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틈새 속 틈새’를 노리는 푸조 508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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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얘기지만, 국내 자동차 시장은 왜건의 무덤이다. 세련된 디자인과 안락한 승차감을 찾는 고객은 세단을, 실용적인 공간을 원하는 고객은 SUV를 선택하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껴있는 왜건은 상대적으로 외면받는 시장이다.
전반적인 수요가 세단과 SUV, 양극단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볼보는 ‘크로스컨트리’ 모델로 틈새시장을 공략해 나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푸조는 세단의 뒤를 늘려놓은 전형적인 왜건 스타일로 ‘틈새 속 틈새’를 노리고 있다.
푸조 508 SW 전면은 사자의 송곳니를 연상케 하는 LED 주간주행등과 입체적인 패턴을 지닌 프런트 그릴, 거대한 공기 흡입구가 위치한 범퍼 등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보닛 끝에는 차명인 508이 새겨져 있다. 푸조는 플래그십 세단의 시작인 ‘504’의 헤리티지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508 앰블럼을 이곳에 배치했다.
후면은 사자의 발톱을 형상화한 3D LED 리어램프가 신비한 인상을 준다. 최근 디자인 트랜드가 리어램프를 좌우로 길게 잇는 것이라면, 푸조는 여러 개의 조명을 세로로 배치했다. 리어램프는 차 문을 열 때마다 물결치듯 켜지며 운전자를 맞이한다.
측면은 늘씬하게 뻗어있는 루프라인과 밋밋함을 줄여주는 캐릭터 라인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프레임 리스 도어와 18인치 휠이 날렵하고 세련된 인상을 한층 강화했다.
볼보의 V60 크로스컨트리가 단정한 양복으로 근육질 몸매를 숨긴 듯한 느낌이라면, 508 SW는 날카로운 인상을 숨기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으면 위·아래가 잘린 독특한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이 운전자를 맞이한다. 얇고 작지만 경쾌하게 돌릴 수 있다. 오래 잡고 있어도 손에 부담이 전혀 가지 않는 효율적인 크기다.
다만, 스티어링 휠에 있는 조작 버튼 배치는 어색하다. 볼륨은 버튼 방식으로, 디지털 클러스터 디자인과 이전 곡·다음 곡 조작은 다이얼로 조작하는데, 각각의 구성 및 조작이 다소 불편하다.
12.3인치 풀 디지털 클러스터는 얇으면서도 선명해 보기 편하다. 스티어링 휠이 작은 덕에 가려지는 부분이 거의 없어 시인성도 상당히 좋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변경도 가능하다. HUD가 필요 없다.
대시보드 중앙에는 8인치 터치스크린이 적용됐다. 내장 내비게이션은 탑재되지 않았지만,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한다. 다만, USB 포트는 기어노브 아래 숨어있어 스마트폰을 연결하기 불편하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도 마련됐지만, 내비게이션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케이블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내비게이션과 무선충전을 동시에 사용할 일은 없었다.
터치스크린 아래는 건반식 버튼과 터치식 버튼, 볼륨 다이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건반식 버튼은 생김새도 아름답고, 누르는 버튼감도 우수하다. 그러나, 탑재되지도 않은 내비게이션 버튼이나 별도로 분리된 차량 설정 버튼 및 i콕핏 설정 버튼 등이 자리를 낭비하고 있다. 공조 장치는 건반식 버튼을 누른 후 나머지 모든 과정은 터치 디스플레이를 통해 이뤄진다. 운전 도중 조작하기에 불편하다.
전반적인 인테리어는 고급스럽다. 몸이 닿는 부분에는 부드러운 감촉의 가죽을 활용해 품격을 높였고, PSA그룹 특유의 아방가르드 감성을 담은 시트 무늬도 우아하다. 우레탄 및 플라스틱을 활용한 부분도 깔끔하게 마감했다. 앰비언트 라이트가 사방에 둘러져 있어 은은한 분위기를 더하며, 컵홀더에까지 세심하게 조명을 넣어놨다.
2열 시트는 6:4 비율로 폴딩도 가능하다. 완벽히 평평하게 접히지는 않지만, 2열을 접었을 때 적재 용량이 530L에서 1780L까지 늘어나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2열 송풍구 및 USB포트도 빼놓지 않아 패밀리카 역할로도 손색없다.
시승차는 508 SW GT라인으로, 2.0L 디젤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최고출력은 177ps, 최대토크는 40.82kg·m를 발휘한다.
디젤 엔진 특유의 높은 토크로 시내 주행에서도, 고속 주행에서도 경쾌한 몸놀림을 보인다. 다만, 정숙함과는 거리가 있다. 디젤 특유의 엔진음과 진동이 운전하는 내내 느껴진다. 풍절음은 고속도로 제한속도 내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드라이빙 모드는 스포츠, 표준, 컴포트, 에코 등 4가지가 마련됐다. 각 모드는 초반 가속 시 엔진의 반응속도와 변속 타이밍을 바꾼다. 이외에도 스티어링 강도나 서스펜션 등이 다르게 세팅되지만,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
크루즈 컨트롤을 조작할 수 있는 레버는 왼쪽 패들시프터 아래 숨어있다. 차간거리는 3단계로 설정할 수 있으며, 버튼을 통해 속도를 지정할 수 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유지 보조 기능을 작동하면 차량은 차로 중앙을 부드럽게 주행한다. 앞차와의 간격도 일정하게 잘 유지하며, 옆 차선에서 차량이 급하게 끼어들지 않는 한 부드럽게 앞 차를 쫓아간다.
오토 스탑&고 시스템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속도를 일정하게 줄이면 약 15km/h에서 엔진 작동을 멈춰 연료 소모를 막는다. 다만, 정체 구간이 많은 시내 구간에서나 속도를 약간 줄이고 싶을 때도 시동을 꺼버리는 등 운전자의 의도와 다소 어긋날 때가 있다. 오토 홀드 기능도 없어 시동이 꺼진 상태를 유지하려면 정차 시 브레이크를 계속 밟고 있어야 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와인딩 코스에서 드러났다. 177ps의 특출나지 않은 출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수한 토크로 오르막 와인딩 코스에서 매섭게 치고 올라간다. 여기에 작고 가벼운 스티어링 휠과 고성능 타이어, 패들시프터의 조합으로 운전자가 의도한 대로 차를 움직일 수 있다. 세단 모델보다 전장이 늘어나 움직임이 둔하거나, 균형을 잃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코너링 반응을 보였다.
코너링 라이트 기능이 탑재되어 주차장 등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회전 시 차량의 진행 방향을 비춰주는 것도 유용하다. 주차장에서는 물론이고, 어둡고 구불구불한 산길에서도 가는 방향을 미리 밝혀줘 안정감이 있다.
시승 기간 동안 약 270km를 주행했다. 공인연비(13.3km/L) 대비 다소 낮은 11.8km/L(8.5L/100km)의 연비를 기록했다. 러시아워에 서울 시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주행 성능을 알아보기 위해 강원도 산길을 내달렸기 때문에 심각하게 떨어지는 수치는 아니다.
푸조 508 SW는 세단 모델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넉넉한 적재 용량과 디젤 엔진의 실용성까지 갖춰 주중·주말 모두 무난하게 어울린다.
다만, 이 차는 확고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다. 그런 ’자발적인 비주류’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줄 특색이 요구된다. 주류인 세단이나 SUV가 아닌, 비주류인 왜건을 ‘왜 굳이 사야 하나?’는 날선 질문에 선뜻 대답할 만한 ‘한 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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