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현대, 그랜저 3.3(캘리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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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대 그랜저(IG)가 페이스리프트 됐다. 세대를 거듭난 모델 체인지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번 변화 포인트는 ‘젊음’이다. 현대차의 작전은 통한 것 같다. 30~40대 소비자들의 그랜저 선택 비율이 높아졌고, 사전계약 판매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SUV 전성기라고 불리는 시기지만 적어도 그랜저만큼은 예외라고 느껴진다. 무엇이 소비자들을 그랜저로 이끌게 했는지 오토뷰 로드테스트 팀이 테스트에 나섰다.
그랜저의 개발 방향은 ‘영 포티’다. 현대차가 만든 신조어인데 꽤 그럴듯하다. ‘서태지와 아이들’, ‘반항’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X 세대’가 40대에 접어들었고, 젊고 오픈 마인드를 가진 40대라는 뜻에서 이와 같은 명칭을 붙인 것이다.
이들 세대는 수입차를 많이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자동차를 보는 눈도 높다. 이들을 그랜저로 끌어들이기 위해 현대차는 많은 것을 바꿨다. 변화가 없는 것은 앞쪽 도어 정도.
벌써 길거리에 많이 돌아다니는 만큼 디자인도 익숙하다. 전면부의 마름모 형태 헤드램프와 그릴 패턴 디자인, 그릴에 숨겨진 주간 주행등, 삼각형의 범퍼 측면 공기 흡입구 등등 호불호는 있지만 튀어 보이는 디자인이다. 후면부에 연결된 리어 램프 디자인도 그랜저만의 전통이었는데, 이제 한 줄로 단순화됐다.
측면부 C-필러 디자인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이드 미러 카메라 위치도 살짝 변경됐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휠 안쪽에 헬름홀츠 공명기가 추가된다. 200Hz 대 공명음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17~18인치 휠에는 빠지고 19인치 휠에만 들어 있는 기능이다.
크기도 커졌다. 휠베이스가 40mm 길어졌고 폭도 10mm 가량 넓어졌다. 늘어난 휠베이스는 모두 뒷좌석 공간을 넓히는데 사용됐다. 테스트 모델은 3.3 가솔린. 무게를 확인한 결과 1706.5kg으로 확인됐다. 기존 그랜저 3.0이 1632.5kg이었으니 약 74kg 가량 증가한 것. 성인 남성 1명 정도 추가된 셈이다.
참고로 후면 유리창 조립 불량이 다수 있었다. 이 때문에 잡소리 문제가 발생했는데, 현대차는 이를 조용히 무상 수리하고 있다. 신차를 기분 좋게 받았는데 뒷 유리를 다시 뜯고 붙인다는 얘기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을 내용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건비를 자랑하는 VIP 노조가 대중 브랜드의 세단을 만들며 조립 불량이라니…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다.
인테리어도 거의 모델 체인지급 변화를 보인다. 계기판, 센터페시아, 스티어링 휠, 대시보드 형상과 각종 버튼까지 모두 달라졌다.
테스트 모델은 최상급 트림인 캘리그래피다. 12.3인치 디스플레이 계기판, 인조가죽 대시보드, 나파 가죽 시트, 가죽 스티어링 휠과 나파 가죽 혼 커버, 리얼 알루미늄 도어트림, 뒷좌석 스웨이드 목베개 등으로 고급화를 이뤘다.
커다란 계기판은 시각적인 만족감이 크다. 모드 변화에 따른 테마 변경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기존 계기판에서는 다양한 기능을 설정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기능을 센터페시아에서 하도록 만들었다. 디스플레이 사이즈가 커졌는데 기능적인 부분을 축소한 것이다.
스티어링 휠은 쏘나타에서 봤던 디자인이다. 열선도 있는데, 금속 장식이 있는 부분이 차가워서 겨울에 불편하다. 아무래도 멋을 위한 금속 장식인데, 양면성을 갖는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역으로 한 여름에는 금속 장식이 가장 뜨겁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도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적용됐다. 현대차에서는 아쿠아 GUI라고 부르는데, 아이콘이 다소 복잡해 보인다. 음악을 틀면 자동으로 앨범 커버 이미지를 보여주는 기능도 있다. 적어도 세세한 부분에 신경 썼다. 그리고 엉뚱한 자리에 있던 아날로그 시계를 삭제했다.
송풍구를 금속 장식과 함께 연결된 느낌으로 표현했다. 렉서스가 자사의 대형 세단 LS를 통해 도입한 효과인데 실제 금속을 깎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비슷한 느낌을 냈다. 하단 공조장치는 터치식이다. 현대차 최초로 미세먼지 감지 센서와 마이크로 에어 필터도 넣었다. 공기 청정 시스템이 작동할 때 애니메이션으로 효과를 표현한다. 처음 보는 소비자라면 신기해 할지도 모르겠다.
기어 레버는 버튼식이다. 옆자리에 스마트폰 무선 충전 데크를 구성했다. 대각선으로 놔두는 방식인데, 급제동만 안 한다면 앞으로 쏠릴 일은 없겠다. 포드 익스플로러도 대각선으로 거치하는 형태인데, 가속과 감속이 반복될 때 스마트폰이 앞뒤로 움직이며 충격을 받았다.
시트에도 변화가 있다. 2세대 스마트 자세제어 시스템이 추가된 것인데, 장기간 운전을 할 때 피로하지 않도록 등받이에서 주기적인 자극을 전해준다. 마사지와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성격이다.
신체 정보를 입력하면 운전 자세를 추천해 주는 기능도 있다. 과거 제네시스 EQ900 때도 있었는데, 등받이는 눕히고 스티어링 휠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허리를 보호한다는데 의미가 있지만 안전운전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편안함과 안전성,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앞좌석 시트는 통풍과 열선, 운전석은 쿠션 익스텐션 기능도 지원한다. 조수석 워크인 디바이스도 있다.
뒷좌석은 넓다. 특히 무릎 공간이 넓다. 옆 창문과 뒷 창문에 선셰이드도 있고, 암레스트에 오디오 컨트롤도 갖췄다. USB 포트는 송풍구 쪽이 아니라 암레스트 커버 안에 숨겨져 있다. 최근 현대 기아차가 시트 폴딩 기능을 빼고 있는데, 이 부분이 아쉽다. 많은 소비자들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동차에 있어 공간 확장성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트렁크 공간 변화는 없다. 그러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윗부분까지 깔끔하게 마감한 점을 칭찬하고 싶다. 작지만 세심한 배려다. 트렁크도 당연히(?) 전동 조작으로 작동한다. 최상급 트림이니까.
편의 및 안전장비는 정말 많다. 정차 및 재출발, 앞차 출발 알림, 과속카메라 속도 연동, 커브길 연동, 터널 연동이 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사각 및 후측방 경고 및 긴급제동, 차로 유지, 고속도로 주행 보조, 오토 하이빔 등이 탑재된다. 특히 전방 추돌 경고 및 방지 기능은 교차로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기능이 강화됐다.
방향지시등을 켜면 후측방 상황을 보여주는 후측방 모니터 기능이 있다. 전방위 카메라를 활용한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기능도 제공되는데, 쨍한 느낌은 적지만 화질이 좋다. 포드 익스플로러와 비슷한 느낌이다.
앰비언트 라이트도 있다. 64가지 색상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데, 타사 대비 조금 더 진한 색감이 특징이다.
오디오 시스템은 12개의 스피커를 갖춘 JBL 사운드 시스템이다. 형제 모델인 기아 K7은 크렐 제품을 사용했는데, 그랜저의 것이 더 낫다. 다만 부가 기능인 퀀텀 로직 시스템(QLS) 기능은 음악에 따라 만족도가 갈린다. 때로는 너무 인위적인 소리를 내서 듣기 싫었다.
이외에 헤드 콘솔 통합형 하이패스, 빌트인 캠, 제네시스 G90에 들어갔던 후진 가이드 램프도 갖췄다. 쏘나타에 있던 원격 시동과 원격 주차 기능도 탑재됐다.
그랜저가 갖춘 구성만 나열해도 이 정도다. 그랜저는 정말 많은 장비들을 갖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할 요소다.
시동을 건다. 그랜저의 6기통 3.3리터 엔진이 깨어난다. 배기음이 꽤 큰가 싶었는데 바로 잠잠해진다. 아이들 정숙성을 확인한 결과 약 38.0dBA 수준을 보였다. 우리 팀이 테스트했던 기존 그랜저는 3.0리터 엔진을 사용했는데, 당시 38.5dBA을 나타냈다. 현대차에서 소음 저감을 위해 뒷좌석 하단 등 흡차음재를 보강했다고 밝히고 있다. 미미하지만 효과가 있는 것일까?
시속 80km로 주행 중인 상황의 정숙성을 확인했다. 58.5dBA을 보였다. 기존에 테스트했던 그랜저 3.0 모델이 58.0dBA을 기록했으니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19인치 휠에 장착된 공명기가 대단한 소음 저감을 보여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사람의 귀로 차이를 느낄 정도는 아닌 듯하다.
주행을 시작하면 조용하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가속 페달에서 살짝 진동이 느껴지는데, 시승차만의 특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정상이라면 향후 개선이 필요하다.
6기통에 3리터 이상 배기량을 갖는 엔진이 얹히니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힘의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서스펜션은 물침대처럼 흐물흐물하지 않고 어느 정도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성격이다. 8세대 쏘나타 하체가 젊은 소비자를 위해 어느 정도 단단한 느낌을 가져갔다면 그랜저는 그보다는 부드럽다. 여기에 조금 조인 감각을 넣었다고 보면 된다.
서울 도심.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환경에 특화된 것 같다.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힘이 느껴지고 브레이크 페달은 살짝 밟아도 바로 멈춰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속과 브레이크 페달 모두 초반에 많은 힘을 내도록 몰아 놓았다는 얘기다. 다만 그랜저가 타깃으로 설정한 젊은 40대 소비자들의 일부가 수입차 경험을 했던 터라 이들에게는 이 부분이 아쉬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가속 페달을 밟았다. 생각보다 힘차게 속도를 올린다. 저속에서 반응성도 좋다. 배기량은 3.3리터지만 경쟁사 3.5~3.6리터 급 엔진과 유사한 감각을 보인다. 특히 5~6000rpm 영역에서 밀어주는 마력감도 좋다. 현대차의 V6 엔진은 저속에서 아쉬움을 보일 때는 있어도 고속에서만큼은 시원스러운 느낌을 보인다. 같은 이유로 이 엔진 기반의 쿠페가 나오면 좋은 성능을 낼 것 같다. 여담이지만 가속 페달을 계속 밟고 있으면 200km/h 이상까지 쉽사리 속도를 올리곤 한다.
다만 이때 느껴지는 고속 안정감이 다소 평범하다. 과거의 현대차와 비교하면 많은 발전을 했다. 하지만 동급 경쟁 모델(토요타 아발론, 닛산 맥시마, 쉐보레 임팔라)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비교하면 갭은 더 커진다. 물론 이들과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 애초 다른 영역의 모델들이니까. 하지만 조금 더 나은 성능까지 내준다면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편의 장비를 많이 갖춘 차가 성능까지 좋다면 금상첨화니까.
가속 성능을 테스트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7.43초가 소요됐다. 스포츠 세단을 표방하는 닛산 맥시마가 6.69초로 동급에서는 가장 빠르지만 그랜저도 좋은 성능을 보였다. 아슬란 3.3(7.63초)과 비교해도 약 0.2초가량 단축된 기록이기도 하다. 참고로 기아 2세대 K7 3.3 전기형 모델이 7.67초를 작성했었다.
제동 성능도 확인했다. 100km/h의 속도에서 완전히 정지할 때의 최단거리는 38.35m였다. 기존 모델이 38.24m를 기록했으니 거의 동등한 성능이다. 제동 테스트를 지속한 결과 최장 41.44m까지 밀려났다. 이에 평균 제동거리도 39.81m 내외로 나왔다. 초반에 제동 성능이 꽤 몰려 있는 성격인데 조금 더 고르게 분포시키면 좋겠다.
정리하면 가속 성능은 배기량이 증대된 만큼 향상됐고, 제동 성능은 기존 모델과 거의 동일한 수준임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코너를 만나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와인딩 코스에 접어들어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변경했다. 스티어링 휠이 묵직해지고 변속기는 고회전 영역을 사용하도록, 엔진과 스로틀 반응도 민감하게 바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스티어링 휠 조작에 따른 세련된 거동이다. 업계 최고는 될 수 없다. 하지만 현대차의 전륜구동 모델로는 수준급. 대중 브랜드 특성상 고급스러운 감각까지 바라기는 힘들지만 워낙 이 부분을 못하던 현대차 상품이기에 진화의 폭이 더 크게 느껴진다.
코너링 상황. 차량이 한쪽으로 확 쏠리거나 또는 너무 단단하게 버티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의 롤은 허용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정확히 일정 수준의 롤 이후부터 본격 성능을 내는, 쉽게 말해 버텨주는 성격으로 보면 된다.
차체 길이가 5m에 달하는 만큼 전륜이 움직인 이후 후륜이 따라오는데 일정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길이가 긴 차량의 특성이 나타나는 것인데, 후륜의 거동이 깔끔하지 못하면 운전자가 불안하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랜저는 불안한 수준의 감각은 만들지 않았다. 후륜 측의 움직임은 늦어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라고 보면 된다.
스티어링 휠의 조작감도 무난하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았다. 날카로운 감각은 없지만 승용 세단으로는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다. 참고로 2.5 모델에는 C-MDPS가, 3.3 모델에는 R-MDPS가 장착되는데, 자사 최상급 세단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성공을 내세우는 고급차의 이미지를 갖고자 한다면 ‘그랜저’라는 이름값에 부합하게 R-MDPS를 기본화시키는 것이 좋겠다. 트림이나 엔진에 따라 이런 시스템은 달리하는 건 정말이지 보기 힘든 예다.
타이어와의 궁합도 무난했다. 접지 성능이 좋은 타이어는 아니지만 그랜저가 갖고 있는 엔진 성능이나 무게 등과 적정한 선에서 잘 맞았다. 이번에는 남양연구소 OE 타이어 팀이 꽤 신경을 쓴 모양이다.
타이어는 245mm 너비를 갖는다. 미쉐린 프라이머시 MXM4인데, 이 타이어는 프리미엄 4계절 타이어 그룹에 속한다. 마른 노면뿐 아니라 젖은 노면에서도 좋은 성능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국산 타이어 대비 가격이 높아 그랜저의 소비자들이 타이어 바꿀 때 이 타이어를 다시 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제법 좋은 코너링 성능, 타이어에서 요구되는 여러 가지 감각에서도 부족함을 보이지 않았다. 잔 진동을 걸러주는 능력도 좋다. 한 가지 조언하자면 미쉐린이라서 좋은 것이 아니다. 미쉐린이 좋다고 맹신하는 소비자들도 많은데, 미쉐린이 잘하는 것도 일부 장르에 국한된다. 국내 타이어 중에 가장 성능 좋은 것? 대부분 사람들은 한국 타이어를 꼽았다. 하지만 막상 비교를 할 때면 한국타이어 제품 성능이 기대에 못 미친다. 자세한 이유는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단순히 브랜드 이미지 하나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다시 그랜저로 돌아가자.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면 가속 페달 조작량 대비 엔진 스로틀이 더 빠르고 과감하게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코너에서 재가속을 할 때 운전자가 밟은 가속 페달보다 엔진이 더 큰 힘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불필요한 토크스티어를 만들기 때문에 가속 페달을 생각보다 덜 밟아야 한다. 실제로 스포츠 모드에서 달릴 때 가속 페달을 절반 이상 밟은 것이나 끝까지 다 밟은 것이나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엔진은 성격이 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서두르지만 변속기는 조금 느리다. 코너에 인접한 상황에서 패들을 조작해 기어를 내려도 생각했던 시간보다 느리게 변속됐다. 엔진 성능이 좋다 보니 다음 코너까지의 가속이 빠른데 제동과 함께 기어를 내리는 과정이 느려 패들을 연속으로 당길 때가 많았다.
스포츠 모드가 아닌 컴포트 모드에서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그랜저와 더 잘 어울렸다. 이때 엔진 성능도 더 여유롭게 느껴졌고, 섀시 거동도 만족할 수준으로 보였다. 느긋한 주행이니 변속기 성능에도 불만이 없다. 차의 본분에 맞는 성향이다.
마지막으로 연비는 기존 그랜저와 큰 차이 나지 않았다. 시속 100km의 속도로 정속 주행하는 환경에서 보여준 연비는 약 13km/L 수준. 고저차 없이 평이한 도로를 달린다면 최대 15km/L까지 바라볼 수 있다. 대단한 효율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배기량을 감안한다면 타협을 수준은 된다.
신형 그랜저는 페이스리프트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바꿨다. 여러 장비들을 추가한 것에 그치지 않고 주행 감각까지 개선했다. 이제 그랜저가 현대자동차의 기함급 세단 역할을 하는 만큼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위에 그랜저를 구입하겠다고 하면, 계약했다고 해도 흔쾌히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가격표가 조금 다른 상황을 만든다. 가격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 2.5 기본형이 3355만 원대부터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팀이 받은 테스트 모델인 3.3리터 캘리그래피 트림에 모든 옵션을 더하면 4750만 원까지 올라간다.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택한 후 최상급 트림+풀옵션 조합이라면 4988만 원이라는 경이로운(?) 가격표를 받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할인 폭이 커진 BMW 520i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도 나온다. 편의 장비는 부족하다. 하지만 자동차가 만드는 나머지 감각적인 것들은? 이건 제네시스조차 넘보지 못하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능력이다.
5세대 그랜저(HG)에서 6세대 그랜저(IG)로 변경되면서 현대차는 적게는 23만 원에서 많게 140만 원으로 가격을 높였다. 물론 일부 트림 가격을 78만 원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기본형 모델 가격을 185만 원이나 올랐다. 3.3 모델은 가격 상승 폭이 낮지만 그래도 100만 원 가까이 가격이 비싸졌다.
‘모델체인지 급 변화’를 했으니 ‘모델체인지 급 가격 인상’을 결정한 것일까? 정말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또 좋게 개선됐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지출이 더 늘겠다.
현재 그랜저의 장점을 충분히 누릴 수 있으면서 편의 장비 면에서 부족하지 않은 트림 조합을 추천한다. 아무리 현대차의 기함 세단이라지만 4천만 원 중반 혹은 그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맞지 않아 보인다. 국내 공장에서 만든 차가 한해 몇 천대 내외 팔리는 수입차와 유사한 가격을 갖췄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때 현대 기아차는 ‘착한 가격’을 내세워 가격 인상률을 최소화시켰다. 하지만 이제 고가 정책을 부활시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은 발전하고 그만큼 차는 좋아지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그래서 비싼 가격을 받아야 한다고 합리화를 해서는 안 된다.
이번 변화 포인트는 ‘젊음’이다. 현대차의 작전은 통한 것 같다. 30~40대 소비자들의 그랜저 선택 비율이 높아졌고, 사전계약 판매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SUV 전성기라고 불리는 시기지만 적어도 그랜저만큼은 예외라고 느껴진다. 무엇이 소비자들을 그랜저로 이끌게 했는지 오토뷰 로드테스트 팀이 테스트에 나섰다.
그랜저의 개발 방향은 ‘영 포티’다. 현대차가 만든 신조어인데 꽤 그럴듯하다. ‘서태지와 아이들’, ‘반항’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X 세대’가 40대에 접어들었고, 젊고 오픈 마인드를 가진 40대라는 뜻에서 이와 같은 명칭을 붙인 것이다.
이들 세대는 수입차를 많이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자동차를 보는 눈도 높다. 이들을 그랜저로 끌어들이기 위해 현대차는 많은 것을 바꿨다. 변화가 없는 것은 앞쪽 도어 정도.
벌써 길거리에 많이 돌아다니는 만큼 디자인도 익숙하다. 전면부의 마름모 형태 헤드램프와 그릴 패턴 디자인, 그릴에 숨겨진 주간 주행등, 삼각형의 범퍼 측면 공기 흡입구 등등 호불호는 있지만 튀어 보이는 디자인이다. 후면부에 연결된 리어 램프 디자인도 그랜저만의 전통이었는데, 이제 한 줄로 단순화됐다.
측면부 C-필러 디자인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이드 미러 카메라 위치도 살짝 변경됐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휠 안쪽에 헬름홀츠 공명기가 추가된다. 200Hz 대 공명음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17~18인치 휠에는 빠지고 19인치 휠에만 들어 있는 기능이다.
크기도 커졌다. 휠베이스가 40mm 길어졌고 폭도 10mm 가량 넓어졌다. 늘어난 휠베이스는 모두 뒷좌석 공간을 넓히는데 사용됐다. 테스트 모델은 3.3 가솔린. 무게를 확인한 결과 1706.5kg으로 확인됐다. 기존 그랜저 3.0이 1632.5kg이었으니 약 74kg 가량 증가한 것. 성인 남성 1명 정도 추가된 셈이다.
참고로 후면 유리창 조립 불량이 다수 있었다. 이 때문에 잡소리 문제가 발생했는데, 현대차는 이를 조용히 무상 수리하고 있다. 신차를 기분 좋게 받았는데 뒷 유리를 다시 뜯고 붙인다는 얘기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을 내용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건비를 자랑하는 VIP 노조가 대중 브랜드의 세단을 만들며 조립 불량이라니…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다.
인테리어도 거의 모델 체인지급 변화를 보인다. 계기판, 센터페시아, 스티어링 휠, 대시보드 형상과 각종 버튼까지 모두 달라졌다.
테스트 모델은 최상급 트림인 캘리그래피다. 12.3인치 디스플레이 계기판, 인조가죽 대시보드, 나파 가죽 시트, 가죽 스티어링 휠과 나파 가죽 혼 커버, 리얼 알루미늄 도어트림, 뒷좌석 스웨이드 목베개 등으로 고급화를 이뤘다.
커다란 계기판은 시각적인 만족감이 크다. 모드 변화에 따른 테마 변경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기존 계기판에서는 다양한 기능을 설정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기능을 센터페시아에서 하도록 만들었다. 디스플레이 사이즈가 커졌는데 기능적인 부분을 축소한 것이다.
스티어링 휠은 쏘나타에서 봤던 디자인이다. 열선도 있는데, 금속 장식이 있는 부분이 차가워서 겨울에 불편하다. 아무래도 멋을 위한 금속 장식인데, 양면성을 갖는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역으로 한 여름에는 금속 장식이 가장 뜨겁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도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적용됐다. 현대차에서는 아쿠아 GUI라고 부르는데, 아이콘이 다소 복잡해 보인다. 음악을 틀면 자동으로 앨범 커버 이미지를 보여주는 기능도 있다. 적어도 세세한 부분에 신경 썼다. 그리고 엉뚱한 자리에 있던 아날로그 시계를 삭제했다.
송풍구를 금속 장식과 함께 연결된 느낌으로 표현했다. 렉서스가 자사의 대형 세단 LS를 통해 도입한 효과인데 실제 금속을 깎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비슷한 느낌을 냈다. 하단 공조장치는 터치식이다. 현대차 최초로 미세먼지 감지 센서와 마이크로 에어 필터도 넣었다. 공기 청정 시스템이 작동할 때 애니메이션으로 효과를 표현한다. 처음 보는 소비자라면 신기해 할지도 모르겠다.
기어 레버는 버튼식이다. 옆자리에 스마트폰 무선 충전 데크를 구성했다. 대각선으로 놔두는 방식인데, 급제동만 안 한다면 앞으로 쏠릴 일은 없겠다. 포드 익스플로러도 대각선으로 거치하는 형태인데, 가속과 감속이 반복될 때 스마트폰이 앞뒤로 움직이며 충격을 받았다.
시트에도 변화가 있다. 2세대 스마트 자세제어 시스템이 추가된 것인데, 장기간 운전을 할 때 피로하지 않도록 등받이에서 주기적인 자극을 전해준다. 마사지와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성격이다.
신체 정보를 입력하면 운전 자세를 추천해 주는 기능도 있다. 과거 제네시스 EQ900 때도 있었는데, 등받이는 눕히고 스티어링 휠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허리를 보호한다는데 의미가 있지만 안전운전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편안함과 안전성,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앞좌석 시트는 통풍과 열선, 운전석은 쿠션 익스텐션 기능도 지원한다. 조수석 워크인 디바이스도 있다.
뒷좌석은 넓다. 특히 무릎 공간이 넓다. 옆 창문과 뒷 창문에 선셰이드도 있고, 암레스트에 오디오 컨트롤도 갖췄다. USB 포트는 송풍구 쪽이 아니라 암레스트 커버 안에 숨겨져 있다. 최근 현대 기아차가 시트 폴딩 기능을 빼고 있는데, 이 부분이 아쉽다. 많은 소비자들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동차에 있어 공간 확장성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트렁크 공간 변화는 없다. 그러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윗부분까지 깔끔하게 마감한 점을 칭찬하고 싶다. 작지만 세심한 배려다. 트렁크도 당연히(?) 전동 조작으로 작동한다. 최상급 트림이니까.
편의 및 안전장비는 정말 많다. 정차 및 재출발, 앞차 출발 알림, 과속카메라 속도 연동, 커브길 연동, 터널 연동이 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사각 및 후측방 경고 및 긴급제동, 차로 유지, 고속도로 주행 보조, 오토 하이빔 등이 탑재된다. 특히 전방 추돌 경고 및 방지 기능은 교차로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기능이 강화됐다.
방향지시등을 켜면 후측방 상황을 보여주는 후측방 모니터 기능이 있다. 전방위 카메라를 활용한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기능도 제공되는데, 쨍한 느낌은 적지만 화질이 좋다. 포드 익스플로러와 비슷한 느낌이다.
앰비언트 라이트도 있다. 64가지 색상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데, 타사 대비 조금 더 진한 색감이 특징이다.
오디오 시스템은 12개의 스피커를 갖춘 JBL 사운드 시스템이다. 형제 모델인 기아 K7은 크렐 제품을 사용했는데, 그랜저의 것이 더 낫다. 다만 부가 기능인 퀀텀 로직 시스템(QLS) 기능은 음악에 따라 만족도가 갈린다. 때로는 너무 인위적인 소리를 내서 듣기 싫었다.
이외에 헤드 콘솔 통합형 하이패스, 빌트인 캠, 제네시스 G90에 들어갔던 후진 가이드 램프도 갖췄다. 쏘나타에 있던 원격 시동과 원격 주차 기능도 탑재됐다.
그랜저가 갖춘 구성만 나열해도 이 정도다. 그랜저는 정말 많은 장비들을 갖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할 요소다.
시동을 건다. 그랜저의 6기통 3.3리터 엔진이 깨어난다. 배기음이 꽤 큰가 싶었는데 바로 잠잠해진다. 아이들 정숙성을 확인한 결과 약 38.0dBA 수준을 보였다. 우리 팀이 테스트했던 기존 그랜저는 3.0리터 엔진을 사용했는데, 당시 38.5dBA을 나타냈다. 현대차에서 소음 저감을 위해 뒷좌석 하단 등 흡차음재를 보강했다고 밝히고 있다. 미미하지만 효과가 있는 것일까?
시속 80km로 주행 중인 상황의 정숙성을 확인했다. 58.5dBA을 보였다. 기존에 테스트했던 그랜저 3.0 모델이 58.0dBA을 기록했으니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19인치 휠에 장착된 공명기가 대단한 소음 저감을 보여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사람의 귀로 차이를 느낄 정도는 아닌 듯하다.
주행을 시작하면 조용하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가속 페달에서 살짝 진동이 느껴지는데, 시승차만의 특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정상이라면 향후 개선이 필요하다.
6기통에 3리터 이상 배기량을 갖는 엔진이 얹히니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힘의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서스펜션은 물침대처럼 흐물흐물하지 않고 어느 정도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성격이다. 8세대 쏘나타 하체가 젊은 소비자를 위해 어느 정도 단단한 느낌을 가져갔다면 그랜저는 그보다는 부드럽다. 여기에 조금 조인 감각을 넣었다고 보면 된다.
서울 도심.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환경에 특화된 것 같다.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힘이 느껴지고 브레이크 페달은 살짝 밟아도 바로 멈춰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속과 브레이크 페달 모두 초반에 많은 힘을 내도록 몰아 놓았다는 얘기다. 다만 그랜저가 타깃으로 설정한 젊은 40대 소비자들의 일부가 수입차 경험을 했던 터라 이들에게는 이 부분이 아쉬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가속 페달을 밟았다. 생각보다 힘차게 속도를 올린다. 저속에서 반응성도 좋다. 배기량은 3.3리터지만 경쟁사 3.5~3.6리터 급 엔진과 유사한 감각을 보인다. 특히 5~6000rpm 영역에서 밀어주는 마력감도 좋다. 현대차의 V6 엔진은 저속에서 아쉬움을 보일 때는 있어도 고속에서만큼은 시원스러운 느낌을 보인다. 같은 이유로 이 엔진 기반의 쿠페가 나오면 좋은 성능을 낼 것 같다. 여담이지만 가속 페달을 계속 밟고 있으면 200km/h 이상까지 쉽사리 속도를 올리곤 한다.
다만 이때 느껴지는 고속 안정감이 다소 평범하다. 과거의 현대차와 비교하면 많은 발전을 했다. 하지만 동급 경쟁 모델(토요타 아발론, 닛산 맥시마, 쉐보레 임팔라)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비교하면 갭은 더 커진다. 물론 이들과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 애초 다른 영역의 모델들이니까. 하지만 조금 더 나은 성능까지 내준다면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편의 장비를 많이 갖춘 차가 성능까지 좋다면 금상첨화니까.
가속 성능을 테스트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7.43초가 소요됐다. 스포츠 세단을 표방하는 닛산 맥시마가 6.69초로 동급에서는 가장 빠르지만 그랜저도 좋은 성능을 보였다. 아슬란 3.3(7.63초)과 비교해도 약 0.2초가량 단축된 기록이기도 하다. 참고로 기아 2세대 K7 3.3 전기형 모델이 7.67초를 작성했었다.
제동 성능도 확인했다. 100km/h의 속도에서 완전히 정지할 때의 최단거리는 38.35m였다. 기존 모델이 38.24m를 기록했으니 거의 동등한 성능이다. 제동 테스트를 지속한 결과 최장 41.44m까지 밀려났다. 이에 평균 제동거리도 39.81m 내외로 나왔다. 초반에 제동 성능이 꽤 몰려 있는 성격인데 조금 더 고르게 분포시키면 좋겠다.
정리하면 가속 성능은 배기량이 증대된 만큼 향상됐고, 제동 성능은 기존 모델과 거의 동일한 수준임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코너를 만나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와인딩 코스에 접어들어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변경했다. 스티어링 휠이 묵직해지고 변속기는 고회전 영역을 사용하도록, 엔진과 스로틀 반응도 민감하게 바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스티어링 휠 조작에 따른 세련된 거동이다. 업계 최고는 될 수 없다. 하지만 현대차의 전륜구동 모델로는 수준급. 대중 브랜드 특성상 고급스러운 감각까지 바라기는 힘들지만 워낙 이 부분을 못하던 현대차 상품이기에 진화의 폭이 더 크게 느껴진다.
코너링 상황. 차량이 한쪽으로 확 쏠리거나 또는 너무 단단하게 버티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의 롤은 허용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정확히 일정 수준의 롤 이후부터 본격 성능을 내는, 쉽게 말해 버텨주는 성격으로 보면 된다.
차체 길이가 5m에 달하는 만큼 전륜이 움직인 이후 후륜이 따라오는데 일정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길이가 긴 차량의 특성이 나타나는 것인데, 후륜의 거동이 깔끔하지 못하면 운전자가 불안하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랜저는 불안한 수준의 감각은 만들지 않았다. 후륜 측의 움직임은 늦어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라고 보면 된다.
스티어링 휠의 조작감도 무난하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았다. 날카로운 감각은 없지만 승용 세단으로는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다. 참고로 2.5 모델에는 C-MDPS가, 3.3 모델에는 R-MDPS가 장착되는데, 자사 최상급 세단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성공을 내세우는 고급차의 이미지를 갖고자 한다면 ‘그랜저’라는 이름값에 부합하게 R-MDPS를 기본화시키는 것이 좋겠다. 트림이나 엔진에 따라 이런 시스템은 달리하는 건 정말이지 보기 힘든 예다.
타이어와의 궁합도 무난했다. 접지 성능이 좋은 타이어는 아니지만 그랜저가 갖고 있는 엔진 성능이나 무게 등과 적정한 선에서 잘 맞았다. 이번에는 남양연구소 OE 타이어 팀이 꽤 신경을 쓴 모양이다.
타이어는 245mm 너비를 갖는다. 미쉐린 프라이머시 MXM4인데, 이 타이어는 프리미엄 4계절 타이어 그룹에 속한다. 마른 노면뿐 아니라 젖은 노면에서도 좋은 성능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국산 타이어 대비 가격이 높아 그랜저의 소비자들이 타이어 바꿀 때 이 타이어를 다시 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제법 좋은 코너링 성능, 타이어에서 요구되는 여러 가지 감각에서도 부족함을 보이지 않았다. 잔 진동을 걸러주는 능력도 좋다. 한 가지 조언하자면 미쉐린이라서 좋은 것이 아니다. 미쉐린이 좋다고 맹신하는 소비자들도 많은데, 미쉐린이 잘하는 것도 일부 장르에 국한된다. 국내 타이어 중에 가장 성능 좋은 것? 대부분 사람들은 한국 타이어를 꼽았다. 하지만 막상 비교를 할 때면 한국타이어 제품 성능이 기대에 못 미친다. 자세한 이유는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단순히 브랜드 이미지 하나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다시 그랜저로 돌아가자.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면 가속 페달 조작량 대비 엔진 스로틀이 더 빠르고 과감하게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코너에서 재가속을 할 때 운전자가 밟은 가속 페달보다 엔진이 더 큰 힘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불필요한 토크스티어를 만들기 때문에 가속 페달을 생각보다 덜 밟아야 한다. 실제로 스포츠 모드에서 달릴 때 가속 페달을 절반 이상 밟은 것이나 끝까지 다 밟은 것이나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엔진은 성격이 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서두르지만 변속기는 조금 느리다. 코너에 인접한 상황에서 패들을 조작해 기어를 내려도 생각했던 시간보다 느리게 변속됐다. 엔진 성능이 좋다 보니 다음 코너까지의 가속이 빠른데 제동과 함께 기어를 내리는 과정이 느려 패들을 연속으로 당길 때가 많았다.
스포츠 모드가 아닌 컴포트 모드에서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그랜저와 더 잘 어울렸다. 이때 엔진 성능도 더 여유롭게 느껴졌고, 섀시 거동도 만족할 수준으로 보였다. 느긋한 주행이니 변속기 성능에도 불만이 없다. 차의 본분에 맞는 성향이다.
마지막으로 연비는 기존 그랜저와 큰 차이 나지 않았다. 시속 100km의 속도로 정속 주행하는 환경에서 보여준 연비는 약 13km/L 수준. 고저차 없이 평이한 도로를 달린다면 최대 15km/L까지 바라볼 수 있다. 대단한 효율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배기량을 감안한다면 타협을 수준은 된다.
신형 그랜저는 페이스리프트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바꿨다. 여러 장비들을 추가한 것에 그치지 않고 주행 감각까지 개선했다. 이제 그랜저가 현대자동차의 기함급 세단 역할을 하는 만큼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위에 그랜저를 구입하겠다고 하면, 계약했다고 해도 흔쾌히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가격표가 조금 다른 상황을 만든다. 가격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 2.5 기본형이 3355만 원대부터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팀이 받은 테스트 모델인 3.3리터 캘리그래피 트림에 모든 옵션을 더하면 4750만 원까지 올라간다.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택한 후 최상급 트림+풀옵션 조합이라면 4988만 원이라는 경이로운(?) 가격표를 받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할인 폭이 커진 BMW 520i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도 나온다. 편의 장비는 부족하다. 하지만 자동차가 만드는 나머지 감각적인 것들은? 이건 제네시스조차 넘보지 못하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능력이다.
5세대 그랜저(HG)에서 6세대 그랜저(IG)로 변경되면서 현대차는 적게는 23만 원에서 많게 140만 원으로 가격을 높였다. 물론 일부 트림 가격을 78만 원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기본형 모델 가격을 185만 원이나 올랐다. 3.3 모델은 가격 상승 폭이 낮지만 그래도 100만 원 가까이 가격이 비싸졌다.
‘모델체인지 급 변화’를 했으니 ‘모델체인지 급 가격 인상’을 결정한 것일까? 정말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또 좋게 개선됐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지출이 더 늘겠다.
현재 그랜저의 장점을 충분히 누릴 수 있으면서 편의 장비 면에서 부족하지 않은 트림 조합을 추천한다. 아무리 현대차의 기함 세단이라지만 4천만 원 중반 혹은 그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맞지 않아 보인다. 국내 공장에서 만든 차가 한해 몇 천대 내외 팔리는 수입차와 유사한 가격을 갖췄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때 현대 기아차는 ‘착한 가격’을 내세워 가격 인상률을 최소화시켰다. 하지만 이제 고가 정책을 부활시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은 발전하고 그만큼 차는 좋아지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그래서 비싼 가격을 받아야 한다고 합리화를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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