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혼다 레블 500, "크루저가 이렇게 쉽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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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저 바이크에는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4수 끝에 붙은 2종 소형면허 시험이 떠올라서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3연패를 안긴 시험 차량은 효성모터스(現 KR모터스)의 미라쥬다. 출퇴근용 혼다 슈퍼커브에서 경험한 적 없던 프론트 스텝의 크루저는 유독 다루기 불편하고 무거웠다.
그럼에도 크루저 장르의 바이크에 대한 로망은 있다. 고동감 있는 엔진음을 즐기며 교외의 국도를 유유자적 달리는 모습 때문이다. 그 때 눈에 딱 들어온 바이크가 바로 혼다 레블 500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느 모델들처럼 과하게 번쩍이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았으며 다루기도 쉬웠다.
# 할리데이비슨으로 오해받은 디자인
"그거 할리(데이비슨)에요? 몇cc 짜리에요?"
출근길 옆 차선에 서있던 차창이 열리더니 중년의 남성이 말을 걸었다. 동그란 헤드램프와 풍만한 연료탱크, 낮은 시트를 보니 할리데이비슨처럼 보였나보다. 얼마 있지 않아 측면에 붙어있는 혼다 로고를 발견한 그는 약간은 놀란 눈치였다.
실제로도 레블 500은 여느 아메리칸 크루저 특유의 터프한 인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혼다 엠블럼을 뗀 채 실루엣만 놓고 보면, 미국 브랜드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년 남성들이 탈 것만 같은 스타일은 아니다. 무광 소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등 과한 요소들은 배제했다.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구성 요소들도 다른 크루저와의 차별화 요소다. 헤드램프 내에는 4개의 LED 모듈을 배치했는데, 이 탓에 조명 하나 만으로도 미래 지향적인 느낌을 준다. 이 외 테일램프, 전·후 방향지시등에도 LED를 써서 현대적인 이미지는 물론, 시인성과 내구성도 확보했다.
중앙에 자리잡은 동그란 디지털 클러스터는 다양한 정보를 표시한다. 시간, 속도, 연료 잔량, 기어 체결 상태 등을 보여준다. RPM 게이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게 흠이지만, 변속 타이밍은 엉덩이와 허벅지로 느껴나가면 그만이다.
아쉬움이 없는건 아니다. LCD 디스플레이는 햇빛이 강한 환경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는 건 좋지만, 아날로그 계기판과 혼용된 클러스터를 썼어도 좋았겠다. 수납공간이 없는 것도 불만이다. 옵션으로 새들백을 추가할 수 있지만, 결국 돈을 주고 공간을 사야 하는 일이다.
# 너무나도 쉬운 운전, 시트는 아쉬워
레블 500은 최고출력 46마력, 최대토크 4.4kg.m을 발휘하는 471cc 수랭식 병렬 2기통 엔진을 품고 있다. CBR500R, CB500F 등과 공유하는 엔진으로, 고회전 성향의 세팅을 중·저속 영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개량했다.
물론, 할리데이비슨이나 BMW R18 같은 강력한 저속 토크감을 기대할 수는 없다. 태생이 고회전 성향의 엔진이다보니, 여느 크루저들보다는 높은 회전대에서 안정적인 출력이 나온다. 강력한 고동감을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크루저 본연의 편안하고 부드러운 감각을 즐기기엔 충분하다.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는 클러치 조작감. 어시스트 슬리퍼 클러치가 적용돼 초심자들도 부드럽게 변속할 수 있다. 클러치를 생각보다 급격하게 떼도 확 튀어나갈 일도 없고, 정차와 재출발이 반복되는 시내 주행에서도 피로도가 적다. 크루징은 물론, 시내 주행에서도 쉽게 운전할 수 있겠다.
아쉬운 점은 시트다. 불과 1시간여를 주행한 데 그쳤지만, 엉덩이가 배기는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노면의 충격은 잘 걸러내는 것 같은데, 시트가 잔 진동을 잘 걸러내지 못한다. 커스텀을 통해 조금 더 푹신한 시트를 다는 편이 좋겠다.
연료탱크가 11.2리터에 불과한 것도 불만이다. 장거리를 주행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주유소를 부지런히 들러야겠다. 60km/h 정속주행시 연비 효율이 40.2km/l에 달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속주행인 데다, 가·감속이 잦다면 실제 연비는 이보다 낮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혼다의 철학은 크루저에서도 유효했다.
레블500은 부담스럽지 않은 절제된 스타일링과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는 구조가 인상적인 모터사이클이었다. 스쿠터는 어딘가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 싫지만, 배기량이 조금 더 높고 멋까지 겸비한 바이크를 찾는다면 레블 500은 훌륭한 선택이겠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쉽게 다룰 수 있다보니 입문용 미들급 바이크로도 딱이다.
시승차를 반납하고 난 뒤,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철학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누구나 쉽게 운전할 수 있는 모터사이클'을 만들겠다는 그의 지향점 말이다. 슈퍼커브나 벤리 같은 모델에만 들어맞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창업자의 정신은 완전히 새로운 장르에도 녹아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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