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현대차 아슬란, 임팔라와 경쟁할 그랜저 개선판으로 나왔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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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현대차의 아슬란 G330을 시승했다.
아슬란은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에 포지셔닝된 전륜 구동 대형 세단이다. 그랜저보다 더 조용하고 안락한 프리미엄 세단을 원하는 운전자에게 제시한 모델이다. 그 옛날 현대차가 그랜저 파생 모델인 다이너스티를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어울린다.
그런데 지금의 아슬란은 대형 세단 시장에서 동네북이 되버렸다. 올 2월 이후로 국내서 월 1천 대 이상 판매된 적이 없다. 경쟁 차종인 쉐보레 임팔라가 본격 출시된 8월엔 겨우 425 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현대차의 아슬란은 국내서 왜 이렇게 안 팔릴까? 글쓴이는 아슬란을 타면서 느낀 점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 그랜저와 제네시스,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다 |
현대차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아슬란을 보면 전통적으로 잘 팔리는 준대형 세단 그랜저, 후륜 구동 프리미엄 세단으로 인기 높은 제네시스를 걱정하며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 그랜저보다 고급스런 최고의 전륜 구동 세단으로 부르지만, 글쓴이가 경험한 아슬란은 두 차종 때문에 간섭을 당한 듯했다.
왜 그런지는 아슬란이 등장하기 전의 라인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랜저는 HG240과 HG300, HG330, 제네시스는 3.3과 3.8 모델이 판매되고 있었다. 수학적으로 그랜저를 A, 제네시스를 B 집합으로 표현하면 아슬란은 교집합(A∩B)에 속하는 모델이다. 그랜저 HG330(라인업 삭제)과 제네시스 3.3이 아슬란 G330, 그랜저 HG300이 아슬란 G300에 포함됐다.
애초에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엔 라인업의 공백이 없었다는 얘기다. 남아돌던 람다2 3.3 V6 엔진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팔리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끝에 신차로 아슬란을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만으론 판매가 부진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소비자들이 아슬란을 신차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다. 프로젝트명 AG로 개발된 아슬란은 그랜저의 HG와 겹친다. 그랜저와 YF 쏘나타, K5의 기반인 구형 Y6 플랫폼을 그대로 적용해 설계됐다. 현대 기아차가 그렇게 강조하던 첨단 고장력강(AHSS)도 언급되지 않았다. 아런 이유로 아슬란은 국내 무대서 당당하지 못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아슬란의 프로젝트명 AG를 본따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A)아, 알고 보니 (G)그랜저였더라.
■ 프리미엄 세단의 기품, 이해가 부족했던 짧은 시간 |
아슬란은 그랜저보다 고급스런 프리미엄 준대형 세단이다.
퀼팅 처리된 프라임 나파 가죽 시트,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이중 접합 차음 유리, 12채널 렉시콘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극세사 스웨이드 마감재 등 그랜저에서 절대 선택할 수 없는 편의 사양을 올려놨다. 센터페시아 디자인 구성도 젊은 취향의 그랜저보다는 정말로 고급스러워 보인다.
운전석 기본 시트 포지션이 비교적 높아서 생각보다 차를 몰기 편하다. 굳이 시트 높이를 올리지 않아도 전방 시야가 탁 트인다. 사이드 미러로 관찰할 수 있는 측후방 시야도 좋다. 싼타페 더 프라임만큼 시야가 넓어 전혀 답답하지 않다. 여유롭게 운전하기 딱 좋은 셋팅이다.
다만 프리미엄 세단으로 말하기엔 상품성에서 일부 준비가 부족한 내용도 있었다.
뒷 좌석까지 세이프티 파워 윈도 기능이 확대되지 않은 점, 공조 장치 컨트롤러를 비롯해 버튼의 조작감이 만족스럽지 못한 점, 트렁크 열 때 속도가 너무 빨라 주의가 필요한 점 등이 되겠다. 이런 부분은 세심히 준비해 상품을 구성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당시 신차 출시가 급해 신경쓰지 못한 듯하다.
이왕이면 지금의 제네시스처럼 아슬란을 상징하는 엠블럼을 달았다면 미관상 더 보기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전 다이너스티와 기아차 오피러스도 전용 엠블럼이 있었다. 최고의 전륜 구동 세단이란 걸 강조할 포인트가 빠졌다.
■ 그립감, 햅틱 반응이 어중간한 스티어링 휠 |
아슬란의 스티어링 휠은 프리미엄 세단의 기품과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자고로 프리미엄 세단은 스티어링 휠을 손에 움켜쥔 질감도 고급스러워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가죽 스티어링 휠의 쥘감은 괜찮았지만 그립감은 오히려 신형 쏘나타보다 못했다. 볼보처럼 도톰하게 나왔어야 하는데, 주행 도중 스티어링 휠을 손에서 놓칠까 바짝 쥐고 운전해야했다. 스티어링 휠 크기를 줄이고 그립을 늘리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
스티어링 시스템도 최고급 전륜 구동 세단이란 말이 무색하게 일체감이 없다. 차체에 비해 스티어링 감도가 너무 가볍다. 이미 컬럼 구동형 MDPS(C-EPS)가 적용된 점을 인지하곤 있었지만, 이걸 고려해도 그랜저를 몰았던 운전자라면 실망할 수 밖에 없는 셋팅이다. 주행 모드를 스포트로 설정해야 그나마 쓸만해진다.
LDWS로 차선 이탈 시 발생되는 경고음과 스티어링 휠로 전달되는 햅틱 반응은 약했다. 안전 운전을 위해 경고 음량을 키우고 햅틱 반응을 강하게 설정됐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운전자에게 휴식을 제안하는 메시지를 띄우는 것도 필요하다.
조그 다이얼로 스티어링 휠 위치를 조정하는 전동식 텔레스코픽 기능은 마음에 든다.
■ 어영부영하다 임팔라에 완전히 말렸다 |
아슬란이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은 부분은 쉐보레 임팔라의 출시다.
아슬란보다 저렴한 가격에 만족스런 파워트레인과 옵션 구성, 제네시스보다 크고 존재감이 강했다. 넓은 실내 공간과 트렁크 등 큰 차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소비자의 취향을 저격했다. 한국지엠은 쉐보레 임팔라로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어필했다.
그에 반해 아슬란은 그랜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랜저는 30대, 아슬란은 40~50대의 연령층을 위한 전륜 구동 세단이라며 어깃장을 놓았지만 소비자들은 똑똑했다. 그랜저와 완전히 다르다고 인식하지 않았다. 그랜저를 사러 온 소비자들이 수입차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안타까워 만든 차, 이것이 아슬란의 위치라곤 부정하지 못할 분들이 여럿 계실 것이다.
아슬란 G300이 3,824~3,991만 원, 아슬란 G330은 4,113~4,506만 원인데 비해, 쉐보레 임팔라는 3.6 가솔린 LTZ가 4,136만 원이다. 차량 기본 가격으로도 임팔라는 아슬란에 없는 스마트폰 무선 충전 시스템, 220V 인버터 등의 편의 사양이 포함돼 있다.
임팔라는 수입차로 판매되는 차라서 아슬란보다 보험료와 자동차 수리 비용이 더 비싸기 때문에 이득될 게 없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생각보다는 등급 차이가 크지 않다. 보험개발원이 책정하는 26단계의 등급 중 아슬란은 17등급, 임팔라는 12등급으로 선정됐다. 차량 선택에 영향을 줄 만큼 차이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단도직입적으로 "아슬란이 임팔라보다 나은 게 뭐야?" 라고 묻는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있다고 해봐야 내비게이션과 연동되는 HUD 정도가 되겠다. 글쓴이 경험상 렉시콘 12채널 프리미엄 사운드는 임팔라의 11채널 보스 프리미엄 사운드보다 못하다.
■ 아슬란, 그랜저 상품 개선 모델로 나왔어야 |
아슬란은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면 그랜저의 상품 개선 모델로 나왔어야 했다.
설득력이 부족한 차별화를 논하기보다 그랜저의 전반적인 상품성을 강화해 판매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지도 모른다. '아슬란, 이것이 그랜저의 새로운 모습'이라는 뉘앙스로 세련된 인테리어와 업그레이드된 준대형 세단의 감성을 논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대차가 원하는 가격 절충도 보다 유연했을 것이다.
지난 5월, 현대차는 싼타페의 상품 개선 모델로 출시한 싼타페 더 프라임을 출시해 상당한 실적 개선을 맛봤다. 올 5월까지 월 평균 5~6천 대 수준으로 판매했던 것을 6월 이후 8~9천 대로 대폭 끌어올렸다. 신차로 출시한 것 이상의 판매 실적을 달성했다.
그래서 아슬란을 향한 아쉬움은 어느 차종보다 진하다. 상품성은 그랜저보다 분명히 고급스러운데, 가격을 그랜저보다 저렴하게 내려도 도무지 팔리지 않는다. 이는 마케팅 전략이 잘못됐다고 봐도 반박할 얘기가 없다. 아슬란을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에 끼울 것이 아니였다.
현대차는 아슬란의 실패를 계기로 40~50대 연령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작은 배려 하나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소비자 마음은 돈으로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것만이 고급스러운 게 아니다. 지금 현대차에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이상으로 현대차 아슬란 시승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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