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 '팜므파탈' - 로터스 엑시지 S 시승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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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는 황금 사과를 비너스에게 준 댓가로 ‘헬레네’를 소개받았다. 헬레네의 미모에 빠진 파리스는 유부녀였던 그녀를 데리고 트로이로 도망가고, 이에 격분한 남편 메넬라오스는 영웅들을 모아 트로이를 멸망시켰다. 헬레네는 그 미모로 자신도 모르게 남자들을 홀렸고, 결국 남자들을 파탄에 이르게 했으니 ‘팜므파탈(Femme fatale)’이라고 부를만 하다.
로터스 엑시지 S는 헬레네를 닮았다. 매혹적인 미모를 갖고 있지만, 운전자에게는 전혀 친절하지 않다. 스티어링 휠은 무겁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엔진음은 언제나 시끄러워 결국 오디오를 자연스럽게 끄게 만든다. 타고 내리는 것조차 힘들고, 딱딱한 버킷 시트는 앞뒤로만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운전자들은 그 미모에 빠져 허우적대고, 결국 파탄에 이르게 된다. 머리로는 이성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도, 몸은 이미 반해 있으니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야말로 ‘팜므파탈’이다.
최근 자동차들이 ‘와이드 & 로우’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지만, 적어도 높이 1,129mm에 불과한 엑시지 S 앞에서는 로우를 말할 수 없다. 게다가 폭은 1,802mm에 달한다(사이드 미러 포함). 도어가 있는 사이드는 프론트 브레이크의 열을 뽑아내고 엔진에 필요한 공기의 흡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차폭보다 약간 좁게 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여성의 잘록한 허리를 연상시킨다. 프론트 범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어 인테이크와 리어 범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디퓨저는 공기역학과 효율을 철저히 고려한 산물이다.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을 비롯한 실내의 대부분은 가죽으로 감쌌지만, 의도한 만큼의 고급스러움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로터스 창립 때부터 ‘콜린 채프먼’이 한결같이 외치던 경량화와 약간 멀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그나마 그 위화감이 크지 않은 것은 실내 곳곳에 노출된 알루미늄 섀시 때문이다. 알루미늄 섀시는 마치 어깨와 가슴만을 살짝 노출시킨 여인처럼 운전자를 유혹한다.
차체가 낮고 편안한 탑승을 방해하는 배스터브(bathtub: 욕조) 프레임 구조로 인해 타고 내리기 위해서는 한쪽 다리를 먼저 움직인 뒤 필러를 손으로 붙잡은 채로 힘을 줘야한다. 가죽으로 감싼 버킷 시트는 등받이 각도 조절이 불가능하다. 틸트 스티어링조차 없어 운전자의 체형에 맞춰 스티어링 포지션을 조정하는 것은 무리이며, 사이드미러는 창문을 열고 직접 손으로 조작해야 한다. 차체가 작아서 양 사이드미러까지 손이 닿는다는 것이 위안이다.
그래도 과거와는 달리 전자장비가 몇 가지 추가됐다. 에어콘과 카오디오, 전동식 윈도우, 열선 시트, 크루즈 콘트롤이 있다. 좌측에는 주행 모드를 조절할 수 있는 다이얼이 있고, 센터콘솔에는 수동변속기 대신 버튼식 자동변속기 스위치가 장착돼 있다(자동변속기는 옵션). 약간의 편안함을 운전자에게 제공하면서 시트에 앉기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높이가 낮은 시트에 앉아 시동을 걸면, 결코 조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엔진음이 등 뒤에서 들려온다. 분명히 엔진과 시트 사이는 격벽과 유리로 막혀 있고 카오디오까지 작동시켰는데도 엔진음이 모든 것을 뚫고 귀를 직격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소음을 고려해 배기를 막은 상태라는 것으로, 버튼을 눌러 배기를 여는 순간 더 시끄러운 음색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제자리 회전을 위해 스티어링을 돌리면, 한결같은 힘으로 운전자의 조작에 저항한다. 저항 없이 부드럽게 다루려면, 차체를 앞뒤로 움직이면서 조금씩 방향을 돌려야 한다. 로터스에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런 상황이 되고 나니 자동변속기가 고맙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방향을 맞춘 후 겨우 도로로 나올 수 있었다.
도로에 올라서고 나서도 엑시지 S는 결코 친절하지 않다. 도로에 약간의 굴곡이 있거나 맨홀을 밟게 되면 여지없이 스티어링과 시트를 통해 반응을 가감 없이 전해온다. 서스펜션이 있기에 주행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운전자에게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노면의 상태가 좋지 않아 스티어링을 붙잡고 사투를 벌여야 했다. 불규칙한 굴곡을 갖춘 코너에서는 식은땀마저 흘렀다.
그러나 사투를 벌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엔진 소음은 기분 좋게 귀를 자극하는 지저귐으로, 불편했던 스티어링은 모든 것을 파악하게 해 주는 마법의 지팡이로 바뀌었다. 노면의 상태에 반응하는 타이어의 소리와 배기음조차 소프라노처럼 들려왔다. 이 차의 배기량 3.5L와 350마력의 최고출력, 1.1톤을 약간 넘기는 차체 무게를 생각해 보면 결코 높은 속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높은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었다.
탑승할 때 불편을 제공했던 배스터브 프레임은 코너링 시 왼발을 고정시킬 수 있는 훌륭한 지지대가 됐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시트는 엑시지 S의 뒷바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했다. 자동변속기와 패들시프트 덕분에 두 손을 스티어링에서 떼지 않고도 코너링에 맞춰 출력을 알맞게 조절할 수 있었다. 굳이 수동 모드로 진입하지 않아도 감속하는 순간 알아서 다운시프트와 엔진회전수 보정을 진행하는 자동변속기는 엑시지 S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든든한 아군이 되었다.
두 시간 남짓 지났을까, 주유를 위해 엑시지 S에서 내리니 다리와 팔에서 약간 힘이 빠진 것이 느껴졌다. 운전하는 것만으로 이만큼이나 운전자의 힘들게 하는 자동차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더 이상한 것은 주유를 끝내자마자 홀린 듯 다시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앉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바람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되는 루프를 손으로 직접 벗기고 있었다.
헬레네에게 매혹된 남자들은 모든 것을 그녀에게 바쳤고 자연스럽게 파멸에 이르렀다. 엑시지 S 또한 헬레네와 마찬가지로 운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과연 당신에게는 그만큼의 각오가 되어 있는가?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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