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포르쉐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성능은 911, 실용성은 파나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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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첫 전기차 타이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벌써 3년이 지났다. 당시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는 크로스오버나 SUV 형태의 전기차를 내놓던 상황이어서 전기세단 시장은 자연스레 타이칸이 독주를 펼쳤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경쟁자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럭셔리 전기세단 시장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타이칸이 빛을 발하고 있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전기 왜건이다. 지금까지 출시된 전기 왜건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힌다. 더군다나 현재 국내 시장에 나온 전기 왜건은 사실상 타이칸이 유일하다.
둥글둥글한 외관은 한 눈에 봐도 포르쉐다. 전체적인 모습은 파나메라를 줄였다기 보다 911을 늘린 쪽에 가깝다. 떡벌어진 어깨와 낮게 깔린 차체는 어김없이 스포츠카의 자세를 연출한다.
앞 모습은 세단 모델과 동일하지만 B필러 넘어서면 특유의 개성이 드러난다. 크로스 투리스모는 왜건 치고 루프라인이 낮다. 언뜻 보면 쿠페형 세단이라 착각할 수도 있겠다. 리어 범퍼는 디자인이 꽤 과격하다. 머플러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특별히 신경쓴 느낌이다.
시승차에는 오프로드 디자인 패키지(240만원)가 적용됐다. 차량 하단부를 따라 사이드스커트, 휠 아치 등에 플라스틱 클래딩이 더해진다. 작은 변화임에도 오프로드 느낌을 확 살려준다. 범퍼 모서리와 스커트 양 끝에는 특수 플랩이 달렸다. 스톤 칩으로부터 차량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디자인 요소로도 작용한다. 오프로드와 고성능의 느낌을 모두 가지는 효과가 크다.
실내는 타이칸 세단 모델과 같다. 4도어 모델인만큼 파나메라 혹은 카이엔의 이미지를 기대했는데, 스포츠카인 911과 판박이다. 계기판 형상과 수평으로 쭉 뻗은 대시보드, 낮은 시트포지션, 여기에 적절히 부족한(?) 수납공간까지 마치 911의 롱 바디 버전을 타고 있는 듯하다. 앞유리를 통해 흘끗 보이는 돌출형 보닛은 감성마력을 한껏 높여준다.
비상등과 윈도우 스위치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차량 조작은 터치 디스플레이로 한다. 다양한 기능을 탑재하면서 동시에 깔끔한 실내를 연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직관성은 다소 떨어지는데, 특히 에어컨 송풍 방향도 터치로 조작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투머치'다. 조수석 디스플레이(150만원)는 실용성은 큰 의미가 없지만, 차가 더 비싸보이는 효과가 있다.
포르쉐의 전통에 따라 전원 버튼이 스티어링휠 왼편에 위치하지만, 사실 전기차 시대가 되면서 별다른 의미는 없다. 전원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 레버를 조작하면 곧바로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파킹 기어를 넣고 하차한 뒤 문을 잠그면 끝이다. 시승하는 동안 전원버튼을 누를 일은 없었다.
크로스 투리스모의 가치는 2열부터다. 급격히 떨어지던 루프라인이 완만하게 이어지며 헤드룸이 47mm 늘어났다. 세단 모델과 나란히 앉아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넓어진 헤드룸과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 덕분에 개방감도 좋다. 시승차는 4인승 모델로, 가운데 좌석을 과감히 없앴다. 2개의 2열 시트는 마치 버킷시트를 연상하듯 뚜렷한 윤곽을 지녔다. 뒷자리에서도 본격적인 스포츠 주행을 느낄 수 있겠다.
트렁크 공간은 기본 446리터, 2열을 접으면 최대 1212리터까지 늘어난다. 세단 모델에서 느꼈던 공간의 아쉬움을 크게 털어버릴 수 있다. 보닛 아래 위치한 81리터 사이즈 프렁크(frunk, front와 trunk의 합성어)를 활용해 간단한 짐도 넣을 수 있다.
시승차 사양은 '타이칸 4S'다. 기본형과 터보 모델 사이에 위치하는 볼륨 모델이다. 2개의 전기모터가 최고출력 490마력, 최대토크 66.3kgf·m의 성능을 낸다. 여기에 론치컨트롤을 사용하면 순간적으로 571마력의 오버부스트 출력이 발휘된다.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단 4.1초만에 가속하며, 최고안전속도는 240km/h로 제한된다.
전기차 시대에 오면서 파워 인플레이션(?)이 심화됐다. 굳이 터보 모델이 아니더라도 4S 모델만으로도 출력에 대한 갈증은 느끼기 어렵다. 과거 슈퍼카에 버금가는 출력을 쉽게 꺼내쓸 수 있다. 부담스럽게 rpm을 올리지 않아도 되서다. 전기모터는 운전자의 요구에 따라 그저 조용히 막강한 힘을 쏟아낸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최대토크가 즉각 발휘되는 전기 모터의 특성을 십분 살렸다. 페달을 톡톡 밟으면 박자에 맞춰 동승자의 머리가 앞·뒤로 요동친다. 마치 전자제품의 전원을 껐다 켜듯,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속도를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다. 무지막지한 출력과 칼로 잰 듯한 반응속도에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는 굽잇길에서도 마찬가지다. 육중한 몸무게(2285kg)에도 불구하고 번개같은 몸놀림을 선사한다. 전기차라고 해서 달리기 성능을 중시하는 포르쉐 DNA를 잊지 않았다. 운전에 집중하는 순간만큼은 이 차가 왜건이라는 사실을 하얗게 잊게 된다. 연속된 코너를 자로 잰듯 칼같이 공략한다. 여기에는 뒷타이어 폭이 무려 305mm에 달하는 21인치 광폭 휠도 한몫한다.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하는 크로스 투리스모 전용 휠 가격은 620만원, 까맣게 칠하는 비용은 170만원이 추가된다.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DCC), 토크벡터링플러스(PTV Plus) 등 이름도 어려운 주행보조장치들도 운전자 모르게 활약하며 안정적인 주행을 돕는다. 사용하는 에너지만 달라졌을 뿐, 타이칸에서도 포르쉐 DNA는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서울 시내로 향했다. 스포츠카 브랜드라는 빛에 가려졌지만, 타이칸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승차감이다. 에어 서스펜션이 도로 위 충격을 꿀떡꿀떡 삼켜버린다. 특히 과속방지턱을 넘는 실력만큼은 플래그십 세단 부럽지 않다. 여기에 사라진 엔진음과 두꺼운 방음재, 이중접합유리 등이 어우러져 정숙한 실내를 만들어낸다. 단 한가지 아쉬움은 반자율주행 기능이다. 260만원을 내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옵션을 추가할 수 있지만, 차로유지는 물론 이탈경고 기능은 아예 없었다.
타이칸은 기본적으로 회생제동이 작동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내연기관처럼 가속페달을 떼도 적절한 타력주행이 이어질 뿐이다. 스티어링 휠에 위치한 배터리 아이콘 버튼을 누르면 비로소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한다. 필요에 따라 기능을 쉽게 껐다 켤 수 있어 꽤나 편리하다. 아쉽게도 회생 단계 조절은 지원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회생량이 크지 않아 원 페달 드라이빙은 불가능하다.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에는 기본 5단계(레인지,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인디비주얼) 주행 모드에 자갈(Gravel) 모드가 추가됐다. 이를 활성화 하면 에어 서스펜션이 차체를 30mm 들어올린다. 높아진 지상고 덕에 장애물이 차에 닿을 염려가 적다. 이에 맞춰 사륜구동 시스템도 험로 주행에 최적화한다.
차량 설정창에서 임의로 지상고를 조절할 수도 있다. 이때 가장 높은 상태인 '리프트'를 선택하면 차량이 현위치를 기억한다. 자주 다니는 길에 높은 턱이 있거나 할때 유용한 기능이다. 키가 커진 채로 달리는 기분이 묘하다. 같은 도로를 달려도 다른 차를 타는 기분을 낼 수 있다. 속도가 어느정도 높아지면 다시금 차체를 스르륵 낮춘다.
타이칸은 국내출시 당시 주행거리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유럽에서는 1회 충전 시 412km 주행거리를 인증받았지만 국내에서는 300km를 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입 전기차들이 대한민국 환경부 인증을 거치며 주행거리가 감소하는 경우는 흔했지만, 앞자리가 두 번이나 바뀌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막상 배터리를 충전하면 300km가 훌쩍 넘는 숫자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실주행에서도 마찬가지다. 크게 연비를 신경쓰지 않고도 충분히 350km 이상을 달릴 수 있었다. 연비도 5km/kWh가 넘는 수치를 쉽게 기록할 수 있다. 특히 에코모드에 해당하는 '레인지'를 체결하면 계기판을 통해 400km가 넘는 주행가능거리를 보여준다. 타이칸 4S의 배터리 용량은 93.4kWh, 국내 인증거리는 287km다.
포르쉐 타이칸은 여전히 높은 완성도를 바탕으로 럭셔리 전기차 시장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실용성을 갖춘 왜건형 모델 크로스 투리스모까지 더하며 선택의 폭을 넓혔다. 부자 아빠들의 행복한 고민거리가 늘어났다.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 기본 가격은 1억5450만원이다. 여기에 수 많은 옵션이 더해진 시승차 가격은 2억1410만원이다. 실구매자라면 1억원대 후반을 목표로, 필요한 옵션만 적절히 타협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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