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 페라리 488 스파이더 시승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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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비현실적이지만 직접 겪은 이야기다. 페라리에 탑승해 인제 서킷을 달리는 것이다. 높은 가격과 희소성으로 인해 스티어링만 잡고 있어도 저절로 긴장감이 돌 수밖에 없는 페라리를 자연스럽게 고속을 낼 수 밖에 없는 서킷 안에서 운전하는 것이니 그 부담은 곱절을 넘어 최소 5~7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게다가 판매되는 미드십 모델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한국의 현실에서 미드십 스포츠카를 시승한다는 것도 긴장을 부추킨다.
글 : 유일한(글로벌오토뉴스 기자)
그나마 약간 다행인 것은 준비된 페라리가 ‘라페라리 아페타’와 같은 한정판 모델이 아니라는 것 정도일까. 그나마 페라리의 대중화(?)를 지향하고 있는 양산형 모델, 488 스파이더라는 것이 아주 약간은 부담을 덜어준다. 만약 아페타의 운전석에 올랐다면, 그다지 담력이 세지 않은 기자로써는 인제 서킷에서 주행을 해 볼 시도도 못하거나 설령 주행을 한다 해도 타이어에서 스키드음이 들리는 순간 주행 속력을 떨어뜨려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양산형 모델이라고 해도 페라리는 페라리다. 게다가 페라리는 연간 판매대수를 제한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제조사이기도 하다. 비록 2017년에는 8,000 대가 넘는 자동차를 판매했고 2018년에는 9,000대, 앞으로 10,000대를 초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환산해보면 상당히 미미한 숫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 중에는 일반적인 488의 모델 뿐 아니라 개인 주문 모델도 있고 한정판 모델도 있다.
그리고 페라리가 특별한 것은 차량에 적용된 거의 모든 기술이 F1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페라리의 탄생 때부터 정해진 일이었는데, 설립자인 엔초 페라리가 처음부터 F1 머신을 개조해서 판매하는 것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뒤 페라리가 점점 커지면서 다양한 자동차들을 제작했지만, F1 머신을 기반으로 하는 제작이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스티어링에서 손을 떼지 않고 주행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부터 그렇다.
그러한 특별함을 받아들여, 이번에 시승하는 488 스파이더에도 F1에서 응용된 기술이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서킷에서 본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잘 다룰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렇다 해도 모처럼 찾아온 기회인 만큼 그대로 거절하기에는 정말 아깝기도 하다. 온전한 한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계 그 끝자락 정도는 잡아보자는 생각을 가져 본다.
페라리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차체 굴곡은 아마 사진으로는 상당히 느끼기 힘들 것이다. 사진만으로는 매끈한 표면이 강조되지만 실제로 보면 차체 곳곳에 공기역학을 고려한 라인과 굴곡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페라리가 특별한 모델이라는 것은 전면에서 아주 잘 나타나 있는데, 프론트 범퍼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에어 인테이크만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헤드램프는 세로로 긴 형태로 차체의 보닛 라인을 따라 자리잡았다.
프론트 범퍼는 언뜻 보면 일체형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하단이 범퍼가 아니라 프론트 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F1의 공기역학 기술이 그대로 녹아있는 것으로,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프론트를 고속에서 지면에 밀착시키고 있다. 측면에서는 리어 펜더 상단에 위치한 에어 인테이크가 눈에 들어온다. 458 이탈리아부터 이어지는 것으로, 488에서는 그 형상이 약간 변했지만 이를 통해 측면을 상대적으로 깔끔하게 다듬어내고 있다.
개방되는 루프는 두 조각으로 개방 시에는 통째로 뒤집히면서 뒤에 마련된 공간에 수납된다. 루프를 열었을 때도 자연스러운 주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최대의 장점으로, 상대적으로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실내로 들어오는 바람은 그리 춥지 않아 동승자와 대화도 가능하다. 이번에는 서킷을 주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루프를 강제로 닫아야 한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사이드스커트는 하단에서 돌출되어 있긴 하지만 탑승에 영향을 주지는 않으며, 의식할 필요도 거의 없다.
리어는 전형적인 페라리의 그것이다. 방향지시등과 브레이크램프 그리고 후진등이 통합된 형태의 원형 테일램프는 페라리의 존재감을 배가시킨다. 리어가 워낙 좌우로 넓어 허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테일램프 주변과 리어 중앙에 자리잡은 에어벤트들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을 접게 될 것이다. 리어 범퍼 하단에는 F1에서 영감을 받은 대형 디퓨저가 있고, 그 사이에는 F1 머신의 브레이크 램프에서 영감을 얻은 후방 안개등이 위치한다.
그 동안 ‘운전자에게 집중되어 있는 실내’라는 문장을 상당히 많이 사용한 것 같지만, 페라리 앞에서는 그것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특히 488 스파이더가 되면 운전석은 물론 대시보드 형태, 심지어 송풍구마저 운전석에 집중되도록 만들어져 있어 더 그렇다. 탑승하고 왔던 GTC4 루쏘 T는 이 차에 비하면 평범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센터페시아라는 개념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센터콘솔 조차도 변속 버튼과 비상등, 윈도우 조작 스위치만을 위한 최소한의 폭만 있다. 탑승 시 동승자와 어깨가 부딪히지 않는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래서 탑승 공간이 불편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 처음 문을 열고 착석했을 때는 높이가 낮아서 수월한 탑승이 힘들었는데, 이것 역시 적응되면 상당히 편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시트가 의외로 편안하다는 것. 분명히 역동적인 주행을 위해 버킷 시트를 적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앉으면 딱딱해서 엉덩이 또는 등이 배긴다든지 하는 느낌이 없다. 이 정도라면 488 스파이더를 일상적인 출퇴근에 사용한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 트렁크는 차체 앞부분에 위치하는데, 아주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마트에서 장을 봐 올 정도는 될 것이다.
계기반 중앙에는 아날로그 방식의 원형 회전계가 있고, 좌우에 LCD 계기가 나누어져 있다. 오른쪽 계기에서는 애플 카플레이를 사용할 수 있는데, 페라리 자체에는 네비게이션이 없지만 이를 통해 스마트폰의 네비게이션을 사용할 수 있다. 어느 새 페라리도 편의장비를 챙기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능을 모두 집약한 스티어링 휠에서는 스타트 버튼과 페라리에서 ‘마네티노 스위치’라고 부르는 주행 모드 조작 스위치가 있는데, 일반 주행 모드가 ‘스포츠’이다. ‘컴포트’를 마련하고 있는 GTC4 루쏘 T와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엔진은 488 GTB와 공유하는 3.9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이다. 변속기는 7단 DCT로 과거 수동변속기를 사용했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발전한데다가 변속 또는 클러치 조작을 실수하여 시동을 꺼뜨리게 되거나 오버레브로 엔진을 깨트리게 될 일도 없어졌다. 페라리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서킷을 주행하는 것이니 그런 점에서는 약간 안심도 된다. 특히 일반도로에서 주행하면서 488 스파이더의 스키드음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운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헤어핀을 갖고 있는 와인딩 코스라고 해도 그렇다. 만약 그런 곳에서 스키드음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주행한다면, 운전의 쾌감을 느끼기 이전에 경찰하고 먼저 마주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 깊은 산 속의 와인딩 로드라고 해도 조용함을 즐기던 자연인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들어 112를 누를 것이니 말이다.
간단하게 서킷에 대한 교육을 받고 운전석에 올랐다. 주행 모드는 스포츠로 맞춰져 있지만 긴장감은 레이스 수준. 본래대로라면 기어 변속 모드를 수동으로 맞춘 뒤 패들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했어야 했지만, 서킷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조향에 집중을 하고 있어 변속까지는 신경 쓰지 못하고 자동변속 모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스포츠 모드라고 해도 가속 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변속 시점을 상당히 높게 잡아주기 때문에 서킷에서 역동적인 주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막강한 성능을 갖고 있는 만큼 서킷에서도 스키드음을 듣기가 쉽지 않다. 마음 속으로는 출력을 이기지 못하고 타이어가 계속 흰 연기를 내뿜으면서 미끄러지는 것을 생각해도, 어느 새인가 작동하는 전자장비들이 이것을 모두 제한해 버린다. 미약하게나마 스키드음을 들을 수 있는 부분은 헤어핀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을 때 그리고 직선을 고속으로 주행하던 중에 코너 직전에서 강한 브레이크를 밟을 때 뿐이다. 그조차도 실내에서는 그리 크게 들리지 않는다.
서킷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으면, 488의 안정감이 상당히 크게 느껴진다. 일반적인 자동차라면 들려올 법한 차체가 조금씩 비틀리는 소리, 내장재가 마찰하는 음색도 들리지 않는다. 미드십 차체가 주는 막강한 안정감에 고성능의 타이어, 브레이크까지 합세하고 있으니 코너에 뛰어드는 데 있어서 어느 새 불안감이 사라진다. 분명히 페라리 자체의 성능이긴 하지만, 그 성능을 운전자의 능력으로 착각하게 만들 만큼의 쾌감을 제공한다.
스키드음 대신 느껴지는 것은 신체에 가해지는 횡가속이다. 시트 포지션을 제대로 맞추고 있어도 좌우로 전해지는 강력한 흔들림을 제어하기가 힘들다. 왼 발에 간신히 힘을 주면서 어떻게든 엉덩이를 시트에 붙여야 그나마 제어할 수 있다. 서킷을 질주하는 시간은 20분 밖에 되지 않는데, 온 몸에서는 열과 땀이 흐른다. 심지어 에어컨을 켜고 질주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이 상태로 기본적으로 1시간 정도의 레이스를 하는 레이서들이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다.
기본적으로는 막강한 출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코너를 탈출해 가속한다면 브레이크를 밟기 직전까지 직선에서 200km/h 이상은 손쉽게 달성할 수 있다. 몇 번의 실수 끝에 기자가 기록한 최고속력은 240km/h. 이 상태에서도 브레이크를 걸어서 속도를 순식간에 80km/h 정도로 줄이기까지 드는 거리는 100m를 약간 넘기는 정도이다. 모든 것이 그저 레이스만을 위해 다듬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마치 서킷에서 UFO를 타고 있다는 느낌이다.
서킷 주행이 되고 나서야 에어로파츠들도 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직선에서 가속 페달을 밟아 속력을 올리니, 100km/h 부근에서 DRS 메시지가 계기반에 등장한다. F1에서는 리어윙을 조정해 에어로파츠를 잠시 희생시키는 대신 가속을 얻는 능력인데, 언뜻 뒤를 보아도 리어윙이 조정되는 기색은 없다. 나중에서야 안 것이지만, 488에서의 DRS는 리어윙이 아니라 디퓨저에 있는 에어로파츠가 움직이면서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한다. F1의 기술은 알게 모르게 488 차체 곳곳에 적용되어 있다.
일반도로에서는 그 힘을 다하지 못할 거 같은 488 스파이더는 서킷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일반적인 자동차라면 서킷 주행으로 인해 손상을 입는 차체와 타이어, 엔진 등을 걱정해야겠지만, 이 차는 페라리이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하지 않게 된다. 엔진의 오일 순환 방식부터 펌프를 통해 강제로 순환시키는 드라이섬프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것이다. 처음부터 F1과 비슷한 환경을 돌파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자동차인 것이다.
488 스파이더는 분명히 일상용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루프를 열고 가볍게 한적한 도로를 주행할 때도 희열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킷에 들어서서 극한의 주행과 함께 높아지는 소프라노 음색을 들으며 스티어링을 조작한다면, 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페라리 오너에게 필요한 것은 차량을 구매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도 있겠지만 그보다 서킷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페라리에 대한 꿈이 조금 멀어져 보인다. 페라리는 여전히 드림카인 것 같다.
주요 제원 페라리 488 스파이더
크기
전장×전폭×전고: 4,570×1,955×1,215mm
휠 베이스 : 2,650mm
트레드 전/후 : 1,679/1,647mm
공차중량 : 1,595kg
연료탱크 용량 : 78리터
트렁크 용량 : 230리터
엔진
형식 : 3,902cc V8 터보차저 가솔린
압축비 : 9.4 : 1
보어Ⅹ스트로크 : 86.5 x 83 mm
최고출력 : 670ps/8,000rpm
최대토크: 77.5kgm/3,000rpm
트랜스미션
형식 : F1 DCT 7단
섀시
스티어링 휠 : 랙 & 피니언
브레이크 : V.디스크
타이어 앞/뒤 : 245/35 ZR20 / 305/30 ZR 20
구동방식 : MR
성능
최고속도 : 325km/h
0-100km/h:3.0초
최소회전반경 : ---
연비 : 7.5km/L(도심 6.7/고속 9.0)
CO2 배출량 : 233g/km
(작성 일자 : 2018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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