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중장년을 위한 전기차, 제네시스 G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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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G80 전동화모델(이하 G80)은 여러모로 친절한 전기차다. 내연기관 차량을 기반으로 만들어 모든 게 익숙하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나 공조 장치 조작도 쉽고, 갑작스런 가속력으로 운전자를 놀라게 하지도 않는다. 촐랑거리지 않는, 고급 세단 특유의 승차감도 좋았다.
5~6년전 테슬라 모델S로 전기차를 처음 탔던 기억이 떠오른다. 디스플레이와 스티어링 휠이 전부인 실내에서 어떻게 해야 시동이 걸리는지, 온도 조절은 어떻게 하는지 한참을 버벅대며 고생했다. 중장년층들이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고려하면, G80은 전기차에 접근하기 어려운 '벽'을 허문 모델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익숙함이 매력, 단점도 분명해
전기차라고 꼭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일 필요는 없다. 특유의 과장되고 화려한 디자인이 정답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변하지 않은 G80의 디자인이 더 보기 좋다. 도로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내연기관 버전의 G80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두 줄'로 요약되는 램프 디자인과 크레스트 그릴, 차분한 측면 캐릭터라인까지 차분한 느낌 그대로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중요도가 낮아진 라디에이터 그릴은 꽉 막아놨다. 그 자리는 제네시스가 'G-매트릭스'라고 부르는 다이아몬드 패턴으로 덮었고, 그 위에 반광 크롬 소재를 씌웠다.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니 방패 모양의 머플러 팁도 필요가 없어졌다. 항공기 터빈을 형상화한 휠은 딱 봐도 공기역학적이다.
아쉬운점은 그릴 하단의 에어 인테이크다. 만들다 만 듯 그리 예쁘지 않다. 차체 컬러와 깔맞춤을 하기 보다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소재로 마감해줬다면 좋았겠다. 램프나 제네시스 엠블럼에 컬러 포인트를 줘서 조금이나마 친환경 모델이라는 티를 내는 것도 어땠을가 싶다.
전기차인걸 티를 내지 않으려는 모습은 실내에서도 두드러진다. 가죽류는 천연 염료로 물들였다. 스티치에 쓰인 실은 재활용 페트병으로 뽑아냈으며, 우드그레인도 자투리 조각들을 끌어모아 만들었다. 카탈로그를 면밀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나마 운전자가 알아챌 수 있는건 12.3인치 클러스터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내장된 전기차 전용 UI 뿐이다.
조금 높아진 듯한 시트 포지션과 줄어든 트렁크 공간은 단점이다. 아무리 배터리 때문이라도 대형 세단만의 여유롭고 넉넉한 공간감을 해치는 요소다. 전기차임에도 2열 센터 터널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 전형적인 고급차, 스포츠모드에선 달라진다
G80의 파워트레인은 136kW(184마력)급 전기모터 2개와 87.2kWh 리튬이온 배터리팩으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시스템 최고출력 370마력, 합산 최대토크 71.4kgf·m을 발휘한다. 출력은 3.5 가솔린 터보(380마력)와 비슷하고 토크는 더 높다.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는 4.9초만에 주파하고, 1회 충전 시 427km를 주행할 수 있다.
스펙상으로 드러나는 강력함과 달리 컴포트 모드와 에코 모드에서는 부드럽게 움직인다. 초반부터 최대토크를 쏟아내는 전기차 특유의 느낌이 극히 억제됐다. 일상에서는 나긋한 움직임을 발휘하고, 가속 페달을 조금 세게 밟아도 그리 신경질적이지 않다. 전기차라는걸 말 하지 않는다면 동승자가 알아채기도 어려워보인다.
승차감도 만족스럽다. 일반적인 고급 세단에서 만끽할 수 있는 묵직함이다. 전방의 도로를 읽어 미리 대응하는 프리뷰 서스펜션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노면 요철을 신경질적으로 치고 가는 여느 전기차의 느낌과는 다르다. 회생제동 시스템의 울컥임도 잘 억제되어있다. 강도를 1단으로 조절해두면 꿀렁이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효율을 챙길 수 있다.
차선 변경 기능까지 포함된 고속도로주행보조2(HDA2)를 켜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체력도, 전기도 아낄 수 있다. 시승 내내 공인 연비(4.3km/kWh)보다 낮은 2~3km/kWh를 유지했는데, 주행 보조 시스템의 도움을 받으니 제원상 수치를 넘어선 5~6km/kWh를 유지한다. 일정 시간마다 시트를 움직여 운전자의 지친 근육을 풀어주는 기능도 기특하다.
정숙성은 더 두드러진다. 100km/h 이상으로 속도를 올려도 풍절음을 느끼기 어렵다. 다양한 소음 제어 기술 덕분이다. 4개의 센서와 6개의 마이크로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읽어 반대 위상의 소리를 송출하고, 도어 실링은 삼중으로 처리해 문짝과 필러 사이를 꽉 틀어막았다. 여기에 이중접합 차음유리까지 넣었다.
이렇게만 보면 전형적인 고급 세단인것 같지만, 스포츠모드를 체결하면 반전의 주행 능력을 보여준다. 370마력, 71.4kgf·m이라는 엄청난 숫자를 아낌없이 사용하며 제대로 달린다. 에르고 모션 시트가 사이드 볼스터를 부풀려 운전자의 몸을 꽉 잡아주고, 3D 클러스터는 더 역동적인 디자인으로 바뀐다. 가속 페달을 꾹 밟아주면 동력을 5:5로 공평하게 배분받은 바퀴가 도로를 움켜쥐고 튀어 나간다. 우리가 전기차에서 기대하는 그런 가속감이다.
직진성만 좋은건 아니다. 스티어링을 돌리는 재미가 상당하다. 응답성 자체가 재빠르지도 않고, 휠 베이스도 긴 편이지만,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아주 깔끔한 궤적을 그려나간다. 보닛엔 엔진이 없고 차체 중앙에 묵직한 배터리가 안정적인 무게 중심을 구현하는 덕분이다. 이런 차의 서킷 주행 능력이 궁금해지긴 처음이었다.
# G80, 누구에게나 쉽고 친절한 전기차
G80은 전용 플랫폼 기반의 전기차들과 궤가 다르다. 전기차이기 이전에 고급 세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버튼을 대체한 큰 스크린이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새로움을 강요하지 않는다. 익숙한 구성과 주행감각으로 어제까지 내연기관 자동차만 탔던 운전자도 당장 오늘부터 손쉽게 운전할 수 있다. 특히 이 세그먼트의 주 구매층인 중·장년층도 어려움 없이 탈 수 있겠다.
제품 자체의 관점으로 본다면 어디까지나 과도기를 담당하는 모델이지만, 앞으로도 제네시스가 이런 방향의 전기차를 더 많이 내놨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로운 기술과 혁신적인 이미지로 새로운 소비층을 끌어들이는것도 중요하겠지만, 충성스러운 집토끼를 놓치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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