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 조련의 보람을 느껴라, 재규어 F 타입 컨버터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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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F 타입은 오랜만에 부활한 스포츠카의 작명법을 부여받은 특별 모델이다. 그도 그럴것이 E 타입으로 이어져 오던 이름이 후속 모델에서는 타입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XJS로 바뀌니 그 뒤에는 XK8, XKR이라는 의문스러운 작명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물론 디자인 면에서도 E 타입에서 이어지는 연속성을 갖지 못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동안 묻혀있었던 타입이라는 이름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
F 타입은 재규어의 다른 라인업과 비교해 봐도 정말 특별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몇 년 전, XJ를 출시했을 때 들었던 혹평을 F 타입을 출시하면서 순식간에 찬사로 바꾸어 놓았으니 말이다. 이안 칼럼이 제창했던 ‘재규어만의 해리티지 디자인’이라는 것을 XJ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F 타입에서는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디자인과 해리티지의 힘인 것 같다.
이번에 시승한 것은 그 F 타입의 4륜구동 모델이다. 비록 재규어가 자랑하는 V8 수퍼차저의 초고성능 모델은 아니지만, V6 수퍼차저 엔진을 탑재하고 네 바퀴를 굴리며 막강한 성능을 자랑한다. 막강한 성능을 품은 야수는 잠시도 진정하지 못하고 그르렁대고, 도심 속 정체를 참지 못한다. F 타입의 본질은 스포츠카이니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F 타입은 보는 것만으로도 운전자를 흥분시킨다. 길이는 4,482 mm로 의외로 길지 않지만, 폭이 1,932 mm로 상당히 넓기 때문에 길이보다도 차체가 커 보인다. 여기에 높이가 1,308 mm밖에 되지 않으니 ‘넓고 낮은’ 이상적인 스포츠카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시트를 최대한 낮추고 운전석에 앉으면 ‘도로에서 가장 낮은 시선’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스포츠카라고 하면 근육질의 차체를 연상하고 이 법칙은 F 타입 역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F 타입의 라인은 과장된 곳이 거의 없고 전체적으로 미묘한 곡선을 유지하면서도 매끈하게 흐르고 있다. 보닛 한가운데의 불룩 솟아오른 라인 역시 빛을 받아서 과장되어 보이는 사진과는 달리 실제로 보면 일체화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솟아있어 자세히 시간을 들여 보지 않는다면 그 존재를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독특한 인상이 정말 쉽게 뇌리에 박힌다. 현대적으로 다듬어졌지만 분명히 E 타입의 독특함을 계승하고 있는 헤드램프, 프론트 범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대형 프론트 그릴과 독특하게 4분할된 에어 인테이크, 프론트 펜더의 장식도 존재감을 배가시킨다.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손잡이도 평상시에는 도어와 일체화되어 숨어있고, 도어를 열 때만 돌출된다.
테일램프는 이 차가 F 타입임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포인트다. 가로로 긴 쐐기 형태에 반원을 추가한 단순한 디자인만으로 이 차가 재규어라는 것을 한 번에 표현한다. 이 반원의 이상적인 위치를 찾기 위해 하루에 1mm 씩 디자인을 변경했을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디자이너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된다. 리어 범퍼 중앙에 위치한 두 개의 머플러는 고성능의 상징이고, 고음을 연주하는 악기다.
실내는 심플과 조밀함이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대부분의 조작 기능과 버튼을 운전석과 센터페시아에 몰아두었기 때문에 운전석 쪽에서는 계기반과 많은 버튼이 보이지만, 조수석에서는 심플한 형태의 대시보드만이 보인다. 두 개의 원형 아날로그 계기를 품은 계기반은 중간의 LCD 화면에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3 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그립감이 좋아 자꾸만 스티어링을 돌리게 만든다.
센터페시아는 터치스크린과 3개의 다이얼로 구성된 에어컨, 비상등을 포함한 토글스위치로 인해 심플하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지금은 구형이 되어 터치 시 반응이 약간 느리고, 모니터 화면이 깊게 들어가 있어 터치가 조금 힘든 면이 있다. 상단의 송풍구는 에어컨 또는 히터를 켰을 때만 돌출되는 방식으로 평상시에는 숨겨져 있으며, 오른쪽 구석에 고성능을 상징하는 ‘S’를 새겨 운전자에게 왜인지 모를 뿌듯함을 준다.
기어노브를 품고 있는 센터터널은 운전을 위한 다양한 버튼이 몰려 있어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당황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흔히 재규어의 모델에서 볼 수 있는 원형 다이얼 노브가 아닌 평범하게 돌출된 전자식 기어노브를 적용하고 있는데, 스포츠카에는 오히려 이게 더 맞는 것 같다. 그 왼쪽에는 주행모드를 변경할 수 있는 토글스위치가 있고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와 루프 조작 버튼도 있다.
2인승이기 때문에 1열 시트에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진다. 버킷 시트에 고급 가죽을 적용했다는 것을 앉자마자 느낄 수 있으며, 포지션은 물론 버킷 사이드의 조임 정도까지 세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 과격한 운전에서도 신체가 잘 고정된다. 한 가지 불만인 점은 풋레스트의 크기가 작아 왼발을 절반밖에 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역동적인 주행에서 신체 지지를 위해 풋레스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F 타입은 등급에 따라 다양한 엔진을 탑재한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3.0L V6 수퍼차저 가솔린 엔진을 탑재해 6,500 rpm에서 최고출력 380마력, 3,500~5,000 rpm에서 최대토크 46.9 kg-m을 발휘한다.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하고 네 바퀴를 굴린다. 공차중량이 1,805 kg에 달하지만 그런 차체를 가볍게 끌고 갈 수 있는 성능을 보유한 것이다.
F 타입은 길이 막히는 시내에서는 친절하지 않다. 가속 페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엔진도 엔진이지만,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영역이 3,500 rpm 이상이기 때문에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의 교통 상황에서는 최대토크를 사용해서 편안하게 운전하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다. 그나마 위안할 점이 있다면 자동변속기를 적용해서 가속 페달을 예민하게 다루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일까.
이와 같은 답답함은 속력을 낼 수 있는 도로로 나오게 되면 순식간에 날아간다. 굳이 주행모드를 다이내믹으로 바꾸지 않아도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즉각 엔진 회전이 거칠어지면서 가속이 달라진다. 도로 제한속도보다 느리게 주행하는 차들을 하나둘씩 젖히면서 차체의 거동을 온 몸으로 느끼는 재미가 있다. 출력을 생각하면 차체가 작은데다가 휠베이스도 2,622 mm밖에 되지 않으니 스티어링을 돌리는 그대로 반응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4륜구동은 타이어의 한계 내에서는 코너링 감각을 잘 살려준다. 프론트와 리어 모두 더블위시본 방식을 적용한 서스펜션도 타이어와 차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준다. 코너링에서 타이어의 한계를 넘었을 때 느껴지는 도로와의 마찰 감각과 트랙션 배분의 혼동이 운전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면서 약간의 불쾌함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 ‘드리프트’라는 기술로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다. 즉, F 타입의 매끈한 코너링은 전적으로 운전자의 실력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영역은 ‘전자장비에 대부분의 영역을 맡겨 안정적인 드라이빙을 추구하는’ 다른 제조사에서 출시되고 있는 스포츠카와 정면으로 대비되는 재규어만의 영역이기도 하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재규어도 ABS, TCS등 전자장비의 힘을 빌리고는 있지만, 차체 제어의 정밀성을 높이는 영역은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맡기고 있다. 알파고의 도움을 빌어 고수의 바둑을 쉽게 구사할 것인가, 자신이 직접 이세돌이 될 것인가,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고성능 엔진을 품고 있는 만큼 연비는 그리 좋지 않으며, 복합 연비 8.5 km/l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시승 내내 기록한 연비는 6.7 km/l인데, 재미있는 점은 가속 페달을 달래면서 연비 주행을 할 때와 페달을 거칠게 다루면서 역동적인 주행을 할 때의 연비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엔진 회전수가 3,500 rpm이 넘어가면 후면의 머플러에서 귀를 자극하는 음색이 분출되고, 소리는 다시 오른발을 자극한다. 자연스럽게 역동적인 주행을 우선하게 된다.
컨버터블인 만큼 배기음을 즐기기 위해서는 지붕을 여는 것이 최고다. 그러나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에 지붕을 열기는 망설여진다. 그렇다면 날씨가 약간 흐릴 때 또는 밤에 지붕을 열면 된다. 밤에 보는 도로의 풍경은 또 다른 자극을 불러일으키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배기음과 앞에서 들려오는 수퍼차저의 흡입음이 또 다시 오른발을 자극한다. 연료 게이지는 마구 떨어져가지만 어떤가, 본래 F 타입은 그런 자동차다.
재규어 F 타입은 역동적인 주행에서 매력을 찾을 수 있는 스포츠카이지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매력이 넘친다. 스포츠카가 시대를 넘어서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 예술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면서 디지털 시대에서 인간의 잠재력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기록을 하루하루 갱신해 나가는 스포츠 선수의 모습과도 닮았다.
F 타입은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친절한 가격을 갖고 있지도 않고, 두 명만 탑승할 수 있는 상당히 이기적인 스포츠카, 그리고 로드스터다. 그러나 이 이기적인 야수를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엄청난 속력과 짜릿함은 운전자에게 그대로 다가올 것이다. 돈이 있고 야수를 다룰 배짱과 실력이 있다면, 감히 F 타입에 오를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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