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캐딜락 CT6, 새로운 황금기를 열어 줄 플래그십 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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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중심에 위치한 건물 옥상에서는 로스앤젤레스가 훤히 보였다.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수많은 건물이 질서정연하게 바닥에 붙어있었다. 끝없는 바둑판 같기도 했다. 미국이란 나라의 거대함이 새삼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미국은 모든 것이 거대했다. 사람도 그렇고, 그들이 쓰는 물건도 그렇다. 햄버거도 사뭇 크기가 달랐다.
물론 차도 거대했다.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위상을 도로 위에 펼쳐놓았다. 비효율적으로 큰 컨버터블과 쿠페가 거리로 쏟아졌다. 캐딜락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캐딜락은 미국을 대표하는 고급차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너무 순조로웠던게 화근이었다. 캐딜락이 스스로 만족하고 있을때, 독일 브랜드는 다시 전쟁을 준비했다.
당대 최고의 기술력으로 무장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는 캐딜락이 추구했던 풍요로움과 사뭇 달랐다. 치밀하고 정밀했다. 또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단호했다. 반복되던 석유 파동과 경제 불황에도 아랑곳없이 고급차를 계속 발전시켰다. 하지만 캐딜락은 플래그십 모델 ‘드빌’의 크기를 계속 줄이고, 후륜구동에서 전륜구동으로 구조를 바꿔놓았다.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건물 옥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헬리콥터가 왠지 캐딜락 엘도라도를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프로펠러는 엘도라도가 유독 빛났던 캐딜락의 과거 황금기에서 캐딜락의 새로운 황금기로 이동시켜주는 타임머신 같았다.
헬리콥터는 로스앤젤레스 중심가에서 약 100km 떨어진 라모나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엔 캐딜락의 새로운 플래그십 세단은 CT6가 도열해 있었다. 공항 활주로를 이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대했지만, 실상 공항은 베이스 캠프의 역할만 했다. 대신 공항 주변엔 끝없이 펼쳐진 벌판과 국도, 거대한 산과 국립공원을 휘감는 와인딩 로드를 마음껏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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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반듯하게 늘어선 CT6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CT6는 여느 캐딜락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남성적인 느낌이 강했다. 날카롭게 꺾인 헤드램프와 보닛의 굵은 선은 충분히 강렬했다. 또 넓게 펼쳐진 그릴은 엠블럼이 확대된 듯한 입체감을 전달해줬다.
앞바퀴 위에서 시작된 사이드 캐릭터 라인은 테일램프까지 힘차게 뻗어있다. 또 약간 사선으로 지켜올라간 캐릭터 라인은 CT6의 역동성을 어느 정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겨울임에도 꽤나 따가웠던 캘리포니아의 태양은 CT6의 명암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캐딜락의 디자인 특징은 이런 ‘선’과 반듯하게 잘라낸 ‘면’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다소 차갑게 느껴졌지만, 누구보다 도시적이고 진보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분명 어느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독창성을 갖고 있었다. S클래스가 고급 세단의 대명사라고 할지라도 CT6가 도로 위에서의 존재감은 더 클 것처럼 느껴졌다.
ATS와 CTS를 통해 선보였던 캐딜락의 현대적인 실내 디자인은 차분하고 정중하게 변했다. 화려했던 버튼은 많이 사라졌다. 훨씬 깔끔해졌고, 플래그십 세단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갖췄다. 처음 마주했음에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군가와 비슷하단 느낌도 들지 않았다.
CT6는 분명 플래그십 세단이지만 극단적으로 고급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도 기대 이상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큰 화려함은 없었지만 소재와 마감은 ‘쇼퍼드리븐’에 충실한 독일 플래그십 세단에 비해 부족할게 없었다.
CT6도 공간적으로는 충분히 넓지만 S클래스, 7시리즈와 다소 성격이 달랐다. ‘오너드리븐’의 성격이 강했다. 최고급 트림에 한해서는 뒷좌석 시트도 전동식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극단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드러눕지 않아도 시트는 푹신했고, 안락했다.
모든 것은 뼈대에서부터
CT6에는 총 세가지 엔진이 장착됐다. 캐딜락이 널리 사용하고 있는 2.0리터 터보 엔진과 전통적인 3.6리터 자연흡기 엔진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3.0리터 트윈터보 엔진 등이 탑재됐다. 국내엔 일단 3.6리터 엔진만 출시되지만, 향후 라인업이 보강될 가능성도 있다.
CT6는 캐딜락이 꽤 오랜만에 만든 후륜구동 대형 세단이다. 캐딜락은 CT6를 비롯해 더 큰 럭셔리카를 만들기 위해 ‘오메가’ 플랫폼을 만들었다. 오메가 플랫폼은 GM과 캐딜락의 모든 차체 설계 기술이 적용됐다. 특히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을 확대적용했다. 뼈대의 62%가 알루미늄이고 38%는 고장력 강판이 사용됐다. 엔진과 변속기, 멀티링크 서스펜션 등도 대부분 알루미늄으로 제작됐다.
알루미늄을 대거 사용한 결과, CT6의 포지션은 꽤나 독특해졌다. 크기는 S클래스와 7시리즈와 비슷했지만, 무게는 E클래스나 5시리즈와 비슷했다.
가볍고 견고한 차체는 조명 아래서 그 속살을 드러냈을 때보다 도로 위에서 더 빛났다. CT6는 항상 힘이 넘쳤다. 또 터보 엔진이 친숙한 시대에서 3.6리터 V6 자연흡기 엔진의 빼어난 반응은 유독 두드러졌다. 6000rpm을 넘기며 뒷목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은 CT6의 위치와 성격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CT6의 확고한 성격
끝없는 벌판을 달리는 CT6는 당당했고, 산길을 달리는 CT6는 재빨랐다. 훤칠한 차체에서 ATS의 예리함이 느껴졌다. 분명 휠베이스가 3106mm에 달하는 미국차에서 예상되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캐딜락이 자랑하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은 주행 상황과 주행 모드 설정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굽이진 산길에서는 바깥쪽으로 쏠리는 무게중심을 빠르게 인지하고 대응했다. CT6도 그렇지만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이 적용된 캐딜락은 타이어가 노면에 밀착하는 능력이 유독 뛰어나다. 델파이가 공급하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 시스템은 1000분의 1초 단위로 댐퍼를 조절하며, 페라리도 동일한 서스펜션을 사용하고 있다.
사륜구동 시스템도 더해졌다.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은 주행모드에 따라 구동력을 달리 배분했다. 캐딜락은 후륜구동 세단의 감각을 많이 살리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뒷바퀴에 60%의 힘이 전달되지만 스포츠 모드에서는 80%로 구동력이 높아진다.
이와 함께 속도에 따라 뒷바퀴의 각도를 살짝 틀어주는 액티브 리어 스티어링 시스템까지 추가됐다. 시속 40km를 기준으로 뒷바퀴는 앞바퀴와 같은 방향 혹은 다른 방향으로 각도가 살짝 틀어진다. 그래서 긴 차체가 꼬불꼬불한 산길을 더 민첩하고 날카롭게 돌 수 있었다.
섀시 구성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스포츠 세단이었다. 캐딜락의 욕심이 CT6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캐딜락 CEO 요한 드 나이슨(Johan de Nysschen)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자동차 엔지니어링의 정수로 인정받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캐딜락이 전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기술력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시기”라며 “독일차가 강조하고 있는 성능에 대한 부분에서 캐딜락의 우수성을 계속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준 높은 편의 및 안전 장비
캐딜락이 엔지니어링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이미 성능 이외의 영역에서 부족할게 없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첨단 기술이 담긴 안전 장비와 운전자 보조 시스템은 CT6를 젊고 감각적인 플래그십 세단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CT6의 룸미러는 단순한 거울이 아닌 디스플레이였다. 후방카메라로 찍힌 영상이 룸미러로 전달됐다. 룸미러를 통해 뒤를 보는 것보다 더 넓고 또렷하게 후방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디스플레이는 열이 많이 발생해서 룸미러가 무척이나 뜨거워졌다. 물론 이 기능을 끄고 일반적인 거울의 용도로만 사용할 수도 있었다.
또 전방카메라는 블랙박스의 기능도 담당하고 있었다. 전세계 IT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 만든 차답게 반짝이는 아이디어에서 완성된 기술이 많았다. 휴대폰 무선 충전 기술과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 애플 카플레이 등이 지원되며, USB 포트는 무려 3개에 달했다.
편의 장비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스 파나레이 사운드 시스템이었다. CT6에는 총 34개의 스피커가 장착됐다. 소리를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보스의 엔지니어들이 CT6 개발 초기 단계부터 캐딜락과 협업했다. 실내 디자인에 따른 스피커의 위치와 거리를 계산했고, 입체감을 높이기 위해 앞좌석 헤드레스트 속에도 두개의 스피커를 심었다.
CT6는 캐딜락의 미래
캐딜락이 달라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단순히 주행 성능이나 감각이 독일차와 비슷해진 것만으로 캐딜락의 정체성이 사라졌다고 볼 수 없었다. 그동안 캐딜락이 추구했던 ‘아메리칸 럭셔리’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드 나이센 CEO는 “CT6는 캐딜락이 최초로 창조한 세그먼트로의 재진입을 의미한다. 이 세그먼트는 캐딜락을 유명하게 만든 영역이다. 결국 CT6의 탄생은 캐딜락의 방향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캐딜락은 다시 한번 황금기를 맞이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 넓은 시각으로 시장을 보고 스스로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캐딜락이 추구하는 럭셔리가 무엇인지를 알려줄 신차를 연이어 내놓을 계획이다. CT6이 그 시작이며, 캐딜락의 미래를 살펴볼 수 있는 단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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