XC90의 파워트레인은 디젤, 가솔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3가지이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2.0L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T6 모델로 배기량은 적지만 수퍼차저와 터보차저를 조합해 최고출력 320마력, 최대토크 40.8 kg-m을 발휘한다. 터보 래그는 존재하지 않으며 8단 자동변속기와 4륜구동 시스템이 상황에 따라 출력을 적절히 분배해 주기 때문에 섬세한 가속 페달 조작 없이도 고출력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 낮은 배기량으로 인한 저렴한 세금은 덤으로, 2.0L 엔진까지만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이라면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다.
프론트 더블 위시본, 리어 멀티링크 구조의 서스펜션은 승차감 위주로 세팅되어 노면 충격을 많이 걸러내면서 편안함을 제공한다. 출력이 높은 만큼 역동적인 고속 주행도 가능하지만 차고가 높은데다가 코너에서 언더스티어가 약간 발생하는 만큼 공도에서는 자제가 필요하다. 엔진 회전을 높여도 주행 본능을 자극하는 사운드는 발생하지 않는데다가, 만약 다양한 전자장비를 기본으로 작동시키고 있다면 자동차가 운전자를 스스로 자제시킬 것이다. 물론 전자장비를 끄면 포악해지는 것은 변함없다.
전자장비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XC90의 전자장비들은 대부분 안전에 초점을 맞추고 세팅되어 있다. 일례로 차선 유지 시스템의 경우, 방향지시등 조작 없이 차선을 이탈하게 되면 스티어링을 통해 강한 저항을 걸어온다. 물론 무시하고 조작하면 돌릴 수 있는 수준이고 방향지시등을 작동시키면 저항은 없지만, 그만큼 안전한 주행을 강조하는 볼보의 철학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 XC90에 탑재된 ‘인텔리세이프’는 기존 ‘시티세이프티’보다도 개념이 확장됐는데, 차량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앞 차량이 급정지를 할 경우 경고음과 함께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며, 측면에서 다가오는 자동차가 있을 경우 사이드 미러의 바깥 부분을 주황색으로 물들이면서 경고한다.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것을 감지하면 즉시 탑승객의 안전벨트를 강하게 당겨 신체를 시트에 단단히 고정시킨다. 시승 중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볼보의 안전 중심 기술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졌다.
고속도로 주행이나 정체 시 운전자의 피로를 약간 덜어낼 수 있는 ‘파일럿 어시스트’는 속력을 설정해 두면 앞 차와 자동으로 거리를 맞추어 가속과 감속을 진행하고 차선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운행할 수 있는 반 자율주행에 가까운 시스템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해 보면 급격한 코너나 좌우 방향이 다른 코너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주행 중 다른 자동차가 차선 변경을 진행할 경우 이를 감지하는 것도 약간 늦다. 도로 상태에 따라서 급격한 코너가 아님에도 차선을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은 자율주행이 아니라 편안한 운전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고 항상 상황을 주시하는 것이 최고의 안전임을 명심해야 한다.
XC90은 스칸디나비아의 느낌을 가득 담고 있는 것은 물론, 안전을 중심으로 그 위에 고성능을 얹으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보여줬다. 시승 전에는 최첨단의 정수라고 생각했던 센터페시아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직접 다뤄보니 간결함과 단정한 디자인을 중시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산물이었다. 자연스러운 고급스러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지금, XC90은 타인에게 권하는 자동차가 아닌 소유하고 싶은 자동차가 되었다. 내일이면 이별하게 될 XC90과의 마지막 밤은 바우어스 앤 윌킨스 오디오가 재생할 ‘아바’의 노래와 함께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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