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 야수의 본능을 간직한 SUV, 재규어 F 페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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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곤 하는데, 최근의 자동차 제조사들을 살펴보면 이런 상황을 종종 보곤 한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SUV 열풍인데, 레저 문화의 발전으로 인해 소가족이 탑승하고도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자동차로 인기를 얻으면서 그동안 SUV를 제작하지 않았던 제조사들도 잇달아 SUV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그 중에는 역동적인 스포츠카와 세단을 주로 제작했던 재규어도 있다.
재규어가 SUV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는 충격이 컸다. 아무리 랜드로버의 기술을 빌릴 수 있다 해도 재규어가 SUV를? 재규어 하면 생각나는 역동성은 이제 끝나는 걸까? 이안 칼럼이 다듬어 놓은 재규어의 디자인이 망쳐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기다림 끝에 나타난 F 페이스는 재규어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스티어링 휠과 페달, 시트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들은 재규어가 역동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F 페이스는 울부짖는 재규어의 앰블럼을 물려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메시로 이루어진 사각 형태의 프론트 그릴, 울부짖는 재규어가 새겨진 원형 엠블럼, 가로로 긴 형태의 헤드램프 하단을 장식하는 J-블레이드 주간주행등, 반원을 품은 가로로 긴 형태의 테일램프는 F 페이스가 재규어의 혈통을 잇고 있음을 강하게 주장한다. 언뜻 보기에는 중형 세단인 XF하고도 비슷해 보이지만 헤드램프와 테일램프의 미묘한 디자인 변경, SUV에 걸맞는 라인과 비율을 통해 독자적이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프론트 범퍼를 장식하는 에어 인테이크와 프론트 그릴의 크기는 절묘함의 극이다. 눈으로 보이는 비율은 분명히 SUV의 비율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날렵함을 갖추고 있는데다가 지상고도 낮아 보이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최저지상고는 213mm로 결코 낮지 않다). 프론트 그릴부터 A 필러까지 이어지는 보닛 라인은 남성미를 강조하는데 반해 직선에 가까운 루프 라인을 갖고 있으면서도 쿠페와 비슷한 완만한 각도의 C 필러와 테일게이트,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캐릭터라인은 여성미를 강조한다. 신기한 것은 두 이미지가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인데 마치 잘 어울리는 커플을 보는 듯하다.
휠하우스를 가득 채우는 19인치 휠과 255 사이즈의 타이어, 프론트 펜더를 장식하는 에어벤트, 테일게이트 상단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대형 리어 스포일러와 리어 범퍼 하단에 위치한 두 개의 대구경 머플러는 F 페이스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능을 품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고성능 모델의 경우 재규어의 앰블럼 주변을 붉은색으로 장식하는데, 야수의 본능으로 빠르게 숲을 돌파하는 재규어를 떠올리게 한다.
F 페이스의 실내는 직선과 곡선을 적절히 혼합하고 있는데, 윈드실드 하단과 대시보드가 맞닿는 부분을 곡면으로 처리한 후 약간의 단차를 부여한 것이 먼저 눈에 띈다. 이는 고급 요트의 조종석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디자인인데, F 페이스의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데 일조한다. 대시보드는 가죽으로 감싸고 주요 부위에 스티치를 적용했으며, 송풍구를 비롯한 주요 부분을 알루미늄으로 장식해 고급 SUV임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LCD로 구성된 계기반은 시인성이 우수하며, 모드에 따라 노출되는 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보를 손쉽게 인지할 수 있다. 2개의 원으로 구성된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D컷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동성을 강조하며, 1열 시트는 세미 버킷 형태로 착좌감은 물론 상체를 고정시키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2열 시트는 성인이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편하게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헤드룸을 보유했으며, 레그룸에도 여유가 있다. 650L 용량의 트렁크는 2열 시트를 접지 않고도 많은 화물을 적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가로로 긴 형태의 10.2인치 터치스크린으로(재규어는 ‘인컨트롤 터치 프로’라고 부른다) 주요 기능을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으며, SSD를 적용해 터치 시 반응이 빠르다. 게다가 수입차로써는 최초로 T맵을 적용해(전용 어플을 통해 스마트폰에 연결한 상태로 사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 목적지까지 주행하는 데 있어 정확도를 높이는 한편, 익숙한 인터페이스로 네비게이션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시동을 걸면 센터터널에서 다소곳이 솟아오르는 원형 기어노브도 다루기 편하면서 고급스럽다.
F 페이스는 등급에 따라 2.0 ~ 3.0L의 가솔린, 디젤 엔진을 골고루 사용한다. 이 중에서 시승을 진행한 모델은 3.0L V6 가솔린 엔진과 수퍼차저를 결합한 R-스포츠 모델로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45.9 kg-m을 발휘하며,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를 구동한다. 수치상으로도 만만치 않은 출력임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주행을 진행하면 출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스포츠카를 구입하지 못했다는 불평은 거의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5.8초. 엔진의 출력도 가속에 힘을 보태지만 알루미늄을 적용해 중량을 1,900 kg 대로 경량화한 차체의 도움도 크다. 그러나 주행 중 가속 성능보다 먼저 와 닿는 것은 엔진의 회전수가 증가하면서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독특한 느낌이다. 이는 재규어가 오랜 기간동안 장착하고 있는 수퍼차저의 영향이 큰데, 터보차저와는 달리 출력 지연현상이 없는 수퍼차저는 가속에 유리할 뿐 아니라 독특한 음색으로 운전자의 질주 본능을 자극한다.
8단 자동변속기의 반응도 질주 본능을 자연스럽게 보탠다. 킥다운 시 반응이 빠른 것은 물론이고 전방의 상황으로 인해 잠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도 곧바로 높은 단수로 복귀하기 보다는 침착하게 낮은 단수를 유지하면서 다음 가속을 기다리는 면이 인상적이다. 스포츠 모드가 아닌 노멀 모드에서도 이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는 것은 F 페이스가 질주 본능을 위해 철저히 다듬어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만약 적극적인 변속이 필요하다면, 패들시프트를 조작하면 바로 반응한다.
알루미늄 사용 비율이 80%를 넘는 차체의 강성은 우수하다 못해 역동성을 갖춘 SUV로써 손색이 없다. 파일런이 촘촘히 세워진 짐카나 코스를 고속으로 주행하면서 좌우로 열심히 차체를 흔들어도 차체가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이 정도로 나를 굴복시키기에는 아직 멀었다’라고 여유를 부린다. 고속 주행 중 일부러 자세를 무너뜨리려고 해도 금방 자세를 바로잡으니 F 페이스가 정말 SUV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프론트 더블 위시본, 리어 인테그럴 링크로 구성된 서스펜션도 고강성의 차체와 함께 정밀한 코너링을 구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좌우로 이어지는 중력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은 타이어뿐이다.
랜드로버의 기술이 적용된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ASPC)는 오프로드 주행 시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내리막 급경사에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도 저속으로 차체를 제어하면서 여유롭게 내려가는 경험을 하고 나면 F 페이스의 주행 능력에 대한 신뢰와 함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성적 우수, 운동 만능에 준수한 외모까지 갖춘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기분이 이것일까?
재규어가 제작한 첫 번째 SUV인 F 페이스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유려한 스포츠카를 보는 듯하면서도 SUV임을 잊지 않는 디자인, 평소에는 부드러우면서도 질주할 때는 극한까지 본능을 자극하는 엔진,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자유자재로 주파하는 능력을 모두 갖추었으니 그야말로 ‘다재다능’이 따로 없다. 어쩌면 F 페이스의 전면을 장식하는 붉은색의 재규어는 야수의 본능에 따라 스포츠카들을 잡아먹고 그 피에 물들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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