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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 푸조 3008, 눈길 정복을 위한 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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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푸조가 신형 3008을 출시한 후 몇 달 뒤에 따로 촬영하여 공개한 사진으로, 사진 속의 3008은 알프스 산맥의 눈이 쌓인 길을 거침없이 주행하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또 소복이 쌓여 있는 길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도 사진이었지만, 과연 3008이 그 정도의 눈길 주행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당시 사진을 확인한 것이 한국에서는 봄이 저물어가는 시점이었으니 언젠가는 그 능력을 확인해주겠다고 다짐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도 매서운 겨울이 왔지만 눈이 내리는 일이 별로 없어서 좀처럼 기회가 없던 상황이었다. 며칠 전 눈이 내리는 것을 본 기자는 당시 다짐했던 것이 떠올랐고, 며칠 뒤 3008과 함께 산에 오르게 되었다. 본래대로라면 누구든지 동행하는 것이 좋지만, 어째서인지 혼자서 산에 오르게 된 상황. 트렁크에 삽과 모래라도 챙겨가야 될 것 같지만, 본래 이렇게 충동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무계획으로 아무것도 준비 안한 채 진행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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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넘도록 고속도로를 달린 후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통행량이 별로 없는 시골 도로를 질주한다. 이곳까지는 제설이 잘 되어 있고, 포장도로이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 없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고 시골 특유의 좁은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긴장이 온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과연 어떤 도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포장길을 벗어나 잠시 주행하면서 목적지인 임도에 진입하니, 눈이 내린 후 타이어 자국은커녕 발자국조차 나지 않은 임도가 3008을 반긴다. 문이 열려 있는 입구를 지나면서 긴장감이 더해진다.

 

그립컨트롤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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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3008은 도심형 SUV이다. 현재 푸조의 라인업에서는 어떤 엔진을 탑재하든 4륜구동 모델은 없으며 모두 전륜구동으로 통일되어 있다. 3008의 주 무대를 생각하면 납득할 만한 일이고, 실제로 현재 도심형 SUV를 표방하는 모델들 중에서는 4륜구동을 지원하지 않는 모델들도 상당히 많다. SUV의 주행 능력보다는 허리를 굽히지 않고도 탑승이 용이하거나 아이를 태우기 쉬운 점, 넓은 트렁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실용성이 주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8은 임도 주행 능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외칠 수 있는 것은 푸조의 SUV 모델들(2.0L 엔진 제외)이 ‘그립컨트롤’이라는 특별한 제어장치를 장착하고 있기 때문으로, 5가지 지형에 따라 주행과 출력의 제어 방식을 바꿀 수 있다. 그립컨트롤은 간단히 말하면 일종의 TCS라고 할 수 있는데, 본래 보쉬에서 개발한 것이지만 후륜구동용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푸조에서 전륜구동에 맞추어 개선을 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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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는 3008을 개발할 때 이 그립컨트롤의 제어 로직 개발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실제로 눈길 등 다양한 길을 주행하면서 지형마다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했고, 여기에 맞춰 타이어도 3008에 맞춰 개발하도록 했다. 컨티넨탈이 개발한 타이어는 3008 전용으로 일반도로는 물론 다양한 임도 주행 환경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고 한다. 외형만 SUV다운 차가 아닌, 주행 능력도 겸비하고 있는 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발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다카르 랠리의 참가 경험이었다. 일반적으로는 4륜구동 레이스카가 참가하는 다카르 랠리에 푸조는 미드십 방식의 레이스카로 참가했고, 이를 통해 두 바퀴로 거친 도로를 정복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러한 경험을 양산차에 얼마나 녹일 수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른 일반적인 전륜구동 자동차보다는 확실하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실제로 검증할 차례다.

 

생각보다 어렵지만 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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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에 사용한 3008은 일전에 시승했던 것과 동일한 모델로 PSA그룹에서 푹 넓게 사용되는 블루HDi 1.6L 디젤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20마력, 최대토크 30.6 kg-m을 발휘한다. 고성능을 발휘하는 2.0L 엔진이 더 좋겠지만, 그립컨트롤은 1.6L 모델에만 적용되어 있으므로 선택권이 없다. 푸조는 2019년 즈음에 PHEV를 기반으로 하는 4륜구동 3008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때는 또 다른 테스트를 진행해 볼 예정이다.

 

눈길에서는 출발부터 조심해야 한다. 만약 자동변속기 적용 모델이라면 처음에는 가속 페달을 밟지 말고 자연스럽게 출발하기를 기다렸다가 움직임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이 때 조심할 것은 한 번에 많은 양을 밟기보다는 속력에 맞춰 조금씩 전개해 나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기어를 수동 모드로 맞춘 후 2단에서 출발하면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눈길에서는 오히려 약간 미끄러지는 것이 주행 능력을 더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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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후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밟아가며 조금씩 전진한다. 가속 페달을 유지하고 있으니 앞바퀴에서 조금씩 슬립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립컨트롤이 동력을 제어하고 타이어가 조금씩 눈을 낚아채면서 능선을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다. 전륜구동이기 때문에 뒷바퀴의 힘을 전혀 빌릴 수 없어 오르막에서는 아무래도 불리한 면이 있지만, 꾸준히 전진하는 모습이 믿음을 준다. 그렇게 전진하다 보니 어느 새 조금 더 가파른 능선이 나타났다.

 

첫 번째 시련이 여기에서 발생했다. 능선을 올라가던 3008의 주행 속력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제자리에서 헛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뒤로 약간 후진했다가 다시 전진해보지만, 다시 그 자리에서 헛발질만 한다. 근처에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모래도, 나뭇가지도 없고 휴대폰에서는 안테나가 감지되지 않는다. 여기서 도심형 SUV의 한계를 체험하고 조난당하는가 싶었던 그 순간,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한 가지를 실현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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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3008을 상당히 먼 곳까지 후진시켰다. 거리 상 대략 100~150M 지점까지 온 후 그곳에서부터 출발해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중간에 있는 약간의 곡선은 가속 페달을 약간 풀고 스티어링 조작으로 대응하면서 돌파했고, 그대로 속력을 유지하면서 올라가자 헛발질만 했던 지점을 가볍게 돌파할 수 있었다. 눈길에서는 주행 속력을 침착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몇 번의 위기를 돌파하면서 3008의 눈길 주행 요령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절대적으로 유지해야 할 것은 속력과 가속 페달을 밟는 깊이이다. 약간의 슬립은 허용하지만, 엔진 회전수를 높이면 안 된다. 그렇다고 주행 속력을 떨어뜨리는 것도 안 된다. 최소 10km/h 이상 유지하면서 코너를 스티어링 조작으로 대응해야 한다. 약간 깊은 코너가 나타난다면 가속 페달을 약간 풀 수는 있지만 완전히 발을 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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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조작은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해야 하고, 중앙 정렬을 항상 몸으로 기억해야 한다. 다행인 점은 3008이 지름이 작은 스티어링 휠을 적용하고 있어 빠른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앞바퀴의 상황이 스티어링을 통해 직관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덕분에 스티어링을 방향에 맞춰 꺾고 있다가도 반응이 오는 순간 이를 감지하고 재빠르게 중앙 정렬을 할 수 있다. 조향도 주행도 모두 앞바퀴가 담당하는 만큼 스티어링의 반응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눈길을 돌파해야 하니 속력을 줄일 수는 없고, 눈에 감춰진 둔덕과 만날 즈음에는 아무래도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주행 속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충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본래 푸조의 서스펜션 기술이 수준급에 올라와 있긴 하지만, 실제로 체험해보니 그 능력이 일품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SUV이기 때문에 일반 세단보다는 훨씬 높은 최저지상고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도 눈길 돌파에 자신감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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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멈추지 않고 돌파하는 ‘스웨덴 랠리’의 기분을 느낄 때 즈음, 전체 코스의 2/3지점에 있는 평지에 도착했다. 다행이 이곳은 눈이 쌓이지 않았고, 이곳에서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리가 꽤 되는 눈길을 정복했다는 것이 보인다. 윈터타이어도 없이, 4륜구동도 없이 이 긴 길을 돌파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인 3008의 성능을 제대로 체험했다는 느낌이다.

 

처음의 목적은 코스 종단이었지만, 3008의 눈길 여정은 여기에서 끝났다. 그 뒤로 있는 길에는 눈이 너무 깊게 쌓였고, 순정 상태인 3008로는 도저히 돌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정도 길이라면 임도 주행에 특화된 몇몇 SUV 모델 외에는 돌파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도심형 SUV인 3008로써는 이 정도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제 온 길을 되돌려 산을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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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3008에는 원활한 하산을 돕는 기능인 HDC가 있다. 기어를 N에 맞춘 뒤 HDC를 작동시키면 10km/h 이하의 속력으로 천천히 내려오는데,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제어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효율로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고 눈길에서도 정확하게 작동한다. 이 기능 하나만으로도 눈 쌓인 산길에서 내려오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니 임도의 입구를 알리는 문이 보였고, 가볍게 내려와 일반도로를 디딜 수 있었다.

 

3008의 그립컨트롤은 만능의 다이얼은 아니다. 그러나 운전자에게 약간의 운전 실력만 있다면, 이를 살려줄 수 있을 정도가 된다. 3008에 적용된 타이어 역시 마찬가지로 눈길을 거침없이 돌파할 능력은 주지 못하지만, 긴급 상황 또는 약간의 눈이 쌓인 임도를 주행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 주로 사용하는 도구는 되지 못하지만 위급 시 긴급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보조 도구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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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3008이 그립컨트롤을 적용한 것은 운전자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것과 동시에 실질적으로도 운전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보조장치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신세계를 탐험하러 떠날 수는 없지만 급작스럽게 신세계와 마주치게 되면 그곳을 탈출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든든한 보조 장치가 바로 그립컨트롤이다. 그 장치의 유용함은 눈길에 새겨진 주행의 흔적이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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