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한옥의 여유 느껴지는 푸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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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금껏 봐오던 푸조 2008 시승기와는 ‘조금’ 다르다. 급가속이나 와인딩 소감, 단순한 연비측정 따위의 이런저런 평가들은 이미 다른 시승기들에서 충분히 다뤘기에 이번엔 조금 다른 호흡으로 접근하려 했다. 눈에 불을 켜고 시승한 게 아니라, 한 박자 쉬면서 이 차가 주는 진짜 행복을 느껴보기로 한 것이다.
따뜻한 남쪽나라로…
무엇보다 주안점을 둔 건 ‘여유’ 였다. 평소와 달리 조금 느긋하게 지낼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많은 새로운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다. 그런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 2008의 키가 내 손에 쥐어줬다. 빌딩숲 사이로 파고드는 칼바람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으로 가야 마음에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뜨끈한 온돌 바닥도 그리워졌다. 문득 떠오른 곳은 경상북도 안동.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고장으로 유명하다. 한옥 또한 여전히 잘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목적지를 정하고 거리를 계산해보니 출발지인 홍대입구역에서는 대략 270km쯤 떨어져 있었다. 당일치기로도 나쁘지 않은 거리다. 게다가 이번 시승의 콘셉트인 ‘여유’와도 잘 어울리는 거리다. 이보다 멀어지면 이동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쉽게 지친다.
수도권을 벗어나자 고속도로가 한산해졌다. 이젠 크루즈 컨트롤 기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문득, 가족을 태웠을 때를 떠올려봤다. 차가 많아도, 다른 차들이 조금 앞서간다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저 교통 흐름에 맞춰 달릴 뿐이다. 함께 차를 탄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도로별 제한속도에 맞춰 느긋하게 달렸다. 비록 시간은 조금 더 걸릴지 몰라도 리터당 24km가 넘게 찍혀있는 계기반을 보니 기분이 좋다. 먼 거리를 가야 할 때 필요한 기름값은 마음의 ‘여유’와 관계가 깊지 않을까 싶다.
국도와 시내에서도 여유로운 운전은 계속됐다. 평소였으면 격하게 몰아붙였을 구불구불한 길도 부드럽고 편하게 지날 수 있었다. 천천히 스티어링 휠을 돌려보니 2008이 보여주는 안정된 핸들링에 사뭇 놀랐다. 눈 앞에 보이는 코너를 정확하면서도 부드럽게 지나가는 느낌이 피겨 스케이트를 보고 있을 때와 같았다. 기분 좋은 핸들링에 맞춰 아름다운 주변 풍경은 덤이다.
한옥 그리고 2008
그렇게 약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고즈넉한 고택이 모여있는 안동 중에서도 ‘수애당’이다. 수애당은 독립운동가 수애 류진걸이 지은 집으로 조선후기 전통한옥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고택이다. 1987년, 임하댐 건설 탓에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고, 전통가옥의 불편한 점을 보완해 일반인에게 공개한 곳이다.
다홍색 푸조 2008을 아름다운 한옥 옆에 세워두니 너무나 잘 어울린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 유연한 곡선의 필러는 기와지붕의 부드러움과 많이 닮았고, 곳곳에 붙은 화려한 크롬장식도 기와 끝 단의 화려한 문양으로 포인트를 준 한옥의 느낌과 비슷하다.
네모 반듯한 넓은 실내공간은 한옥의 대청마루나 각 방처럼 실용적인 공통점이 있다. 글로브박스를 안쪽으로 깊게 넣어 조수석 공간을 넓혔고, 문짝과 센터콘솔에는 제법 깊은 공간을 파 놓아서 다양한 형태의 수납이 가능하다.
뜨끈뜨끈한 온돌의 매력에 빠질 무렵, 벌써 밖엔 해가 저물고 있었다. 어중간하게 퇴근길 차들과 마주하면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해서 올라올 때는 조금 속도를 냈다. 그런데 예전보다 조금 더 경쾌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유로6 기준에 맞추면서 최고출력 99마력, 최대토크 25.9㎏·m로 성능이 조금 더 향상된 탓이다.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답답함 없이 시원스럽게 올라가는 속도계와, 여전히 뛰어난 효율을 보면 ‘역시 2008답다’는 생각이 든다.
정체구간이 길어지면서 서울에 왔다는 게 실감이 됐다. 약 500km거리를 달리는 동안의 평균연비는 리터당 22.2km였고, 아직도 460km나 더 달릴 수 있다고 찍혀있었다. 연비운전에 신경 쓰면 한번 주유 시 1,000km쯤은 거뜬하다는 얘기다.
여유로움 속에서 찾은 공통점
여유롭게 내려간 이번 시승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전통한옥의 한국적인 감성과 프랑스 차가 만나 예상 밖의 조화로움을 보여줬다. 둘은 공통점이 꽤 많았다. 처음엔 다소 어색하고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급함을 버리고 여유롭게 다가가면, 또 오래 마주 할 수록 매력이 더해진다.
간결하면서도 곳곳에 멋을 낸 2008의 디자인은 차분한 선과 함께 기와 끝 처마의 화려함과 닮았고, 실내 곳곳에 넓은 수납함은 숨은 아이디어에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한옥의 넓고 연속적인 공간구조가 주는 여유로움과 실용을 두루 겸비한 것과 같다.
느긋한 MCP 수동형 자동변속기와 함께 알찬 1.6리터 디젤엔진은 조금만 여유를 갖고 운전하면 차의 성능을 기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마치 한옥에 들어간 온돌 같은 느낌이다. 온돌은 가스 스토브보다 데워지는 속도가 느리지만, 그 열이 방 안 전체로 퍼지게 되면 오래 남아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푸조 2008을 한 박자 쉬고 바라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장점을 찾을 수 있다. 무조건 비싸고, 빠르고, 고급스럽고, 큰 차가 좋은차는 아니다. 저마다 ‘좋은차’의 기준은 있겠지만 힘들 때 휴식이 되어줄 수 있는 차, 그리고 차를 통해 여유를 얻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 그것이 이 차가 갖는 숨은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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