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 지프 올 뉴 랭글러, 험로를 넘어 도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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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뉴 랭글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처음부터 생소했다. 일반적으로는 시승에 반바지를 권하는 일은 없는데, 처음부터 반바지를 입고 올 것을 권하고 있었다. 보통은 운동화를 신게 되는데 이번에는 샌들을 신고 운전할 것을 권한다. 처음에는 그 의도를 알기 힘들었지만, 앞으로 랭글러가 지나가야 하는 길을 보면서 샌들을 신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깊은 개울을 건너는데다가 발이 젖는 일이 많기에 그런 선택이 필요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그 동안 최강의 험로 주행 능력을 갖췄다는 SUV들을 시승한 횟수도 꽤 되지만, 험로를 본격적으로 주행한 경험은 상당히 적었다. 전체 인구의 대부분이 도심에서 사는 시대에 맞춰 SUV도 도심형으로 바뀌어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령 모험을 즐길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모델이라고 해도 험로에 즐비해 있는 장애물을 보면 가속 페달을 함부로 밟고 싶은 마음이 어느 새 사라진다. 특히 차량 가격이 억 대를 넘어가게 되는 모델들은 험로에 돌출되어 있는 나뭇가지가 차체에 닿기만 해도 긴장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프의 모델들, 그 중에서도 랭글러는 정말 다르다. 랭글러를 운전하고 있으면서 험로를 찾지 않는다는 것은 ‘랭글러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랭글러의 스티어링을 잡고 있으면 평소에는 차체에 손상이 갈 것 같아서 가지 못했던 길로 왜인지 모르게 뛰어들고 싶고, 얕은 개울을 만나면 괜한 기분에 물살을 가르며 주행하고 싶다. 조금 더 험한 길을 만난다고 해도 다른 길을 찾기 보다는 잠시 차를 세우고 무심하게 4륜구동 모드를 전환한 후 다시 힘차게 전진하는 것이 랭글러의 매력이다.
그리고 랭글러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1941년, 윌리스 MB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험로에 뛰어들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런 랭글러의 매력은 종전 후에도 CJ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졌고, 랭글러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계속됐다. 그 동안 소소하게 디자인을 바꾸면서도, 파워트레인의 업그레이드를 단행하면서도 바꾸지 않았던 것 하나는 바로 험로를 찾아야 하는 운명이다. 전 세계에 SUV라는 장르를 각인시킨 선구자로써 어쩌면 그것은 77년 이상을 계승해야 했던 것이다.
모든 랭글러가 시간과 한계를 뛰어넘는 매력을 갖고 있지만, 신형 랭글러는 과연 어떨까? 코드명 JL, 올 뉴 랭글러는 시대에 맞춰 더 진화했고, 편의성도 챙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험로에 뛰어들어야 하는 운명은 벗어던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랭글러만의 운명과 정체성은 디자인에서부터, 내장된 다양한 기능 그리고 독특한 구조를 통해 구현해내고 있다. 험로에서 태어나 이제는 도심도 진입하려 하는 랭글러이지만, 이번에는 험로에 온전하게 모든 것을 맡겨보고자 한다.
올 뉴 랭글러는 구형 랭글러와 비교하면 많은 부분이 변했지만, 눈썰미가 좋지 않다면 한 눈에 그 변화를 알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세로로 배열된 7개의 슬릿으로 구성된 프론트 그릴과 원형 헤드램프, 차체에서 돌출되어 있는 플라스틱 범퍼가 기존 모델과 거의 동일한 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디자인은 랭글러의 아이콘과도 같은 형태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헤드램프가 LED로 바뀌어서 시인성이 좋아지고, 그릴과 헤드램프가 겹치는 구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론트 펜더에는 방향지시등과 가로로 긴 형태의 LED DRL이 위치해 어둠 속에서도 차폭을 확실히 감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측면은 여전히 사각형이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있지만, 각 엣지에 곡선을 주어 완만한 마무리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윈드실드 각도가 이전 모델보다 조금 더 누워있는데, 이와 같은 소소한 변화를 통해서 공력 특성을 개선하고 연비도 약간 상승했다고 한다.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루프는 걸쇠만 제거하면 쉽게 떼어낼 수 있으며, 윈드실드 역시 4개의 고정나사만 풀면 앞으로 젖힐 수 있다. 손쉽게 뗄 수 있는 도어 역시 험로 주행에 대한 로망을 부추킨다. 하위 모델인 스포츠는 소프트톱을 적용하고 있는데, 기존의 지퍼식과는 다른 체결 타입이기 때문에 손상이 갈 일이 적어졌다고 한다.
후면을 언뜻 보면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테일램프 주변을 연료탱크 형태로 다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테일게이트에 위치한 스페어타이어는 험로 주행을 대비하는 아이템이자 랭글러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리어 카메라가 스페어타이어 가운데에 위치한다는 것으로, 이를 통해 이전보다는 개선된 후면 시야를 화면에서 기대할 수 있다. 험로 주행에 좀 더 특화된 루비콘은 임도 전용 머드 타이어, 사하라와 스포츠는 올시즌 타이어를 적용하고 있다.
길이 4,885mm, 폭 1,895mm로 기존 모델과 비교해보면 조금씩 커진 것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차중량은 더 가벼워졌다. 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경량화 할 수 있는 부분에 알루미늄을 적용하고 다운사이징 엔진을 탑재한 효과가 상당히 크다.
만약 기존 랭글러에 대한 이미지만 갖고 있다면, 올 뉴 랭글러의 실내를 보고 상당히 놀랄지도 모르겠다. 실내의 대부분이 플라스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그 재질과 색상 등 많은 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진데다가 디자인도 조금 더 세련되게 변했기 때문에 마치 한 등급 상승한 자동차를 타고 있는 느낌을 준다. 특히 대시보드의 재질과 마감, 센터페시아에 있는 8.4인치 터치스크린 유커넥트 시스템을 보면 더욱 그럴 것이다.
센터페시아 하단의 버튼류들도 상당히 정돈된 느낌을 주며, 무엇보다 주행과 관련된 기능을 이전보다도 더 직관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루비콘 모델에만 적용된 스웨이 바 분리 기능과 디퍼렌셜 락 기능을 버튼과 스위치로 간단히 제어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변화다. 기존 모델에서는 기어노브만이 드러나 있던 4륜구동 트랜스퍼 레버와 변속기는 가죽으로 감쌌고 노브도 조작감이 상당히 좋아졌다.
시트는 5인승으로 이제는 루비콘 등급에서도 상위 모델에서 가죽을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앞좌석과 스티어링 열선, 주차 브레이크 가죽마감 등 고급스러움이 조금 더 증가했다. 착좌감은 편안함을 우선으로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는 승차감이 상당히 좋다. 더 큰 변화는 이제 2열 시트가 5도 정도 뒤로 누웠다는 것으로, 이로 인해 2열이 좀 더 편안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과거와 같이 가족이 탑승했을 때 불만이 나올 일은 이제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아쉽게도 실내의 오염이 쉽게 제거되는지 까지는 시험해보지 못했다.
이번 신형 랭글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파워트레인은 새로 적용되는 2.0L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이다. 최고출력 272마력을 발휘하며, 기존의 V6 펜타스타 엔진을 뛰어넘는다고 한다. 국내에는 이 엔진만이 수입되며, ZF의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한다. 다양한 모델과 등급이 있지만 기자에게 배정된 것은 루비콘 하이 모델로 험로 전용 머드 타이어를 기본 장착하고 있다.
마련된 코스는 랭글러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험로 코스이지만 목적지까지는 일반도로를 통해서 이동했다. 그 와중에서 진가를 드러내는 것은 일반도로 주행 감각이 이전 모델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가속 감각이 몰라보게 경쾌해진데다가 풍절음과 노면 소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여기에 승차감도 상당히 좋아져, 이제는 랭글러를 도심에서 사용하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타이어의 영향은 받을 것이다. 험로 전용 머드 타이어는 그 구조 상, 일반도로 고속 주행에서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도심에서 주로 운행을 할 수 밖에 없다면, 루비콘 모델이 아니라 사하라 또는 스포츠 모델을 고르는 것이 좋겠다. 올시즌 타이어를 적용하고 있어 일반도로 주행에 좋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험로 주행도 문제없이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하라 모델에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도 적용되어 있다고 하니 더 편안할 것이다.
잠시 일반도로를 주행한 후, 험로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가볍게 일반 ‘4륜 오토’모드에 맞추고 진입한다. 이것만으로도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험로는 가볍게 돌파할 수 있다. 산 속으로 조금씩 깊게 들어갈수록 길이 험해지고, 양쪽에 장애물이 위치하는 구조로 인해 상체가 좌우로 흔들리는 횟수도 많아지지만, 랭글러의 주행 능력을 믿고서 그저 가속 페달에 약간만 힘을 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돌파를 해 준다.
그 뒤에 길이 험해지면서 첫 번째로 나타난 ‘돌이 가득한 언덕’은 주행 모드를 바꿀 필요가 있다. 4개 바퀴의 접지력을 최대로 사용해야 하는 만큼 주행 모드를 ‘4륜 파트타임’ 모드로 바꾸고 스웨이 바를 분리한다. 주행 모드는 손쉽게 바꿀 수 있지만, 바꾸기 전에 기어를 항상 N으로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루비콘 모델에만 있는 스웨이 바 분리 기능은 험로에서 바퀴 4개를 각각 다른 각도로 땅에 붙이기 위해 필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언덕을 오르려고 하니 윈드실드 밖으로 보이는 것은 하늘뿐이다. 주행 방법은 두 개로 하나는 미리 길을 관찰하여 가늠해 둔 뒤 감으로 운전하는 것, 다른 하나는 창문을 내리고 직접 고개를 내밀어 길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전에 길을 관찰해 두었고 방향은 하나밖에 없었기에 감에 의지해 가속 페달을 밟자, 돌무더기를 가볍게 오르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운전자의 강단 뿐, 더 이상의 개조 같은 것은 랭글러에게 무의미하다.
잠시 더위에 시달릴 즈음 나타난 것은 계곡을 무대로 펼쳐진 락 크롤링 코스. 계곡을 채우고 있는 커다란 돌들도 문제이지만, 돌이 물에 젖어서 미끄럽다는 것도 험로 주행의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스웨이 바는 진작 분리되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4L 주행 모드가 활약할 차례다. 가속 페달은 거의 밟을 필요가 없지만, 필요할 때는 아주 섬세하게, 약간씩만 밟으면 된다. 하체에서 다양한 소리가 나지만, 여기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탈출에 더 집중해야 한다.
랭글러는 이렇게 험한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파해 버린다. 하체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지만, 막상 내려서 하체를 확인해 보면 어느 곳 하나 손상당하지 않았다.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는 깊은 계곡에 다듬어지지 않은 뾰족한 바위가 계속 이어지지만, 랭글러에게 있어서는 그저 평지인 것 같다. 약간 깊은 물이 차 있는 계곡을 통과한 후, 몸이 약간 지친 것도 같지만 거친 자연을 가볍게 뛰어넘었다는 희열이 먼저 다가온다.
그러고보면 랭글러의 진가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별다른 개조를 할 필요 없이 차고에서 잠자고 있는 랭글러를 깨워 이런 험준한 곳을 마치 동네 뒷산에 다녀오는 것처럼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차체가 쉽사리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순정 상태로 가벼운 마음으로 험로를 다녀올 수 있는 차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를 묻는다면, 여기에 자사의 모델이 해당한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브랜드는 정말 적을 것이다. 그 점에서 랭글러는 정말 특별한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순정 상태로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유지비 면에서도 크게 유리한 점이기도 하다. 다른 브랜드의 SUV도 쇼크 업쇼버를 개조하고 휠타이어를 바꾸는 등의 노력을 가한다면 험로를 주행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개조한 모델이 험로와 일반도로를 양립할 수 있는지와 유지비가 적게 들 수 있는지의 여부를 쉽게 대답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거의 동일한 험로 주행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저 서비스센터에 들어가 정기점검만 받으면 되는 랭글러는 축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올 뉴 랭글러의 가치 역시 거기에 있다. 그리고 이제는 경량화와 연비 향상, 편안함을 무기로 도심도 본격적으로 정복할 수 있는 SUV가 되었다. 랭글러의 정체성인 험로 주행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도심 정복을 노리는 것, 그것이 탄생 77주년이 넘은 랭글러의 새로운 도전인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은 아직까지는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잠시나마 느껴본 바로는 성공적이 될 것 같다. 그만큼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주차 보조 시스템,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 등 기존에 없던 안전 및 주행 보조 기술이 적용된 것도 운전을 더 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랭글러를 구매하는 운전자의 폭이 더 넓어질 것 같다. 이제 과거처럼 험로 주행에만 모든 것을 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족에게도 만족스러운 패밀리용 험로 SUV로 거듭난 랭글러는 이제 시대의 아이콘을 넘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SUV가 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주요제원 지프 올 뉴 랭글러 루비콘
크기
전장×전폭×전고 : 4,485×1,895×1,850mm
휠 베이스 3,010mm
트레드 전/후 : 1,600/1,600mm
공차중량 : 2,120kg
연료탱크 용량 : 81리터
트렁크 용량 : --리터
엔진
형식 : 1,995cc GME-T4 터보차저 가솔린
보어 x 스트로크 : 84 x 90 mm
압축비 : 10 : 1
최고출력 (PS/rpm) : 272 / 5,250
최대토크 (kg.m/rpm) : 40.8 / 3,000
구동방식 : AWD
트랜스미션
형식 : 8단 AT
기어비 : 4.714/3.143/2.106/1.667/1.285/1.000/0.839/0.667/R 3.295
최종감속비 : 4.10
섀시
서스펜션 : 앞/뒤 5 링크/5 링크
브레이크 : V 디스크
스티어링 : 볼 스크류 타입
타이어 : 255 / 75R 17
성능
0-100km/h : ---
최고속도 : ---
연비: 복합8.2km/ℓ(도심 : 7.7km/ℓ, 고속도로 : 8.8km/ℓ)
CO2 배출량 : 210g/km
시판 가격
스포츠 : 4,940만원
루비콘 : 5,740만원
루비콘 하이 : 5,840만원
사하라 : 6,140만원
(작성 일자 2018년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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