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 마세라티 기블리, 풍부한 감성에 약간의 실용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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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욱 젊었던 시절, 실전에서의 자동차를 경험하기 위해 직접 차를 타고 여러 곳을 유랑하던 때가 있었다. 그 날은 지방에 가게를 두셨던 정비사와 인연이 닿아 직접 얼굴을 뵈러 갔었는데,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우렁찬 소리와 함께 각을 세운 한 대의 쿠페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브랜드는 알고 있어도 생산하는 자동차까지는 잘 몰랐던 시절, 직접 본 삼지창 엠블럼은 젊은이를 두근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글 : 유일한(글로벌오토뉴스 기자)
당시만 해도 마세라티가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던 시절이었고 인터넷 상의 정보는 대부분 부정확했다. 그런 와중에 기블리를 국내에서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과 엔진에 대해서 정확히 보면서 알 수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가슴이 뛰었었다. 지금이나 그 때나 기블리는 터보차저 엔진이었지만, 소리만큼은 일품이었다. 그 당시에도 기블리는 단종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좌절하기도 했었다.
세월은 흐른다. 그리고 시대도 인상도 가치도 조금씩 변한다. 꿈속에 남아있을 것만 같았던 기블리는 어느 새 각을 세웠던 2도어 쿠페 대신 날카로우면서도 유려한 4도어의 형상으로 다시 나타났다. 이제는 무조건 낭만만을 노래하기보다는 실용성과 역동성을 동시에 구가하는 세단 겸 쿠페 그리고 스포츠카로 살아남겠다고 한다. 변하지 않은 것은 가솔린 엔진에 장착하고 있는 트윈터보 뿐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모습이 변해버린 기블리를 탑승하게 됐다. 과거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목적지를 특별히 두지 않고 유랑하게 되지만, 젊음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듯 어느 새 다른 얼굴과 기술로 무장하고 있는 기블리가 기다리고 있다. 한 때 좋아했던 그녀를 이십여 년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던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것을 간접적으로 실현해 보는 일이 될 거 같다.
당시 젊은 혈기만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어 그저 보낼 수밖에 없었던, 다른 이 대신 자신에게 오라고 소리칠 자신조차 없었던 그 시절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과연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다운 음색을 갖고 있는지, 겉모습은 바뀌었어도 여전히 스포츠카인지 그것이 이번에 기블리를 느끼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기블리의 외형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면 콰트로포르테와의 구분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비슷한 형태의 패밀리룩을 갖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헤드램프와 프론트 범퍼의 디자인, 측면의 비율, 테일램프 등 대부분의 영역이 다르다. 정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사다리꼴 형태의 대형 프론트 그릴과 그 안을 장식하는 세로 바 그리고 마세라티의 대형 삼지창 엠블럼이다.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하며 삼지창 엠블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게 되었다.
최근의 자동차 디자인 추세에 따라 ‘롱 노즈 숏 데크’, ‘쿠페라이크한 디자인’이라는 말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지만, 기블리는 이런 추세를 따르면서도 개성을 챙기고 있다. 일례로 측면에서는 4도어 쿠페에 가까운 디자인을 가지면서도 트렁크를 확실히 강조하고 있는데, 2세대 기블리도 쿠페이면서 노치백 형태였기 때문에 코드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런 부분은 마세라티라는 브랜드를 잘 알아야만 느낄 수 있는 동질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같이 구매한다는 것이다.
소소한 라인들이 차체를 따라 흐르며 바람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다운포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특히 2열 도어를 갖춘 자동차로써는 쉽게 볼 수 없는, 리어 펜더와 휠하우스를 강조하여 부풀린 라인이 눈에 띈다. 측면의 삼지창 엠블럼에 눈이 뺏기기 쉽지만 기블리의 진짜 멋과 기능이 여기에 몰려 있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테일램프는 상대적으로 수수한 형태로 다듬어진 편이다. 뒷 범퍼 하단 좌우를 장식하는 대형 머플러가 눈길을 끈다.
기블리는 디자인을 통해 ‘운전자 중심의 차’라는 것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대시보드도 그렇지만 심지어 센터페시아를 운전석 쪽으로 기울이지도 않았다. 기어노브가 운전석 쪽으로 가깝게 위치하기는 하지만, 공간 확보를 위해 이런 방식을 적용한 자동차들은 많다. 그런데 스티어링 휠 가운데에 있는 삼지창 엠블럼과 그 뒤에 있는 거대한 금속 패들 시프트, 지름이 큰 아날로그 계기반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운전자 중심의 차’라고 인식하게 된다.
일반적인 자동차라면 오른쪽에 주로 있을 시동 버튼도 기블리는 왼쪽에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스포츠카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버튼을 누르면서 약간 흥분하게 되는 매력이기도 하다. 스티어링 휠은 ‘손 안에 딱 들어오는’ 감각으로 조향 시 손에 걸리는 부분이 없다. 스티어링 좌우에 버튼을 복잡하게 배열하는 것이 어느 새 대세가 되어버린 시대지만, 심플한 형태로 되도록 버튼을 줄인 것이 눈에 띈다. 그만큼 운전에 집중하라는 배려일 것이다.
도어 장식과 시트는 버전에 따라 다르다. 그란스포츠 버전은 모두 가죽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시승차는 그란루소 버전이기 때문에 시트 안쪽과 도어 트림 일부가 에르메질도 제냐에서 제작하는 특별한 원단으로 이루어졌다. 직접 만져보면 일반적인 직물과는 전혀 다른, 약간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감각이 전해져 오는데, 그 느낌이 상당히 오묘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계속 만져보게 된다. 미끄러운 느낌은 전혀 없으며 1열 시트는 상체 지지력도 충분할 정도로 갖추고 있다.
기블리의 엔진은 모두 V6 터보차저 버전이다. V8 엔진이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차체가 작기 때문에 충분한 출력은 보장된다. 이번에 시승한 S Q4 모델은 3.0리터 V6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고,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를 구동한다. 기본적으로는 뒷바퀴 동력 배분을 우선시하다가 필요 시 앞바퀴에 동력을 조금씩 나눠주는 형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세라티는 ‘소리로 타는 차’라고 알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것이 맞다. 엔진의 출력도 출력이지만, 무엇보다도 가속을 우선시하는 능력이 좀 더 크게 다가온다. 고성능 차량의 출력이 상향평준화되고 있는 시대에 가속의 차이가 크게 있을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서도 자세히 느껴보면 고속 영역에서의 안정, 가속에서의 느낌, 강력한 토크 등 많은 부분이 세분화되어 있다. 아주 작은 차이이기에 이것은 직접 느껴봐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터보차저의 힘으로 인해 저회전 영역에서도 스트레스 없이 가속할 만한 토크가 있다. 도로에서 타이어를 태워버릴 정도는 아니지만 도심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힘으로써 회전을 크게 올리지 않고도 전진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제 기블리는 두 명이 탑승하기에 좋은 쿠페가 아니라 가족이 탑승할 수 있는 패밀리 쿠페를 지향하는 만큼 이런 점은 상당한 장점이 된다. 엔진 회전을 낮게 사용하면 조용하게 시내를 관통할 수 있다는 점도 이런 장점에 플러스가 된다.
기블리의 다른 면은 혼자서 탑승했을 때 나온다. 변속기 왼쪽에 있는 스포츠 버튼을 살짝 누르고 변속 모드를 수동으로 바꾼 뒤 금속 패들시프트에 손을 갖다대면, 그 때부터는 성격이 바뀐다. 조용했던 엔진은 3,000rpm을 넘어가면서부터 터보차저 엔진임에도 불구하고 소프라노를 발산한다. 이런 점은 과거의 기블리에서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변한 곳이 있는데, 이제는 주행 모드 변환 시 계기반에서 ‘스포츠 현탁액’ 대신 ‘스포츠 서스펜션’ 이라는 제대로 된 한글을 볼 수 있다.
엔진 회전은 순식간이다. 2,500rpm에서 눈을 한 번 깜박였을 뿐인데 이미 6,000rpm을 넘기고 있다. 그에 비하면 속도계는 아주 조금이지만 늦게 따라온다. 자동변속기와 4륜구동 분배 등으로 인해 약간은 지체되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데, 사실 이런 감각도 일반도로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무엇보다 이걸 조금이라도 체감하려면 고속 영역을 넘어 초고속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도달할 수는 있다 해도 굳이 도달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고 이 영역은 완전히 폐쇄된 도로 또는 서킷에서 충분히 즐기면 될 일이다.
프론트 더블 위시본, 리어 멀티링크 방식의 서스펜션은 스포츠와 승차감을 오간다. 코너링을 즐기기에 충분한 단단함을 갖고 있지만, 위아래로 움직이는 범위가 뜻밖에도 길고 이로 인해서 승차감도 통통 튀기 보다는 충격을 흡수해나가면서 걸러서 전달하고 있다. 나중에서야 매뉴얼을 보고 안 것이지만, 스포츠 스카이훅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적용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자동으로 댐핑이 조절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뜻밖의 부드러움은 이탈리아 자동차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와인딩 로드에서의 재미도 챙겨가고 있다. 서스펜션이 아무리 조절이 잘 된다고 해도 기본은 차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자연스러운 코너링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기블리는 이전의 마세라티 모델들에 비하면 운전 실력이 약간 부족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맞지만, 그 이상을 가기 위해서는 운전자가 차를 이해하고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실 4륜구동 보다는 일반 후륜구동 모델을 더 권하고 싶다. 아무래도 긴급 시 앞바퀴가 개입하는 것과 순수하게 뒷바퀴가 밀어주는 것은 차이가 크니 말이다.
그런 운동성능을 중시하는 기블리이기에, ACC를 비롯한 ADAS 장비가 적용되어 있다는 점이 처음에는 약간 낮설게 다가온다. 이 점은 스포츠 주행을 잠시 즐기고 긴 휴식이 필요할 때 가볍게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이 때 사용한다는 것 정도로 인식하면 될 것 같다. 매일 서킷을 달리거나 와인딩 로드를 주행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전방에서 주행하던 차가 급정거를 하기에 브레이크를 약간 늦게 밟았더니 계기반 중앙에 “브레이크”라는 글자가 한글로 크게 등장하며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더 세게 걸린다. 이번에는 마세라티가 자연스러운 한글화에 많은 신경을 썼다.
기블리는 전자장비로 조금 무장하고 편의를 챙기고 있다. 그리고 2도어는 4도어로 바뀌었고 가족을 위한 실용성도 더했다. 그래도 기블리는 기블리, 마세라티는 마세라티다. 과거와 똑같이 터보차저임에도 불구하고 소프라노를 노래하며 순수의 시대를 외치고, 이탈리아 스포츠카 특유의 가속 그리고 코너링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그 아름다운 자태와 전면의 강렬한 삼지창을 보면 매혹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과거의 기블리가 감성 9 실용성 1 이였다면, 지금의 기블리는 감성 7에 실용성 3인 것 같다. 이기적이지만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는, 감성에 시대가 요구하는 필요한 만큼의 실용만을 더한, 그래서 편안하게 주행할 수 있지만 여전히 감성을 노래할 수 있는 그런 자동차이다. 한 때 꿈을 꿨던 젊은이는 이제 나이를 먹고 있지만, 삼지창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다.
주요 제원 마세라티 기블리 SQ4 그란루소
크기
전장Ⅹ전폭Ⅹ전고 : 4,970Ⅹ1,945Ⅹ1,455mm.
휠 베이스 : 3,000mm
공차 중량 : 2,070kg
트렁크 용량 : 500리터
엔진
형식 : V6
배기량 : 2979cc
최고출력 : 430ps/5,750rpm
최대토크 : 59.2kgm/2,500~4,250rpm
연료탱크 용량 : 80리터
변속기
형식 : 자동 8단 변속기
섀시
서스펜션 앞/뒤 : 더블위시본 / 멀티링크
브레이크 앞/뒤 : V디스크
스티어링 : 랙 & 피니언
구동방식 : 4륜구동
타이어 : 245 / 40 ZR20 / 285 / 35 ZR20
성능
0->100km/h 가속시간 : 4.7 초
최고속도 : 286km/h
복합연비 : 7.4 km/리터
이산화탄소 배출량 : 227 g/km
가격
기본가 : 1억 3,990 만원
추가 옵션 : 1,480 만원
(삼중 코팅, B&W 오디오, 20인치 휠, 블랙피아노 우드, 후면 차음유리)
총 가격 : 1억 5,470 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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