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포르쉐 911 카레라S, 진화의 끝을 모르는 ‘모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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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처음 등장했던 포르쉐 911이 어느덧 8세대로 거듭났다. 코드네임 992를 부여받은 신차는 포르쉐 브랜드 특유의 감성에 개선된 운동 성능, 그리고 최신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교과서’적 스포츠카다. 이번에 시승한 차량은 911 카레라S 쿠페다. 뒷바퀴만 굴리는 450마력 스포츠카를 타고 강원도 일대를 달렸다.
8세대 신형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한 눈에 911임을 알아챌 수 있다. 50여년 전통을 자랑하는 시대의 아이콘만이 낼 수 있는 아우라다.
신차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점은 새로운 후드의 형태다. 기존 둥그스름했던 후드가 신형에서는 각 진 모습을 갖췄다. 이는 과거 클래식 911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 요소다. 라인만 바꿨을 뿐인데 시각적으로 꽤 많이 달라졌다.
전면 트렁크를 여는 방법도 달라졌다. 키를 지닌 채 포르쉐 로고 하단부를 손으로 문지르면 잠금이 해제된다. 키를 꺼낼 필요가 없어 꽤나 실용적이다. 트렁크는 꽤나 깊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다.
측면에서는 새롭게 적용된 팝업식 도어 캐처가 눈길을 끈다. 키를 지닌 상태에서 손을 가져가면 ‘스르륵’ 올라온다. 첨단 느낌을 물씬 풍긴다. 잠글 때는 음각 부분을 가볍게 터치하면 된다. 여러모로 편리하다. 도어 개폐는 전자식으로 작동해 손잡이를 가볍게 당기면 경쾌하게 열린다.
불룩 솟은 와이드타입 리어 펜더는 과거 터보 모델 등 고성능 버전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지만, 7세대(991)부터 카레라 모델에도 기본 적용됐다. 사이드 미러를 통해 바라보는 리어 펜더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전형적인 스포츠카다운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측면에는 앞·뒤 크기가 다른 대형 휠이 듬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타이어 사이즈는 앞 245/35R20, 뒤 305/30 ZR21이다. 클래식한 멋이 돋보이는 투톤 휠은 옵션 사양이다(170만원).
한 눈에 봐도 신형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은 바로 후면부다. 새로워진 디자인을 갖춘 테일램프와 더불어 모든 모델에 일자형 주행등이 적용됐다. 그 아래에는 입체적인 ‘PORSCHE’ 문구와 함께 차명인 911 Carrera S가 자리하고 있다. 새로운 ‘911’ 폰트는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는 디자인이다.
후면부에는 재미난 디자인 요소도 숨어있다. 엔진룸 커버의 세로 그릴과 브레이크 등이 바로 그 것. 가운데 2개 빨간 램프를 기준으로 좌·우 각각 9개의 그릴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신차 코드네임인 992를 뜻한다.
브랜드 최신 디자인이 적용된 인테리어는 변화폭이 크다. 가운데 새롭게 자리잡은 10.9인치 와이드 타입 터치스크린이 디지털화에 큰 몫을 했다. 버튼으로 작동하던 대부분의 기능들이 모니터 안으로 들어가며 한층 깔끔한 실내 디자인을 완성했다.
계기판에도 두 개의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다. 해상도도 높고 반응속도도 빠르다. 네 개의 원형은 디지털이지만 가운데 엔진회전계만큼은 아날로그를 고수했다. 옛 것과 새 것의 적절한 조화가 고급스럽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스티어링 휠은 단정한 실내를 완성한다. 크기는 꽤나 작다. 덕분에 요리조리 돌리는 맛이 살아있다. 크기가 작아 발생하는 단점도 있다. 계기판 일부가 스티어링 휠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 가끔씩 가려진 곳을 보기위해 고개를 기웃거려야 한다. 그럼에도 주행 내내 큰 불편함은 없다. 핵심 정보는 가운데에 몰려있다.
아쉽게도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빠졌다. “911은 스포츠카다”라는 포르쉐의 뜻일까, 해당 옵션은 아예 제공하지 않는다.
이외 변화가 큰 부분은 바로 변속기다. 평범했던 레버가 흡사 면도기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탈바꿈했다. 손가락 하나로 조작이 가능한 아담한 크기다. 다만 조작하는 맛이 줄어든 변속감은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기어 레버가 몸집을 줄이고 기존에 있던 버튼들이 모니터 속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변속기 주변은 휑해졌다. 그 자리는 터치 패널을 연상케하는 하이그로시 패널로 마감됐는데 실제로는 아무 기능도 없다. 꽤나 넓은 부분을 비워두니 심심하고 공간이 낭비되는 느낌이지만, 사실 이는 수동 변속기를 위한 자리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7단 수동변속기는 좀 더 알차게 위치한다.
911 전통인 뒷좌석도 마련됐다. 이전 모델과 마찬가지로 신형 911은 등록증에 4인승으로 표기된다. 무늬만 좌석이 아니라 안전띠와 ISOFIX 테더까지 준비됐다.
다만 무릎 공간이 전무하기 때문에 다리를 강제로 벌리고 앉아야 하며 시트 쿠션도 매우 단단해 승차감이 굉장히 떨어진다. 여러모로 불편하다. 174cm 기자가 허리를 펴고 앉으면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꼭 필요하다면 허리를 구부리고 엉덩이를 앞으로 살짝 빼야한다. 이러한 자세로 약 1시간 정도 뒷좌석을 경험했는데, 정말 급할 때만 활용할 공간이다. 물론, 좌석이 없어 누구도 태우지 못하는 2인승 차량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실 평소에는 짐칸으로 활용될 공간이다. 거친 재질의 물건을 적재하더라도 뒷좌석 등받이가 접히기 때문에 값비싼 시트 가죽을 지킬 수 있다.
911답게 엔진은 차량 후면부에 위치한다. 다만 일반적인 차량과 달리 엔진룸 커버를 열어도 엔진을 볼 수 없다. 냉각수와 오일 보충을 위한 캡과 두 개의 냉각팬만 자리한다.
파워트레인은 최고출력 450마력, 최대토크 54.1kgf·m를 발휘하는 3.0리터 수평대향 6기통(F6) 트윈 터보 가솔린 엔진을 얹었다. 흡기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하고 터빈 크기를 키워 기존보다 출력을 30마력 더 높였다. 여기에 단수를 하나 늘린 신형 8단 PDK를 맞물려 민첩하고 효율적인 변속을 자랑한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3.7초만에 도달한다. 20여년 전 슈퍼카에 버금가는 가속력이다. 최고안전속도는 308km/h로 제한됐다.
시동을 걸자 걸걸한 배기음이 들려온다. 의도적으로 거친 음색을 만들어낸 세팅이다. 배기음과 함께 잔잔한 진동이 시트를 따라 올라온다. 여섯 개의 피스톤이 좌우로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이 머릿 속에 그려진다.
먼저 서울 시내를 돌아봤다. 노멀 모드에서는 승용차와 비교해도 될 만큼 편안한 주행감을 제공한다. 페달 반응은 여유로우며 스티어링 휠 또한 적당한 무게감을 갖췄다. 약간의 그르렁대는 배기음만 귓가를 가볍게 맴돈다.
서스펜션의 경우 일반적인 승용차보다는 단단한 편이지만, 일상 영역에서 불편함을 느낄 만큼 딱딱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움직임이 적기 때문에 장시간 운전해도 피로가 적다.
속도를 높였다. 가볍고 사뿐한 움직임이 사뭇 경쾌하다. 고속에서는 한층 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단수가 하나 늘어난 PDK 덕이다. 8단 기어는 크루징 성격이 강하다. 신형 911의 최고속도는 6단 기어에서 나오는 만큼, 스포츠 주행시에 7·8단 기어가 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100km/h에서 8단 체결시 엔진회전수는 1300rpm을 유지한다. 속도를 더 내려 80km/h까지 낮추면 1000rpm까지 내려간다. 냉간시 공회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고속도로를 장시간 정속 주행하다 보니 이 차가 엔진이 뒤에 달린 후륜구동 스포츠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그만큼 여유롭다. 옵션으로 제공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까지 활용하면 장거리 여행도 끄떡없다. 다만 방음에 크게 신경 쓴 모양새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300mm가 넘는 광폭 타이어가 적용된 점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 수준이다.
속도에 따라 자동으로 전개되는 리어 스포일러는 고속에서 에어브레이크 역할까지 수행한다. 운전석에서 날개가 일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점이 유일한 아쉬움이다. 물론 달릴 때만 멋진 날개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터치 스크린을 조작해 운전자가 임의로 스포일러를 작동할 수도 있다.
고속도로에 이어 산길 주행에 나섰다. 이번에는 스포츠 모드의 힘을 빌렸다. 스티어링 휠에 위치한 모드 다이얼을 시계 방향으로 한칸 돌리자 기어 단수를 낮추며 즉각 반응한다. 무엇보다도 달라진 엔진 반응에 놀랍다. 터보 차량임에도 자연흡기 엔진에 버금가는 반응이다. 회전수는 7000rpm을 넘나든다.
카레라S의 진가는 코너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DCC)은 가변 안티롤 바를 통해 차량의 기울임을 효과적으로 억제해준다. 광폭 타이어의 접지력도 한 몫 한다. 고속 코너에서도 비명 한 번 내지르지 않는다.
시승차에는 후륜조향 시스템도 적용됐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뒷바퀴도 함께 고개를 까딱인다. 저속에서는 앞바퀴와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조향각을 줄여주고, 고속에서는 같은 곳을 향해 코너링 시 더 민첩한 몸놀림을 제공한다. 요리조리 코너를 돌아나갈 때 그 체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엔진음은 구간별로 독특한 음색이다. 특히 5000rpm을 넘어설 때부터 터져나오는 배기음은 귀 호강에 충분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스포츠 배기 옵션은 370만원이라는 가격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다. 예비 911 오너라면 필수적으로 넣을 것을 추천한다.
이밖에 주목할 부분은 신형 911에 추가된 웻 모드(Wet Mode)다. 젖은 도로를 자동으로 감지해 운전자에게 빗길 미끄러짐 위험을 경고하면서 모드 변경을 권장한다.
프론트 휠 하우징 내 위치한 음향 센서가 흩뿌려지는 물보라를 감지하기 때문에 비가 그친 이후에도 도로에 여전히 물이 남아있다면 웻 모드가 작동한다. 다만 엔진 출력이나 최대 속도를 제한하지는 않기 때문에 과속은 금물이다.
아쉽게도 시승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이를 시험해보지는 못했다. 비가 오지 않아 아쉬운 특이한 경험이었다.
시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일상 속에서 911 활용 능력이 궁금해졌다. 시내에 들러 복합 쇼핑몰의 경사진 주차장을 마주했다.
포르쉐가 제공하는 옵션 중에는 앞 서스펜션을 들어올려 범퍼가 닿는 것을 방지해주는 ‘프론트 액슬 리프트’가 있다. 전고가 낮은 스포츠카에 매우 유용한 옵션인데 시승차에는 해당 기능이 빠졌다.
리프트 기능 없이 가파른 주차장을 들어가려니 은근히 심장이 조여온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의외로 가뿐하게 통과한다. 진입로 끝부분에서 차체 중앙이 바닥에 닿는 경우도 없었다. 이 정도면 왠만한 생활권에서는 불편함 없이 다닐 수 있겠다. 당연히 리프트 기능까지 추가하면 일반적인 승용차 수준의 주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승하는 동안 차체가 낮아 불편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일부러 좋은 길만 찾아다닌 것도 아닌데 큰 불평 없이 나아갔다. 일상에서 편리하게 타는 스포츠카. 그것이 911의 매력이다.
신형 911은 2021년형이 출시되며 가격이 은근슬쩍 올랐다. 카레라S 쿠페는 2020년형 대비 약 400만원 가량 오른 1억6480만원부터다.
시승차는 실내 투톤컬러 가죽 마감(650만원),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DCC, 460만원), LED 매트릭스 헤드램프(PDLS, 410만원),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330만원), 후륜조향 시스템(320만원) 등 다양한 옵션이 추가돼 2억1030만원의 몸 값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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