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피아트 500C와 보낸 짜릿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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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버터블은 처음이다. 머리를 휘날리며 지붕 열린 차를 타고 달리면 도대체 어떤 느낌일지 너무나 궁금했다. 여러 브랜드의 다양한 차종을 타봤지만, 아쉽게도 컨버터블과는 유독 연이 닿지 않았다. 시승 일정을 잡아놓고 다른 누군가가 사고를 냈다던지, 다른 시승차와 겹쳐서 동료 기자에게 양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 어쨌든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호기심을 털어낼 기회가 생겼다.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멋진 스포츠카를 떠올리겠지만, 화이트 컬러 외장에 섹시한 레드 소프트 탑으로 멋을 낸 500C를 타게 됐다. 적어도 내게 있어 그 어떤 차보다 좋게 느껴졌다. ‘첫 경험’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법이다.
추워도 지붕은 열어야···
차에 타자마자 한 일은 단연 ‘지붕 열기’였다. 너무나 고대하던 순간이다. 지붕은 좌우 선바이저 사이에 있는 개폐 버튼을 눌러 열었다. 버튼을 한번 누르자 지붕이 70%쯤 열렸고(스포일러 포지션), 다시 한 번 손가락 끝에 힘을 주니 트렁크 부근까지 오픈 됐다(풀 오픈 포지션). 모든 동작을 완료하는 데 걸린 시간은 15초. 푸른 하늘이 훤히 보였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마른 풀을 태운 듯한 겨울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찬 바람도 간간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사람들의 시선도 느껴졌다. 모든 게 어색하면서도 말로만 들었던 컨버터블의 ‘개방감’을 체험하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긴장됐다. 심장은 또 왜이리 빨리 뛰는지. 좋아하는 이성과 처음 손을 잡았을 때, 속으로는 날아갈 것 같지만 겉은 굳어있는 모습과 같을 것이다.
그렇게 지붕을 열고 다닌 지 15분쯤 지났을까. 추웠다. 무엇보다 손이 무척 시렸다. 열선 시트를 켜고 에어컨 온도를 ‘HI’에 맞췄다. 아무리 추워도 오픈에어링만큼은 사수해야 했다. 이 기분을 또 언제 느낄 수 있을지 불확실해서다.
서울 도심을 빠져나와 속도를 높였다. 실내로 유입되는 바람의 강도가 더욱 강해졌다. 순간 ‘후드를 뒤집어 써야 하나’ 고민이 됐다. 그러나 그놈의 멋과 오픈에어링에 대한 집착이 ‘탑을 닫아야 한다’는 생각을 이겼다. 무엇보다 묘한 감정을 끊고 싶지 않았다. 일반 차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분명 ‘시승’이라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진정한 재미는 경쾌한 달리기 성능
혹한의 오픈에어링 도중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면, 달리기 성능이 생각보다 경쾌하다는 점이었다. 무게(1,155kg)는 분명 올해 중순 탔던 500과 같은데 나가는 게 더 날렵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탑을 열고 다니니 운전석 앞뒤에서 울리는 엔진·배기음이 더 크게 들렸고, 덕분에 운전 재미가 커진 탓이 아닐까 싶다. 심리적인 요인도 자동차에 있어 무시하긴 어렵다.
내친김에 주행모드도 스포츠로 바꿨다. 이 차에 탑재된 1.4리터 가솔린 엔진은 최고 102마력(@6,500rpm), 최대 12.8kg·m(@4,000rpm)의 성능을 발휘한다. 변속기는 6단 자동이 맞물린다. 최대한 높은 엔진 회전수(rpm)를 활용하면서 엔진의 힘을 쥐어짜냈다. 보닛 안에서 울려 퍼지는 앙칼진 울음소리가 귓가를 지속적으로 때렸고, 500C를 극한 드라이빙의 차원으로 몰고 갔다. (너무나 행복한 탓에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었으니 이해해달라.) 하지만 그 때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칠게 몰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던 변태적인 감성이 온 정신을 지배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렸다. 그러다 보니 급격한 피로가 밀려왔다. 안전을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행했고, 게다가 지붕을 열고 달린 탓에 찬 바람 탓에 체온이 내려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연스레 가속 페달을 밟는 힘이 약해졌다. 서스펜션은 프론트 맥퍼슨 스트럿, 리어 토션 빔임에도 승차감이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세팅이 나쁘지 않다.
500C는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키가 더 커졌지만, 굽은 길을 돌아나갈 때의 느낌은 불안하지 않았다. 국내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제5조(최저지상고, 지면과 자동차 사이에 120mm 이상의 간격이 있어야 한다)로 인해 유럽 버전(104mm)보다 껑충해져(128mm) 롤링이 걱정됐으나, 오히려 짧은 휠베이스(2,300mm)를 이용해 기민한 몸놀림을 자랑했다.
주행 중간중간 제동력도 체험해봤다. 교통 상황에 따라 브레이크 페달을 살짝 혹은 깊게 밟았는데, 안정적으로 속도를 줄여나갔다. 앞으로 크게 쏠리지도 않았고, 좌우 흔들림도 거의 없었다. 균형감이 좋았다.
이밖에 2016년형 피아트 500C에 첫 탑재된 5인치 터치스크린 유커넥트 시스템은 라디오, 블루투스 등을 지원할 뿐 별다른 기능은 없었다. 주행 중 신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만한 기능이었다.
홍대 연예인 500C
어느덧 다시 도심에 들어왔다. 복잡하다. 당장 집으로 가 쉬고 싶었지만,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이 있었다. 바로 젊음의 거리 홍대였다. 방문 목적은 단순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500C를 주목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평범한 500이면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 차는 이른바 ‘오픈카’다. 분위기가 다르다.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여성들의 시선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앙증맞은 500C 생김새는 물론이고 지붕까지 열렸으니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부러 카페 앞에 주차를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끄는지 살펴봤다. 홍대 연예인이 따로 없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아직 호화로운 컨버터블은 타보지 못해서 상대적인 비교를 하기가 어렵지만 2,000만원대 컨버터블로 이 정도 이목을 끌었다는 점은 기대 이상이었다. 디자인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궁금증이 시원하게 풀렸다. 더불어 한 가지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이 탔던 독일산 고성능 스포츠카보단 500C가 여성들에게 더 인기 있었다는 걸 말이다.
뜻밖의 차, 뜻밖의 행복
500C는 ‘의외의 것’들로 가득한 차다. 그저 작은 컨버터블이 아니었다. 오픈에어링의 묘미를 알려줬고, 경쾌한 주행질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줬다. 분명한 매력이 있었고 덕분에 짜릿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평소 작은차가 주는 운전 재미와 컨버터블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500C를 타보길 권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즐거움이 더 기억에 남듯 500C라는 생소한 차가 주는 특별한 재미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비웃어도 좋다. 어쨌든 내겐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한 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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