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운동성능에 경제성까지 갖춘, 포르쉐 911 카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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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고회전 자연흡기 엔진의 날카로운 선율은 하나 둘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페이스리프트한 911 카레라 역시 한 쌍의 터보차저를 추가했다. 911 터보가 아니라 터보를 단 911 카레라다. 993의 공랭식 엔진의 단종 결정이나 수동변속기가 사라진 GT3만큼이나 격렬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카레라의 터보화를 예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단순히 배기 규제나 연비 기준 강화 때문에 생긴 시장의 변화와는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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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는 항상 신형 모델을 선보일 때마다 구형보다 우수한 출력을 발휘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파워트레인을 선보일 때마다 수평대향 6기통의 배기량을 조금씩 키워가며 토크와 마력을 쥐어짰다. 2.0L로 시작한 911의 자연흡기 엔진은 최고 4.0L까지 커진 상태. 문제는 RR 방식의 포르쉐 엔진룸이다. 뒷바퀴에서 뒤 범퍼 사이 엔진을 구겨 넣어야 하는 911은 공간 제약과 무게 배분 문제로 실린더를 더 늘리기 어렵다. 기통당 배기량도 늘릴 만큼 늘렸다. 계속 출력 상승 행진을 이어가려면 과급기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예상한 이유다. 자연흡기의 정교함을 강력한 저속 토크와 맞바꾼 911, 과연 궁극적 즐거움이 더 커졌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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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시의 변화 없이 일부 디자인 요소들을 새롭게 단장해 기존 911과 비슷한 듯 다른 외관을 완성했다. 전면 범퍼의 그릴 형상을 다듬고 액티브 플랩으로 냉각 효율과 공기저항을 최적화한다. 4포인트 LED 주간주행등은 르망 레이서의 느낌을 주긴 하지만, 동그란 눈망울의 형태를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워 마음에 꼭 들진 않는다. 입체적인 형상으로 변한 새로운 테일램프는 특히 야간에 매력적인 눈매로 변한다. 카레라의 터보 탑재를 반영하는 증거는 후면 범퍼 양쪽 아래의 냉각 토출구에서 찾을 수 있다. 911 터보는 이 부분을 스타일링 요소로써 과감히 드러낸다면, 카레라는 수줍은 듯 눈에 띄지 않게 어둡게 마감을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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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스포일러 앞에 자리한 흡기 그릴의 형상 변화다. 핀이 세로형으로 바뀌어 뒷유리를 타고 넘어온 신선한 공기를 엔진과 인터쿨러 속으로 쉽게 낚아챈다. 아름답다기보다는 기능적이다. 고속에서 양력을 줄여주는 리어 스포일러는 저속에서도 추가 냉각이 필요할 때 스스로 열려 인터쿨러를 식혀주는 똑똑함을 갖췄다. 배기량은 3.0L로 줄고 좌우 뱅크 옆으로 터보차저를 낮게 배치했다. 같은 배기량을 기반으로 부스트와 컴프레서 차별화를 통해 카레라 S의 420마력보다 50마력 낮게 조율했다. 서열을 지키기 위한 의도적인 출력 봉인이란 느낌도 없지 않다. 기본 장비로 PASM 어댑티브 서스펜션을 받아들여 높이가 10mm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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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가까운 스포츠카 실내 구성을 갖췄던 991은 큰 변화 없이 신형 모델로 이어진다. 애플 카플레이를 적용한 신규 PCM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데일리 스포츠카라는 911의 콘셉트를 더욱 부각시킨다. 드라이빙 마니아들이 환영할 만한 변화가 두 가지다. 첫째, 수동 변속 모드에서 PDK의 시프트 레버 조작 방향이 바뀌었다. 당기면 기어가 올라가고 밀면 기어가 내려간다. 레이스카 방식이다. 패들 시프터 대신 직접 레버를 당겨가며 차와 교감하고 싶은 열혈 드라이버를 위한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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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센터콘솔에 자리했던 주행 모드 변경 버튼이 918처럼 운전대 위에 다이얼로 올라왔다. 911로 스포츠 드라이빙을 해보면 공감할 것이다.기존 스포츠 플러스 버튼은 주행 중 찾아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스포츠 버튼을 찾기 위해 센터콘솔을 더듬거리지 않아도 된다. 여전히 스마트폰 하나 꼽아둘 공간은 마땅치 않지만, 있다 해도 911의 무자비한 가속도로부터 안전한 곳은 결국 암레스트 속 수납공간뿐이다. 운전 자세는 언제나 그랬듯, 교과서적이다. 엔진이 없어 낮게 떨어지는 노즈와 솟아오른 양 끝 펜더로 차선 위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하기가 아주 편하다. A필러 주변 시야도 사각이 적어 골목길에서 레이스 트랙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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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 터보를 받아들인 결과는 어마어마하다. 최대토크 포인트가 5,000rpm대에서 1,700rpm으로 낮아졌다. 전혀 다른 성격의 엔진이 되었다. 게다가 1,700rpm부터 5,000rpm까지 최대토크를 평탄하게 유지한다. 911 중 가장 낮은 마력의 모델임에도 GT3보다도 높은 45.9kg·m의 힘이 타코미터 게이지 대부분에서 쏟아져 나온다. 중속 영역의 펀치를 경험해보면 혹시 S 모델을 타고 있나 싶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부스트압을 가득 채우는 데 지체가 없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통상적 터보 래그와는 성격이 다르다. 0.9바를 사용하는 카레라 엔진의 경우,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순식간에 0.5바 이상을 채우며 즉각적인 가속력을 만든다. 이후 풀부스트를 향해 점점 강한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최대토크까지 바로 형성하지 않더라도 초기 페달 반응에서 기존 카레라보다 높은 토크를 즉각 발휘하기에 컨트롤에 대한 위화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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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K의 변속 속도는 능숙한 레이싱 드라이버보다도 빠르다. 인류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트랜스미션에 찬사를 보낸다. 0→시속 100km 가속을 측정해보니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단 4.2초. 론치 컨트롤 기능을 활용한다면 갓 면허를 딴 여대생이라도 메이커가 발표한 가속 성능 기록을 쉽게 재현할 수 있다. 그만큼 자세는 안정적이고 조종이 쉽다. 제원상 최고 시속은 295km다. 그러나 실제 테스트에서 카레라는 아무렇지 않게 295km를 돌파하더니 앞자리에 3이란 숫자를 띄웠다. 수치적 성능은 월등하다. S 모델에 대한 갈증도 딱히 느낄 수 없을 만큼 균형 잡힌 성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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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감성적 성능은 어떠한가? 포르쉐 노트를 유지하고 있지만 터보로 인해 상당 부분 음량의 색채가 약해지긴 했다. 5,000rpm 근처에서 초점을 맞춰 소리가 모아지는 듯하다가 이윽고 흩어져 버린다. 터널 안에서 창문을 내려 엔진 소리를 들어봐도 과거 자연흡기 911의 입체적인 볼륨을 따라가진 못한다. 고마운 건, 자연흡기가 아님에도 고회전의 레드라인을 고집스럽게 지켜냈다. 370마력 최고출력은 6,500rpm에서 사라지지만 7,500rpm까지 돌릴 수 있는 타코미터 바늘은 마력으로 환산할 수 없는 드라이빙의 쾌락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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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M 기본 설정에 맞추면 국내 도로 환경에서도 만족할 만한 승차감을 선사한다. 고속주행 시 PASM을 스포츠 모드로 두는 오너들이 많은데, 노면이 좋지 않은 고속도로라면 되려 타이어가 노면을 붙잡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 레이스 트랙이나 매끈한 노면의 도로에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파워트레인 고정이 단단해진 탓일까? 기존 모델에서 느끼지 못했던 PDK 충격이 느껴진다. 시프트업 과정에서 RPM이 약간씩 흔들리며 클러치가 물린다. 다행히 승차감을 저해할 정도의 충격이 전해지진 않는다. 외부 소음에 대한 차폐는 크게 기대하지 말자. 광폭타이어의 노면 소음과 걸걸한 포르쉐 노트에 터빈 소리까지 더해져 100km부터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야 대화를 할 수 있다. 즐길 수 있는 소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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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은 작아졌지만 구성품의 추가로 무게는 더 가벼워지지 않았다. 다만, 추가 부품들을 좌우로 넓게 배치한 덕분인지, 후륜의 움직임에 더 자신감이 붙었다. 슬라럼을 연속 드리프트로 통과할 때에도 슬라이드를 제어하기가 수월했다. 트랙에서 911의 핸들링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출력이 더 높은 M4나 C63보다 훨씬 빠르게 코너를 돌아나가면서도 운전자를 위협하지 않는다. 저속의 타이트한 코너를 빠져 나올 때는 여전히 전륜의 그립이 부족하지만, 터보의 중속 토크를 활용한 파워 슬라이드로 원하는 만큼 라인을 수정할 수 있다. 고속 코너의 오버스티어는 서서히 발생해 운전자 또는 PSM(자세 안정화 장치)이 차분히 대응할 시간적 여유를 준다. 심지어 시승 중 만난 우천 속에서도 성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역대 카레라 중 가장 친절하고 순한 핸들링 특성인 셈이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포르쉐의 섀시 기술은 리어 엔진의 약점들을 하나씩 없애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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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출력을 뽑아내며 오랜 주행을 지속해도 냉각 설계가 뛰어나 지치는 기색이 없다. 주행 모드를 노멀로 돌려 기어를 7단까지 올리자 주행 연비가 14km/L까지 올라간다. 흠 잡을 곳 없는 운동 성능에 경제성까지 갖춘 셈이다. 하지만 터널 속에서 창문을 내리던 버릇이 사라진 건 왠지 서글프다. 신형 카레라 오너들의 스포츠 배기 시스템 수요가 높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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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휘 본지 로드 테스터 c2@iautocar.co.kr
사진
김동균 paraguri@gmail.com
제공
오토카 코리아 (www.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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